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늦은 점심으로 큰아들과 함께 스시를 먹으러 갔다. 좀 있으면 (토요일) 볼티모어(미국에서 4번째로 무서운 도시!!ㅠㅠ)로 떠날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먹을 거 사주는 거. 유난히 스시를 좋아하는 아이라서 뭐 사줄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좋긴 하다. 더구나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볼티모어 가서는 스시도 제대로 먹지 못할 테니까. 나도 어미라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괜히 기분도 울적하다. 너를 믿는다, 으샤으샤 하는 기분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오늘이 지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내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일을 안 가니까 엔군이 떠나는 것도 배웅해 줄 수 있다. 또 해든이가 계속 엄마표 카레라이스 만드는 거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도 내일 함께 만들기로 했다. 금요일은 온 가족이 한국식 고깃집 옹가네에 가서 갈비를 먹기로 했다. 엔군 떠나기 전의 만찬. 그다음 날은 엔군이 떠나는 날. 정말 가는구나...
점심을 먹고 아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센서스가 여전히 낮아서 병원 안 가겠다고 전화하고 혼자 쇼핑하러 갔다가 본 Mother's day 카드. 벌써 Mother's day가 가까워 오는구나!! 어느새 5월이 될 거라니!!! 시간이 날아가는 것 같다.

아빠들도 역할이 많지만, 그래도 주로 돈을 벌어오는 역할이 대부분인데, 엄마들이 맡은 역할은 왜 이리 많을까?
저 카드에 나열되지 않은 더 많은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모든 엄마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고생이 많다고, 수고 하신다고. 하지만, 더 열심히 하자는 말은 못하겠다.
최근에 읽었던 <내 마음의 무늬>중 한 부분이 생각나서 다시 들춰봤다.
<바람의 넋>은 "엄마, 바람은 어디로 가지? 바람은 집이 없나 봐. 나는 바람이 무서워."라던, 유난히 바람을 무서워하던 내 어린 아들의 말에서 비롯된 소설입니다.
아이는, 바람이 불면 일손을 접은 채 골목이나 마당, 집의 옥상에 올라가 마냥 펄럭펄럭 서 있는 내 손을 잡아끌며 방 안에 들어와 창문을 꼭꼭 잠그고 커튼까지 어둡게 치고야 안심하더랬지요. 아마도 아직 젊은 어미의 몸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하염없이 흐르게 하던 바람에 대해 본능적인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끼던 것이 아니었는지요. 그러한 어린아이와 내 모습을 소설 속에 그려 넣으며 현실 생활에서는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 '어떻게 이렇게 평생을 사나. 사는 게 이런 건가...' 등등을 은수씨, 당신의 입을 빌려 토로했던 것이지요.
무엇엔가 끊임없이 목말라 허덕허덕 갈급하던 안타까웠던 시절, 종작없고 하염없던 마음들을 당신에게 실었던 것입니다. (중략) 줄 끊긴 연처럼 하냥 날아가고 싶은, 사나운 바람에 휘감길 때마다 함께 휘돌고 나부끼고 흐르는 몸과 마음은 무엇인지요.
오정희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 p. 99 ~ 100
그런 시절을 어느 정도 지나왔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세월이 주는 잔잔해지는, 아니 차라리 휘돌고 나부끼는 바람에 적응 할 줄 알게 된 지금이 오히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