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책사고 싶다....참아야 하느니라. 읽어야할 책이 있어 지금 사도 못 읽는단 말이다....참아야하느니라....

12월 25일 마친 책일기.....일기장을 또 준대....참아야하나 또 써야하나?? 선택장애(동공지진~) #읽어본다

오늘 #닥터지바고 강연 듣는 날이다. 아직 책 안샀다. 15년 전 읽은 책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강연 듣고 막 사고 싶어질 것 같다....

요즘 과학의 세계 넘 궁금하다. 잡지 구독할까? 고민 중이다. #욜라

아 책 사고 싶은데 어쩌지??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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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1-10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닥터 지바고 강연 잘 듣고오길...
로쟈님 강연이니까 듣고 나면 분명 사고싶어질 거임...ㅋㅋㅋ

그렇게혜윰 2019-01-10 17:30   좋아요 0 | URL
일단 오늘 강연은 읽기전에 알아야할 내용이래서 맘편히 안읽고 감 ㅋㅋㅋ

boooo 2019-01-10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욜라. 이런 잡지도 있군요.

그렇게혜윰 2019-01-11 10:36   좋아요 0 | URL
단권 사보고 괜찮으면 정기구독 하려구요. 격월간지라 2월에 사야하나....이러고 있습니다^^

그렇게혜윰 2019-02-1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세 가지 모두 구입했구나....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반다나 싱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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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소설에 성공한 적이 없었던 지라 사실 이 책을 보고도 큰 관심을 갖진 않았다. 더구나 SF소설이지 않는가? 그런데 최근 나는 [스테이션 일레븐]이라는 종말 소설을 읽었던 참이라 하드한 SF가 아니라면 더구나 그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면 읽어도 좋겠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유명한 SF작가들의 이름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지라 이 책의 추천사에 실린 '어슐러 K. 르귄'이라는 이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인도의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하니 이는 어쩌면 현실을 비판한 페미니즘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첫 단편은 그런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본격 SF소설은 아닌, 오히려 페미니즘 소설에 가까운, 어쩌면 작가 자신이 SF 소설을 쓰게 된 당위성을 보여준 이야기로 보였다. <허기>라는 제목도 그런 그녀의 갈망을 고스란히 느끼기에 좋았다. 다음의 구절은 그런 느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이 매우 기이하다는 그녀의 깨달음을 SF는 그 어느 때보다 잘 반영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SF 소설은 무척 난해한 방법으로 위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걸, 문학에 심취한 속물들을 속이고 무심한 독자들을 불러 세우기 위해 설계된 일종의 암호라는 걸, 그녀는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36쪽)

표제작인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에서도 그렇고,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 델리의 삶을 냉소적으로 그려낸 <델리>에서도 그렇고 작가의 SF 소설은 무척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SF적인 상황들은 그러한 현실을 대체할 안식처로 제안되기도 한다. 인도의 여성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넘어 이 세상을 사는 모든 비합리적이고 불평등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SF 소설은 낯선 장르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 낯설다는 말이 지금의 상황에서 적합한 말은 아닐 것이다. 순수 문학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반다나 싱의 소설에서 현실을 벗어난 많은 인물들을 보며 그 비현실이 과연 진짜 비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사면체>에서 마야가 오빠에게 쓴 편지에 '만약 사면체가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벗어난 거라면? 경험해 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걸 이해할 수 있지?'(285쪽)라는 말이 나오는데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현재의 삶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읽혀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를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이 소설이 SF소설이라고 하는데 과학적이기 보단 수학적인 지식이 더 인상에 남을 정도로 작가의 수학적 지식이 인상깊었다. 그 결정판이 <무한>일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단편들의 인물들이 가지는 특별함이 왠지 타당성이 있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만 아직은 내가 SF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작품들은 집중하기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 볼 때 이 소설집은 참 아름답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슬프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멈칫하기도 하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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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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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에코가 남긴 마지막 소설이다. 마크 트웨인이 그랬던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읽은 이가 없는 책을 고전이라고? 그렇다면 에코의 소설도 어쩌면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의 마지막 소설을 통해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만나본 독자이고 아마 지구상에 그의 이름은 알되 그의 소설을 전혀 읽지 않은 이들이 엄청 많을 테니까.  왜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우선, 그를 떠올리면 '천재'라는 말이 생각난다. 역사학자에 철학자에, 기호학자, 소설가 등등 여러 방면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소설에 아주 치밀하게 집어넣는 사람. (거봐라,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읽는 주제에 이렇게 평할 수 있다니, 그의 소설은 고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겁을 먹고 소설을 읽는 것을 미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죽음이 일어나고 이 책이 나오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의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을. 마지막 소설로 입문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겁먹을 정도로 복잡하거나 치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6월 6일에서 시작하여 두 달 전의 기억을 기술한 뒤 다시 1992년 6월 6일로 돌아오는 구성이나 당시의 이탈리아 언론과 정치의 유착을 풍자하는 글 안에 무솔리니에 대한 소문을 끼워넣는 방식 역시 두려움을 갖기엔 다소 단순한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코의 첫 소설로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다음 소설에 대한 궁금증이나 접근성을 높여주는 데에 무척 효과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리는 뉴스나 방송을 통해 베를루스 코니의 부패에 대해 적잖이 들어왔다. 그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정부는 대체로 부패와 비리가 만연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에코가 썼다면, 그것은 새로운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베를루스 코니의 부패를 너머 신문이란 도대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역설적으로 신문의 부정적 기능만을 보여주면서 질문한다. 소설은 내도록 어떻게 하면 '나쁜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인가를 두고 시메이와 기자들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이아의 열정과 순수함은 묵살되기 일쑤이고, 음모와 음해와 오도가 목적인 신문만을 궁리한다.
 
