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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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섬세해 숨을 멎게 하는 문장들, 그 문장들이 피어내는 진한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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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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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서사의 별자리가 아니라 무수한 여담들의 은하수를 보는 즐거움은 여전히 윤성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다.’ - 김형중(문학평론가)


책의 띠지에 적힌 글이다. 윤성희 소설의 매력을 이 문장만큼 명료하게 표현할 방법은 없을 듯하다. 앙상한 서사의 별자리가 아닌 무수한 여담들의 은하수. 참 멋진 문장이다.


사실 윤성희의 소설을 처음 접하면 중심을 잡기 어려운 서사에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만다. 이야기는 문장단위로 톡톡 튀어나가며 순식간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든다. 한 문단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담긴다. 작가는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를 자제하고, 그 공간에 대단히 드라이한 문체로 사실만을 채워넣었다.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대단히 산만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습작생이 섣불리 그녀의 스타일을 따라했다간,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느니 여담이 많다느니 중심이 없다느니 하는 쓴 소리를 잔뜩 들을 것이다.


윤성희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지만 동시에, 수 많은 이야기들을 감추고 있다. 그녀의 소설엔 수도 없이 많은 ‘결과’들의 존재한다.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가 전복되어 그곳에 깔려 죽은 여학생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남자, 위암 말기였지만 심장마비로 죽은 아내. 그 결과들의 중간은 대단히 간략하게 압축되어 있거나 심지어는 생략된다. 때문에 그녀의 소설은 대단히 건조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속도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멀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섣부르게 문장을 뛰어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문장 사이의 먼 간극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단히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나하면 그 인물들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대단히 많이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단편 소설의 등장인물이란, 사건 전개에 필요한 경험만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서사에 필요한 기억들, 서사에 필요한 성격들, 서사에 필요한 관계들. 하지만 윤성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살아 있는 인물이 경험하는 것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단순히 이야기의 골격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의 살아온 발자취가 느껴진다. 그것은 작가가 그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빚어내지 않았다면 담아내지 못했을 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말에 이 문장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문장이 되기 전에 내게 찾아왔고 문장이 된 후에도 내게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열 편의 소설 안에 와글와글 모여 있다. 그들은 사소한 계기로 나에게 와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그저 매일 썼다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들 스스로 알아서 했다. 고맙다. 내 문장이 그들의 삶을 따라가지 못해 미안하다. p. 311


저 문장 때문에, 나는 이제부터 이 작가를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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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 2011 제1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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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얽힌 그물망이 때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낚을 수도 있다. 문장 사이사이에 수많은 이야기를 내포한 윤성희의 작품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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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나 -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영하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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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김영하만큼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작가도 드물지 않나 싶다. 등단 초기부터 작품들이 죄다 주목을 받으며, 나오는 작품마다 이슈를 불러일으켰으니. 주위에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나,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열이면 열, 리스트 안에 박민규나 김영하는 꼭 들어가 있더라. 그가 보여준 소설적 파격성이나 기존 문학판의 관습을 뛰어넘은 소설적 재미는 문학 연구자와 대중의 바운더리를 넘어선 경지에 놓여 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항상 손꼽히는 그가, 문학계의 트랜드와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상문학상을 여지껏 수상하지 못했다는 건 조금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을 읽으며, 이번에도 논란이 불거지겠다는 예상을 했다. 어쩌면 김영하는 그가 미친 현대문학에의 영향에 비하면 어쩌면, 조금 평가절하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김영하의 이상문학상 수상을 공지영의 수상과 같은 파격으로 인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 그것은 아마 이상문학상이 취하고 있는 ‘권위’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은 여지껏 읽은 어떤 이상문학상 수상 소설보다도 가볍다. 재미로 치자면 김영하에 밀릴 것도 없는 2010년도 수상작인 박민규의 ‘아침의 문’이 무겁고 현학적인 소설로 느껴질 정도다. 묘사는 극도로 지양되며, 대부분의 문장들은 대사처리 되어 있다. 1인칭 시점을 사용하여 그나마의 서술문에서도 문어체 문장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어 버렸다. 다른 단편들의 2배 가까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굉장히 빠르게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힌다. 독자들의 당혹감은 소설이 끝난 뒤, 몰아친 정서적 쾌감 뒤의 허무함 속에서 나타나는 것일 게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 소설과, 권위의 이상문학상이 합집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적 권위란 무엇인가, 훌륭한 소설이란 무엇인가. 김영하의 소설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그 부분부터 먼저 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문학성을 문장에서 찾던 시절이 있었다. 이태준을 위시하여 수많은 문장론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을 모사하듯 치밀하게 묘사한 문장들이 각광받던 시절도 있었다. 꿈과 현실을 아우르는 현학적인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을 받던 때도 있었다. 영상 시대에 들어서 영상으론 표현되지 못할 소설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위 중 어떤 것도 훌륭한 소설의 정답이 될 순 없다. 소설은 말하기의 한 방법일 뿐이며, 그 방식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결국 소설쓰기란 포장의 방식일 뿐이며, 그 포장법은 트렌드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


