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 지혜의 시대
김현정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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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꾸준히 시청하는 편이 아니다. 우리 집 리모컨 주도권이 내게 없는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만 따지기에는 혼자 살 적에도 뉴스를 잘 보지 않았다는 데에 양심이 찔린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매일 보는 뉴스가 사건 사고의 전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 내용이라야 또 매일 매일이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또한 어떤 드라마보다 자극적이기도 하고, 보고 있으면 우울하기만 할 뿐 뭔가를 알게 되었다거나 깊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손석희라는 이름 역시 내게는 허영일지도 모른다. 그의 뉴스가 좋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가 다른 뉴스와 차별화되고 그의 뉴스를 볼 때 다른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뉴스를 즐겨 보게 되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창 정치가 어지러웠던 때에,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과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질 무렵에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여러 패널들이 전문가라며 나오는 것을 챙겨 본 적이 있지만 그것을 뉴스라고 보기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뉴스는 오며 가며 보는 간판 정도의 의미 밖에 없다. 너무 냉정한가? 너무 지나친가? 그럼 뉴스는 그동안 뭐한거지?

이 책을 읽으며 뉴스쇼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안다, 한심하다고 보는 눈빛. 그런데 말이다, 그런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뉴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 뉴스를 바꾸고자 노력한 흔적이 이 책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노력에 공감하고 고마워하게 되었다. 이 책의 가치는 그것에 있고, 김현정 PD의 뉴스쇼의 가치는 그 소명 의식에 비례한다. 그러니 그 노력을 멈추지 마시길, 이 아둔한 사람도 뉴스쇼의 존재를 알기 시작했으니 부디 오래토록 세상을 움직이는 뉴스를 만들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 본 서평은 가제본 서평단으로 읽고 쓴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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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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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어떤 행위일까? 말과 행동으로 그때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풀지 못할 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위로 그 이상일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것이 이토록 정교하게 짜여진 한 장의 멋진 직조물일 줄이야.

 

상이용사로 전역하여 전쟁을 환상이 아닌 현실로 인식하는 노벌 체이스를 아버지로 둔 아이리스와 로라, 그녀들의 삶은 그 시대의 남자들이 운전한 대로 따라가야했고 그 운전대에 몸을 맡긴 아이리스와 자기만의 운전대를 갖길 원했던 로라의 삶이 대조적으로 펼쳐진다. 안정되지만 결정할 수 없었던 삶과 불안정하지만 자기 결정력을 가진 삶 중 후자의 삶이 더 옳아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파란만장하기 마련이다. 로라의 삶이 그랬다.

 

로라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음치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음악이 연주되면 어떤 소리를 듣게 되지만,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식으로 듣는 것이다. (2권 337쪽)

 

어릴 때부터 순응적이지 않았던 로라를 간수하기가 때로는 벅찼던 아이리스, 그녀의 삶이 옳다고 믿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을 잃고 난 후에야 그녀의 삶이 옳았다고 믿게 되는 아이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또한 그들의 교집합인 알렉스를 위해 애도하는 일. 그렇게 아이리스의 글쓰기는 완성된다.

 

노년의 아이리스가 쓴 회고록과 로라 체이스로 발표된 원고들, 그 안에 들어간 자이크론 행성과 지노어 행성의 이야기들, 그들과 관련된 주요한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들이 교차되어 가며 밀도 있게 짜여지는 이야기들은 소설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다가 후반부로 가면서는 반전의 수까지 놓는다. 그 안에서 그는 애도도 하고 고백도 하고 후회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 원망도 한다. 평생을 마음이 없는 상태로 살아온 아이리스에게 마음을 채우는 과정이 글을 쓰는 시간이었으리라.

 

마거릿애트우드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 집에는 작가도 모른 채 사둔 그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소설을 읽고도 며칠 동안이나 이야기를 되새김질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직조물을 나의 언어로 다시 직조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악한 글이나마 기록해둔다. 이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하여.

