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안드레스 곰베로프 지음, 김유경 옮김, 이기진 감수 / 생각의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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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오랜만에 물리학 책을 두 권 읽은 참이었다. 그것도 아주 집중하며. 두 권의 책은 경희대 교수이자 알쓸신잡3의 뮤즈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 [김상욱의 과학 공부]였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물리학에 대해 더 알고싶은 마음이 생기던 참이었다. 이 책을 몽실북스에서 서평단으로 신청해 읽은 데에는 그런 욕구가 반영된 것이었고 이 책 역시 과학의 대중화를 모색한 칠레의 한 물리학자의 염원이 담긴 터였으니 안드레스 곰베로프를 '칠레의 김상욱'이라 칭하며 시작부터 즐겁게 펼쳤다.

이런 즐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너무 오만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이 아무리 쉽게 쓰여진들 그것은 '쟤물포'를 양산하는 학문이 아니던가! 곰베로프 선생님의 가르침에 모든 것을 수용할 순 없었지만 어려울만 하면 다 알아들을 것 같고, 다 알아들을 만 하면 뭔 소린지 모르겠는 일련의 과정들- 이것을 밀당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을 거치다보니 어느 새 완독을 했다. 물론 완독이 완전이해독은 아니며 다 읽었을 뿐이라는 뜻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무척 흥미롭게 읽은 부분들이 있다. 일단 올리비아 뉴튼존의 외할아버지가 '양자역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막스보르라는 가십적인 내용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백신에 대한 의견, 어릴 때 막연히 존경하는 인물에 써넣던 '퀴리 부인'에 대한 곰베로프 선생님의 애정어린 존경심은 무척이나 쉽고 흥미로웠다. 현재 내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도구인 '호루라기'의 진동 원리도 시원하게 알게 되어 좋았고, 과학인가 싶었지만 이혼부부의 문제를 과학적 문제과 비견하여 설명하는 내용도 왠지(?) 집중하며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시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 있었는데 두 책에서 동시에 '콩도르세'라는 인물이 언급되었다. 짜릿한 경험이다. 이번에 그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덕분에 오래 기억할 것 같다. 곰베로프 선생님의 말처럼 '가장 강력한 우주선은 바로 인간의 뇌'라는 말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해 속상한 견문이 좁은 나같은 사람은 앉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보았다. 물론 희망의 결과가 모두 발전적인것은 아니지만 너무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다. 인간의 뇌는 열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칠레의 김상욱, 곰베로프 선생님과 물리학 밀당을 하고 나니 역시 좀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뇌를 써야겠다.

 

내가 아는 가장 강력한 우주선은 바로 인간의 뇌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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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9-03-21 10:2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힘나요^^
 
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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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북스 서평단으로 #우리와 당신들 책을 받고 나서야 부랴 부랴 집에 있던 [베어타운]을 꺼내 읽었다. [우리와 당신들][베어타운]의 뒷이야기이므로 시리즈라 반드시랄 것까진 없어도 읽어두는 것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베어타운 말은은 '하생하사'이다. 하키에 살고 하키에 죽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남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과 결이 다른 사람들은 좀 버티기가 버겁다. 그곳을 빛낸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곳과 결이 조금 다른 페테르 안데르손과 그의 가족은 그곳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그점이 [베어타운]의 읽는 포인트였다면 [우리와 당신들]은 그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베어타운]이 케빈 에르달이라는 권력이 있는 이방인과 마야 안데르손이라는 권력이 덜한 이방인의 대립 구도 속에서 베어타운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을 통해 인간의 속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면, [우리와 당신들]은 추락한 베어타운에 남아 그곳을 지키려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의 자리에 있는 벤이와 새로운 이방인 엘리자베트 사켈, 그리고 언제나 이방인이었던 안데르손 가족과 아나, 베어타운 토박이인 펠센을 근거지로 모이는 '일당들'이 어떻게 서로 섞이며 서로를 존중해가게 되는지를 인물들의 인생을 끝없이 추락시켜가며 보여준다. 그래서인가 중간중간 내가 걱정하는 인물이 행여 잘못될까 두려워 책장을 덮곤 했다. 그것에는 #프레드릭배크만 식 수사법으로 보이는 대구법과 반복법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사람을 자꾸 조이는 거다 심정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로선 호다. 사냥몰이 당하는 토끼의 간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러한 프레드릭배크만식 표현이 나는 맘에 들었다. 북유럽식 유머 코드도 잘 맞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척 다양했다. 그런 면에서 참 욕심이 많은 작가라는 생각을 한다. 오베 이야기에서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고 하던데 그것에 성이 차지 않은지 베어타운 이야기에서는 참말로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주제를 말하고자 애쓴다. 첫번째는 모성애이다. 능력있는 변호사인 미라 안데르손은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전형적인 슈퍼우먼이다. 그러한 미라를 통해 육아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던 이들은 많은 것을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미라가 아서를 잃고 마야의 사건을 겪으며 보여준 생명력을 보며 과연 나는 저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케빈의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케빈의 아빠와 달리 케빈의 잘못을 빨리 알아채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성숙하다. 케빈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용서할 수 없다, 다만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한 것도 용감하고 존경스럽다. 그녀가 벤이에게 찾아가 한 말은 아직도 세상의 온 가정에서 남자의 역할보다 여자의 역할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한다. 끝이 없는 가족의 문제, 그 문제를 끈질기게 붙들고 해결하는 것은 대체로 여자들이다. 엄마들. 그것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이젠 그 짐을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작가도 그런 생각으로 썼으리라 믿는다.


