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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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잉도 팔로워도 별로 없는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 불세출의 팔불출이 둘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와 서효인 시인이다. 처음엔 몰랐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혹시 싶은 마음이 들었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시인이 트위터에 쓴 글들을 여러 번 읽으면서야 은재가 다운증후군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아이를 잘 키운단 말인가!' 싶은 마음에 어느 부분에선 미안하게도 그는 시인 서효인 보단 은재 아빠 서효인이 더 잘 어울렸다.

 

은재가 태어나기 전에 시인은 은재를 맞을 글을 쓰고 있었다. 아마 병원에서 양수 검사를 받자고 했을 때부터 의식하지 못해도 어쩌면 아이의 상태를 염려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글에서 묻어난다. 보통 의사의 양수 검사 제안을 거부하는 부모가 흔치 않은데 이들 부부는 애써 그 제안을 무시했다. 아이의 상태를 염려했던 것만큼의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아이가 어떠하든 그 아이를 잘 키우기로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난 그게 이들이 은재를 이토록 건강한 마음으로 키우는 첫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보면 적지 않게 장애 아동들을 만나고 그의 부모들을 접한다. 안타깝게도 장애 아동들의 환경이 일반 가정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은 부모에게 충분한 보살핌도 지원도 받지 못한다. 또 극으로는 부모가 너무나 잘나고 대단하여 아이나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가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은 아이를 처음 만난 이후 여전히 부모의 마음이 다독여지지 않은 상태라 그런 거였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은재는 은재의 아빠와 엄마, 할머니와 외할머니, 고모와 이모를 모두 잘 만났다. 축복이다. 은재가 그들에게 축복이듯이!

 

사실 연애 이야기나 은재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는 여느 연애담이나 육아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은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책에서도 빛이 난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런 힘을 가졌을까? 스스로 빛을 내는 힘 말이다! 그 빛은 때로는 함박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게 반짝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의 빛, 그것을 은재 역시 갖고 있었고 그 빛을 보는 눈을 시인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더 빠르고 더 따뜻하게!

 

울다가 웃다가

 

아내와 둘이서 부둥켜안고 운다.

등을 맞대고 운다.

모른 체하며 운다.

서로 쓰다듬으며 운다.

울다 잠들어 꿈에서 운다.

꿈에 나ㅏ난 너를 보고 놀라 깨어 운다.

운다.

멈추고 목을 축이고 다시

운다.

 

아내와 둘이서 쳐다보며 웃는다.

텔레비전을 보며 웃는다.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후후 불어 입에 넣어주며 웃는다.

소고기가 너무 많다며 웃는다.

고깃국 같다고 웃는다.

우물우물 씹다가 웃는다.

웃다가 운다.

운다.

(134-136쪽)

 

그러하기에 시인은

 

멈추고 목을 축이고

다시

이제

그만.

 

떨어지는,

그치는,

눈물.

 

(134-136쪽)

 

시인 아빠 서효인이 좋은 아빠이고 멋진 아빠인지 아닌지는 내 아빠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건강한 아빠라는 점은 아이를 키워본 엄마로서 확신할 수 있다. 제 아이를 이뻐하지 않는 아빠가 몇 이나 있겠는가마는 그 이뻐함이 튼튼함이기가 쉽지 않다. 아빠들은 가끔만 좋은 아빠 멋진 아빠이고 대다수의 시간을 그저 생물학적 아빠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 하면 전국의 아빠들에게 항의받을라나? 그러면서 좋은 아빠 멋진 아빠 대접 받으려고 한다고까지 하면? 보통의 엄마의 시선으로는 대부분의 아빠들은 그렇다.(여기저기서 엄마들의 동의가 느껴진다.) 그건 엄마들의 육아에 대한 아빠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지 않았다. 아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은재의 엄마가 어떤 자리인지, 은재의 아빠로서 존재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이해하고 인정하고 표현했다. 그건 모든 아내들의 바람이다. 아이를 낳고 생각없이 말하는 남편들의 한 마디에 얼마나 자주 상처를 받는지, 얼마나 많은 다툼을 했는지, 그 여파로 혼자 남은 시간을 슬퍼해야 하는지를 남편들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건강한 남편인지 멋진 남편이지는 내 남편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만 그가 좋은 남편이라는 점은 남편을 키워본 아내로서 확신할 수 있다.

