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저녁과 밤이 지나가는 동안 멀고 가까운 불빛들이 붉게, 또 하얗게 반짝였다. 언젠가와 마찬가지로 검은 강물은 쉬지 않고 흘렀다.

먹이를 찾아 정신없이 집어등 불빛을 따라가는 고등어처럼 앞차의 빨간색 미등만을 뒤쫓는 것이 삼십대의 삶이었다.

물에 풀리는 핏방울처럼 제일 먼저 몸의 윤곽이 기억의 저편으로 풀려나갔다.

그에 비하면 목소리는 독립적이었다. 오래도록 지훈의 곁에 머물며 불쑥불쑥 들리곤 했다.

"이 글을 끝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사랑은 ‘빠진 상태’라는 것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 문장이 지훈에게 떠오른 건 신도시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한 국숫집에서였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한파가 한반도의 상공을 뒤덮은 탓에 며칠째 맹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 덜덜 떨면서 수십 대의 택시로부터 승차 거부를 당한 뒤 지훈은 충동적으로 국숫집의 문을 열었다.

사랑이 막 끝났을 때였다. 지훈도 그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 겁에 질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먹이를 내미는 119 대원도,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초등학생들도 없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거기 돌아갈 수 있는, 예전의 나 같은 건 없다는 걸 지훈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훈 역시 쫓기듯 다른 사람을 만나서 또 사랑이라는 걸 할 것이다. 첫번째 사랑은 두번째 사랑으로만, 그리고 그 모든 사랑은 마지막 사랑으로만 잊히는 법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꼭 구해야만 했을까, 배수로 속의 그 고양이?

그 순간, 대답 대신 잔치국수 한 그릇이 지훈의 앞에 놓였다. 국수에서는 힘내라는 초등학생들의 목소리처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토요일 오후, 산책의 끝은 언제나 앨리스의 다락방이었다. 부암동 초입에서 골목길 안쪽까지 종아리가 좀 땅긴다 싶은 정도로 걸어가면 나오는 모퉁이의, 전혀 앨리스처럼 보이지 않는 중년 부인이 10월 하순의 은행잎보다도 더 샛노란 카레를 끓여주는 이층 카페였다.

지훈이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Alice’s Attic〉이란 단편영화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Alice’s Attic. 지훈은 기억하기로 했다.
"자기 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못 봐요."
"네?"
"그 영화가 그런 내용이에요."
그녀는 웃었다.
"아, 네."

서른한 살에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는 "튤립은 맨 먼저 너무 빨개서,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썼고, 무대의 모리타 도지는 죽은 친구를 기억하기 위해 검은 선글라스를 한 번도 벗지 않았으며, 기억을 모두 지운다고 해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미셸 공드리는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지훈은 전혀 몰랐을 뻔했다.

뿐만 아니라 겨울 서귀포의 눈송이와 봄 통영의 벚꽃과 여름 경주의 물안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얼마나 금세 사라지는지, 어떤 여자를 생각하면 왜 어깨의 주사 자국과 등의 점들과 콧잔등의 주근깨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는지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안나와 오토는 첫눈에 서로 반하지만 부모의 재혼으로 함께 살게 되고 어느 날 안나가 오토에게 몰래 종이 한 장을 쥐여준다. 거기에는 ‘valiente’라는 스페인어가 적혀 있었다. 스페인어 사전을 뒤져보니 그 단어의 뜻은 ‘용감한, 용기 있는, 멋진, 희한한’이라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 단어는 ‘이따가 밤에 내 방으로 와’라는 뜻이었다. 잊지 말 것. 영화를 보며 지훈은 중얼거렸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할 용기를 낸다는 뜻이라는 것을.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훈은 이제 리나가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문이 열린다 해도 그 비밀번호가 진짜 비밀번호가 될 수는 없었다.

옛날이야기, 모두 옛날이야기……
꽃이 지는 건 꽃철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끝나는 건, 이제 두 사람 중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한다. 이름과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삼백 명 정도인데 그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서른 명이고, 절친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라고. 그렇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해도 그중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명뿐이라고,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한때 서로 안을 때면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던 우리도 이렇게 멀리 떨어지게 됐네요.

그러니 그때는 혼잣말을 하듯 "그때, 그 바다 말이야……"라거나 "그 사과 있잖아……"라고만 해도 무슨 말인지 당신은 금방 알아차렸지만, 이제는 완벽한 문장을 갖춰서 말할 수밖에요.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내겐 손이나 발, 혹은 심장 같은 게 없어도, 심지어 나란 사람이 애당초 이 세상에 없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럼에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그렇게 자라서 이 세상에는 나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게 됐다는 게 기적처럼 여겨집니다. 나의 쓸모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쓸모는 무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쓸모없는 것들이 넘쳐납니다.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가 갑자기 웃음이라도 터진 것처럼 앞다퉈 꽃을 피우던 두 그루의 벚나무가 있는 석촌호수의 잔물결, 연신 불어대는 겨울바람에 질렸다는 듯이 하얗게 김이 서리던 연남동 길모퉁이 오뎅가게의 네모난 유리창, 서늘한 바람이 부는 평일 저녁 동피랑 마을에서 내려다보던 강구안 주변의 반짝이는 불빛들, 뷔페를 먹으러 가는 중국 관광객들로 가득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던 곽지과물의 아침 바다…… 영원히 흔들리고 출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이 모든 것들도 당신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지훈은 이제 서른다섯 살이 됐다. 서른다섯 살이란, 앉아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원산 얘기하시는 거 보니까 이북 사실 때 기억인 모양이지?"