두번째는 집단주의이다. 어릴 때 사회 시간에 '님비현상'이라는 용어를 배웠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말의 생소함 때문이었는지 그 현상의 이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여전히 우리의 삶 곳곳에 있다. 내 아이를 뛰어난 하키 선수로 만들기 위해 정의를 외면해야 하는 사람들, 내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비단 이 소설 속에만 있지 않다.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그런 집단 간의 다툼을 다룬 이야기이고, [우리 대 당신들]이었던 원제를 [우리와 당신들]이라고 바꾼 것을 통해 이 이야기가 결국은 화합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뭔가 건조한 문장 같지만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무척이나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번째는 우정이다. 그것도 어릴 때 다져진 우정. 케빈과 벤이의 갈라진 우정. 아나와 마야의 떼어낼 수 없는 우정. 빌리암의 엄마와 보보 엄마의 우정, 보보 엄마와 아맛 엄마의 우정, 미라와 동료 변호사의 우정, 보보와 아맛의 우정, 아맛과 사카리아스, 리파의 우정, 수네와 라모나의 우정 등등 수많은 우정들이 나온다. 그중 일부는 나이 들어 만들어진 관계이지만 대부분은 어린 시절, 그러니까 대체로 열다섯살 즈음에 만들어진 우정이다. 나 역시 그때의 우정을 지금도 여실히 느끼며 산다. 그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내라고 해도 찾아낼 수 있을 소설이다. 나처럼 베어타운 이야기로 작가를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작가의 소설을 더 찾아 읽고 싶어질 것이다. 두 권의 소설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은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몰입하며 읽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잘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분명 사람을, 특히 자기 주변의 사람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롤러코스터는 아래로 가든 위로 가든 언젠간 제자리로 돌아온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말하는 인생은 그런 게 아닐까?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건 워낙 쉽다. 그래서 사랑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거다. 증오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불공평한 싸움이다. - P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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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대멸종 -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작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이혜리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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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 책을 읽으며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긴 했지만 10장에 이르러 이 대화와 장면을 보곤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카페에서 사람들이 흘끔 쳐다보는데도 어찌할 바를 몰라 휴지로 눈물 닦아가며 이 글을 쓴다.
어쩌지
이 잘못을 어쩌나
박쥐는 내게 늘 징그럽고 무서운 동물(세상 모든 동물을 난 좀 그렇게 생각한다.)이었는데 너무 미안하지 않나.
인간이
많은 동물들을 멸종시키는 특정종이라 생각하니
그 모습을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확인하니
이 감정이 뭔지 모르지만 눈물콧물 다 난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책 많이 읽히면 좋겠다. 오탈자 서너개는 그냥 눈감아 주련다. 이 대목에서 눈물 쏙 들어갔네^^;;

"두 마리." 스미스가 말했다.
"두 마리. 본 웨팅엔은 그대로 따라서 말하며 숫자를 적었다.
스미스는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본 웨팅엔이 부르더니 바위표면에 있는 금간 곳을 가리켰다. 그 틈 안에서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동면했을 것이다. 지금은 까만 배설물 층에 이쑤시개만 한 뼈만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동굴을 방문했을 때 목격한 장면을 회상했다. 죽은 박쥐 무리에게 살아 있는 박쥐가 가서 애타게 비벼대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여섯번째 멸종」,엘리자베스 콜버트, 처음북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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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 다락방님 글에 댓글 달다 하나를 깨우쳤다.
사람들이 책을 왜 읽냐고 물을 때마다 매번 책은 치유이고 친구이고 등등의 이유를 붙였는데 오늘에야 안 것이다!

나는 사랑에 빠지려고 책을 읽는다

그것이었다!

