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인 신비스러움을 지닌 그녀는 온순하고 사려 깊었으며 차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수 코트 차림의 킬먼 양이 층계참에 서 있었다. 그녀가 그 옷만 입고 다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 코트가 쌌기 때문이고, 둘째 이제 마흔이 넘은 나이였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남들 마음에 들려고 옷을 차려입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가난했다. 체면을 손상시킬 정도로 가난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댈러웨이 집에서, 이 부잣집에서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평하게 말하면, 댈러웨이 씨는 친절했다. 그러나 댈러웨이 부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은혜를 베푸는 듯 굴었다.

킬먼 양은 삶으로부터 기만당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여자라면 분명 조금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못생기고 너무도 가난해서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그녀는 문화 강좌도 좀 했다. 바로 그 무렵 주께서 그녀에게 계시의 빛을 보여주셨다(이 대목을 말할 때면 그녀는 언제나 머리를 숙였다). 2년 3개월 전에 계시의 빛을 보았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클라리사 댈러웨이 같은 여인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낄 뿐이다.

이렇게 사치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말했다─공장이나 카운터 뒤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 댈러웨이 부인을 포함해 다른 귀부인들도!

때문인지(그녀는 저녁에 혼자 있을 때면 바이올린 소리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지만, 그 소리는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그녀는 음악에 대한 귀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도 뜨겁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끓어오를 때나,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증오와 세상에 대한 원한이 끓어오를 때마다, 주님을, 휘터커 목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킬먼 양은 댈러웨이 부인을 증오하지는 않았다. 녹색 빛이 도는 그 큰 눈을 클라리사에게 돌려 그녀의 자그마한 분홍빛 얼굴, 가냘픈 몸매, 유행을 따라 산뜻하게 치장한 외양을 바라보며, 바보! 멍청이! 라고 속으로 말할 뿐이었다.

당신은 슬픔도 즐거움도 모르며 삶을 허송하고 있을 뿐이야! 그러자 내면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제압하여 가면을 벗기고 싶은 제어하기 힘든 욕망이 치솟았다.

이런 여자가 내 딸을 빼앗아 갔다니! 이런 여자가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와 접촉한다니, 말도 안 돼! 뚱뚱하고 추하고 평범하며, 친절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그녀가 인생의 의미를 아는 척하다니!

킬먼 양은 결코 그녀 앞에서 상냥하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활비는 벌며 살 수 있었다. 게다가 근대사에 대한 지식은 뛰어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또한 얼마 안 되는 수입 중 상당액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업에 기부했다. 반면 클라리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며, 딸만 키우고 있었다.

계속 바라보자니, 차츰 증오가, 악의가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증오한 건 킬먼 양 자체가 아니라 킬먼 양에 대한 자신의 관념이었다.) 그러면서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도와주고 싶기까지 했다.

층계참에서 꼴사나운 시선을 보내고, 거만을 떨고, 위선에 가득 차고, 남의 말이나 엿듣고, 질투하고, 끊임없이 잔인하고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그 여자가 사랑과 종교의 화신이라니. 클라리사 자신은 한 번도 그녀처럼 누구를 전향시키려 한 적이 없었다. 단지 모든 사람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랐다.

그 불쾌한 킬먼 양은 저런 여인의 영혼의 자유를 파괴하고 말 것이다. 그런 광경을 보면 클라리사는 울고 싶어졌다.
사랑 또한 파괴적이었다. 모든 훌륭하고 진실된 것이 사랑 때문에 사라졌다

품위를 손상시키는 건 정열이야! 그러면서 딸 엘리자베스와 함께 육해군 백화점35으로 걸어가고 있을 킬먼 양을 생각했다.

그 궁극적인 신비는 아주 단순한 사실 안에 담겨 있었다. 여기에 방 하나가 있고, 저기에는 또 다른 방이 있다는 것. 종교가, 또는 사랑이 그 문제를 푼다고?