육체는 우리 외에는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아주 협소한 영역 안에 우리를 가둬버린다. 그러나 영적 삶은 이와 반대로, 우리를 존재하는 것의 공통적인 첫 시원으로 이끌어간다. 또한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는 것이다. 이 이탈을 통해 각 존재는 공통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 우주를 인식하기에는 육신의 삶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서로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나갈 시간을 단축해야만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백 퍼센트 동의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구라파에서 온 귀한 보물을 탐내는데, 이 사람들한테는 책이 보물이지, 뭐. 서로 먼저 읽으려고 달려들어 우애가 상할 지경이었어.

리마두의 문장은 깔끔하면서도 젠체하는 태도가 전혀 없거든. 요즘 말로 하자면, 쿨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세속의 물질적 행복보다 우정의 소중함을 말하는 내용도 젊은 그들의 마음에 쏙 들었지.

‘여아가 항행하여 무화하면 기식우지진부재리오如我恒幸無禍, 豈識友之眞否哉’라면 리마두의 그 책에 나오는 문장으로, ‘만약 내게 항상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다면 어찌 벗의 참되고 거짓됨을 알 수 있으리오’라는 뜻인데, 그 몇 년 뒤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이승훈이며 이벽이며 정약용 형제들은 그 문장이 가리키는 바를 온몸으로 절감하게 되지.

과거의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데, 왜 미래의 우리는 생각할 수 없을까? 그간 중단했던 내 신앙 공부를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할까 해."

추국청의 정약용에 대해 말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을, 마치 눈물 없이 우는 새와 같았던 그 표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대의 창고는 어디에 있는가?"
알렉산더대왕이 말했다.
"벗의 마음속에 있다."

그때 〈페르세폴리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나 일부러 시라즈까지 가서 페르세폴리스를 구경했었다. 『론리플래닛』에 실린 사진을 보긴 했어도 고대 유적지라는 것만 생각하고 갔지, 그렇게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들과 건축물들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입구인 만국의 문에서부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폐허가 된 유적만으로도 그 도시가 얼마나 웅장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 고대에 그처럼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이란을 여행하는 정약용 형제들을 상상해봤다. 그랬다면 정약전은 페르시아만의 이색적인 물고기들에 대한 책을, 정약용은 누구도 믿지 않을 여행기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 정약종은 그길로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하니 그들 형제의 모습이 역사책의 갈피를 찢고 나와 또렷해졌다.

"독신주의자는 혼자 살겠다는 거고, 비혼주의자는 결혼 제도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에 가깝죠."

"선생님은 역시 좀 다르시네요. 저는 나이가 들면 다들 비관에 빠지는가 싶었거든요. 그게 제게는 또다른 비관이었어요.

나이가 들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진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된다면 끔찍할 것 같아요.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는 것이다. 이 이탈을 통해 각 존재는 공통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질적인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바로 사랑의 정의야. 그렇다면 신의 정의는 모든 이를 받아들인 존재, 모든 이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일 수밖에 없겠지. 가능한 모든 세계를 인식하는 게 바로 신일 테니까. 우리가 신이 되어 모든 세계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나갈 수는 있어. 우리의 기억은 시공간적으로 겹쳐져 있으니까. 조부의 기억은 증조부의 삶으로 이어지고, 증조부의 기억은 어린 시절에 만난 신유박해를 기억하는 칠십 노인의 삶으로 이어지지. 그리고 증조부가 어릴 때 들은 바르바라 이야기가 내 막내 여동생의 세례명으로 이어진다는 것. 이런 식으로 육체가 죽은 뒤에도 정신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 신은 늘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이 그치면 바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이란 육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걱정과 슬픔,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 생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정신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 정신의 삶은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서로 겹쳐지며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 현상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매 순간 육신의 삶으로 되돌아가 다시 기뻐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화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겹쳐진 정신의 삶, 그 기저에 현존하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노력하기로 했지. 이 삶에 감사하기로. 타인에게 더 다정하기로. 어둠과 빛이 있다면 빛을 선택하기로. 바로 그 무렵, 나는 이십팔 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네.

그 신부님에게 할아버지가 어떤 고해성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희로애락이 교차한 육신의 고단한 삶이 막을 내렸다.

그는 권총을 꺼내들고 "나는 도 정치보위부장이다. 너희 반국가 행위자들을 모두 체포한다"고 외쳤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한 번도 그 목소리를, 그 얼굴을 잊은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차와 객차 사이의 통로로 나갔다. 할아버지는 바르바라와 바르바라와…… 그리고 또다른 바르바라를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객차 안으로 들어온 할아버지는 선반 위에 올려놓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온 신경은 그 남자에게 가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그 남자가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미래의 우리를 생각했던 것이리라. 아마도 그랬으리라. 그렇게 기차는 세 시간을 달렸고,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내렸다.