 

정성스레 그리고 조심스레 하면 좋다. 가끔 아내는 말도 못 알아들을 아이에게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괜히 도덕군자 흉내를 내는 꼰대가 되어 "애한테 왜 그래?"라고 말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거나 눈치껏 행동하는 게 좋다. 지금은 새벽이고 우리는 잠을 못 잤고, 아내는 애를 낳고 시약해졌다. 나는 푸석해진 아내의 곁에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여러 번 말한다. 무얼 하든 부족하겠지만 지금은 연애 초기보다 더 정성스레 아내를 위하는 게 좋다.

(191-192쪽)

 

 

길을 가는 엄마와 아이 혹은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를 심심찮게 보고 그들의 대부분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설령 그 아이가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떼를 쓰며 엄마 뒤를 쫓는 중이라도 보는 마음은 흐뭇하다. 아이들은 그런 흐뭇함을 전해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부모는 지켜줘야 한다. 아이의 빛, 그것은 엄마의 빛이고, 아빠의 빛이고, 할머니와 고모의 빛이고, 옆집 아줌마의 빛이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빛이 된다. 그 빛을 건강하게 키워주는 부모가 이 책에 있고, 나 역시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오늘 아침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는 일부러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아이와 노래를 부르고 말도 안되는 개그를 주고 받으며 그 짧은 길을 다녀왔는데 그렇게 아이가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사랑해 아들, 이라는 말이 숨을 쉬듯 툭툭 내쉬어진다. 잘 왔어 우리 아들.

 

* 시인은 이 책에서 농담을 많이 하는데, 주로 그런 농담은 농담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농담인 줄 충분히 아는 농담들이다. 그때 푸흡! 하하하!를 할 수 있으니 읽기 전에 시인이 농담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쓰는 지 세어보는 것도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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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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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서지선

부산에서 태어났고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그림 공부를 한 뒤 서울로 올라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습니다. 의뢰받은 그림을 그려 오면서 늘 마음 한편에서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어 만든 첫 번째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이 있습니다.

 

첫 작품인 《오늘은 5월 18일》이 너무 강렬했다. 작년 5월 즈음 만난 이 작품은 그날이 될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그날에 관한 책이 어디 한두 권이겠는가만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아이들은 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통해 알게 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의 전쟁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다.


◐ 내용 꼭꼭

 비행기를 처음 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1950년 6월 25일은 '나'가 비행기를 처음 본 날이자, 전쟁이 시작된 날이고, 이후 1995년 12월 25일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와 동생,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결코 만날 수 없게 된 이유가 된 날이다. [엄마에게]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기려 박사님의 이야기를 담은 개인적 실화이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을 다루었기에 역사적 실화이기도 하다. 장기려 박사님이 부산으로 데리고 온 둘째 아들이 바로 '나'인데 그 아이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한다.

 

 

다복했던 한 가정, 봉선화꽃 곁에서 행복했던 그 가정이 전쟁으로 인해 다시는 만날 수 없이 헤어져 그저 그리워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여 더욱 슬퍼진다.

 

 그날 밤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도 내지 않고 우셨다.

 

 

엄마와 헤어진 나와 아빠는 부산에 정착하지만 '나'는 엄마가 보고싶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엄마의 만둣국이 떠올라 더욱 엄마가 보고 싶다. 학교에서 엄마가 좋아하시던 노래 '봉선화'를 부르면 엄마가 더 생각난다. 어찌 '나'만 그럴까? 평양에서 그러했듯이 부산에서도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던 아빠,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는 아빠도 엄마가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 온 소포를 받던 그날 밤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도 못내며 울어야 했던 아빠의 모습은 더욱 보기가 힘들다.

 

 

 

봄은 오고 엄마가 보내주신 봉선화 씨앗은 마당 가득 피웠다. 엄마가 녹음해주신 노래를 듣고 봉선화를 바라보는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을까?


◐ 마음 꼭꼭!

봄이 왔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졌고 봄은 왔건만 가족은 만날 수 없었다. 휴전선이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만나자했던 할머니의 말씀은 지켜질 수 없었고 대신 엄마의 마음과 노랫소리가 소포로 왔다. 아마 처음에 그것을 받았을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죽여 우는 아빠의 마음을 보면 아다시피 애절하였을 것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하여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그 곁에서 엄마를 추억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산가족의 마음에서 행복은 그들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그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산가족이 아닌 입장에서 아무리 이해하려 해 보아도 애끓는 그 마음을 문턱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그날의 전쟁은 참담한 것이다. 이미 우리 세대에서도 많이 무뎌진 그 마음이 다음 세대에선 무뎌지다못해 냉정해질까 싶은 걱정이 된다. 지난 책도 그러하고 이번 책도 의미있게 만들어주신 작가님의 앞으로의 작품을 꾸준히 응원하련다.

