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쓸모라는 이름은 세속적인 느낌을 준다. 꼭 쓸모가 있어야 되나 하는 반감도 드는데 그 대상이 역사라고 하니 도대체 역사를 어디에 쓰나 싶기도 하고, 역사를 꼭 쓸모가 있어야 배우나 싶어 역시 반감이 든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쓸모없음이 삼국사기의 쓸모있음에 뒤지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시작하는 저자의 역사이야기는 한 번 발을 딛으니 다 읽을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어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었다.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삶의 이야기였다. 역사의 쓸모란 이득을 챙기는 세속성의 느낌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헤아리는 데에 있었다. 설민석과 최태성은 한국사에 대해선 피로감이 있을 정도로 많이 들은 이름들이다. 그래서 애써 피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만나보면 두 분 다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설민석의 유려함도 대단하지만 최태성 선생님의 따뜻함이 조금 더 좋다. 긴 리뷰 보다는  인상깊었던 에피소드와 밑줄 그은 부분을 정리해 보며 간단히 리뷰를 마치련다.

 

<인상깊은 에피소드>

- 정약용의 역사 의식

- 선덕여왕의 혁신 마인드 (ft.황룡사9층목탑)

-고려의 원종의 외교(태자 시절)

-장수왕의 유연한 외교력

-김육과 이원익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ft.대동법)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P59

능력이나 성품도 그러하지만, 저는 정약용의 역사의식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정약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죄인의 입장이지만 역사는 자신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쓰고, 또 썼던 것입니다.- P76

시대의 과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면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항기에는 신분 해방을, 일제강점기에는 조국 해방을, 현대에는 빈곤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고요.- P223

초임 교사 시절에 가졌던 그 뜨거웠던 열정, 저는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열정의 모양이 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바꾸려는 태도는 없어졌고, 그저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구원받은 것처럼,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의 중심을 잡는 것만큼 주변 관계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P2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적에서 파내지는 방법을 궁리한 적이 있다. 그때쯤부터였을까 나는 가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소설은 물론이고 사적인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의도적으로 가까이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했다. 내 삶과 닮은 것은 닮은 것 대로 불편했고, 닮지 않은 것은 닮지 않아 또 불편했다. 어쨌든 남의 이야기가 아닌가.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전자에 속했다. 내 삶과 많이 닮아서 불편한 결국의 남의 이야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었다. 어쩌면 잇달아 한 번 더 읽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한지혜의 글을 읽으며 '단단한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 나는 지난 삶을 외면하고, 지난 삶이 현재의 나를 방해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통에 늘 불안하다, 단단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작가는 달랐다. 그의 과거는 나의 과거와 마찬가지로 행 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고 느껴지지만 그는 그것을 마주하고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관통하여 들어갔다 돌아온 현실에서 그는 단단해져 있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지나온 모든 일을 그렇게 만든 것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가 결정한 사항이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남을 탓하고 싶었다. 어릴 적의 불행을 현재에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의 그릇이다. 그것을 알기에 넓은 그릇을 지닌 남의 삶을 들여다 볼 자신이 없었던 걸까?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이 부끄럽게 나의 그릇은 늘어날 생각을 안 한다. 작가가 동생의 용돈 문제를 다룬 글에서 말했듯 피차 모른 척해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아직도 내겐 현재 진행형인 모양이다. 모른 척 하면 없던 일이 될 것 같고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러나 실상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미래의 불안이 잠재된 그런 시간 말이다. 나는 언제쯤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 말하는 이생망을 언제부턴가 입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부끄러워졌다. 나 자신이 누구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다니. 그러나 나는 두려운 것이다. 작가가 엄마의 요리법을 외면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부모가 미워서 자꾸만 그들을 마음 속에서 외면하고 있다. 한 사람과는 함께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날선 말들이 입밖으로 나가면 다시 내게로 박혀 또다시 원망이 생긴다. 가족이라는 배를 타면 난 늘 인생이라는 바다에 침몰한다.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몹시 두렵다. 작가와 마찬가지도 나 역시 가정을 이루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두 아이의 엄마라는 현실로 실현된 모순은 작가의 말처럼 가정에 대한 혐오에 뚜렷한 원인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냥 나는 미워하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었던 건 아닐까?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도 못된 버릇은 남아 어느 새 남편을 새로운 대상으로 삼아 내가 관통해야 할 현재를 남에게 미룬 채 나는 그저 외면하며 미래를 또 멍하니 기다리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 자신의 세계를 극복하지 못한 이가 주변의 세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우습지 않느냐 말이다.

 

다른 에세이들과 달리 나를 아는 체 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나는 한지혜라는 사람을 모르고, 한지혜는 나라는 사람을 모른다. 작가는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첫 마디라고 했다.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수많은 타인들이고 그중 일부는 나를 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내가 풀어놓는 나 역시 나의 모두가 아닌데, 나는 나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책임져야 할 가족 구성원을 만들어놓은 마흔이나 넘은 사람이 이생망을 말하며 자기 인생을 방관하다니 이건 악순환이 될 것이 자명하다. 타인의 삶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삶을 어루만져야겠다. 도망치지 말자 마음 먹고 돌아선 나를 불러 세워 본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아야 타인에게 내 마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내 쓸쓸한 골목에  참 괜찮은 눈이 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책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통해 미래로 도망가고 싶어했다.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사양하겠어. 읽다 만 책이 있어서.˝
마사하루는 어깨를 으쓱하며 거절했다. p6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9-11-0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표지 주인공의 얼굴이 벌써 해피해 보이네요^^

그렇게혜윰 2019-11-05 08:04   좋아요 0 | URL
가볍게 읽기에 재밌었어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리커버 특별판)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똥이야기가 좀 많이 나오는 게 취향에 맞진 않지만 대체로 좋아서 남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모임에서 한꼭지씩 읽어가며 이야기 나누는 방법으로 함께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의 영화평론과 인터뷰는 빼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을 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