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 진정한 자기 수련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핵심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계속해서 새로운 면모를 더해 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아란 우리의 소유물(또는 성취)이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여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형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로, 마음의 평정을 갖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은 대체로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다소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는 안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소 전전긍긍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모든 열과 성을 다 바치려는 삶 역시 어떤 장점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세 번째로, 나는 인간의 욕망에는 놀랄 만한 특수성이 있으며 바로 이 특수성이 우리가 가진 기질을 현실에서 발휘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한다.

자크 라캉은 이 특수성을 욕망의 "진실"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우리가 이 특수성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기질과도 더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수사적으로 대단히 난해한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이 실제로는 전혀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난해함으로 가린다는 점에 나는 점점 짜증이 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읽고 있는 300쪽에 달하는 고통스러운 내용의 책이 25쪽 분량의 간단명료한 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 느낄 때, 나는 내 안에서 분노가 치미는 것을 경험한다

내 운명을 내가 능동적으로 바꿔 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또한 내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을 통해 배웠다.

1부에서는 우리 기질이 지닌 특수성에는 우리 욕망의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자아를 형성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의 욕망이 완전히 비합리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욕망의 독특한 모습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기질을 존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를 만족시킬 법한 것을 찾아서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충동인 욕망은 우리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고정된 정의에 안주하지 않게 해 준다.

욕망은 우리 삶의 의미를 유연하게 하며 삶이 열린 결말을 유지하도록 한다.

욕망이 지닌 특수성이 활성화되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욕망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자신의 욕망이 내리는 수수께끼 같은 지시에 순종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기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이루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좋은 삶의 열쇠는 고통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을 소화하고 변화시켜 우리가 우리 자신과 더 가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이 능력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과도 더 가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낯선 관점에서 우리의 일상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법을 배운다면, 변화는 사소한 것으로도 촉발될 수 있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방향을 일종의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살면서 어느 정도의 격변을 이겨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면, 삶에서 불안, 특히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불확실성과 양면적인 감정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발전시키고자 교단에 서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발전이 때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 준 학생들에게도 정말 큰 감사를 표한다. 일상적인 의미에 길들여지는 것에 저항하는 어려운 글을 그저 존중하는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 준 학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어떤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짜 당신이거나,
혹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버나드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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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제가 존재했던 공간에 저만 쏙 빠져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제가 없는 제 자리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다시 보는 풍경은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빠져나온 공간과 시간은 어떤 기도를 동원해도 고스란히 복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없이 웅변했습니다.

프랑스의 번역가 발레리 라르보는 번역을 두 말에 담긴 정신의 무게를 다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작업이 유난히 어려웠던 건 저자가 쓴 단어와 문장이 어렵고 현학적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주장을 펼치기 위해 왜 그 단어와 문장을 선택했을지 헤아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한국어를 고르기 전에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만, 작업 내내 저는 이해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애초에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프라이데이, 사랑하는 나의 프라이데이는 홍역에 걸려 죽었다. 17년 전 3월이 온다.

다음 해면 이십년이 되네요
당신은 죽은 채 세월을 낭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얘기하곤 했었던,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늦은,
도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난 지금 살고 있어요
그런 도약은 아니라도,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유지하면서 말예요

각각의 움직임은 다음 것을 약속해주거든요

리치는 군중의 돌을 맞는 와중에도 의연하고 꿋꿋합니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지금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지요. 살아남기 위해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계속합니다.

더는 두 시인의 일화를 검색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왜 가시처럼 콕 박혀 좀처럼 빠지지 않았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리치와 비숍이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았던 그 몇시간이 미치도록 부러울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몰이해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입니다. 처절하게 오해받았던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진술하는 일은 리치가 말한 ‘짧고 강렬한 움직임’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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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톡스가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씩 바깥에서 방독면을 쓰는 노력이 환경오염의 해결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예요. 개인 차원에서는 단기간 특정 효과를 볼지 몰라요. 하지만 지속 불가능하고,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죠." 그는 광범위한 사회에서 거대한 침략 세력이 우리의 주의력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는 환경의 변화만이 진정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절제가 주요 해결책이라 말하는 것은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력과 관련된 문제에서 우리 각자가 자기 행동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환경 변화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마술은 사실 집중력의 한계에 관한 겁니다

마술사의 일은(본질적으로는) 우리 주의의 초점을 조종하는 것이다. 사실 그 동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관심이 다른 데 쏠렸을 때 마술사가 동전을 옮겼기 때문에 우리의 초점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마술을 배우는 일은 곧 다른 사람의 주의를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조종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마술에 얼마나 잘 넘어가느냐가 지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보다는 더 미묘한 요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약점과 한계, 맹점, 또는 우리가 갇힌 편견 같은 것들이요.

