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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은, 우직한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말 아닌가요. 세상이 어찌 되라고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대 일에 있어서 다만 바른 일만 행하라
다른 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많이 힘 쏟아 행한 바른 일
그것에 더는 마음 쓰지 않는다
그러나 무시로 저지른 잘못된 일
그건 유령처럼 내 눈앞을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
결코 성취하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지 않는 자
언제까지이고 종이다

바른 길은 결코 아쉽지 않을 것이니
오직 감정과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라.

"덕은 외롭지 않고 이웃이 있게 마련德不孤必有隣"

바른 신념을 갖기도 쉽지 않지만, 겨우 바른 신념을 가졌을 때 그것은 또 얼마나 쉽게 독선으로 반전하곤 하는가요. 자기 혼자만 옳다는 독선에는, 온 세상을 차단해버리는 이 조용한 폭압의 논리에는, 제가 아끼는 젊은이들은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니, 어느 젊은이든, 어느 늙은이든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수천 권의 책 속에서 진실로
혹은 우화로 그대에게 나타나는 것
그 모든 것은 하나의 바벨탑에 불과하다
사랑이 결합시켜주지 않으면

언젠가 한번 마음을 끈 것, 그 마음에 위로를 준 것은 오래오래 사랑했습니다.

눈여겨보았던 꽃에 대해서는 평생 식물 연구가 이어졌고, 언젠가 마음을 의탁했던 바위에 대한 추억은 평생 지질 연구를 하게 했고, 언젠가 한번 신비롭게 본 색채 현상에는 40여 년 동안의 광학 연구가 이어집니다.

그대 나만큼 오래 떠돌았거든
나처럼 인생을 사랑하려 해보라.

글 배워 책 읽었거든 바르게 살라는 당부를 기억하며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온갖 저열한 것에도 적용되지만, 모두들 너무도 잘 알다시피 인류가 찾아낸 가장 좋은 것의 이름입니다.

들어서는 사람은 그 자체로 귀합니다. 이 동네를 찾아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그 어떤 지침을 받아서가 아니라 저절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역할 수 없게, 그냥 그 마음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서원에는 잘 키워야 할 나무가 많습니다. 서원을 짓기 오래전부터 넓은 서원 터가 나무 고아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빚을 갚아나가던 10년 동안 그 터에다 학교 계단 틈, 돌 틈에서, 하수구 속에서 잘못 싹튼 나무들을 구출해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입양된, 그러니까 주인이 있는 나무들이 아무리 봐도 다른 나무들보다 잘 자랍니다. 아마도 나무를 보면 자연히 그 주인 생각이 나서 자주 바라보고, 그러다보면 뽑은 잡초나 낙엽도 거름이 되라고 그 나무 발치에 한 줌씩 놓아주곤 했으니 그럴 것입니다.

혼자 있어도 늘 많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아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거름이라도 좀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나는 분수 모르고 농부까지 돼버렸고, 구출해온 그 어린 고아나무들이 지금은 모두 믿을 수 없을 만치 우람한 나무가 돼 서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심각하진 않게, 노상 생각한 것 같네요. 몸에다는 워낙 들인 공이 없어서, 언제 회수당해도 불만 없다 하며 살았지요."

달리 보면 하루하루 힘껏 살았고 그걸로 감사했기에 다른 생각이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누가 나에게 10년 후에 무얼 하겠느냐고 물었고 그 이후의 10년이 내 생애의 가장 생산적인 10년이 되었다고 했었는데, 그 시간은 꿈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10년 정도만 생각합시다. 10년은 내다보고 살아야겠지요. 10년 후의 자기 모습은 마음에 있어야겠지만, 단순히 역할이 아니고 사람 됨됨이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무언가 하지요."

좋은 꿈이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을까요. 삶에다, 마치 조제약에다 한 가지를 첨가하듯 꿈을,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섞어가면, 삶이 견디기 낫고 사람도 반듯해지고 꿈도 단단해지겠지요.

꿈을 가장 가시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실현하는 것이 아마도 번듯한 집을 짓는 일인 모양입니다.

