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리뷰대회.
알라딘 공지로는 누가 누군지 확인이 어려운데 출판사 sns엔 닉넴으로 올라와서 공유해 봅니다.

모두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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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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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을 읽거나 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많은 편이다.  남의 삶에 대해 불행이라고 말하다니 무척 무례한 표현이지만 남들이 당한 불운과 사고 등을 달리 어떤 말로 표현해야 좋을 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피하는 것이 내가 그 반대의 자리에 있어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저 아직 나의 불행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불행 비슷한 일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줄곧 특별한 존재로 빛나길 바랬던 작가의 어린 시절과 달리 나는 어릴 때부터 부디 '평범에서 멀리 떨어지는 삶만 면하자'는 각오를 다졌을 정도로 어른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알아버린 아이였으니까. 어쩌면 내가 읽은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보다 클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기에 저마다 자신의 불행이 더 크게 아프겠지만 한계치에 다다라 겨우 사는 법을 터득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것은 공포에 가까운 것이라 그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지인이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출근을 하다가가 치워지지 않은 낙석에 걸려 목이 꺾였고 신경 손상으로 인해 현재 전신 마비로 누워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정도로 누구보다 건겅했던 이였다. 그랬던 사람이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이려고 애쓰는 상황에 주변 사람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안부를 물을 때마다 웃는 목소리로 상대의 안부를 도리어 묻고 미래를 걱정해준다. 도대체 그런 건강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안부를 물으려던 목소리는 순간 방향을 잃고 만다. 그래, 그의 경우 조금씩 말초신경이 움직여지고 있는 지라 그렇다고라도 치자. 앉은 자리에서 똥을 싸고 뭉개고 몇 시간이고 어머니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나 예쁘게 차려입고 나선 외출에서 온몸이 오줌범벅이 된 채로  할 일을 마치고 귀가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울지 않고 버티랴? 다음의 삶으로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벌써 힘들다. 그런데도 작가는 희망을 말한다. 도대체 이런 건강함들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거지? 이 책의 제목처럼 나는 정말 모르겠다. 답답함에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기도 했다. 그렇게 책장을 덮고 생각을 멎던 중에 책 표지에 눈이 갔다.  보름달과 그에 닿을 듯 말 듯한 보트, 그 둘이 함께 하는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명치 않은 공간을 한참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난다. 아니 저 핑크는 또 뭐지? 아 어쩌란 말인가? 정말 나는 모르겠는데, 웃음이 난다. 이게 무슨 마음인지 모르겟다. 

당사자가 느꼈을 처참한 상황을 보며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만 느낀다면 그 사람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삶을 산 사람이리라. 솔직한 마음으로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구김이 없는 사람이다.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어느 시구와 달리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이 너무 예쁘고 부럽다. 가능하다면 매일매일 그런 사람들만 보고 살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 중에도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사고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느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나같은 사람은 이 요상한 핑크빛 표지를 보고 웃었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어떤 어두움 하나를 밀어낼 수 있으리라. 할 수 있는 게 적을수록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위로, 좌절하고 싶은 순간에 좌절을 못 하게 하는 것이 다름아닌 지금 겪고 있는 막다른 삶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다가온다. 그래, '나는 여전히 나'(203쪽)이지, 별의 별 수를 다 써도 내가 네가 될 리도 없지, 핑크빛 미래라는 건 내가 네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여전히 내가 되는 전제 하에 되는 것인 게지 하는 생각에 이르러  다시 책장을 펼쳐 마저 읽기 시작한다. 

다시 펼친 책 속에는 더 이상 작가의 사연이 아니라 황시운이라는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나' 라는 것을 증명하며 사는 존재가. 아프지 않다고 증명할 '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많이 아프다고 증명할 '나'가 많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불행의 구덩이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그 구덩이에서 나오는 길을 찾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스스로를 도닥이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구덩이에서 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나는 '여전한 나'가 아니게 된다는 것도. 그것을 적응이라고 불러도 좋고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고 정신승리라고 불러도 좋다. 섹스를 하는 사랑이면 어떻고 인류애면 어떠냐? 내가 나를 다독이며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내겐 너무 대단해 보일 뿐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건 일단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본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내게도 그때 그 길은 막다른 길이었던 걸까? 자꾸만 무너져내리려던 때에 시야가 돌연 좁아지면서 나 역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직도 나는 '여전한 나'를 완성하지는 못한 것 같다. 처음부터 똥으로 시작하는 작가의 고백은 그래서 너무 대단하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야만 비로소 자신의 불행과 화해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 막다른 길 그 앞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 하고 있다. 아마도 내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하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이 한 사람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분홍분홍해진다. 기왕 사는 게 전쟁같다면야 좀 분홍분홍하게 전쟁을 해 보자. 내가 나를 좀 돌보겠다는데 뭐 분홍색이면 어떻고 형광색이면 어떠랴? 아직도 내 마음은 혼돈의 구덩이지만 그래도 '여전한' 방향을 찾아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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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에 기여하고 또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 자신과 세계를 보는 방식일 뿐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는 삶의 강력한 방식이기도 하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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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위 치욕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고 했듯이 그런대로 사람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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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말하는 동양평화란 어떤 의미인가?
-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다.
-그중 한 나라만이라도 자주독립하지 못하면 동양 평화가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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