 

나는 오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기록한다. 애도하기 위하여. 아빌리온과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애도하며. (2권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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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골 세트 - 전4권
과과 지음, 전정은 옮김 / 파란썸(파란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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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화천골]을 3권까지는 드라마보다 빨리 읽었고, 4권을 읽기 앞서 드라마를 모두 보게 되었다. 결론은 소설은 소설대로 재밌고,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밌다는 점이다. [삼생삼세십리도화]를 재밌게 읽은 터라 중국식 신선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얼핏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가 헤쳐나가는 화천골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흥미 뿐만 아니라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 옳은 것을 행하는 것에 다른 것을 살피지 않는 모습은 제 아무리 장류 상선이라할지로도 마지막엔  옳고 그름보다 감정에 충실해야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순수하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면 될 것을
그게 옳든 그르든 네게 다 줬을텐데 마음도 몸도 다 줄 수 있는데
장류가 망하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라고
저들이 죽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닌데
네가 떠나자고 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네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마
그러니까 제발 내 곁에만 있어다오 날 두고 떠나지 마라

 

드라마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일단 각색을 참 잘했다. 소설의 번외편을 중간 중간 녹여낸 것도 그렇고 하자훈과 예만천의 캐릭터를 더 악하게 만들어 대립각을 세웠다. 죽염의 출생의 비밀은 썩 좋진 않았고, 남우회의 존재가 축소되고 두난간의 존재가 없어진 것도 아쉬운 점이다만 묵빙선을 백자화와 동일 인물로 설정한 것은 썩 괜찮았다. 운예와 운은의 운명을 바꾼 것도 괜찮았다.  동방욱경의 캐릭터는 소설보다 나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의 배역은 정말 잘 캐스팅 되었는데 특히 조려영은 더이상 대체할 수 없는 배우였다. 순수한 아이에서 요염한 요신이 되기까지에 어색함이 없었다.  다만 백자화 역의 곽건화에 대해선 판단 보류 중이다. 창백하고 야윈 모습 치곤 건장하여 분장으로만 표현하다보니 몰입이 잘 안되고 분장팀에게 미움샀나 싶을 정도였지만 백자화 역에 일찌감치 내정되어 삼고초려하여 캐스팅 된거라고 하니 배우의 준비 문제였나 싶다. 그래도 감정을 절제하는 연기에 매력적인 부분이 있어 다른 드라마를 찾아 보다가 그만 사랑에 빠져버렸다. [금옥량연]이라는 드라마인데 너무 재밌고 곽건화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화천골2가 나올지도 모른다는데 좀 헬쓱한 채로 곽건화가 다시 하면 좋겠다. 그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나?

 

드라마보다 책을 먼저 읽는 것은 언제나 옳다. 드라마를 먼저 다 본 지라 4권에 몰입이 잘 안됐다. 더구나 드라마 막바지가 편집은 진짜 이상했지만 진행이 흥미로워 소설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격하게 움직였다. 당분간 이런 류의 소설과 드라마를 더 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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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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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이들을 마주하는 직업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보다는 많이 어리고 지역 특성상 아직은 세상의 때가 덜 묻은 고운 아이들이긴 하지만 10여년 전을 떠올리면 많이 변한 것이 느껴지는 '요즘 아이들'이긴 마찬가지이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갖고 있다는 '아몬드', 즉 편도체가 작동하지 않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고 공감을 하며 친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그 '누구나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히 우리의 몸에 내장되어 있고, 그것은 고장이 나지 않았는데 과연 우리의 그것은 윤재의 그것보다 더 잘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10여 년전을 떠올려 본다. 그때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거칠었다. 교실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을 제지해도 순간적으로 제지가 안되어 몇대를 더 주고 받고도 씩씩 거친 호흡을 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가끔 PC방이나 남의 학교 운동장에서 맞짱을 뜨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잔소리처럼 들릴 주의를 주고나면 어떨 땐 눈물까지 흘리기도 하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이 지독한 감기에 걸려 골골대면 안타까워하고, 친구의 진심어린 고백에는 놀리지 않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부모도 그러했다.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때린 자기 아이보다 다친 아이를 더 걱정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떨까?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PC방에 가는 아이도 거의 없고 게임이 하고 싶으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더 선호한다(물론 초등학생이라서). 살짝 꼬집고 꼬집힌 것으로도 얼굴을 붉히고 잘못을 했다고 인정을 하고 큰 잘못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게 진짜 감정일까? 아니면 윤재가 엄마에게 배웠듯 암기하듯 배운 반응일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가끔 학교폭력이 발생할 때 오가는 공기의 무게와 혼탁함도 떠오른다. 처벌은 하지만 그것을 약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것을 강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 간의 신경전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준 것을 미안해하거나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앞서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우리의 아몬드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일까?