시골생활은 무엇보다 현지와의 융화가 첫째이고, 그 융화는 참으로 오래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니, 결국 겉돌기만 하다가 집을 내놓기도 합니다.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으면, 그림 같은 빈집이 됩니다. 늘 나도 저렇지 않나 싶어 스스로 돌아보곤 합니다.

꿈의 실현같이 좋은 일에도 조금씩 쌓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어렵고 문제 많은 일들에서야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 조금씩 고쳐가고 쌓아가는 일에 우리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뭐든 확 바꾸고 와장창 뜯어고칩니다. 확 바꾸면 있던 그 문제야 사라지지만, 대신 다른 문제가 무더기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도 문제 해결 방식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좋은 집이야말로 조금씩, 최소한 몇십 년은 내다보며, 올바른 생각과 수단을 통해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꿈도, 집도 금방 폐가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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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앉고 설지, 들고 날지, 걸어갈지 멈출지는 내가 정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습니다. 정확한 인식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바른 인식은 상황을 견딜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험함, 어려움에 대해서야 굳이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살다보면 다 알게 됩니다. 알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대가 옳지 않은 것이고
감사할 줄 안다면, 그대 형편이 좋지 않은 것.

형편이 정말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이, 아무리 작더라도 얼마나 사무치게 감사한 것인지는 그 혹독한 경험이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이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울며 밤을 지새워보지 않은 이
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참 유명한 시구입니다.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에 나오는 것인데요. 흔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나중에 빛을 볼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의미로 인용되곤 하지요. 대부분은 괴테의 시구인지도 모르기도 하지만, 그저 그 깊은 함의만으로 널리 알려진 훌륭한 문장입니다.

진정으로 감사하고 섭리까지 헤아려볼 수 있는 힘.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얻는 것 같습니다.

배은망덕해지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대체로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도움을 준 사람은 도와준 사람에 대하여 대개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 일방적이다보면, 어느 시점에 그만 대차대조를 하게 되고 맙니다.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여러 이유로, 받은 것을 준 바로 그 사람에게 받은 것을 다 돌려주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받은 고마움을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들인 공도 그렇습니다. 넣은 바로 그 구멍에서 곧바로 뭐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문득 무언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바로바로 보답이 있기 어렵고, 바로 그곳에서 사례하기는 어려운 이 시간 차, 이 장소 차가 어쩌면 세상이 얽혀 있게끔 세상을 지탱해주는 넓은 그물망인지도 모릅니다. 받은 사람이 베푸는 사람으로 크는 시간이고, 세상이 넓혀지는 시간입니다.

특히 석사과정을 마칠 때쯤부터 10년쯤 세상은 늘 캄캄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무얼 좀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라 사정이 어려운 시절이라 대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진행하지 않는 날보다 오히려 드물었고,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려 하니 너무도 배운 게 없어서 참혹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설 곳도 앉을 곳도 마땅치 않은 좌불안석의 어려운 시기였지요.

당시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여자인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한다고, 어떤 교수님은 제게 웃지도 않고 "너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긴 세월 동안, 그 말이 얼마나 옳은 말씀이었는지 실감을 하며 살았습니다.

감옥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도 어딘가에 앉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쭈그리고 앉았고, 그러다보니 졸업 때 그만 성적이 너무 좋아 요란한 상을 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학과를 빛냈다고 큰 특전까지 받았지요. 조교 보조가 되어 저녁에 학과 사무실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업이 없는 날은 낮에 교수님들과 조교님들의 심부름을 다녔습니다. 물론 무급이었지만, 밤에 저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좋았습니다.

졸업은 했어도, 요란하게까지 했어도 못 배웠다는 느낌만 가득했던 제게 그 허드레 무급 일자리는 너무도 큰 상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손가락 하나,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아주어도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상은 손가락 하나를 잡아주기는커녕, 벼랑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손끝을, 밟는 듯이 무정했습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도망치듯이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났다고 생각했던 나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며 결혼했습니다.

