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작은 대리석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고 창밖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은 거리 한가운데 모여 소리 지르고, 웃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을 했다
그 집에서 그는 다시 한번 셰익스피어의 책을 펼쳤다. 하지만 말의 아름다움─《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도취했던 소년 시절의 기쁨은 완전히 시든 상태였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을 얼마나 미워했는지를─옷을 차려입는 것, 아기를 낳는 것, 추잡한 식욕과 색욕까지!─얼마나 증오했는지를, 셉티머스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즉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 비밀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 증오, 절망이었다
늘 변덕과 허영심으로 이리저리 쏠리는 음탕한 인간이라는 종족을 더 늘어나게 해서는 안 돼.
사무실의 브루어 씨는 왁스를 바른 콧수염에 산호 넥타이핀, 하얀 셔츠를 입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지만, 속은 아주 냉정하고 끈적끈적했다.
그는 그렇게 버림받았다. 온 세상이 고함치고 있었다. 자살해, 우리를 위해 자살해. 하지만 왜 그가 그들을 위해 자살해야 하는가? 음식도 맛있고, 태양도 따스한데, 어떻게 자살한단 말인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셉티머스는, 세상의 해안가에 누운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는 난파자 같았다.
윌리엄 경은 더 이상 젊지 않았다. 매우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했고(그는 상인의 아들이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으며, 예식 때는 종종 우두머리 노릇도 했고, 달변가였다. 그 모든 일들을 다 해내느라 작위를 받았을 땐 우울하고 지친 표정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끊임없이 몰려오는 환자들과,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책임과 특권에 지쳐서).
떨어져 있어야 하나요? 안됐지만 그렇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는 함께 있는 게 좋지 않아요.
살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던 윌리엄 경은,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원한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진료실로 들어와, 최고의 지적 능력을 총동원하는 의사에게 당신은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넌지시 암시하는 말을 던지곤 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해봐요.
그들은 도움을 구하려다 버림받았다! 그는 그들을 실망시켰다! 윌리엄 브래드쇼 경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균형’, 이 균형이라는 윌리엄 경의 여신은 그가 의학을 수련하면서, 연어를 잡으면서, 또한 그처럼 연어를 잡을 줄 알고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사진을 찍는 아내와 할리 거리에서 아들을 낳으면서 얻게 된 것이었다. 균형의 여신을 숭배하면서 윌리엄 경은 자신뿐 아니라 영국을 번영케 했다
그러나 이 균형의 여신에게는 거의 웃지 않는, 무서운 얼굴의 자매가 하나 있었다. 그 자매 여신은 지금도 인도의 열과 모래 속에서, 아프리카의 진흙과 늪에서, 런던 변두리 지역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지만 사실 권력을 원한다.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되는 반대나 불만은 없애버리고, 자신의 눈에서 발하는 빛을 우러르며 유순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축복을 내린다.
사랑이나 의무, 자기희생 같은 그럴듯한 명분 아래 정체를 숨긴 채. 그는 그 여신을 위해 얼마나 수고로이 일했던가! 기금을 조성하고 개종을 전파하고 제도를 창시하면서. 그러나 전향이라는 괴팍한 여신은 그런 벽돌 같은 딱딱한 것들보다는 인간의 피를 더 좋아했고, 아주 교묘하게 인간의 의지를 먹어치웠다.
서서히 그녀의 의지는 남편의 의지 속으로 가라앉아 잠겨버렸다.
그녀는 할리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 지적 직업을 가진 열댓 명 정도의 손님을 초대해, 여덟이나 아홉 가지 코스의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아주 오래전엔, 그녀도 자유롭게 연어를 잡던 여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남편의 번득이는 눈 속에서 빛나는 지배와 권력에의 갈망을 만족시키려고 자신을 억제하고, 짓누르고, 껍질 벗기고, 잘라내고, 뒷걸음치고, 눈치를 보곤 했다. 그래서 정확한 이유는 모른 채 그런 밤들이 불쾌하고 너무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게 그저 손님들의 전문적인 대화를 듣고 있었던 탓으로, 혹은 위대한 의사인 남편의 삶에서 묻어나는 피로에 전염된 탓으로 돌렸다. 브래드쇼 부인은 남편의 삶을 ‘그 개인의 것이 아닌 환자의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손님들은 10시를 알리는 종이 치면 그 집을 나가 할리 거리의 공기를 황홀하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런 기분 전환은 윌리엄 경의 환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자기는 자기 행동의 주인이지만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서리 주에 있는 윌리엄 경의 친구는, 그곳 요양소에서 윌리엄 경마저 가르치기 어렵다고 인정한 균형 감각을 가르쳤다. 게다가 가족애와 명예와 용기와, 밝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까지 가르쳤다. 윌리엄 경이 적극 지지하는 그 모든 것을.
그는 그렇게 생각을 되새겼다. 그의 버릇이었다.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늘 겉만 스치고 말았다.
어쨌든 그녀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때문에 클라리사 댈러웨이처럼 남을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브루턴 부인은 리처드 댈러웨이를 더 좋아했다. 그가 훨씬 훌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엾은 휴를, 친애하는 휴를 험담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결코 휴의 친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남다르게 친절했다. 정확하게 어떤 경우에 그랬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나이가 예순둘이 되고 보면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남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태도로 관찰했으나, 같은 여자에게는 변함없는 애정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밀리 브러시는 한때 댈러웨이 씨의 이런 침묵에 반할 뻔도 했다. 게다가 그는 늘 믿음직스럽고 신사다웠다. 정말로 훌륭한 신사였다
그 문제는 단지 부인의 관심거리 정도가 아니라, 그녀 영혼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기질, 그것이 없다면 더 이상 밀리선트 브루턴일 수 없는 그녀의 본질을 사로잡은 문제였다.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충동적이고 솔직하고 내적 성찰은 거의 하지 않는(대범하고 단순한─그녀는 왜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대범하고 단순하지 못할까 의아해했다), 강하고 호전적인 이 여인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계획. 젊음을 다 떠나보낸 그녀는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을 무언가가─이민이든 이탈이든─필요했다.
남자들은 자신과 달리 탁월한 언어 능력을 구사해 편집자들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었고, 또한 단순히 탐욕이라 부를 수 없는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비스러울 정도로 우주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는 글을 썼고, 그런 면이 존경스러워 종종 브루턴 부인은 남자에 관한 판단을 보류하곤 했다. 남자들은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잘 알았다.
이걸 20년이나 사용했는데 아직도 잘 써진다고, 만년필 제조업자들에게 보였더니 아직도 닳지 않았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이 말은 왠지 휴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그 펜이 표현하는 견해도 신뢰가 가는 것 같았다(고 리처드 댈러웨이는 느꼈다).
나는 파티에 초대되는 게 무서워요. 점점 늙어가고 있잖아.
여전히 리처드는 무기력했다. 생각하기도 움직이기도 싫었다. 문득 인생이 난파선에서 건진 잔해들 같았다.
그는 노년의 무기력감으로 경직된 채 우두커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올 텐데.
그녀는 의지하기를 원했다. 그녀가 약하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의지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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