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인간의 여러 자질 중에는 서로 유사한 것들이 있어서, 한 가지 자질이 다른 자질을 이끌어 내는 모양이다
시인들과 시에 대해 올랜도는 한없이 열광적이고 터무니없고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몸은 온갖 비단과 화려한 보석에 둘려 있었고, 좌골 신경통으로 고통에 시달릴지라도 아주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으며, 수천 가지 공포에 엮여 있어도 절대 움찔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마음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 ─ 깜깜한 어둠과 눈부시게 빛나는 촛불, 초라한 시인과 위대한 여왕, 고요한 들판과 소란스러운 하인들 ─ 로 뒤죽박죽이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여왕은 나이에 비해 빨리 늙어 가고 있었고 쇠약해지며 몸이 굽고 있었다. 귀에서는 항상 대포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선 늘 독약 방울이 반짝였고 예리한 단도가 보였다. 여왕은 식탁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해협에서 함포 소리가 들려왔다. 여왕은 두려웠다 ─ 저 소리는 저주일까, 저건 험담일까? 이런 시커먼 배경 때문에 그와 대조되는 순진무구함과 단순함은 그녀에게 더욱 소중했다
강한 힘과 우아함, 낭만, 어리석음, 시, 청춘 ─ 여왕은 그를 책의 한 페이지처럼 읽었다.
그는 여왕의 노년에 아들이 될 터였고, 허약한 몸의 수족이 될 것이었으며, 쇠락하는 자신의 몸을 기댈 참나무가 될 것이었다.
당시는 엘리자베스 시대였고, 그들의 도덕은 우리 시대의 도덕이 아니었다. 그들의 시인도, 그들의 날씨도, 그들의 채소도 우리 시대와는 달랐다. 모든 것이 달랐다.
모든 것이 격렬했다. 태양은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연인은 사랑하고 떠났다. 시인들이 시에서 노래한 것을 젊은이들은 실천에 옮겼다. 아가씨들은 장미꽃 같아서 그들의 한창때는 꽃이 지듯 금세 지나갔다. 그런 까닭에 해가 지기 전에 꽃을 따야 한다. 낮은 덧없이 지나가고, 그 짧은 시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올랜도는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었으니까. 정원에서 자라는 꽃만 좋아하지 않았고, 야생화나 잡초에도 언제나 매혹을 느꼈다.
수십 번 듣다 보니 그 반복되는 이야기가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코를 베어 내는 방법도 한 가지뿐이고 순결을 잃는 방법도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인데 ─ 그의 눈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 반면에 예술과 과학은 그의 호기심을 깊이 자극하는 다양성이 있었다.
그는 젊었고, 부유했고, 잘생겼다. 어느 누구도 그보다 더 큰 환호와 환영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동물을 열렬히 좋아하던 올랜도는 그제야 그녀의 이빨이 구부러진 것, 앞니 두 개가 안쪽으로 굽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여자들에겐 사악하고 잔인한 성격을 드러내는 분명한 징후라고 그는 말하면서, 바로 그날 밤 약혼을 파기해 버렸다.
그 3초 사이에 그는 그녀를 멜론이라고, 파인애플이라고, 올리브라고, 에메랄드라고, 눈 속의 여우라고 불렀다.
어떤 소년도 저렇게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듯한 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두 팔을 번쩍 들어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를 흔들어 대고 싶었다.
그는 그 낯선 여자가 마로샤 스타니로브스카 다그마르 나타샤 일리아나 로마노비치 공주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자 공주는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고, 올랜도는 수퇘지들의 머리와 박제된 공작새들 너머로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자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웃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 띤 입술은 경이로움에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나는 대체 누구를 사랑했고, 무엇을 사랑했던가.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자문했다.
올랜도에게 사랑이란 톱밥과 타고 남은 재를 연상시킬 뿐이었다. 그가 사랑에서 얻은 즐거움은 더없이 김빠진 맛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품도 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견뎌 냈는지 의아했다. 그가 공주를 보았을 때 그의 걸쭉한 피가 녹았고, 그의 핏줄에서 얼음이 포도주로 변했던 것이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황량한 겨울 풍경에 봄기운이 스며들었다. 그의 남성성이 깨어났다. 그는 칼을 손으로 움켜잡았고, 폴란드인이나 무어인보다 더 위험한 적을 향해 돌격했다. 그는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갈라진 바위틈에서 자라는 위험한 꽃을 보았고, 손을 뻗었다 ─ 실은 그가 자신의 가장 열정적인 소네트를 줄줄이 읊고 있을 때, 공주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소금 좀 건네주시겠어요?」 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마담.」 그는 프랑스어의 억양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대답했다. 다행히도 그는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하녀에게서 그 언어를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언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지 모른다. 그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그 눈빛을 좇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천성적으로 점액질의 기질이라서 성급히 화를 내지 않았고,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한낱 외국 여자가 자신을 밀어내고 올랜도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으리라고는 쉽게 믿지 않았다
덕분에 올랜도와 사샤는(그는 그녀를 약칭으로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어렸을 때 키웠던 하얀 러시아산 여우의 이름이었다. 눈처럼 털이 부드러운 그 여우는 강철 같은 이빨로 그를 무지막지하게 물었다가 그의 아버지에게 사살되고 말았다) 강을 독차지했다.