 

책을 읽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픈 마음에 독후활동지를 만들어보았다. 첨부가 되지 않아 이미지로만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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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야기 The Collection Ⅱ
아누크 부아로베르.루이 리고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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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 http://blog.aladin.co.kr/tiel93/7065224 참고

◐ 내용 꼭꼭! 

고요한 바다의 수면을 깨뜨려요.

 

 바야흐로 바다의 계절, 여름이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이 책과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를 읽어주기 위해 갔을 때  '바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먼저 읽어주길 바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바다는 우리에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아마 겉에서 보기에는.

 

배가 떠나려는 항구의 모습은 설렌다. "안녕, 육지야! 바다가 우리를 기다려!"라는 마음은 배에 탄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바다도 우리를 기다릴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듯 하다. 사람만 왔다하면 생각지도 못할 쓰레기들로 바다 생물들이 피해를 입으니 제발 사람들은 바다에 오지 말기를 바라지 않을까? 자기들이 그렇게 더럽혔으면서 사람들은 좀더 멀리 좀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깨끗한 바다를 찾아 떠난다. 고요한 바다의 수면을 깨뜨리는 것은 정말 고래일까?라는 질문이 드는 것은 인간의 입장이 아닌 바다의 입장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우리가 꿈꾸는 바다예요!

 

 

우리는 아름다운 바다를 꿈꾼다. 아이들에게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주었을 때 빛나던 눈동자만큼 아름다운 바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행을 하거나 탐험을 하는 사람들만을 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다. 바다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대명사이다.

 


◐ 재미 꼭꼭! 

바다를 대하는 마음과 앞서 리뷰를 올린 책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에서 숲을 대하는 마음은 같다. 사람만 아니면 자연은 아릅답다는 것, 평화롭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 사람만 정신차리면 된다는 말이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앞의 책이 그런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외에 그림의 섬세함과 나무늘보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면 [바다 이야기]는 매 장마다 던져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찾는 재미가 있다.  가령 이런 거다.

 

그런데 선장님은

어디에 갔을까요?

에 이어지는 그림.

 

 

 아이들은 선장님을 찾느라 또 한 번 눈을 부릅뜬다. 그러면서 글밥에 있는 작은 물고기 떼와 범고래, 바다표범을 함께 살핀다. 동시에 빙산이 보이는 것에 비해 바닷속에서 몇 배나 더 크다는 것도 알아챈다. 그 다음 장에도 난파선을 제 집 삼은 문어를 찾고, 아름다운 바닷속에서 선원들을 찾으면서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바로 그 점이 이 팝업북이 갖는 매력이다. 살펴보면 볼 게 더 많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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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The Collection Ⅱ
아누크 부아로베르.루이 리고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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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아누크 부아로베르(Anouck Boisrobert)

프랑스 출신의 삽화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파리 에스티엔 미술학교에서 삽화를,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에서 시청각 교수법을 공부했다. 어린이 책과 잡지에 삽화를 그리고 있고, 멀티미디어 프로그램과 팝업 오브제를 만들며, 이와 관련된 수업을 하고 있다.  

 

루이 리고(Rouis Rigaud)

프랑스 출신의 삽화가이다.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에서 시청각 교수법을 공부했다. 어린이 책과 잡지에 삽화를 그리고 있고,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를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책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와 [바다 이야기]가 이번에 보림의 The collectionⅡ로 출간되었다. 국내에는 현재 이 두 작품만이 출간되었다. 함께 작업한 이 두 권의 팝업북은 그리 두껍지도 크지도 않지만 섬세함과 함축성을 가지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라고 하던데 앞으로의 합작이 또 기대된다.


◐ 내용 꼭꼭

 보이나요?

 

나무늘보가 사는 나무가 우거진 숲속입니다. 나무늘보가 보이나요? 그럼, 새는요? 개미핥기는요? 사람은요? 나무가 주인인 숲에서 그들을 찾는 것은 재미있고 신 나는 경험입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었을 때, 아이들이 '보이나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무늘보를 찾으려 눈을 부릅 뜬 모습이 무척 신 나 보였어요.

 

 

하지만 그곳에 기계가 등장하면서 그런 즐거움과 평화는 깨어집니다. 모두가 기계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지만 나무늘보는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기 전까지는 숲에 남아 있습니다. 한치의 동요도 없이 말이죠.

 

 

하지만 그런 나무늘보도 매달린 나무가 없다면 숲에 남을 이유가 없답니다. 나무 한 그루, 동물 한 마리 남지 않은 숲을 숲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아마 언젠가 그 숲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을 첫번째 그림 속이 그 누군가일 겁니다.