"똑똑한" 여자가 어디서 용인되는 시절이 아니었지요. 더욱 답답한 것은, 똑똑하지도 못하면서, 똑똑한 여자 취급을 안 받으려는 노력까지 끝없이 기울여야 하는 상황들이었습니다.

"작은 건 양보해야지, 뭐. 작은 일에도 일일이 다 다투면 뭔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할 힘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나중에, 20년 가까이 지나서 서울대학교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맨 먼저 그 베란다에다 꽃을 심었습니다. 그날의 저처럼 이상한 생각이 드는 사람이 없도록, 꽃이라도 보고 돌아가도록 말입니다.)

역린이었습니다. 어디서 살림하던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그때까지의 전통과 질서를 뒤흔든 것이지요.

아이가 두 달이 되었을 때 저는 떠나야 했습니다. 못 떠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떠나서는 어떤 때는 아이가 보고 싶어 현기증이 일곤 했습니다.

그때는 방학 때 집에 온다든가 하는 사치는 상상의 범위 안에도 없었고, 한번 유학을 갔으면 학위를 받아서 그야말로 금의환향해야 하는 시절이었지요.

짧은 기간에 목숨을 건 듯 읽고 자료를 모았습니다.

돌아보면 그 캄캄하고 절박했던 세월이 내 인생의 초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막하게 쭈그리고 앉아 읽고 손가락이 굳도록 적었던 것들이, 혼자 힘으로 무얼 읽고 읽어내는 일, 지금껏 제 자양분입니다.

무언가 보답이 될 만한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차근히 내려앉을 시간도 없었어요. 그래서 절반쯤 선 채로 마구 써내려갔지요.

그 책상과 의자를 만들어서 서원에 온 젊은이들이 크나큰, 크게 될 사람의 성찰의 자리에 앉아보는 각별한 시간과 공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시와 진실』도 한 권 그 곁에 놓아주고요.

세상에 문제의 즉답은 없다고 말입니다.

쉬운 답이 있으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면, 신기하게도 그 문제를 감당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무언지 알고 싶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요. 그러니 늘 쓸 게 많았지요, 느긋이 책상 앞에 정좌할 겨를도 없이 말입니다.

시간이라는 일륜日輪의 말들이 우리 운명의 가벼운 마차를 끌고 쉬지 않고 달리니. 우리에겐 용감하게 고삐 단단히 잡고, 때론 좌로 때론 우로, 이 돌멩이 저 낭떠러지를 피해 수레를 모는 수밖에 없구나. 어디로 가는지 누가 알랴? 어디서 왔는지조차 기억 못 하거늘.

자존심이 없었을 리 없으니, 저 작은 책상에서 쓰인 글들은, 거기 담긴 성찰은, 아마도 자신을 더욱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겠지요.

아무튼 그 집이 바라다보이는 정원집의 뒤뜰 그 바위에 적힌 글귀를 판독하며 한번 웃고 나서 발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바이마르 산책 코스입니다. 그 바위에 적힌 괴테의 시구. 바위가 하는 말로 적혔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했다, 바위야 내 사랑의
증인이 되어다오.
그러나 증인 서겠다고
일어서진 말길. 네 동무들이 여기 있잖아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훌쩍 떨어져 바라보며 웃기도 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봄철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하는 일들은 경우에 따라 조금 미룰 수도 있지만 농촌 일은 조금만 미루면, 제때 밭 갈고 제때 씨 뿌리고 제때 거두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쳐버리게 됩니다.

아직도 농부 노릇이 서툴지만 그럼에도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고, 밭일 좀 한다고 책을 안 볼 수야 더더욱 없으니 주경야독이 두루 극에 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맙게도 일 좀 줄이라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줄일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고 있는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일의 능률만 생각한다면 가까운 데서 도울 인력을 구하는 편이 손쉬울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먼 곳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유는 그러는 게 사람들과 땅을, 또 사람들과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일인 것 같아서입니다.

그 어딘가에 자기가 심은 꽃이나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건, 또 그걸 보러 가는 건 그냥 봄나들이와는 다른 힘을 주지 않을까요?

나에게는 나무들이 그저 나무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또 그 누군가이기도 합니다.