올랜도는 그녀를 시내로 데려가 경비병들과 반역자들의 머리를 보여 주었고, 왕립 거래소에서 그녀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전부 사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수상하게 여기거나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은밀히 함께 있고 싶은 욕구가 두 사람에게서 점점 커져 갔다.
그녀가 하는 말은 대단히 솔직하고 도발적으로 보였지만, 거기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행동은 아무리 대담하게 보였어도 어딘가 감추어진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에메랄드 속에 녹색 불꽃이 숨겨져 있는 듯했고, 혹은 태양이 언덕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만 또렷하게 보일 뿐, 속에선 종잡을 수 없는 불꽃이 일었다. 불꽃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언어를 아무리 샅샅이 뒤져 보아도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풍경과 다른 언어가 필요했다. 사샤를 묘사하기에는 영어가 너무나 거침없고 너무나 노골적이며 너무나 입에 발린 언어였다.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자신이 보게 될까 봐 가장 겁냈던 것이 환각으로 떠오른 게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자기들의 은밀한 만남을 끝내고 싶지 않은 데다 자기들을 감시할 예리한 눈들과 맞닥뜨리기 싫어 두 사람은 거기서 머뭇거리며 도제들과 양복장이들, 어부의 아내들, 말 장수들, 사기꾼들, 굶주린 학자들, 머리 가리개를 두른 하녀들, 오렌지를 파는 아가씨들, 말구종들, 술 취하지 않은 시민들, 음란한 술집 급사들, 그리고 사람들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다니는 꼬마 부랑아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꾸물거렸다. 런던 뒷거리의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거기 모여서 농담을 나누며 떠밀고, 여기서는 주사위를 던지고, 저기서는 운세를 점치고, 거칠게 밀치고, 간지럼을 태우고, 꼬집기도 했다. 여기는 시끌벅적하고 저기는 시무룩하며, 일부는 입이 찢어지도록 벌리고, 다른 이들은 지붕에 앉은 갈까마귀처럼 불손했다.
파멸과 죽음이 모든 것을 덮어 버린다고 그는 생각했다. 구더기들이 우리를 먹어 치운다.
생각건대 이제 해와 달의 거대한 일식이 일어나고 공포에 질린 지구가 입을 벌리리니 ─14
그녀는 영국 궁정을 참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남의 사생활을 캐기 좋아하는 노파들과 남의 발을 밟고 다니는 거만한 젊은이들 천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들에게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고, 그들의 개들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뛰어다녔다. 그녀는 우리에 갇힌 느낌이었다.
맹렬하게 뛰는 그의 벅찬 가슴에 어둠은 더욱 자애롭게 느껴졌다. 그는 모든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온갖 소리에 어림짐작을 해보았다. 술 취한 사람의 고함이나, 밀짚에 누워 신음하는 소리, 다른 고통을 겪는 불쌍한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모험에 나쁜 징조를 암시하는 양 그의 폐부를 날카롭게 찔렀다. 하지만 사샤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없었다. 용감하게도 그녀는 이 모험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그녀는 남자처럼 부츠를 신고 망토와 바지 차림으로 혼자 올 것이다. 그녀의 발걸음은 워낙 가벼워 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예전 연인들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고, 그녀와 비교하면 그들은 나무토막이나 삼베, 타고 남은 재 부스러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의 격정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는 또 한 번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다시 그를 포옹하곤 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뜨거운 열기에도 얼음이 녹지 않은 것에 놀라워했고, 그처럼 자연스럽게 얼음을 녹일 수단이 없어서 차가운 강철 칼로 얼음을 쪼아야 하는 불쌍한 노파를 동정했다. 그러고는 망토에 휘감긴 채 온갖 세상사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광경들과 여행에 대해, 무어인과 이교도에 대해, 어떤 남자의 수염과 어떤 여자의 피부에 대해, 사샤가 직접 식탁에서 먹이를 주는 쥐에 대해, 저택 현관에서 항상 흔들리는 벽걸이에 대해, 어떤 얼굴과 어떤 깃털에 대해.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건 간에 너무 시시하지도 않았고 너무 거창하지도 않았다.
참된 교회야말로 이 바다에서 세파에 흔들리는 모든 이들에게 유일한 항구이자 피난처이고 정박지라고 그는 말했다.
건넸다(하지만 불행히도 늘 프랑스어로 말했는데, 그 언어를 번역하면 맛이 사라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올랜도는 예의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얼음 위를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노파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는 엎어져서 얼굴을 빙판에 대고 얼어붙은 물속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했다. 행복과 우울함을 갈라놓는 것은 칼날보다도 두껍지 않다는 철학자12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저 무어인의 광란은 그 자신의 광란 같았고, 무어인이 침대에 누운 여자의 목을 졸랐을 때 그는 자기 손으로 사샤를 죽인 것 같았다.
그는 이마와 뺨을 열두 번이나 세차게 얻어맞았다. 메마른 한파가 아주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1분이 지나서야 그것이 빗방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빗방울이 얼굴을 내리친 것이다.
그녀의 기만과 그의 굴욕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세상에 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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