그녀가 통제해야 할 것은 육체였다.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자신을 모욕했다. 예상한 바였는데도, 그런 그녀를 제압하지 못했다. 자신이 아직 육체를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못생기고 세련되지 못한 자신을 비웃는 시선을 의식하자, 육체의 욕망이 되살아났다. 자신은 클라리사 댈러웨이처럼 생기지도 못했고, 그녀처럼 말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왜 그녀를 닮기를 원하지? 왜? 나는 댈러웨이 부인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경멸하는데? 그녀는 진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녀의 삶은 허영과 기만 덩어리였다. 하지만 도리스 킬먼은 그녀에게 압도당했다.

그녀에게 위로가 되는 건 저녁 식사와 차, 밤에 침대를 데워주는 뜨거운 물병뿐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말이 제 무덤을 판다는 걸.

어머니는, 그녀가 고운 어깨선과 곧은 자세를 가지고 있기에 언제나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과 일을 차곡차곡 진행하는 손길들이, 사소한 잡담들(여자를 포플러에 비유하는 잡담은, 물론 약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말이었다)이 아니라 선박이나 사업, 법, 행정 등을 생각하는 정신들이 좋았다. 너무나도 위엄 있고(그녀는 사원 구역에 있었다) 즐겁고(강이 흐르고 있었다) 신성한(교회가 있었다) 그 모든 것들에 마음을 뺏겨, 그녀는 어머니가 뭐라 하든 농장주나 의사가 되기로 단호히 결심했다. 물론 좀 게으른 편이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람이 혼자 있다 보면 종종 하게 되는 그런 생각을 발설하면 어리석어 보이니까.

이 거리의 소란함이 전해주는 다정함, 어머니 같고 자매 같고 형제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사람들의 망각은, 그 배은망덕함은 상처를 주기도 하겠지만, 이 쏟아지는 소리는 오가는 세월 속에서도 맹세를, 화물차를, 삶을, 그 행렬을 모두 싣고 갈 것이다. 빙하의 거친 흐름이 뼛조각이나 푸른 꽃잎, 떡갈나무들을 싣고 떠내려가듯.

그것들은 땅에 빛을 던졌다 어두운 그림자를 던졌다 했다.

벽을 회색으로 그늘지게 했다가, 바나나를 선명한 노란색으로 밝게 비추었다가, 스트랜드 거리를 잿빛으로 어둑하게 했다가, 버스들을 밝은 노란빛으로 만드는 그 빛과 그림자는, 방 안의 긴 소파에 누워 있는 셉티머스 스미스에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신호처럼 보였다.

레치아는 테이블에 앉아 손으로 모자를 돌리며 그런 그를 바라봤다.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결혼 생활이 아니었다. 놀라다가 웃기도 하고, 몇 시간이고 가만 앉아 있다가 그녀를 꼭 움켜잡기도 하고, 뭔가를 받아쓰라고 말하기도 하는 저 이상한 남자는 더 이상 남편이 아니었다.

다른 부부처럼 이렇게 내밀한 농담을 나누며 함께 웃는 게 몇 주 만인가.

(누구도 셉티머스처럼 그녀를 웃기지 못했다.)

그녀의 말끝이 꽉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처럼 똑, 똑, 똑, 하며 사라졌다.

그렇다, 그녀는 이 모자를 보면 늘 행복할 것 같았다. 이 모자를 만들 때 그는 제정신이었고 함께 웃었으니까. 둘이 함께 있었으니까. 언제라도 이 모자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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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존엄이란 게 있다. 고독이라는 존엄이. 심지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심연과 같은 큰 간격이 있다. 외출했다가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볼 때면, 클라리사는 그걸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클라리사 자신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의지를 거슬러 그에게서 그것을 뺏을 수는 없다. 그러면 자신의 귀중한 독립성과 자존심도 잃게 될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왜 갑자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자신이 불행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그저 삶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파티를 여는 거야." 그녀는 큰 소리로 삶을 향해 말했다.