강의실에서 자신이 쓴 글의 한가운데로. 여기 있지만 저기에도 있는 사람. 그날은 내가 소설가에 대한 정의를 얻은 날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다른 세계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 "내가 진정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사랑은 ‘빠진 상태’라는 것이다."(「사랑의 단상 2014」)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문장을 떠올린 지훈처럼 나도 김연수를 생각하면 이 문장부터 떠오른다. 나에게 김연수는 ‘빠진 상태’에 있는 사람이고, 김연수가 쓰는 소설도 언제나 ‘빠진 상태’로서의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였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기억하지 못해 슬퍼진다는 것. 그러므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슬픔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 번의 삶을 살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첫번째 삶, 과거를 기억하며 거꾸로 진행되는 두번째 삶, 그리고 두번째 삶이 끝나고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세번째 삶.

이 소설집을 흐르는 가장 중요한 질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주의 결말」에서 아버지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데다 방화까지 저지른 혐의로 악마화된 유진주가 범죄심리학자인 ‘나’에게 던진 질문을 빌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깊은 시간의 눈 속에는 나에게 들어온 타인이 있고 나를 품은 타인이 있다. 나와 타인이 섞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인생의 행과 불행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시간이다.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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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빌레뜨 2 창비세계문학 82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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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에 좀 진도가 나갔으면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제인에어 보다 어떤 면으로 더 좋았다. 이번엔 좀 성급하게 읽었는데 조만간 그녀의 문장과 멋진 표현을 음미하면서 다시 읽고 싶다. 유령의 존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김빠졌지만 그보다 더 좋은 설정은 쉽지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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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12-28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들 좋다시니 저도 빌레뜨 읽고 싶네요!
지금 읽고 있는 제인 에어도 너무 좋은데,
제인 보다 더 좋다니요!

라로 2022-12-29 11:57   좋아요 2 | URL
빌레뜨 참 좋은데요, 지루하게 느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햇살과함께 님과 저는 취향이 많이 비슷하니까
분명 좋아하실 거라 믿습미다!!^^;;

건수하 2022-12-28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고딕으로 가지 않아서 좋았어요 ^^

라로 2022-12-29 12:21   좋아요 1 | URL
하하하 수하님이 정곡을 찌르셨네요!!ㅎㅎㅎ
제인에어에서도 유령이 나오더니 여기도냐? 속으로 막 그랬는데
재밌게 넘어갔어요.ㅋㅋ

그레이스 2022-12-29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갖고 있으나 아직 시도하지 못한 책이예요
다들 많이 읽으시네요.
새해에는 저도 !

라로 2022-12-29 12:33   좋아요 1 | URL
당연히 갖고 계실 줄 알았어요!!
그레이스님이라면 이 책은 아주 쉽게 읽으실 것 같아요.
새해에 그레이스님의 리뷰가 기대됩니다.^^
 

"에마뉘엘 선생이고 뭐고 다 잊어버려요." 베끄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현명한 여자였지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말을 한 건 실수였다. 그날밤 그녀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내가 흥분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나 자신의 평가와 다른 사람의 평가만 알고 더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내가 잊어야 하는 에마뉘엘 선생과 연관짓지 못하게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일주일 밤낮을 나는 잠에 취해 보냈다. 나는 꿈을 꾸다 깨어나서도 바로 그 질문들을 떠올렸다. 질문들에 대한 답은 불한당같이 그리스식 모자를 투구처럼 눌러쓰고 잉크 얼룩이 잔뜩 묻은 초라한 외투를 걸친 아주 우울하고 작고 까무잡잡한 남자가 일어났다 앉았다 걸었다 강의했다 하는 곳 외에는 아무 데도 없었다.

걱정했던 대로 슬픔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오는 경우는 많았다. 하지만 뜻밖의 행복이 나타나 자리를 잡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이었다.

"뽈 선생의 친구가 되었다고 왜 그렇게 기뻐하는 거죠?" 독자는 물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당신 친구였잖아요? 당신을 편애한다는 증거도 수없이 보여줬잖아요?"

그건 그렇다. 그는 그런 증거들을 쭉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열렬하게 진실한 친구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은 정말이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의 겸손한 의심, 다정한 존중이 좋았다. 나를 향한 신뢰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면 고마워하는 신뢰감이 좋았다.

그는 나를 "누이동생"이라고 불렀다. 그것도 좋았다. 그래, 날 신뢰하기만 한다면 누이동생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나더러 미래의 아내에게 시누이 노릇을 해달라고 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누이동생이 될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암암리에 독신으로 남을 것임을 서약한 몸이므로 그런 딜레마에 빠질 위험은 거의 없어 보였다.

빨리 아침이 와서 종소리가 울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후에도 기도시간과 아침식사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고 모든 시간이 머무적거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문학시간이 왔다. 나는 우리의 오누이 같은 관계를 좀더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었다.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얼마나 오빠처럼 처신하는지 보고, 내가 얼마나 누이동생처럼 느끼는지 판단하고, 내가 과감하게 여동생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그가 오빠처럼 솔직하게 나를 대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인생이란 원래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는 내 곁에 오지도 않았다. 그의 수업은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더 온화하고, 더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아버지같이 대했지만 내게 오빠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 말은 안 걸더라도 교실을 떠나기 전에 나를 보고 웃어주기는 하리라고 기대했으나 한마디 말도 웃음도 없었다. 단지 어색해하며 황급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다.

