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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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기는 제목에 힘을 줄 필요가 없다. [안네의 일기]도, [난중일기]도 내용 하나하나에 잔뜩 실린 힘만으로도 충분하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인 올가 그레벤니크가 그의 집에서 폭격 소리를 듣고 지하실로 피신하던 2022년 2월 24일부터 폴란드에서 불가리아로 떠나기 직전인 3월 12일까지의 스케치와 짧은 일기들이 실린 [전쟁일기]도 그렇다. 지하실에서, 가족을 떠나면서, 장소를 이동하면서 급박하게 그려낸 드로잉 하나하나는 고작 보름 남짓한 날의 전쟁 일상을 그려냈지만 불안하고 긴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난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때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먼 곳에 있다는 이유로, 혹은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그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까 염려한 적은 있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아니 요즘 같은 시대에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강대국이 일으키는 전쟁은, 그 가능성만으로 충분히 위협이 되는 카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2022년에 일어나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난 해에 6학년 아이들에게 각 나라들은 종교, 영토, 정치,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갈등을 겪고 전쟁을 하기도 한다고 가르쳤었는데 그 내용에 묵직한 사례 하나가 더 늘어버려 마치 그것을 가르쳤던 게 '말이 씨가 된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푸틴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에겐 먼 나라의 사람이 지니는 이런 죄책감 마저도 없는 건가? 어쩌면 전쟁 발발이 푸틴으로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 더욱 불안하다. 


모든 전쟁은 나쁘지만 힘이 있는 나라가 일방적으로 작은 나라를 공격하다니 세계의 비난은 마땅히 러시아를 향해야 했다. 푸틴을 도와줄 사람은 없어야 했고, 그럼 전쟁은 빨리 끝나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에 일어난 전쟁은 두달이 넘도록 쉴틈없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크고 강한 나라이긴 하지만 경제 여건이 좋은 나라가 아니며,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러시아의 군인들의 희생 역시 이어지고 있는데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동력은 무엇일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어떤 역사적, 경제적 이유라고 할지라도 전쟁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는데 러시아를 멈추게 할, 아니 푸틴을 멈추게 할 사람이 세계에 이렇게 없단 말인가? 배경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배경 지식을 없애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뉴스로 전해지는 소식들은 참담했고 동시에 분노가 생겼다. 하지만 우리가 미디어와 sns를 통해 보는 큰 사건 외에 그 안의 작은 사건, 그 작은 사건 안에 무너진 작은 삶, 그 작은 삶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여유와 기회는 없었다.  우리가 TV로 보는 전쟁의 모습들이 마트료시카의 가장 바깥 인형이라면, 올가 그레벤니크가 그려낸 보름간의 전쟁의 일상은 가장 안쪽의 인형이랄 수 있다. 며칠 전 여덟 살 난 아들이 마트료시카 인형을 하나씩 열면서 가장 안쪽의 인형을 신기한 듯 만지고 가장 소중하게 다뤘듯, 이 일기 속에 살아 숨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쟁 일상이 너무 여리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면, 그들을 둘러싼 인형들이 가족과의 이별이나 전쟁의 폭격 소리가 아니라 포옹과 종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모금 활동에 참여하고 마음 아파하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먼 곳의 작은 인형으로서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 작은 인형들은 러시아에도 분명 살아 숨쉬고 있을 텐데 자국을 보호한다는 의미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다른 건인지, 푸틴에게 묻고 싶다. 러시아는 마트료시카의 작은 인형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일기는,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공적인 기능을 한다. 처음엔 개인의 불안을 잠재우고 개인적인 기록을 위해서 시작했을 이 그림일기가 이렇게 공개되어 먼 나라의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게 될 줄은 작가도 몰랐을 것이다. [전쟁일기]를 읽으며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난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새롭게 얻게 된 시각이다. 러시아가 이럴진대 이 세계에 안전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면 호시탐탐 구실을 찾는 하이에나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착잡하다. 나라와 가족을 떠나면서도 반려견을 꼭꼭 챙겨가고 작은 도움에 고마움을 새기는 이 사람들을 누군가(그것이 푸틴일지라도) 부디 하루빨리 구해주길 바란다. 전쟁이 일기가 되고, 일상이 되는 일이 없기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바란다. 

35년을 모두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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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0
모리스 로사비 지음, 권용철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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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말 좋습니다. 내용도 좋고 번역이 참 좋아 일반인이 읽어도 술술 잘 읽힙니다. 이 책 읽고 다른 몽골책(?) 읽었는데 흡숙도 잘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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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나만 이상하게 느껴지나?????? 전문 번역가의 솜씨가 맞겠지???? 너무 자주 이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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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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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이 책을 보급가에 살 수 있는 마지막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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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트의 바닷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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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트의 바닷가

어제의 독서모임 오늘의 완독.
어제의 별점3 오늘은 3.5
묘사와 비유가 탁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지루하고 눈여겨보기 어렵다. 스토리가 좋은 작품인데 융단폭격과 같이 쏟아지는 뛰어난 문장력이 도리어 매력을 깎는 듯 해 아쉽다. 문장 연습용으론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내 취향은 아니다.
내가 사는 세계가 해체되길 소망할 때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건 어쩌다건 해체의 도화선을 당기곤 한다. 알도처럼. 해체를 거듭하며 나아가는 것이 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 우리의 세계는 진보라고는 할 수 없을 듯 하다. 균형을 잡기 위해 페달을 열심히 굴리다 균형이 잡히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손을 하나 놓아 잠시 균형을 흐트리다가 다시 균형을 잡는 일련의 과정처럼말이다. 마리노처럼 손을 놓치 않으려는 태도는 이해할 수 있고 공감도 되고 안쓰럽시도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보조바퀴를 달거나 자전거를 묶어놓는 우리의 세계는 균형이 아니라 퇴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니 좋은 소설은 맞는데 내 취향은 아니란 말이지... 어제 모인 분들은 다시 읽을 태세였지만 난 가끔 문장이 읽고 싶을 때 찾아볼까 싶은 정도이다. 누군가에겐 큰 매력을 느끼게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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