격리되고 소외된 기분으로 소파에 누워 있자니, 이토록 명확하게 느껴지는 삶이라는 것이 육체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피터 자신은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 인생을 단순하게만 살지 않았던가. 늘 사랑에 빠진 채, 잘못된 여인과 사랑에 빠진 채. 때문에,

그녀의 인생에 대한 생각을 이해할 남자는 누가 있겠는가? 피터가? 리처드가? 어떤 남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파티를 여는 수고를 자처하겠는가?

아마도 베풂 자체를 위한 베풂이리라. 어쨌든, 그것은 그녀의 재능이었다.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사색을 하거나 글을 쓸 줄도 몰랐고, 심지어 피아노도 칠 줄 몰랐다. 그녀는 아르메니아 사람들과 터키 사람들을 혼동했고, 성공을 좋아했으며, 불편한 것을 싫어했고, 사랑받아야만 했고, 엄청난 양의 무의미한 말을 쏟아내야만 했다.

언제나 똑같았다. 하루가 지나면 다른 하루가 찾아왔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야만 했고, 하늘을 쳐다봤고, 공원을 거닐었고, 휴 휫브레드를 만났고, 그러고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피터가 찾아왔다. 또 리처드가 저 장미를 가져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러다가 죽음이 온다니, 언젠가는 끝이 오고야 만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녀가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순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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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은 대리석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고 창밖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은 거리 한가운데 모여 소리 지르고, 웃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말다툼을 했다

그 집에서 그는 다시 한번 셰익스피어의 책을 펼쳤다. 하지만 말의 아름다움─《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도취했던 소년 시절의 기쁨은 완전히 시든 상태였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을 얼마나 미워했는지를─옷을 차려입는 것, 아기를 낳는 것, 추잡한 식욕과 색욕까지!─얼마나 증오했는지를, 셉티머스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즉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 비밀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 증오, 절망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남녀 간의 사랑을 혐오했다.

늘 변덕과 허영심으로 이리저리 쏠리는 음탕한 인간이라는 종족을 더 늘어나게 해서는 안 돼.

사무실의 브루어 씨는 왁스를 바른 콧수염에 산호 넥타이핀, 하얀 셔츠를 입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지만, 속은 아주 냉정하고 끈적끈적했다.

그는 그렇게 버림받았다. 온 세상이 고함치고 있었다. 자살해, 우리를 위해 자살해. 하지만 왜 그가 그들을 위해 자살해야 하는가? 음식도 맛있고, 태양도 따스한데, 어떻게 자살한단 말인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셉티머스는, 세상의 해안가에 누운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는 난파자 같았다.

윌리엄 경은 더 이상 젊지 않았다. 매우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했고(그는 상인의 아들이었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으며, 예식 때는 종종 우두머리 노릇도 했고, 달변가였다. 그 모든 일들을 다 해내느라 작위를 받았을 땐 우울하고 지친 표정의 중년이 되어 있었다(끊임없이 몰려오는 환자들과,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책임과 특권에 지쳐서).

떨어져 있어야 하나요? 안됐지만 그렇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는 함께 있는 게 좋지 않아요.

살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던 윌리엄 경은,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원한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진료실로 들어와, 최고의 지적 능력을 총동원하는 의사에게 당신은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넌지시 암시하는 말을 던지곤 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해봐요.

그들은 도움을 구하려다 버림받았다! 그는 그들을 실망시켰다! 윌리엄 브래드쇼 경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균형’, 이 균형이라는 윌리엄 경의 여신은 그가 의학을 수련하면서, 연어를 잡으면서, 또한 그처럼 연어를 잡을 줄 알고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사진을 찍는 아내와 할리 거리에서 아들을 낳으면서 얻게 된 것이었다. 균형의 여신을 숭배하면서 윌리엄 경은 자신뿐 아니라 영국을 번영케 했다

그러나 이 균형의 여신에게는 거의 웃지 않는, 무서운 얼굴의 자매가 하나 있었다. 그 자매 여신은 지금도 인도의 열과 모래 속에서, 아프리카의 진흙과 늪에서, 런던 변두리 지역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전향’이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지만 사실 권력을 원한다.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되는 반대나 불만은 없애버리고, 자신의 눈에서 발하는 빛을 우러르며 유순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축복을 내린다.