막상 아이를 길러본 사람들은 대개 아이에게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압니다. 굳이 주고받는 일로 따져보더라도 말입니다.

다른 일들도 사실 얼마만큼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나아가 내 아이에게 쏟는 마음을 조금만 주변에, 또 일에 나눈다면 사회적인 안정감은 물론 우선 나 자신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무언가 뜻과 보람이, 꽃과 나무가 자라듯 자라나는 일이 세상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평생의 애씀이, 제가 하고 있는 힘겨운 노동에다가 어떻게든 뜻과 보람을 더해보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녘까지 이 글을 쓰다가도 잠깐 눈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어제까지 누렇던 잔디밭 전체가 파릇파릇합니다. 비껴 내린 첫 햇살 속에서 연초록이 눈부십니다. 어제 잠깐 내린 비가 초록빛 물감 묻힌 붓을 들어 천지를 한 획으로 칠해놓고 간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선물받았는데, 잡초 제거 정도의 답례는 흔쾌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찾아오는 나무 주인들도 기쁘게 거닐 텐데 말입니다.

오로지 돈을 받기 위하여 일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 그야말로 막노동일 것이고 그 벅찬 노동의 와중에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더 힘든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해가면서 조금이나마 좋은 뜻을 심어가면, 그 작은 뜻들이 쌓여서 무엇보다 나 자신의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그런 ‘보람과 뜻’을 누가 나에게 줄 수 있을까요.

꽃과 나무를 기르는 것은, 또 꽃과 나무가 자라듯 무언가 뜻과 보람이 천천히 자라나는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아이를 기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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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졸업반으로 접어들던 해에 나는 인적 오류를 줄이는 데 실제적이고 가치 있는 변화를 가져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를 위해 위험을 고려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밑받침 역할을 하는 메커니즘을 조사하는 것을 골자로 박사학위 연구 제안서를 작성했다.

다른 장애물도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박사학위 과정을 밟는 것을 허락하는 대학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파트타임 박사과정 학생은 연구를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학위 과정을 시작한 학생이 중도에 포기하면 대학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을 줘서 대학 순위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금 마련에 지장이 생긴다. 운 좋게도 내 상황을 이해해준 고마운 교수를 만났다. 카디프 대학교의 롭 허니 교수였다.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고 능력 있는 롭 교수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나는 언덕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파트타임이라고요? 풀타임 직장을 다니면서요? 절대 못 끝낼 거예요!"
나는 내 소개를 하고 그녀와 악수를 했다. 손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면서. 그녀가 간 후, 롭 교수는 대신 사과를 했다.
그녀가 한 말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절대로 그 여자 말이 맞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확고한 결단으로 가득 찼고, 그녀의 무시하는 말은 일이 어려워질 때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 역할을 할 터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내 결심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고, 이번에도 또다시 성공할 것이었다.

첫 몇 달 동안 나는 그 논문들을 가브리엘라가 잠들기 전에 이야기 책처럼 읽어줬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읽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기가 그냥 내 목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장거리고 걸어 다닐 무렵 하마를 보고 히포포타무스hippopotamus라고 하지 않고 자꾸 히포캄퍼스hippocampus(대뇌 측두엽의 한 부분인 해마를 의미한다?옮긴이)라고 한 걸 보면 뭔가가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이 과정은 ‘조건반사적-도구적 전이Pavlovian-Instrumental Transfer’라고 부르고 줄여서 PIT라고 한다. 주변 환경이 니코틴이 주는 쾌감을 상징하는 신호로 작용해서 과거에 그 경험을 가능케 했던 행동을 갈망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독에서 회복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이전의 그 습관과 관련 있는 장소, 사람, 행동을 멀리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우리의 행동은 진정으로 자유 의지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처한 상황의 무엇인가(신호)가 우리의 반응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일까?

? 플래시오버는 방 전체가 바닥에서 천장까지 갑자기 화염에 휩싸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불로 뜨거워진 기류와 가스, 그리고 자재가 내뿜는 열기가 노출된 모든 표면을 극도로 달궈 방 전체가 갑자기 한꺼번에 타오르는 현상이다.