말뿐이지 결코 내가 얻을 수 없는 특권이었구나! 어떤 여자들은 그걸 이용하겠지!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용감한 무리에 낄 수 없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나는 혼자 내버려두면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남들이 물리치면 물러났다. 잊히면, 감히 나를 상기시키는 말도 못하고 눈빛으로라도 그런 내색을 하지 못했다. 어디선가 내 계산이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지길 바랐다.

그의 칙칙한 외투와 검은 머리카락은 진홍빛 반사광으로 물들었고, 잠깐 얼굴을 돌렸을 때 스페인 사람처럼 생긴 얼굴에는 태양의 생기 있는 키스에 대한 답으로 생기 있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오렌지나무와 제라늄과 어마어마하게 큰 선인장을 돌보면서 목이 타는 나무들에게 물을 주어 모두 싱싱하게 되살려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입술에는 아끼는 씨가를 물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그것이 최고의 사치품이자 필수품이었다.

그는 더이상 학생이나 선생 들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작은 스패니얼리스(새로운 단어를 만들자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개는 명목상으로는 베끄 부인 집의 개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주인으로 알고 이 집의 누구보다도 선생을 좋아했다. 섬세하고 귀엽고 보드랍고 사랑스럽고 조그마한 이 애완견은 그의 옆에서, 풍부한 표정을 담은 눈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아장거렸다. 종종 그가 장난으로 모자나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그때마다 그 개는 왕국의 깃발을 지키는 작은 사자 같은 분위기로 그 옆에 웅크렸다.

나는 앉아서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내리는 땅거미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놓은 것을 모두 그러모은 후, 펴보지도 못한 책 더미를 들고 3반 교실의 내 자리로 갔다.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나는 순순히 그 소리에 따랐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교실 벽을 훑고 길게 늘어선 유리창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가 인사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인사에 답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닫힌 현관문 앞에는 그림자조차 없었고, 문지방만 창백한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거룩한 가톨릭교회’는 결코 위협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단지 신자로 인도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가톨릭이 박해를 한다고요? 오, 그럴 리가요!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니었다. 이 책은 튼튼한 사람에게 먹일 질긴 고기가 아니고 아기에게 먹일 우유였으며, 가장 사랑스러운 막내를 위한 어머니의 부드러운 모성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감상적이고 위선적이고 깊이가 없는 소책자이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의 우울을 걷어내고 웃음을 끌어냈다.

그의 판단은 목발이 필요했다. 그 판단이 곧 넘어질 것 같아서였다.

나는 일곱 산의 자줏빛과 붉은빛 옷을 입은 노파3가 보이는 이 넘치는 모성애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녹이는 애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받아들일 마음도 없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 몸짓을 보고 나는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흥분하거나 자책에 시달려 슬프거나 내면적으로 동요되면, 몹시 추운 겨울날에 꽁꽁 언 눈을 그런 식으로 파곤 했다. 이마를 찌푸리고 이를 악물고서 몇시간이고 땅을 파면서 한번도 고개를 들거나 입을 열지 않았다.

"조금도, 전혀 감동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전히 깨끗하게 접혀 있는, 물기라곤 없는 손수건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만족하지도 않고 마음의 위안도 거의 받지 못한 채 돌아갔지만, 신교도가 반드시 그의 스승이 암시한 대로 불경한 이교도는 아니라는 것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빛’과 ‘생명’과 ‘말씀’을 존중하는 신교도의 방식도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거룩한 것에 대한 신교도의 숭배는 그가 따르는 가톨릭교회에서 계발된 것과 똑같지 않지만 그 나름의 힘, 어쩌면 더 깊은 힘과 더 큰 경외감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느정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허용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애착을 가지지 못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가 선조의 종교를 버리기를 열렬하게 바라지 않았다. 가톨릭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황금과 진흙을 섞어 빚은 거대한 이미지라고 생각했지만, 이 가톨릭 신자만큼은 순진무구함과 순수한 신앙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어 틀림없이 신께서 사랑하실 것 같았다.

나를 향한 세번째 유혹은 가톨릭이라는 왕국의 장관, 로마의 영광이라는 형태로 펼쳐졌다. 국경일이나 축일이면 나는 성당으로 인도되어 가톨릭의 의식과 예식을 보았다. 나는 잠자코 구경을 했다.
여러 면에서 물론 나보다 훨씬 우월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장관에 감명을 받았고, ‘이성’은 저항했지만 ‘상상력’은 굴복했다고 공표해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화려한 행렬, 장엄한 미사, 수많은 양초, 흔들리는 향로, 사제들의 모자와 그들이 착용한 보석, 어떤 것도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러한 장관이 장엄하다기보다는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심詩心이 일 만큼 영적이지 못하고 천박하고 물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종교에선 신과 인간 사이에 격식이 없으며, 적당한 예식을 위해 필요한 예배 속에는 오직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본성만이 담겨 있다고 했다.