그 사이사이 인물의 말을 통해 에코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집어넣는다. 그 말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고 한숨짓게 한다. 세평을 만드는 신문으로서의 교묘함, 그것을 외면하는 우리의 수치심, 누군가를 보호하고 파멸하기 위한 정보들의 존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현재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 답답해. 나도 떠나고 싶어. 아니 모르고도 싶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식으로 살자고도 하고, 차라리 비리를 공개적으로 하는 곳으로 떠나고도 하자던 마이아의 말에 공감을 하지만 동의할 순 없다. 바로 그 지점이 에코의 질문이다. 우리는 그 부패에 아는 척을 해야하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해야한다는.
 
에코의 오랜 팬들은 이 책을 좀 허술하고 시시하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는 독자에게도 문턱이 높아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신의 마지막 소설일지도 모를 소설을 쓰며 '천재'라 불리던 지식인은 지식을 내려놓고 소설만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아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되지만 풍문으로 듣기에 그의 소설엔 방대한 지식들이 숨어 있다고 했다. 이 소설에도 역사적인 지식들이 알게 모르게 방출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소설에 집중한 느낌이다. 다음 소설로 무엇을 읽을까? 겁도 없이 [장미의 이름]을 집어들어도 될까?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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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1-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의 이름>은 정말 강추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그렇게혜윰 2018-11-22 10:45   좋아요 0 | URL
바로 읽어도 될까요? 버겁진 않을까요?

비연 2018-11-22 10:47   좋아요 1 | URL
충분히 가능하실거에요~ 재미있거든요^^

그렇게혜윰 2018-11-22 10:48   좋아요 1 | URL
두려움을 떨치고! 집에 작가노트까지 있으니 도전 ㅋㅋㅋ

비연 2018-11-22 11:00   좋아요 1 | URL
완전 홧팅요!

카스피 2018-11-2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읽은 첫 책은 장미의 이름이지요.추리소설적 요소가 강행서 무척 재미있게 읽으실 거에요.다음에 읽은 책은 푸코의 추인데 책 내용에 많은 지적내용이 많이 있어 어찌보면 좀 난해하더구요^^;;;

그렇게혜윰 2018-11-22 13:40   좋아요 0 | URL
푸코보단 장미로!!! 누가 장미를 포기했다고 해서 겁먹고 있던 참이거든요^^
 
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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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삶이 버거워서, 빨리 50이 되길 바랐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내게 삶에 대한 집착을 느끼게 해주는 내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조금씩 두렵다. 무섭다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저자의 유명작인 [미움받을 용기]가 너무나 유명한 탓에 읽지 않았다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리뷰를 보고 읽어보려던 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마침 내 나이 마흔을 갓 넘었으니 이 책이 더 적화되어 있지 않겠나 싶어 기대하며 읽었다.