사랑이나 의무, 자기희생 같은 그럴듯한 명분 아래 정체를 숨긴 채. 그는 그 여신을 위해 얼마나 수고로이 일했던가! 기금을 조성하고 개종을 전파하고 제도를 창시하면서. 그러나 전향이라는 괴팍한 여신은 그런 벽돌 같은 딱딱한 것들보다는 인간의 피를 더 좋아했고, 아주 교묘하게 인간의 의지를 먹어치웠다.

서서히 그녀의 의지는 남편의 의지 속으로 가라앉아 잠겨버렸다.

그녀는 할리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 지적 직업을 가진 열댓 명 정도의 손님을 초대해, 여덟이나 아홉 가지 코스의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아주 오래전엔, 그녀도 자유롭게 연어를 잡던 여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남편의 번득이는 눈 속에서 빛나는 지배와 권력에의 갈망을 만족시키려고 자신을 억제하고, 짓누르고, 껍질 벗기고, 잘라내고, 뒷걸음치고, 눈치를 보곤 했다. 그래서 정확한 이유는 모른 채 그런 밤들이 불쾌하고 너무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게 그저 손님들의 전문적인 대화를 듣고 있었던 탓으로, 혹은 위대한 의사인 남편의 삶에서 묻어나는 피로에 전염된 탓으로 돌렸다. 브래드쇼 부인은 남편의 삶을 ‘그 개인의 것이 아닌 환자의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손님들은 10시를 알리는 종이 치면 그 집을 나가 할리 거리의 공기를 황홀하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런 기분 전환은 윌리엄 경의 환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자기는 자기 행동의 주인이지만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서리 주에 있는 윌리엄 경의 친구는, 그곳 요양소에서 윌리엄 경마저 가르치기 어렵다고 인정한 균형 감각을 가르쳤다. 게다가 가족애와 명예와 용기와, 밝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까지 가르쳤다. 윌리엄 경이 적극 지지하는 그 모든 것을.

그는 그렇게 생각을 되새겼다. 그의 버릇이었다. 하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늘 겉만 스치고 말았다.

어쨌든 그녀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때문에 클라리사 댈러웨이처럼 남을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브루턴 부인은 리처드 댈러웨이를 더 좋아했다. 그가 훨씬 훌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엾은 휴를, 친애하는 휴를 험담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결코 휴의 친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남다르게 친절했다. 정확하게 어떤 경우에 그랬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나이가 예순둘이 되고 보면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남자들은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태도로 관찰했으나, 같은 여자에게는 변함없는 애정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밀리 브러시는 한때 댈러웨이 씨의 이런 침묵에 반할 뻔도 했다. 게다가 그는 늘 믿음직스럽고 신사다웠다. 정말로 훌륭한 신사였다

그 문제는 단지 부인의 관심거리 정도가 아니라, 그녀 영혼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기질, 그것이 없다면 더 이상 밀리선트 브루턴일 수 없는 그녀의 본질을 사로잡은 문제였다.

좋은 집안에서 잘 자란, 충동적이고 솔직하고 내적 성찰은 거의 하지 않는(대범하고 단순한─그녀는 왜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대범하고 단순하지 못할까 의아해했다), 강하고 호전적인 이 여인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계획. 젊음을 다 떠나보낸 그녀는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을 무언가가─이민이든 이탈이든─필요했다.

남자들은 자신과 달리 탁월한 언어 능력을 구사해 편집자들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었고, 또한 단순히 탐욕이라 부를 수 없는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비스러울 정도로 우주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는 글을 썼고, 그런 면이 존경스러워 종종 브루턴 부인은 남자에 관한 판단을 보류하곤 했다. 남자들은 문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잘 알았다.