"사제와 신학자 들이 뭐라 하든," 에마뉘엘 선생이 중얼댔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진실한 사람 모두를 사랑하시오. 그러니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걸 믿고 가능한 한계 안에서 믿으시오. 적어도 우리는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잖소. 나 또한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소. ‘하느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다가 활기를 주는 대답을 내놓았다. 대답이 거듭될수록 그레이엄은 점점 더 훌륭한 음악을 듣는 것만 같았다. 이어지는 대답 하나하나에서 함축성 있으며 설득력 있는 마법의 음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음조는 그레이엄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보물창고를 열고 생각지도 못했던 내면의 힘을 드러내주었다.

더 좋은 일은, 잠재되어 있던 그의 선량함이 일깨워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목소리와 말투와 표현을 서로 마음에 들어했고, 상대방의 재치를 즐겼다. 이상할 정도로 빨리 서로의 말뜻을 알아챘고, 종종 세심하게 고른 진주처럼 생각이 잘 맞았다.

"내가 환상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돌로 굳어 눈이 멀까 두렵다는 말이에요."

"당신들 둘 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판단하고 있군요." 내가 말했다. "둘이서 얘기하거나 생각할 땐 제발 날 화제로 삼지 말아줘요. 난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난 이 세상 어떤 남자 혹은 여자와도 당신들이 이해하는 식으로 아름다운 삶을 나누지 않을 거예요. 나에게도 친구가 한명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도 확실치 않아요.확신이 들 때까지는 혼자 살 거예요."

"루시, 과연 누가 당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연인들에게는 광적인 이기주의 같은 것이 있어서 그 대가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 행복의 목격자를 가지고 싶어한다.

폴리나는 편지를 쓰지 말라고 했는데도 브레턴 선생은 편지를 썼다. 그녀는 답장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단지 나무라기 위해서 답장을 했다면서 내게 그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그애는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진주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들도 그 아이가 순수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탐낼 거요."

나는 그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리고 그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패자가 되게끔 태어나지만, 그는 승자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지상에 정말로 저런 행복이 있단 말인가? 나는 아버지와 딸과 미래의 남편이 하나가 되어 모두 축복을 받고 서로 축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문했다.

그렇다. 그런 행복도 있다. 로맨스로 물들이지 않고 상상력으로 과장하지 않아도 그런 행복은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며칠간, 혹은 몇년간 천상의 행복을 미리 맛본다. 그리고 선한 사람들(사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행복이 결코 오지 않는다)이 그런 완벽한 행복을 한번이라도 느끼면 그 달콤한 효과는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훗날 어떤 시련이나 병마나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라와도, 미리 맛본 영광은 쓰라린 고뇌를 변함없이 달래주고 먹구름을 물들이며 빛난다.

더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이다. 나는 세상에 그런 운명을 타고나 자라고, 부드러운 요람에서 느지막이 조용한 무덤으로 인도되는 사람들이 있음을진실로 믿는다. 아무리 험난한 고통이 닥쳐도 그들의 운명은 꺾이지 않고, 어떤 광폭한 어둠이 닥쳐도 그들의 여행길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개 제멋대로 되어먹은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선별한 조화롭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비심을 지닌 온화한 사람들이며, 신의 친절한 속성을 친절하게 대행하는 사람들이다.

이 행복한 이야기의 진실을 더이상 미루지 말자. 그레이엄 브레턴과 폴리나 드 바송삐에르는 결혼했다. 그리고 브레턴 선생은 과연 하느님의 친절한 대리인이었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타락하지 않았다. 그의 결점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미덕은 원숙해졌다. 지적으로 더 세련되어졌으며 도덕적으로도 더 훌륭해졌다. 모든 찌꺼기는 다 걸러지고 맑은 포도주만 남아 조용히 빛났다. 그의 상냥한 아내의 운명 역시 밝았다. 그녀는 늘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의 발전을 도왔다. 그녀는 그에게 행복의 초석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레이엄과 폴리나 두 사람의 삶은, 야곱이 사랑했던 아들의 삶처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6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신께서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에 그러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그런 운명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겸허하게 체념하든 그러지 않든 신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창조의 충동이 그것을 부추기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권능의 힘이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 내세의 삶의 증거는 반드시 주어진다. 필요하면 피와 불1 속에라도 그 증거는 새겨지게 되어 있다. 피와 불 속에서 우리는 자연에 퍼져 있는 기록을 추적하며, 피와 불 속에서 우리 자신의 경험과 교차되는 증거를 만난다. 고통받는 자여, 이런 불타는 증거를 보고 두려워 혼절하지 말지니. 지친 방랑자여, 행장을 갖추고 위를 보면서 행진해나갈지니. 순례자들과 비통해하는 형제들이여, 동반자가 되어 나아갈지니. 우리 대부분은 이 험난한 세상을 가로질러 난 어두운 길을 가게 되어 있으니, 꾸준히 한발 한발 걸을지니. 우리의 십자가를 깃발로 삼을지니. 그분의 약속을 지팡이로 삼을지니, "하느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2하니. 그분의 뜻을 현재의 희망으로 삼을지니,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3으니. 그분의 가슴을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지니, "하느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4니. 가없는 영광을 최고의 상으로 삼고, 상을 탈 수 있도록 달릴지니. 훌륭한 병사가 되어 고난을 견딜지니. 주어진 길을 완주하고, 신앙을 지키고, 정복자보다 더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의지할지니.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5