현실에서 우리는 잘 속는 고깃덩어리이며, 마술사가 파악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속아 넘어간다.

"마술사가 어떻게 마술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의 강점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마술사는 그저 우리의 약점만 알면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약점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내가 내 약점을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지그시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 약점을 잘 안다면 마술은 불가능할 겁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이 있다면, 그게 바로 권력이에요.

트리스탄은 엔지니어들이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를 더 많이 제안하고(더 많은 진동과 더 많은 알림, 더 많은 술수) 그에 대해 축하받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았을 것이다.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디자인 때문이다. 우리의 산만함은 그들의 연료다.

그는 "인간은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할 때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라고 말했다.

"기술의 목적이 뭘까? 우리는 왜 기술을 만들까? 우리가 기술을 만드는 이유는 기술이 우리 안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끌어내 확장하기 때문이야. 그게 붓의 목적이야. 첼로도 그렇고, 언어도 그래. 이 기술들은 전부 우리 안의 어떤 면을 넓혀줘. 기술은 우리를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냐. 우리를 더욱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보였다. "이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인생 전체가 휙 하고 사라져요. 이 시간을 기후위기 해결에 썼을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하거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썼을 수도 있어요. 그게 뭐든 더 좋은 삶을 사는 데 쓸 수 있었죠. 이건 그냥…" 그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내 어린 대자인 애덤과 그의 10대 친구들이 스크롤을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소셜미디어 사용이 늘면서 사람들이 공감 능력을 잃고 화와 적대감을 더 많이 표출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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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좋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틸리는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지능을 타고나 열여섯에 옥스퍼드에서 첫 학위를 따고 박사학위를 두 개 취득했으나, 바로 그 지능 탓에 ‘세상’을 모르고 자라 상대방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슨 말이든 의심하지 않는 어리숙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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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는 컴브리아에서 겨울에 느끼는 혹독한 아름다움을 좋아했지만 이제 섑에서 산 지도 1년이 넘고 보니 봄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계절이라고 말할 자격이 생긴 듯했다. 어디에나 보이는 양 떼를 빼면 겨울에는 이 고원에서 생명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눈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나 혹독하고 색깔 없는 풍경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봄은 부활처럼 보였다. 날은 길어졌고, 잠자던 식물들이 따뜻해지는 땅을 뚫고 녹색 싹을 내밀었으며 히스들이 꽃을 피웠다. 지의류와 이끼로 가득한 이색적인 정원이 살아났다. 맹렬하고 얼음 같던 바람이 따스해지고 향기로운 산들바람으로 바뀌었다. 새들은 둥지를 틀었고 동물들은 번식했으며 공기 중에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다시금 감돌았다. 한 해 중 컴브리아 시골 생활의 아름다움과 느린 속도를 음미하게 되는 시기였다.

포는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했으나,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할 때와 마찬가지였고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아들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하겠다고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가 말했다. "당신 자기 이름으로 구글에 검색해봤어, 스테프?"
플린이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아니라고 했다.
아니긴, 해봤잖아. 다들 그래. 포가 생각했다.

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추호도 개의치 않는’ 유형이었는데도 자기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쥐뿔도 모르는 사안에 대해 확고한 의견이 있는 게 부정적인 일로 간주되던, 좋았던 옛날이 떠올랐다.

포퓰리즘과 거짓 뉴스가 인구의 절반을 머리 빈 인터넷 트롤로 만들어버린 듯했다.

날씨는 전날과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더 밝아 보였다. 기분이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 재미있었다.

"우리 일은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택하는 거야." 그가 말했다.

포는 물러나는 게 옳은 선택일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입을 다무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한 책장에는 젠체하는 책들이 선별되어 있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고대 영어판 《베어울프》. 이 책들 중 어느 것 하나 책등에 주름이 잡혀 있지 않았고, 포는 그것들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책이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연습한 듯 들리는 그 말에 포는 샤플스가 뭔가를 빠뜨리고 말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포는 증인들이 자주 그런다는 사실을 알았다. 증인들은 자기를 가장 좋게 비치게 하려고 했고, 공작처럼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샤플스라면 더욱 그럴 것이었다.

그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때로는 누군가가 나서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아도 되도록 불쾌한 일을 맡아야 했다.

같은 남자와는 주먹을 주고받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에게는 보복을 하면 불균형하게, 인생이 바뀔 정도의 대가가 되돌아갈 거라는 점을 이해시켜야 했다.

1230년에서 2009년까지 칼라일 주교의 공식 거주지는 댈스턴 마을 인근의 로즈 캐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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