김영하의 소설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그 트렌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당당하게 표현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문학판에서 먹히는 소설들이란 김영하의 소설들과는 거리가 있다. 이를테면 김연수의 시적 감수성, 권여선의 문장, 전경린의 추억, 김애란의 젊음, 편혜영의 기괴함이나 김숨의 환상성과 같은 것들. 문학이란 모름지기 진지해야 하며, 대중과는 다소 유리된 영역에 속해야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콤마의 갯수까지 틀에 박으려 드는 문학판의 경직 속에서 김영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눈치보지 않고 늘어놓는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독자들은 점점 긴 글을 읽기 힘들어 하며 복잡한 문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다. 문어체 문장보다는 구어체 문장을, 치밀한 묘사보다는 몰아치는 서사를 원한다. 라틴아메리카를 주축으로 미니픽션이 붐을 이루는 것도 그러한 흐름의 한 반향이다. 진지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스스로에게 침잠해 들어가는 복잡한 소설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김영하는 그런 시대적 흐름을 정확하게 캐치해 내고, 거기에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굳건히 박아 넣었다. 옥수수와 닭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의 역할구도를 이토록 재치있고 흥미진진하고, 다소 야하게 써낼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이상문학상 40주년 기념으로 새로 바뀐 표지는 마치 시대적 변화를 몸소 증명하는 듯하다. 밝은 색 표지와 둥글둥글하고 알록달록한 글꼴들은 문학이 더 이상 과거처럼 경직되어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 바뀐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첫 작품집에 김영하가 수상자로 꼽힌 것은 그러므로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새로 바뀐 표지가 이상문학상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닌, 김영하의 수상을 기리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런 탓일 것이다. 김영하와 관련된 부분이 - 자선대표작, 수상소감, 문학적자서전, 작가론, 작품론을 포함해서 - 전체 분량의 1/3이상을 차지한다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이번 작품집은 이전 작품집들에 비해 우수상수상작들의 비중이 많이 적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우수상 수상작 중에 눈길을 끌었던 단편은 김경욱의 스프레이와 김숨의 국수가 있다. 정말 극과 극의 작품이지만 두 작품 모두 너무나도 훌륭했다. 김경욱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사의 이어가기가 놀라울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상상해 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김숨은 문학적 글쓰기의 교과서적인 방법론을 보여줬다. 그저 국수를 뽑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생애를 함축해낼 수 있는 작가의 감수성과 비유능력이 탁월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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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하는 소녀 - 2012년 제57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전성태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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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현대문학상은 전성태의 ‘낚시하는 소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소설은 월간지 『현대문학』 8월호에 실렸던 단편이다. 우연찮게도 나는 잡지를 통해 이 소설을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이미지가 여전히 선명하다. 서정적이면서도 화사하며 동화같은. 작가는 한 모녀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냈다. 소설의 첫 단락만 읽어도 이 소설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여자아이가 침대를 딛고 이 층 창밖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푸른 오동나무가 창을 가득 메웠다. 붉은 플라스틱 컵이 창턱에 놓여 있다. 비 끝에 난 햇살이 낚싯대에 날 서게 앉아 휘었다. p.11


세심하고 감각적인 문장이다. 하지만 이런 유려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작가가 설치한 카메라는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녀를 향한다. 아이의 시선은 매사 건강하고 따뜻하다. 그 시야에 비친 세상은 오동나무 숲으로 이어진 낚싯대를 타는 햇살처럼 따스하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재우고 자신의 몸을 팔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아이가 머무는 집 바로 앞엔 ‘샹그릴라’라는 모텔이 서 있다. ‘샹그릴라’에선 아이의 엄마가 몸을 팔며, 모텔의 주인 딸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제 몸을 남자들에게 허락한다. 그러한 세상의 진실 바로 앞에서, 아이는 무지하다. 무지한 아이가 그녀의 ‘낚시질’을 통해 진실을 깨우쳐가는 과정은 은은하게 사무친다.


작품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소설이라면 김성중의 ‘머리에 꽃을’, 박민규의 ‘로드킬’ 정도가 있다. 김성중은 뻔뻔한 상상력을 천연덕스럽게 전개시킨다. 사람들의 머리칼이 모두 빠지고 그 자리에 저마다 다른 꽃이 피었다는 설정은 조금 비약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거기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끄집어낸다. 박민규의 ‘로드킬’ 또한 SF라는 장르적 특성을 빌려, 거기에서 문학적 성과를 일궈낸 작품이다. 로봇이 육체노동자의 모든 자리를 빼앗아버린 시대에, 인간들이 상실한 인간성을 통찰하는 로봇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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