"당신은 여물통 속의 개11로군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은밀히, 그리고 늘 그를 원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참을 수 없는 사람"12이라고 했고 "고집불통"13이라며 놀렸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이해관계 때문에 그를 묶어두기 위해 결혼을 원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와 베끄 부인의 만남 중 유일하게 진실을 드러낸 만남이다. 잠깐 동안 일어난 그날밤 같은 장면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앙심을 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내 잔인한 솔직함 때문에 나를 더 증오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인한 마음속의 은밀한 철학으로 마음을 여미고는 불쾌한 기억을 모조리 잊기로 결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격렬한 입씨름을 다시 거론하지도 반복하지도 않았다.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합류하니 그들 모두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내 마음이 탄로난 것이 분명했다. 가장 어린 학생조차도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절망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니 몹시 불쾌했다.

사람들에겐 마음을 읽고 어두운 비밀을 해석하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았다.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지키게 하고, 비밀만이 그의 군주가 되게 하소서. 그날 하루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내 슬픔의 원인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지난 육개월간의 내 내면적인 삶은 여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증거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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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12-27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 읽고 나면 뿌듯하지요. 저도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1,2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2를 읽고 뿌듯했었어요.
˝그의 판단은 목발이 필요했다. 그 판단이 곧 넘어질 것 같아서였다.˝ - 이 글 재밌어요. 저도 요렇게 쓰고 싶군요.^^

라로 2022-12-28 13:40   좋아요 0 | URL
네! 장편소설을 잘 안 읽었는데 이번에 꾸준히 읽으니 간만에 읽게 되네요.^^;; 언급하신 문장은 저도 참 좋다고 느꼈어요. 역시 소설가들은 다르다 싶었구요.^^ 올려주신 책 두 권은 아직 안 읽어본 책인데 내년엔 꼭 읽어보고 싶어요!!^^
 

무시무시한 모략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후줄근하게 구겨진 진회색 외투가 아니라, 점잖은 코트와 실크 양복이 몸매를 멋지게 드러내고 있었다(사실 별로 대단한 몸매는 아니었다).

그는 생긴 모습 그대로 괜찮아 보였고, 멍청하거나 시시한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다.

비록 그 마음은 신경질적이긴 했지만 화석처럼 굳어 있지 않았고, 그 중심에는 다른 남자들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다정다감한 부분이 있었다. 그랬으므로 소박한 태도로 어린아이와 사귀고 여자나 소녀 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것이다. 그들에게 역정을 내기는 해도 분명 친화력을 지니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과 사이가 더 좋았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뽈 선생은 내 의무 불이행을 너무나 비극적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므로, 속을 태워 마땅했다. 그래서 나는 태연히 상자를 쥐고서 돌덩이처럼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연설 도중에 어떻게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 땅에 상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영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를 즐겁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운명이 그것을 허락하려 들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었으나 잘 놀라지도 안색이 변하지도 않았다. 그는 배짱이 좋았다.

당신이 가식적이고 냉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하지만 당신은 일생일대의 잘못을 저질렀소. 내 생각에 당신의 판단은 왜곡되어 있소. 감사해야 할 곳에서는 무관심하고, 스노우라는 당신의 이름처럼 차가워져야 할 데 가서는 아마 비이성적으로 헌신을 바칠 거라는 생각이 드오.

‘이제 우리는 친구예요.’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 싸울 때까지는.’

우리는 아마 바로 그날 저녁에 싸울수도 있었으나 멋지게도 이번만큼은 싸우지 않고 사이 좋게 지냈다.

침묵은 예전과는 다른 종류였으며 다른 의미를 내뿜고 있었다.

19세기 영국사회에서 여성은 삶의 주체이기보다는 남성에 대한 헌신 속에서만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로 정의되었다.

여성은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희생을 통해서만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남성은 창조자, 발견자, 행동하는 사람인 데 반해 여성은 집안일이나 사소한 결정에 능한 존재라고 보았다.

가정이 여성의 영역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재산과 수입은 모두 남편의 소유였다.

영국 여성은 지난한 투쟁 끝에 1918년에 이르러서야 보통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가정교사는 연평균 20~30파운드의 보수를 받았는데, 이는 요리사나 집사보다 적었고, 가정부나 마부나 하녀보다 그다지 높지 않았다. 심리적인 면에서는 일의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채 유모나 하녀의 일까지 겸해서 해야 했으며, 또한 고용주의 다른 피고용인들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고립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브론테의 마지막 작품인 『빌레뜨』는 가난한 중간계급 여성의 사랑을 다룬 점이나 여주인공이 독립된 삶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남성에게 종속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에 차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과 유사하나 『셜리』에서 사회로 확대된 시선이 이번에는 여주인공의 깊은 내면세계로 집중된다.

폴리, 지네브라, 베끄 부인 등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무척 자세한데, 이것은 곧 루시 자신의 일면에 대한 간접적인 성찰이기도 하다.