요즘 읽는 책을 보자면
「여섯번째 멸종」이나 「타인의 고통」을 읽으며 인간이라는 종을 미워함과 동시에 그들 속에 포함된 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고파진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인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려고 하는 태도라고 본다.

「그림형제 동화집」을 비롯한 동화집을 읽거나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 이야기를 사랑하게 된다. 이야기는 정말 힘이 세고 진짜 좋다. 이미 빠진 상태이다. 우리가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것을 보라. 그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데도 우린 빠진다.

「제목은 뭐로 하지」같은 책 이야기를 읽으면 그 얘기가 별 게 아닌데도 책이라는 대상에 하나의 책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책에 대해 더 알고싶고 덜 알고 있는 내가 아쉽고 이건 딱 사랑에 빠질 때의 증상이다.

아침에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 주절거리는 터라 횡성수설하지만 그래도 다시 확신한다.

나는 사랑에 빠지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다.

현실에선 좀 장애가 많으니까??? 그럴지도.
현실 부적응? 현실회피? 그러거나말거나~~~
사실은 너무 현실에 충실해서 그런 걸 테지만.
갑자기 얼마전 읽은 「히피」가 생각나네. 현실을 던지고 떠난 이 사람들은 책 안 읽어도 됨! 오늘 북플 너무 의식의 흐름이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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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1-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혜윰은 책을 많이 읽을수록 금사빠형 인간이 되는거겠군 ^^

그렇게혜윰 2019-01-15 11:22   좋아요 1 | URL
원래 금사빠라서 입덕도 잦은 편인데 나이드니 현실판사랑에 제약이 많네요 ㅋㅋㅋㅋ 요즘은 중국소설 중드에 빠졌지♥♥♥♥♥
금사빠 놓치지 않을거예요. 난 금사빠가 좋아용 ㅎㅎㅎ

목나무 2019-01-15 12:12   좋아요 0 | URL
중국소설과 중드는 스케일이 남달라 분량도 많을터인디...ㅋㅋㅋ
내가 한때 중드에 빠져봐서 아는디 정주행하기도 다들 너무 대작들이라 힘들더라구.... 그래도 헤어나올 수 있어. 있을거야..ㅋㅋㅋ

그렇게혜윰 2019-01-15 12:50   좋아요 0 | URL
내 중드 인생이 중2에 시작한 거라 나름 견딜심있음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1-1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에 손택 여사의 <타인의 고통>
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지 혹은 동영상/비디오로 전달되는
타인의 고통에 과연 나는 얼매나 공감
하게 되는가라고 말이죠.

인간을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는
마음... 불안전한 존재라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혜윰 2019-01-15 12:51   좋아요 0 | URL
요즘은 자꾸 허무주의로 빠지려고해서 걱정이에요. 그러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해요......책 때문에 허무주의가 되기도하지만 그럴 의도로 쓰진 않았을 것이라며 맘을 다잡기도 하구요. 살려고 읽는다는 말도 맞는말 같아요^^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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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정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처음이고 단편 3개를 겨우 읽은 게 전부라 뭐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완전히 반해버렸다는 느낌이 들 적이 없다. 다만 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 표현하여 읽는 이가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면은 있는 것 같다. 대비되는 두 대상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솜씨도 좋다. 만연체가 어떤 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 문장을 한 호흡으로 읽게될 때를 보면 문장력도 좋아보인다. 물론 숨찰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하지 않는 건 그가 의도한 거리감인지 아니면 시간차인지 그려지는 여성인물에 대한 거부감인지 모르겠다.
가진 자들에 대한 냉소가 있는 건 분명한데 가지지 멋한 자들에 대한 거리감도 있다.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위치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나 역시 그러하기에 몰입이 되기도 하다. 애매하달까?
더 읽어보자.

이해와 감정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발거한 것도 그때였다. 이 가족의 계획성 있는 움직임, 약간의 균열쯤은 금방 땜질해버릴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는 전진적 태도, 무엇인가 창조해내고 있다는 듯한 자부심이 만들어준 그늘 없는표정 - 문화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희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사람들은 매일매일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지점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이 나의 그들에 대한 이해였다.
그러나 그 어느 지점이 무한하게 먼 곳에 있을 때도 우리는 그들이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나로하여금 기타 켜는 시간의 제약까지를 주어가면서 말이다. 차라리 이 사람들의 태도야말로 자신들은 걷고 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매일매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의 그 끝없는 공전 같아 뵈던 생활이 이곳보다는 오히려 더 알찬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나의 감정이었다.

-김승옥 「무진기행」<역사> 107쪽, 문학동네 김승옥 소설전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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