직장 일도 힘들었고 처음으로 엄마 노릇을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박사 논문 연구를 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합친 것의 두 배 정도 힘들었다.

사실 그토록 빨리,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은 그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례한 여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마음도 일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연구가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였다. 내가 하는 연구가 결국 소방 활동을 안전하게 만들고 인명을 구하는데 일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의사 결정 과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작전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만일 이렇다면?’하는 우려를 내려놓고 행동과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의사 결정을(조너선더러 모든 사건 현장을 쫓아다니며 사람들이 의사 결정의 함정에 빠질 때마다 행동 강령을 외쳐달라고 강요하지 않고도) 가능하게 만들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나도 예전에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곤 했었다. 하지만 처음 1~2분 정도는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릴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나 자신도 알고 있다. 내 몸이 투쟁?도피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은 실수할 확률이 너무 높다. 목욕탕으로 들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느려진다. 얼굴을 닦으며 크게 숨을 들이킨다.

어두운 집밖으로 나서니 추위가 칼끝처럼 날카롭다. 코트 깃을 여미고 목을 움츠린다.

속도를 내기 위해 큰길을 택한다. 차 전체가 비상등의 파란빛으로 물들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부분은 업무 중에서 가장 즐길 만한 부분이다. 나는 비상 출동 차량을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잡한 교통을 뚫고 빠르고 안전하게 달리는 일에서 나는 에너지를 얻곤 한다. 사이렌을 울리며 다른 차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자신감이 넘친다.

처음에는 굉장히 집중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여느 기술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나는 퍼즐 그림의 빈 곳들을 점검한다. 정확히 몇 명이 출동해 있고,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가? 구조 및 진화 작업을 더 어렵게 할 만한 요인이 건물 안에 있는가? 30분 후에는 불길이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 그 상황이 되면 어떤 자원이 필요할 것인가? 앞으로 닥칠 화재 양상에 대비하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원들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진화 작업을 해야 하는가? 내가 어떤 조처를 내려야 더 안전한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가? 지휘관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추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가?
결국, 어떻게 해야 적절한 사람을 적절한 곳에 적절한 때 배치해서 적절한 조처를 취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와 더불어 이 사건의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이 사고가 도시 다른 곳에 끼칠 여파는? 교통 기반 시설이 영향을 받고 있는가? 근처에 다른 기업이나 학교들이 있는가? 이 화재가 지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내가 세울 전략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상부에서 고위 간부가 와서 여기저기 간섭을 해대기 전에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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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나가던 시 한가운데서 부딪쳤던 한 구절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찔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행복하여라, 세상 앞에서/ 증오 없이 자신을 닫는 이"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시인은 거닙니다. 그저 강가가 아니라 "기쁨과 고통 사이를" "고독 속"을 거닙니다. 외로움이 하나의 장소 같습니다. 그가 거닐며 살아갈 강가, 삶의 터 같습니다.

그렇게 운명을 생각하며, 젊은 시인은 작은 강가 작은 집에다 고요히 자신의 거처를 짓습니다. 시를 씁니다. 자신의 세계를 짓고, 고요히 들여다봅니다. 사람의 마음속을, 운명을, 그 얽힘, 착종을 예리한 눈길로 들여다봅니다. 예리한 눈길이지만, 깊고 그윽합니다.

그런 눈길로써 진정한 시작詩作은, 진정한 글쓰기는 제대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소유

거침없이 나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려는 사유밖에는,
고마운 운명이 나로 하여금
바닥에서부터 향유하게 하는
호의로운 순간순간밖에는 그 무엇도
진정 내 것 아님을 나 알고 있네.

순간순간이, 다름아닌 이 찰나가 진정한 나의 소유라니, 지금 이 순간은 얼마나 귀한지요.