루시는 자신이 에덴에 와 있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이 관계의 기초는 뽈이 베풀고 루시는 감사해하는 것이다. 루시는 뽈을 왕이라 부르며 그의 손에 입맞춘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로 본다면 『빌레뜨』는 『제인 에어』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불안정함과 불완전함 속에 『제인 에어』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매력이 숨어 있다. 그 매력은 가능성,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 같은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내가 "본 에 빠 뜨로 페블"4하다고(즉 배울 자세가 되어 있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아직 지적 발달이 비참하게 낮다"는 생각이 든다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어떤 일이건 시작할 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둔했다. 일상적인 일을 익히는 데도 평균적인 지능이 된다고 할 수도, 그것을 증명할 수도 없었다. 내가 넘기는 인생이라는 책의 모든 페이지의 첫 단락은 늘 어렵고 침울했다.

어쩌면 너무 쉽게 화해했는지도 모른다. 더 버텨야 했으나 그가 친절하고 선량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손을 내밀자 그에게 핍박받던 순간들이 내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화해는 늘 달콤한 것이니까!

그의 다음 주제는 "지적인 여성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에 의하면 "지적인 여성"은 일종의 "기형"으로, 불운한 우연이며 창조에서 차지할 위상이나 효용성이 없고 아내로나 노동자로나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여성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겼다. 사랑스럽고 온화하고 수동적이고 평범한 여성이야말로 남성다운 사고와 분별로 골치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유일한 베개라고 마음 깊이 믿었다. 그리고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남성의 정신만이 훌륭하고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 루시 스노우! 지금 절약하며 참고 살면서 계속 노력하다보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야. 목표가 너무 이기적이고 협소하고 따분하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마. 그것을 이룬 후에 더 높은 곳을 넘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진, 독립을 위해 애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해. 하지만 그후에도 내게 그 이상은 불가능할까? 내게 진정한 가정은 없는 걸까? 내게는 나 자신보다 소중히 여길 가정은 없는 걸까? 나 자신을 계발하기보다는 더없이 값진 가정을 위해 나 자신의 더 훌륭한 자질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 이기주의라는 짐을 기꺼이 모두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며 사는 고결한 영예는 주어지지 않는 걸까? 루시 스노우, 네 인생의 궤적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는 걸 알아. 네게는 초승달만 떠도 충분해. 좋아. 그보다 나을 게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 수많은 남자와 그보다 더 많은 여자가 극기와 박탈감 속에서 인생을 보내고 있어. 내가 소수의 운좋은 사람 속에 끼어야 할 이유는 없지. 가장 열악한 운명에도 희망과 햇살이 섞여 있다는 것을, 현세가 전부가 아니며 시작도 끝도 아니라는 것을 난 믿어.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떨고 있어.2 그렇게 믿고 흐느껴 울고 있어."

글씨는 그의 얼굴, 조각 같은 그의 이목구비와 똑같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신을 먼저 섬기고 나서 인간을 섬겨야 한다고 하지만, 아빠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하느님도 질투하시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세번이나 편지를 고쳐 썼어요. 다시 쓸 때마다 문장을 차분하게 다듬었어요. 졸이고 졸여 마침내 아주 작은 과일이나 설탕으로 맛을 낸 얼음 조각처럼 되자 봉인을 해 부쳤어요.

"서두를 필요 없어요, 폴리나. ‘시간’과 당신의 친절한 ‘운명’에 맡겨요. 나는 운명이 당신을 얼마나 친절하게 보살피는지 봐왔어요. 운명이 순조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적절한 시간을 정해주는 것에 대해선 염려하지 말아요. 그래요. 당신이 자신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듯이 나도 당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비교를 해보기도 했고요.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순조로웠잖아요.

서로 사랑하는 당신과 그레이엄은 내게 약속과 계획과 조화처럼 보여요. 밝고 젊은 당신들은 둘 다 폭풍 같은 시대의 선구자가 되진 않을 거예요. 당신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사처럼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중 극소수의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산다는 거죠.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존재하죠. 그게 하느님의 뜻이에요.

그는 그녀를 가식적인 허영 덩어리라고 생각했고, 그녀는 그를 간섭이 심하고 말이 안 통하는 지긋지긋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도 그날 그 이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부드럽게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너무나 다정해서 슬프기까지 했다. 차라리 평소처럼 벌컥 화를 내면서 변덕을 부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에마뉘엘 선생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작은 일에는 관대하지 않은 적이 많았지만 큰일에는 정말 너그러운 분이구나!"

"그의 가슴은 늘 그녀를 애도할 거요. 에마뉘엘의 성격의 핵심은…… 지조요."

"그대는 운명이정해준 대로 되리니!"

그 사람처럼 자기 능력에 넘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쓸데없이 자진해서 책임을 떠맡는 사람도 또 없을 거예요.

음식도 들고 포도주도 마셔요, 내 친구. 천사고 노파고, 그리고 무엇보다 에마뉘엘 선생이고 뭐고 다 잊어버려요. 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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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에 대해 네가 으쓱해하지 않는 게 이상해."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단 말이지. 내가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정말 시시한 사람인데도 그러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뻔뻔해서일 거야."

나는 단지 점잖게 처신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팔짱을 낄 때면 언제나 내게 몸을 바짝 기댔다. 하지만 난 신사나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자세가 싫었다.