 

그 사람이 나무를 심습니다. 그러면 다시 나무늘보가 돌아옵니다. 시간이 흘러 숲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습니다.아니 아픔을 극복하고 더 울창한 숲으로 거듭납니다. 보이나요?

 

 


◐ 마음 꼭꼭!

나무늘보가 사는 숲은 모든 것이 조화롭고, 생명이 넘쳐요. 

 

사람들은 숲에서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나무, 버섯, 열매, 공기, 위안까지. 울창한 숲은 혼자 가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 가도 좋은 곳입니다. 그곳에 가면 사람조차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지요. 하지만 어느 날 그곳에 기계를 가져갈 때, 그곳을 훼손시킬 때,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이 될 때 사람들은 숲에서 많은 것을 앗아갑니다. 얻어가고 앗아가고 참으로 괘씸한 이들입니다. 나무늘보마저 떠난 숲은 그야말로 숲이 아닙니다. 어떻게 나무늘보를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숲을 망가뜨린 인간이 다시 숲을 복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나무늘보가 돌아오는 것, 어쩌면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꾸워봅니다. 작은 행동이 숲을 다시 울창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나무늘보가 살아야 숲은 조화롭고, 생명이 넘치니까요.

 

이 모든 이야기가 섬세하고 사려깊은 그림작업으로 펼쳐집니다. nothing이 된 숲을 보는 순간과 everything이 되는 숲을 보는 순간의 감동이 팝업 그림과 함께 밀려옵니다. 두 작가의 아름다운 합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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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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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오라니를 계속 찾았습니다.

클레어 A. 니볼라(Claire A. Nivola)

미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어린이책 작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검은 땅에 핀 초록빛 꿈》, 《나의 아름다운 바다》, 《숲 속으로》, 《엘리자베스》등이 있으며 《오라니》로 2012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11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최고의 논픽션 책’, '
2011 혼 북 선정 ‘최고의 논픽션 책’, '2011 키르쿠스 리뷰 선정 ‘최고의 어린이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뒤에 그림책에서는 드물게 작가의 말을 길게 적었는데 이 책이 자신의 고향인 오라니를 그린 작품이라 그런가 보다.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던 오라니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작가의 아버지를 위한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 내용 꼭꼭!

그 안에 오라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출발한 가족은 지중해 한가운데 사르데냐 섬의 오라니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은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친척들이 있고 수많은 좁은 골목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하고, 둥지에서 떨어진 새를 발견하기도 하고, 한 노인의 장례가 치러지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마을의 할머니들은 과자와 초콜릿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친척 아저씨는 가게에 들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어느 집 부엌에 들러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기도 한다. 책 속의 글처럼 '마치 마을 전체가 우리 것인 것만 같'다. 그 마을이 바로 아버지의 고향 오라니 마을이다.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지난 주엔 아이를 시골 할아버지댁에 데리고 갔다. 가기 전부터 아이는 집이 낡았다느니 파리랑 모기가 많다느니 하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려가서 아빠와 함께 싸이카를 타고 논과 밭을 돌아다니고 한참 있다 돌아오더니 자기는 시골이 정말 좋단다. 산도 가깝고 바람도 시원하고 눈이 시원하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자면서 입으 내복을 입은 채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실컷 논 아들을 놀려보았더니 '여긴 시골이라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밭에 가서 따오면 되고 마을 입구의 정자에서 내복입고 떠들고 놀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이 무척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오라니 마을의 사촌들이 '나'에게 묻는다.

"미국은 어때?"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그 마음 나도 알 것 같다. 오라니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데에 반해 뉴욕의 사람들은 일행이 아니라면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니까. 요즘은 일행들끼리도 각자의 휴대폰만 보느라 그들마저도 눈

 

 

 

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니 마주한다는 경험 자체가 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귀한 경험이 일상적인 곳이 오라니이다.

 

 

◐ 마음 꼭꼭!

자기만의 오라니가 있을까?

어릴 적 자신에게는 하나의 세계였던 오라니를 어른이 되어서도 자꾸만 찾고 싶어지는 것은 좁은 골목을 누비며 모두가 서로에게 눈을 맞추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만 해도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 순수 도시 토박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우리들의 아이들은 명절이 되어 할아버지댁에 가도 또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일 뿐일 때가 많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시골서 나고 도시에서 자라 때가 되면 시골로 향하니 저절로 아이에게 할아버지댁은 시골의 다른 말이 아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그렇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귀한 마음이 든다.

 

공동체가 사라지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썩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따라 우리가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만의 오라니는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한참을 달려 가야만 하는 아주 먼 거리의 물리적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어느 지점, 그것을 추억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다. 저기 깊은 곳에 자기만의 오라니를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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