나는 젊은이들이 부동산 투기 따위로, 혹은 그보다 더, 없는 부동산으로 괴로워하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든 이 어마어마한 유산을 마음에 담고 살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색채론』 연구에는 『파우스트』보다는 조금 짧은 40년을 매달렸습니다. 이와 같은 대작뿐만이 아닙니다. 「신과 무희」라는, 인도의 설화를 소재로 한 한 편의 발라데를 위해서도 그는 "40년을 품고 다녔다"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 한 편의 시는 "다마스쿠스의 검"처럼 날카롭게 벼려졌습니다.

다마스쿠스의 검이란 자고로 칼 중에서도 강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유명한데, 그 제조공법이 특이합니다. 유별나게 강한 쇳덩이를 잘 녹여 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수많은 철사 가닥을 겹쳐서 불에 녹이고 다루고 또 녹이고 다루어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긴 호흡, 오늘날 같은 시대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빛날 수 있는 귀한 것 아닐까요. 설령 당장 실천을 못 한다 해도, 그런 생각을 해보는 순간은 얼마나 풍요롭고 귀한지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 초조,
더더욱 쓸모없는 건 후회
초조는 있는 죄를 늘이고
후회는 새 죄를 만들어낸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는
아직 긴 시간이 있다
처리하는 법을 빨리 배우라
졸리기 전에.

아리따운 인생을 짜맞추어 가지려거든
지나간 일을 두고 근심해서는 안 된다
극히 작은 일이 그대를 분명 언짢게 하겠지만
늘 현재를 즐겨야 한다
특히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미래는 신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다면 저항하라! 그래야 그대가 품위를 지킬 것이다
휴식시간이 되기도 전에 벌써 쉬려는가?"
무언가를 비난하기에는 나는 너무 늙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행할 만큼은 충분히 젊다

희망

이루어다오, 내 두 손이 해내는 하루의 일과여
내가 완성하는 드높은 행복을!
나를, 오 부디 지치게 하지 말아다오!
아니다, 빈 꿈이 아니다
지금은 줄기일 뿐이어도, 이 나무
언젠가 열매 맺고 그늘 드리우리라.

대시인 괴테의 희망이, 더도 덜도 아니고, 그날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었다니!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참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침 없이 만나야 하는 것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근심

이렇게 원을 그리며
자꾸자꾸 맴돌지 말라!
오, 놔두어다오 나의 방식을 내버려두어다오
오, 다오 내게 행복을 다오!
나더러 도망치라고, 나더러 그걸 잡으라고
이제, 절망은 충분하다
나를 행복하게 놔두지 않으려거든
근심이여, 이제 나를 현명하게나 해다오.

누군들 근심을 피할 수 있을까요. 부유하든 가난하든, 힘이 있든 없든 인간이 결코 떨치지 못하는 것이 근심입니다. 그것을 일찍이 이미 통찰하고, 그 벗어날 수 없는 것에 ‘항복’하며, 괴테는 부탁합니다. "근심이여, 이제 나를 현명하게나 해다오."

희망으로, 근심의 단련鍛鍊으로, 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대한 바른 성찰이라는 오랜 단련으로 노년의 현인 괴테는 빚어진 것 같습니다. 그 자신이 마치 다마스쿠스의 검 같습니다.

차분히 앉을 겨를도 없어 절반쯤 선 채로 엉덩이만 붙인 채 글을 쓰곤 했던 괴테의 젊은 날의 집을 닮은 훨씬 더 작은 한 칸 집을 지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집의 용도는 한 장의 편지를 쓰기 위한 것입니다. 10년 후의 자기 자신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 한 칸 집의 이름을 "나의 집"으로 지을까 합니다.