 

아들러 심리학의 1인자로 꼽히는 저자인지라 이 책 전반에는 아들러의 철학이 담겨 있고 그것을 쉬운 말과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 독자에게 쉽게 다가간다. 주로 자신이 간병하고, 간병받은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인 것은 맞지만 가끔은 이 책이 원래부터 [마흔에게]라는 제목이었을까 싶다. 저자가 아팠던 것이 50이라고 하니 그를 준비하라는 뜻으로 '마흔'을 지정한 것일 수는 있지만 아직도 크게 다가오는 말들은 아니었다.

 

아들러 심리학을 접하면서 내 삶의 태도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은 거의 생각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부모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전에도 엄마와 크게 싸웠으니 말이다. 대신 엄마도 이 책을 읽고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지만 타인이라는 점을 좀 깨달았으면 싶은 생각도 들어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제목이 '예순에게' 혹은 '일흔에게'였으면 엄마가 꺼내 볼 확률이 두세 배는 높아질 텐데 아쉽다.

 

늙어감을 준비하는 나이, 조금 이르다는 생각도 들지만 마음을 내려놓는 법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그것이 힘들것이라고 위안을 준다만 개인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어릴 때부터 냉소적인 편이라 마음은 잘 내려놓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타인에 대한 따스함이 부족한 것 같다. 다행히 나이가 들수록 철이 들어 그런가, 정의로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그런가 타인에게도 관심을 좀더 두는 것 같으니 따스함도 조만간 장착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오히려 가까이 있는 가족이다. 가족의 문제만 주로 다루었음에도 내겐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좀더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책을 하나 더 써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만큼 가족 구성원들 간에 애증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 아, 일본 작가지? 우리 나라 작가 중에 비슷한 글을 쓰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찾아봐야겠다.

 

아들러가 말한 세 가지(이것은 책으로 확인하시라!)라도 기억하자. 내 존재만으로 기뻐하는 이에 대해 감사하자. 얇은 책에 쉬운 내용 같은데도 마음 가짐을 새로이 하는 데에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 다산북스 서평단으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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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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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들어본 적이 있다. 아닌가? [미스틱 리버]는 소설도 영화도 모두 보았고 한 동안 내가 본 작품 중에 으뜸으로 꼽은 적도 있다. 아닌가? 이 역시 모두 오래 전의 경험이고 조악한 기억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이름을 처음 듣는다고 느끼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이런 자랑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닌 듯 이름 높은 추리 소설가의 이름도 몰랐다니, 하긴 하드보일드 소설은 좀 어렵긴 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더 드롭]의 경우, 정의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힘, 그 정의롭지 못한 힘에 대해서 역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면 그것을 모른 척 하고 사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나는 모른 척 하고 산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그 세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을 뿌리째 뽑는 일이 가능한가 까지 이르게 되면 정말이지 다시 모른 척 하고 싶어지는 비겁함이 솟구친다. 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밥이 그러지 않길 바랐지만 어쩌면 밥이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짐작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라는 대로 된다면 범죄 소설이 아니지. 바비식 문제 해결법을 보며 왜 마음이 아픈지, 슬픈지, 서글픈지, 우울한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래, 이 소설은 탐정 소설도 추리 소설도 아닌 범죄 소설이다. 범죄자가 중심이 되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짐작하게 하도록 하는. 그래서 읽는 내내 내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불편한 세계에 떨어진 기분이다. 그 불편함을 느끼라고 작가는 이렇게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데니스 루헤인은 좀 특별한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도 영화화 되었다고 하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데니스 루헤인의 다른 소설들도 그런 구성일까? 범죄자의 시선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미스틱 리버]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다. 물론 영화도. 지금보다 어릴 때 본 것과 많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아무튼 [더 드롭]은 내게 다소 낯설었고, 좀 두려운 이야기였지만 특별한 소설이었다. 그게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첫 번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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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8-11-2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데니스루헤인 1000자리뷰 이벤트로 적립금 5000원 받았다. 5000원으로 이렇게 행복해지는 알라디너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