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켜왔던 고3 시절, 실컷 놀 수도 없거니와 놀아도 마음은 편치 않던 그 시절, 나와 내 친구가 좋아했던 작가는장용학과 최인훈과 잭 케루악이었다. 특히 잭 케루악은 우리의 우상이었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 딘 모리아티처럼 (구촉 많은 학교를 벗어나) 마음대로 하염없이 떠돌아다니고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노상에서에 자주 나오는 구절, "모든 게 개차반이야"를 노상 입에 달고 다녔다.ㅡㄱㅍ ㅇ - P35
맹희는 한없이 착하고 말도 별로 없었지만, 그러나 일단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어지면 조금도 굽힐 줄 몰랐다. 그것은 격렬한 저항은 아니었지만, 바람에 허약하게 흔들리면서도 그러나 그 바람이 그칠 때까지는 결코 꺾이지 않으면서그 흔들림을 멈추지 않는 풀잎의 몸짓과도 같은 것이었다. - P40
내 머릿속에서 어머니는 한없이 걸어가신다. 내게 등을돌린 채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서, 점점 작아지면서 멀어지는, 그러나 결코 내 시야에서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 그 뒷모습. 그리고 이 지구 한편을 고즈넉이 울리며 걷는 그 신발 끄는 소리. 그래서 가끔은 어머니가 지구 반대편으로 그렇게 끝없이 걸어가 마침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내게 등을돌렸던 바로 그 지점까지 되돌아와서 조용히 내 문을 두드리며 "얘야, 내가 돌아왔다" 하고 말씀하실 것 같은 환상에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럴 때의 내 어머니는 내게 뒷모습만보이며 한없이 걸어가는 게 아니라 내 앞에 가만히 되돌아와 선 채 정면으로 나를 향해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 P49
사람은, 가령 물에 빠져 죽을 때 같은 경우엔, 자신이 살아온 한평생을 한순간의 비전 속에 다 보게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가 읽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체험한 바로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삶을 아주 짧은 한순간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극히 선명한 영상으로 보게 되고, 그러고도 살아야 할 앞날에대한 어떤 본능적인 계획을 한순간의 청사진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 P51
미래는 언제나 무였다. 있는 것은 언제나 밑도 끝도 없는 수렁 같은, 막막한 현재뿐이었다. 미래의 지평을 확신할수 없는, 느낄 수 없는 자는 궁극적으로 현재 안에 매달리게되고 현재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지 않으면 절망해버리고만다. ‘지금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내일이란 것을 영원히 모르는 하루살이처럼. - P54
이제 나는 무차별적불행의 이상화 대신에 선택적 행복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싶다. 사실 죽음과 관능은 어쩌면 서로 떨어진 독립적인 게아니고 한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파괴의 쾌락은 노력하기만 한다면 생산의 쾌락으로 변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뒤늦게나마 믿고 싶고, 믿으려 노력할 것이다. (1983) - P55
내가 찾는 것,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실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 그것, 아니나의 불안 자체가 명확하게 활자화되고 공식화되어 신문기사로 나타나길 바랐던 것인가. - P56
그래, 또 한 해가 간다. 또 한 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하품 섞어 눈물을찔끔거린다. 또 한 해가 간다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숙면을 위한 한 잔의 술을 들고 잠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든 말하지 않는 또 한 해가 간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또 한 해가 간다. 1984년이 우리를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용감하다면 우리 편에서 먼저 1984년을 떠나야 할 것이다. - P57
존 스타인벡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나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 P57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원리이다. - P59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 - P59
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하나 띄워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한들인가, 벌써 잎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 P60
그러나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 P60
그리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 결국,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발음해야만 한다. (1984) - P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