나는 여백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물론 늙은이도 마음이 젊으면 괜찮습니다―동네 숲 지도 한 장을 챙겨 들고 걸어가서 찾아내는 그 오두막에서 조용히 자신과 마주앉아보는 시간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1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 그저 멋있게 생각해낸 반짝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아주 귀한 경험이 있어 그걸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경황없이 살았을뿐더러, 번듯해 보이는 학벌과는 달리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거의 독학이라 어렵사리 구한 책들이 너무도 귀해서 일일이 번역을 해가며 읽었고, 다 읽고는 그것에 대해서 글을 썼고, 쓴 글이 또 모이면 연구서로 묶기도 하며 살아서―어쩌다 우연히 기회가 있으면 그 원고들이 책이 되기도 했으나―책이 된다는 보장으로 책을 쓴 일은 거의 없고, 그렇듯 허겁지겁 읽고 쓰고 살다보니 쓴 책들마저 손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10년이 되어 그간 대략 수합해놓은 책 한 권 한 권의 후기를 복사하여 작은 거실 바닥에다 구불구불 늘어놓고 그 사이를 거닐던 순간이 잊히지를 않습니다. 젊은 날이 참으로 캄캄했었는데, 한 치 앞이 안 보이게 캄캄했었는데, 시간 순으로 늘어놓은 그 구불구불한 종이의 열列을 따라 이리저리 걸어보자니 마침내 길 같은 것이 보인 것입니다.

눈 앞이 캄캄한 채로, 그 어떤 등댓불도 없이, 그러나 눈앞의 일만은 그저 힘껏 했었는데 돌이켜보자니 그 ‘힘껏’이 길을 만들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니 적어도 본업인 전공 분야에서는 과히 틀리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감사하며, 또 만감이 교차하며 그 종잇장들을 모아 다시 하나하나 타이핑을 해서 약속한 대로 책이 될 만큼 묶었는데, 바로 책으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다 묶어놓고 나서 보니 슬며시 욕심이 조금 들었습니다. 정말 쓰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아직 못 쓴 것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고 묶음을 5년 더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5년이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생산적인 시기가 되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서울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하면서 방학 동안만 가서 근무했는데, 자주 15미터 떨어진 숙소를 못 건너갈 만큼 몰두해서 일했지요.

그 기간에 독일어 연구서가 네 권이나 쓰였고 모두 좋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특히 그중 두 권은 독일에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금 웬만한 학술도서관에는 다 꽂혀 있습니다. 같은 기간에 국내에서는, 그 한 권 한 권을 감히 필생의 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책이 다섯 권이나 나왔습니다. 사람이 5년 안에 그렇게 일을 할 수는 없고, 그간에 공부하고 일한 것들을 온전히 몰두하여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학마다 주어졌던 것입니다.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 하나의 질문 덕분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이제 저는 아끼는 젊은이들에게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답을 직접 듣지 않고, 그들이 쓴 편지로 받아두었다가 10년 뒤 찾아가게 하거나, 찾아가지 않으면 부쳐줄 생각입니다.

연로하신 분들을 만나는 기회는 놓치거나 미루면 안 됩니다.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뵙고 그 지혜를 조금이나마 더 배우고 싶고, 또 그런 어른들이 세상에 계시다는 게 그저 너무 고마워서 저절로 발길이 옮겨집니다. 요즘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드니, 이곳저곳에 가끔씩 안부전화나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넓디넓으니, 조금 뒤처지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큰 위안을 시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깊이 절감했습니다.

제가 이즈음 이런저런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견뎌내는 것은, 또 앞으로도 견뎌갈 수밖에 없는 것은 먼 도나우강가에 서서 나를 그 "뒤처진 새"로 반기며 힘을 주시는 분의 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이곳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그곳은 타들어가도록 메말랐을 시기였는데, 물마저 귀하지만 언제든 내가 오면 마실 물은 비축해두었다고도 쓰셨습니다. 시인이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분의 글을 읽고 내가 어찌 함부로 살 수 있을까요.

왜 우리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게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요.

가슴을 연 사람만이 아름답다고 부담감을 주지도 않습니다.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가슴 연 아름다운 땅 위의 가슴 연 사람인들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그대 그토록 찌푸리고 서 있었으니
바라볼 줄을 몰랐구나.

가슴을 열어야 아름다운데 그 열린 가슴을,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못을 박는 말입니다.

열림이란 무엇보다, 다름의 인정이고 다양성의 수용입니다.

멀리 저 밖으로 나가기를 그리워하면서 그대
민첩한 비상飛翔을 준비하고 있구나
자신에게 충실하라, 또 남들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이 협소한 곳이 충분히 넓다.