이걸 20년이나 사용했는데 아직도 잘 써진다고, 만년필 제조업자들에게 보였더니 아직도 닳지 않았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이 말은 왠지 휴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그 펜이 표현하는 견해도 신뢰가 가는 것 같았다(고 리처드 댈러웨이는 느꼈다).

나는 파티에 초대되는 게 무서워요. 점점 늙어가고 있잖아.

여전히 리처드는 무기력했다. 생각하기도 움직이기도 싫었다. 문득 인생이 난파선에서 건진 잔해들 같았다.

그는 노년의 무기력감으로 경직된 채 우두커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올 텐데.

그녀는 의지하기를 원했다. 그녀가 약하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의지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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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1-07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전에 빡신 노동으로
산 차가 보이는 것 같았는데
차 사진이 날라가 버린 것
같습니다 :> 일단 죠아요는
누르고 낭중에 보려고 했었
는데 아숩네요...

라로 2022-01-09 12:00   좋아요 1 | URL
빡신 노동으로 산 차는 자랑 했으니까 내렸어요. 저는 신나지만 다른 분들은 얘 또 자랑질이냐 그럴까봐. 😅😅😅 차가 차죠 뭐. 😅😅😅
 

상상력도 없고 뛰어난 구석도 없지만, 그와 같은 타입은 설명하기 힘든 장점이 있었다. 그는 시골 신사가 제격인데, 정치에 자신을 낭비하고 있었다. 야외에서 말과 개를 다루는 그의 모습은 정말 최고였다

그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평온함, 있는 그대로의 평범함을 나타낼 뿐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리였다.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 그것이 진리였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했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행복해지고 지저분한 얼굴을 보면 바로 우울해졌다

또한 휴 휫브레드를, 그 존경스러운 휴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클라리사를 비롯해 모두가 그의 발아래 엎드렸건만.

이런 민감한 감수성이 바로 그를 파멸시킨 요인이었다. 이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소년처럼, 심지어 소녀처럼 변덕스러웠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나뭇잎 하나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리처드 댈러웨이는 엄숙하고 단호한 어조로, 점잖은 사람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다. 그것은 열쇠 구멍으로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내용이라면서(게다가 거기에 나오는 관계 또한 용인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점잖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죽은 전처의 여동생의 방문을 허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야말로 헛소리였다! 그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설탕 발린 아몬드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늘 산책하던 담장 둘린 정원에는, 장미 덤불과 커다란 꽃양배추가 심어져 있었다. 샐리는 그 정원의 달빛 속에서 장미 꽃잎을 뜯다가, 꽃양배추가 아름답다고 감탄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대단히 감상적으로 보였으나, 표면 아래의 그녀는 아주 날카로웠다.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재주는 샐리보다 더 날카로웠다. 게다가 대단히 여성적이어서, 어디에 있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특수한 재능, 여성 특유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설 때면,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구석도 없고,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히 재치 있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들어오면 그 공간은 늘 그녀의 공간이 되었다. 거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녀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지위와 상류사회, 세상이 말하는 출세 같은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수고를 들이면, 언제라도 그녀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저분한 여자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 실패자들, 그리고 피터와 같은 낙오자들을 싫어했다.

그녀는 사람이라면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축 처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늙는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바로 이거야. 열정은 여전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을 천천히 불빛 아래 돌려 볼 수 있는 힘을─마침내!─갖게 됐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존재에 최상의 향기를 더해주는 힘이지.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질투심은 남는다고 생각했다.

신들이 아무리 악당처럼 제멋대로 굴어도 우리가 숙녀처럼 행동한다면 인간의 삶을 해치고 좌절시키고 망치려는 신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이런 그녀의 생각은 실비아가 죽은 후, 그 끔찍한 사건 후에 형성되었다.