   윤재는 본 것이다. 곤이의 아몬드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격렬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도라와 심박사, 그리고 엄마와 할멈에게서도. 하지만 지나쳐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윤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제대로 작동되는 아몬드를. 태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편도체를 발달시키기엔 윤재가 본 사람들의 마음은 그것이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니 더 못한 그저 더 달고 다닐 뿐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곤이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리만큼 그렇게 큰 공이 들어가야 한다. 마음은 마음으로 얻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기본적인 방법을 잊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아이를 키운다 우리가. 할멈이 愛를 쓸 때가 떠올린다. 그 한 자를 공들여 쓰는 순간을 떠올린다. 愛는 그렇게 애써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작가는 출산을 하고 얼마 안되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태어난 아기를 보며, 동시에 공중에 떠도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접하며 내 아이가 자랄 세상에 대하여 걱정해보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이가 커 갈수록 그 걱정은 커져만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숨만 나온다. 피하고도 싶어진다. 그럴 때 윤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믿고 싶다. 그것이 비록 비현실적일지 몰라도 그렇게 믿고 싶고,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른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는 데에 이 소설이 아몬드보다는 큰 역할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묵직한 구절>

 

생각해 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81쪽)

 

언젠가 공을 들여 '愛'를 쓰고 있는 할멈에게 엄마가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愛의 윗부분을 쓴 할멈이 가운데 마음 심(心) 자를 써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 이 점들이 우리 셋이다. 이점은 내 거, 요건 너, 이건 재!

(160-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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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1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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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보다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표지이다. 저 사내는 안토니우스일 것이고, 여자는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뱀. 아직 뱀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문득 옥타비아누스를 떠올리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정말 사랑했다. 그와 동시에 카이사르의 신분도 필요했기에 아마 안토니우스라는 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그래 사랑은 아닐거야 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안토니우스는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내였던 것일까? 잠자리에서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라는 신분이 필요했고 그 기대 이상으로 그와의 시간을 좋아했다. 그러하기에 이런 제목의 이야기가 탄생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옥타비아누스의 어머니인 아티아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안토니우스를 '막돼먹은 놈' 취급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여러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로마의 새로운 일인자가 되기를 바라고 그럴 가능성도 높은 사람이다. 도대체 그 매력이 뭘까? 가끔 콜린 맥컬로를 통해 그 매력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작가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적었을 것으로 짐작되듯 그 매력이 독자에게도 그리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옥타비아가 그렇다고 하니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매력적인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옥타비아누스와 옥타비아가 안토니우스를 생각하는 바는 매우 다르지만 어찌됐든 옥타비아와 안토니우스가 부부로 연을 맺는다는 데에는 둘다 동의한 것이므로 앞으로 옥타비아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드루실라와 옥타비아누스의 관계도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1권에서는 두 사내의 성격 대립을 챕터를 둘로 나눴듯 대립적으로 보여줬지만 2권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더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카이사리온의 쌍둥이 동생들과 함께. 앞선 두 커플과 클레오파트라, 이 다섯 사람이 펼쳐놓을 서사는 어떤 방향일지, 역사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다. 아직은 사람 냄새가 덜 나는 옥타비아누스와 드루실라의 알콩달콩한 신혼 일기도 진행이 되려나? 너무 큰 기대인가? 아무튼 두 남자를 보며 역시 카이사르가 제일 낫다고, 그래서 다들 카이사르, 카이사르 하는 모양이다.

 

어렵지 않고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여름이라 오래 읽었다. 여름 내내 갖고 다니느라 겉보기엔 삼독은 한 책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가 더 정겨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 시리즈의 5부였던 [카이사르]만은 못하다. 뛰어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작가가 카이사르라는 매력적인 인물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였듯 나 역시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떼어놓고 이 이야기들을 읽을 수 없다. 안토니우스도 옥타비아누스도 클레오파트라도 카이사르의 연장선으로 읽게 된다.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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