가슴 열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을 쓰고 온 세상을 여행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열린 가슴으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 역시 사람입니다.

라바터를 만나서 그 곁에서 행복합니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치유예요, 사랑 안에 깃들어 살고 지향志向이 있는 사람, 활동하면서 그 가운데서 즐기기도 하는 사람이기 위해서요.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의를 기울여 친구들을 감당하고, 먹이고, 인도하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한 석 달만 이분 곁에서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괴테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 안에 깃들어 살고, 지향이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들에 그저 치이지 않고, 그 가운데서 즐길 줄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신이, 더 많은 장점들 가운데서 이 장점 또한 우리와 함께 집으로 오게 해주시기를, 우리의 영혼이 열려 있게 해주시기를, 또 우리가 선한 영혼들을 열 능력을 주시기를.

자연과학자로서의 자신은 범신론론자Pantheist이고, 시인으로서의 자신은 다신론자Polytheist이며 인간적으로는 유일신론자Monotheist라고 말입니다.

조개들이, 살을 껍질 밖으로 펼쳐낼 때 물에 뜨듯이, 그렇게 나는 사는 걸 배웁니다.

조개가 연한 살을 내미는 곳은 짠 바닷물입니다. 우리의 세상과의 만남은 연한 살이 소금물에 닿을 때처럼 아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서, 상황에 따라, 그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사고를 유연하게 열고 옮길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진정 큰 힘인 것 같습니다.

학문과 예술을 가진 자
종교도 가진 것이다.
저 둘을 가지지 못한 자
종교를 가져라.

우린 왜 이렇게 굳어져버렸을까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에서조차 말입니다.

인생이란 강물도 어차피 자기 힘으로 혼자 헤쳐가는 것

저는 저와 같은 미약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생각해보는 참입니다. 또 무슨 일인들 차분히, 꾸준히 해서 아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일이 가슴을 열어젖히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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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원인으로든, 현재 상태의 자신의 주인은 자기입니다. 그것을 고치든 고수하든 상승시키든 개선시키든 그 모든 것은 원인제공자가, 설령 백 번 개심을 한다 하여도 이제 와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당사자의 자기 연민이나 분노가 해결할 일도 아닙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자신을 빚어나가는 일을 할 사람은, 자기밖에는 세상에 그 누구도 달리 없습니다.

"지향하며 노력하는 자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도도한 서구 문명 3000년을 누빈 듯한 느낌과 함께 방황하는 저 자신도, 방황하는 많은 다른 이들도 껴안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대 ‘선’에 대하여 보답을 받았던가?"
나의 화살은 고운 깃 달고 날아갔다오.
온 하늘 열려 있었으니
어디엔가 맞았을 테지요.

좋은 뜻으로 시작했건만 일은 자주 꼬이고, 좋게 만났건만, 준 것도 많건만 인간관계는 가끔 험하게 틀어지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대가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제아무리 마음을 비운다 해도 범인인 이상, 뭔가 좋은 일을 하고 난 사람의 마음 바닥 어딘가에는 남아 있게 되는 보상심리의 잔재를 이 물음은 정조준합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풀어냅니다. 그 열림과 너그러움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남습니다. 영롱한 오색 깃털을 단 화살이 방금 눈앞을 날아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은유의 힘이 참으로 큽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의 양형인 것처럼 들리는 이 오래된 함무라비 법전의 경구가, 실은 똑같이 보복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응징이 도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경계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여도, 좀 무섭습니다.

네가 겨울 저녁
성난 듯 넘치거나
봄의 찬란함 에워싸고
어린 꽃봉오리 솟거든.
행복하여라, 세상 앞에서
증오 없이 자신을 닫는 이
한 친구를 가슴에 안은 이
더불어 즐기는 이

사람들이 알지 못해도
혹은 유의하지 못해도
가슴의 미로를 지나며
어둠 속에서 오가는 것
그것을 더불어 즐기는 이.

외로움이 하나의 장소 같습니다. 그가 거닐며 살아갈 강가, 삶의 터 같습니다.

것을!
고통 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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