물론 클라리사는 삶을 최대한 즐겼다. 즐기는 것은 그녀의 천성이었다. (신만이 그런 그녀의 천성을 모두 알리라. 피터조차 세월이 이렇게 흐른 뒤에도, 클라리사의 그런 면모는 단편적인 장면 몇 개로만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그녀에게는 냉소적인 데가 없었다. 점

남편보다 두 배나 더 예리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남편의 눈을 통해 만사를 봤다. 결혼 생활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있음에도 언제나 리처드의 말을 인용했다.

쉰이 지나면 다른 사람은 필요치 않다고, 여자들에게 계속 예쁘다고 말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쉰 줄에 접어든 솔직한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침에 온실 문을 열고 화초에 핀 새 꽃을 발견한 정원사처럼, 그저 꽃이 피었구나,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랬다. 그는 허영과 야심과 이상주의와 정열과 고독과 용기와 게으름 같은 흔해빠진 씨앗들로 꽃을 피웠다.

모든 일은 시시한 농담에 지나지 않고, 인간은 침몰하는 배에 사슬로 매여 있는 종족이라고(그녀는 결혼 전에 헉슬리와 틴덜26의 책을 즐겨 읽었고, 그들은 모두 바다에 관한 은유를 즐겼다),

끔찍한 고백이지만(그는 다시 모자를 썼다), 쉰세 살이 되고 보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필요치 않았다. 인생 그 자체, 인생의 순간순간, 그것의 방울방울, 여기, 이 순간, 지금 이 햇빛 속에, 리젠트 공원에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말이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힘이 남았다 해도, 인생의 참맛을 보기에는 남은 인생은 너무 짧을 것이다. 그 남은 세월 동안 생의 기쁨을, 생이 지닌 그늘을 미묘하게 추출해내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것들이 전보다 더욱 견고해 보이고,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클라리사가 준 고통도 예전만큼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몇 시간, 몇 날 동안이나 (신이여, 아무도 엿듣지 않게 하소서!) 데이지조차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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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원히 혼자야.

이 세상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유일한 행운아, 바로 그 자신의 모습이 빅토리아 거리에 있는 자동차 판매소 진열창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이 늘 바라던 바로 그 여인, 젊지만 품위 있고, 명랑하지만 신중하고, 까무잡잡하지만 매력적인 여인이 될 때까지 겹겹의 베일을 벗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와의 장난은 꾸민 것, 행복하다고 여기는 삶의 순간이 대부분 그렇듯, 지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만들어내고, 그 여자도 만들어낸 절묘한 오락이었다. 그는 그 이상의 것도 꾸며낼 수 있었다. 이상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그저 산산이 부서질 뿐이었다.

그는 떠도는 등불 같다고 했다. 그렇게 잡담을 하고 웃고 떠들더니, 갑자기 "이제 우리 자살하자"라고 했다. 그때 그들은 강가에 서 있었다. 그는 지나가는 자동차나 버스를 보듯 무심하게 강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무언가에 매혹된 표정이었다. 그가 자신을 내버려두고 떠날 것 같아 그의 팔을 붙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다시 조용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되찾았다. 그러더니 자살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한지에 대해 그녀와 논쟁하고 싶어 했다. 거리를 지나는 저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을 꾸며대는지 알아? 나는 알아, 모든 걸 다 안다고, 이 세상의 모든 의미를 다 안다고.

노력 끝에─그리스, 로마, 셰익스피어, 다윈, 그리고 그 자신의 노력 끝에─얻은 그 모든 진리에 자신을 바쳐야만 한다…… "누구에게?" 그는 큰 소리로 물었다. ‘수상에게.’ 그의 머리 위에서 바스락거리던 목소리들이 대답했다. 최고의 비밀을 내각에 알려야만 한다. 나무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범죄는 없다는 것을, 사랑만이, 우주적인 사랑만이 있다는 것을.

그 진리는 너무나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 큰 소리로 말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 세상은 완전히, 영원히 변하리라.

성스러운 하늘은 자비로웠으며 더할 나위 없이 인자했다. 그의 목숨을 살려줬으며 그의 약점을 용서했다. 하지만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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