"그래." 그녀는 직설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그런 태도야말로 그녀의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거짓말을 할 때조차도 솔직하고 숨김이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태도는 간단히 말해서 소금, 즉 그녀의 인격을 보존해주는 저장용 양념으로,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의 인격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알아줄 만한 곳에서 나를 알아주기만 하면 충분히 정신적인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나머지는 내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 관심사와 사고 속에 신분이니 사회적인 지위니 박식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같은 공간과 위치를 차지했다. 그것들은 나의 삼류 하숙생들이었고, 그것들에게 나는 작은 거실과 후미진 작은 침실만 내주었다. 식당과 큰 거실이 비어 있을 때조차도 그것들의 처지로 보아 작은 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비밀로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되긴 했다.

지위가 낮다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인맥이 없는 게 곧 자존심에 치명타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의 타락을 막아주는 안전판 구실을 하는 지위나 인맥을 높이 사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조상이 신사가 아니고 평민이었으며, 부자가 아니고 가난했으며,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자기비하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치명적인 사실을 숨기려 들고 그런 사실이 폭로될까봐 떨며 놀라서 움츠러든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오래 살면 살수록 경험은 더 넓어진다. 이웃의 행동을 덜 비판하고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의심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조신한 척하는 미덕이건 세속적인 점잖음이건, 작은 방어들이 쌓이는 것은 분명히 그런 방어가 필요해서이다.

나는 ‘강연’을 할 교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학자 중 하나가 연단에 나가서, 아떼네의 학생들을 향해 교조주의가 반, 왕자에게 바치는 아첨이 반인 형식적인 연설을 하려니 막연히 예측할 뿐이었다.

그런 순간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묻지도 말았어야 했지만 그는분명히 신경을 썼으며 너무나 소탈해서 그것을 감추지 못했고, 너무나 충동적이어서 욕망을 억누르지도 못했다.

마음속에 칭찬의 말이 가득했으나, 내 입술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는 부자가 접근해오면 늘 다소 뒤로 빼는 편이었다. 그에게는 질기고 강한 독립심이 있었다. 그의 성격을 알고 나면 눈에 거슬리기보다는 기분 좋아지는 특징이었다.

자연의 손길이 팬쇼 양의 경우에는 아무렇게나 슬쩍 스쳐가며 이목구비를 만들었으나, 바송삐에르 양의 경우에는 고도의 섬세한 필치로 이런 세세한 특징을 완벽하게 다듬어놓은 것 같았다.

바송삐에르 씨는 이 점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그는 언어에 대해 아주 까다로운 편이었다.

폴리나의 우아함과 지성은 이 사색적인 프랑스인들을 매료했다. 그녀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와 미숙하나 진실한 타고난 재치는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썩 잘 맞았다.

하지만 독자여, 진실을 말하자면, 어떤 뛰어난 미모도, 완벽한 우아함도, 확실한 세련됨도 그만큼 뛰어난 힘, 그만큼 완벽한 힘, 그만큼 확실한 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유약하고 나태한 사람에게서 매력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뿌리 없고 시들시들한 나무에서 꽃과 열매가 열리기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레이엄은 날 알아보고 웃음을 짓더니, 방을 가로질러 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고는 창백해 보인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나대로 존 선생이 세달 만에 말을 걸고도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아니, 내가 네로였어도 그림자처럼 거슬리지 않는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을 거요."

마음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반항적인 용기가 솟았다.

이제 나는 그가 내 성격과 본성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늘 내게 나의 것이 아닌 역할을 부여하려고 했다. 나의 본성은 그에게 반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사랑의 드라마에 감초 같은 하녀 역은 기대하지 말라고 분명히 일깨워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드럽고 열렬한 속삭임에 이어서,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시오, 루시" 하는 그의 애처로운 부탁과 겹쳐, 반대편에서 날카롭게 내지르는 소리가 났다.

존 선생은 일생 동안 성공을 거두는 행운의 남자였다. 왜일까? 기회를 포착하는 눈과 적절한 시기에 행동을 개시하는 열의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담력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친구는," 그가 말했다. "말 한마디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 법이오. 당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지금까지도 뺨이 달아오른 게 나 때문인지 아니면 그 위대한 잘난 체쟁이 영국놈7" (그는 브레턴 선생을 그렇게 모욕적으로 불렀다.) "때문인지 말해주시오."

"전 선생님을 의식도 안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런 감정을 일으킨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있답니다." 내 대답이었다. 이 말을 할 때 나는 평상시의 내 모습을 억누르고 가식적으로 새침하고 쌀쌀맞게 말하는 데 다시 한번 성공했다.

그녀는 끄레시가에서부터 맹렬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포세뜨가에 도착하기 전에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진정한 가치와 고상한 품격을 칭찬해주어야만 했고, 그것은 존 녹스가 메리 스튜어트 여왕에게 바친 찬사를 능가할 만큼 소박하고 충성심이 가득찬 것이어야 했다.11 이것이 지네브라에게 걸맞은, 그녀의 수준에 어울리는 교육이었다.

뽈 에마뉘엘 선생은 수업시간에 방해를 받는 데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벌컥 화를 냈다. 수업 중에 교실을 가로질러 가는 일은 선생이건 학생이건, 혼자건 여럿이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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