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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011.04 - Vol 676
현대문학 편집부 엮음 / 현대문학(월간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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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4월호엔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소설이 실렸다. 이제 막 문단에 들어선 신인들이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니 만큼, 글을 쓰는 당사자들의 부담은 컸을 것이다. 등단을 위해 갈고 닦았던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도 컸을 것이고, 문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미지 구축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8편 단편 모두 제각각의 힘이 있었고, 개성이 있었다. 그 중에 눈길을 끌었던 몇 가지 작품에 대해 짧게 말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론 경향신문으로 등단한 백수린의 '감자의 실종'이 가장 좋았다. 주인공이 알고 있는 '감자'라는 단어가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개'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발견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과연 내가 의도하는 말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해석되는 가의 문제를 기발한 소재로 풀어나간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가 사실은 다른 단어와 뒤바뀐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혼란스러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소설에선 특별하게 표현되지만 사실 그는 어쩌면 너무도 평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경의 '달팽이 의자'는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였는데. 주인공과 젊은 할머니와 달팽이, 그리고 주인공에게 의자 리폼을 맞긴 여자가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가 굉장히 그로테스트해서 이미지가 강하게 새겨졌다. 달팽이의 점액을 온 몸에 바르며 젊음을 유지하려는 할머니, 손자에게 계속 달팽이 삶은 고기를 먹이는 그녀의 모습이 기괴했는데, 결국 그 이야기의 마지막을 할머니에 대한 사랑확인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특별한 이야기를 흔하게 끝내버린 안타까움이었다.


구성이 가장 특이했던 것은 손보미의 '그들에게 린디합을'이었다. 전혀 있지 않은 인물들과 그가 만든 영화를 실제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잡지 기사처럼 꾸며낸 단편은 좋은 시도였다. 허구를 사실처럼 풀어놓는 진지함은 좋았으나 그것이 일정 수준, 그러니까 실험이나 기교 이상으론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유일한 남성작가인 천재강의 '카페 몽마르트'는 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던 작품이었다. 가스배달부와 이벤트업체 직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소시민들이 한 인물에 의해 이용당하나 좌절은 하지 않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몽마르트를 사랑한 화가 로트렉의 그림을 배경으로 해서, 거기에 나타나는 댄서나 매춘부를 가스배달부로 치환시켰다. 시종일관 쾌활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도 좋았다.


이시은의 '달팽이 행로'는 계간, 사형, 자웅동체인 달팽이, 발가락 옆에 달린 또 하나의 살 덩어리, 사형, 살인 등의 키워드를 버무려내어 강렬하였다. 이 기괴하게 얽힌 이야기는 두 어긋난 연인의 사랑이야기로 읽어야 할지 애매했다.


라유경의 '말리볼트'는 110볼트 다운트렌스된 조명과 음향기기로만 구성된 가게 '밥 말리'라는 장소를 매력적으로 설정했다. 다만 그 매력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힘이 약해 맥을 추지 못했다. 여러가지로 나타나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수렴되지 못하는 인상이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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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마을 - 2011년 제56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전경린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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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상을 수상한 표제작 '강변마을'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소설적 형태를 따라가고 있다. 언젠가 겪었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방식은,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라고도 볼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무난하고 지루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은 유년기의 시점을 채택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년기에 잠시 머물렀던 '강변마을'은 이후에 터부시된 공간으로 재형성되며, 새로운 의미로 재창조된다. 울림이 있는 글이란 이런 것일 게다. 잡다한 기술에 연연하지 않고 소설 본래의 모습 그대로 밀고 나가며 감동을 주는. 그런 점에서 흡족했던 대상 작품이었다. 그와 대비되게 수상작가 자선작인 '흰 깃털 하나 떠도네'는 서사성보단 상징성이 두드러져 흥미로웠다.

다만 표제작을 제외하면 후보작들 대부분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인상이었다. 권여선의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은 모든 것이 불분명하게 처리되어 아쉬웠고, 김숨의 '막차'는 공포감이 드러나는 마지막이 허무했다. 김태용의 '물의 무덤'은 너무 과도하게 사용된 상징성이 어지러웠고, 손홍규의 '증오의 기원'은 대학생들의 인문학적으로 과잉된 정서와 철학적 대사가 남발하여 읽는데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역시 배울점이 많은 작품들이고 작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김미월의 '안부를 묻다'가 개인적으론 굉장히 맘에 든 작품이었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서스팬스가 잘 녹아 있었는데, 눈에 보이지만 가지 못하는 금지된 공간에 대해 오싹하게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가 즐거웠다. 밤마다 불가해한 구둣소리가 들려오지만, 결국엔 그것에 익숙해지고 게다가 그것때문에 행복해지기까지 하는 비논리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양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다가와 놀라운 작품이었다. 윤고은의 '해마 날다'는 취중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서비스라는 기발한 소재가 좋았고, 그 내용보단 배설의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같은 레파토리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역대수상작가 최근작엔 이승우, 김인숙, 박성원의 소설이 실렸는데. 문학적으로 급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문체적인 부분에선 이승우의 '이미, 어디'가 충격적이었는데.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빙빙 도는 모양새가, 모든 행동이며 사고의 모호함을 보여주는데 그 방식이 독창적이었다. 김인숙은 환상을 근간에 두면서도 그 환상, 포비아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바탕에 깔아둠으로써 인과 관계에 대한 모범적 이야기 짜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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