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관촌수필>은 사진 나온 두 번째 책. 머스타드 색 표지는 2018년에 나왔으니 내가 갖고 있을리가 없고. 뭐가 좀 다른가 하고 2018년 것과 비교해 봤는데 다른 거 찾지 못했음. 똑같이 어렵더라는.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어휘 풀이를 붙여두었다고 하니까 저 새로운 판형의 책도 사야하나? 생각중.
오정희 선생님의 <내 마음의 무늬> 읽고서 집에 있는 이문구 선생님의 <관촌수필>이 생각나서 읽기 시작했다. 4월에 읽을 책 리스트에는 없지만, 오정희 선생님의 글을 읽고 얼렁 읽고 싶었는데....
빨간 줄 그은 문장들 같은 문장들이 갈수록 너무 많아서 그런가 턱턱 막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고 있다. 쉽게 읽히지 않는 글들이라 내가 예전에도 한국 작가들이 쓴 책은 한문도 많고 한글인데도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려워서 잘 안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반유행열반인 님은 이 <관촌수필>을 고딩때 읽으셨다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 수준 차이.^^;; (존경해요, 반열님!!^^;;) 이 어려운 것을 어찌 고딩 때 읽으셨는지!!^^
아무튼, 오정희 선생님의 이 글을 읽고 이 어려운 관촌수필>을 다시 집어 든 것이다. (예전에 한 번 읽으려고 시도했었던 기억 남;;;)
문단 역시 사람들의 세상인지라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돌게 마련인데 나의 문단적 교류가 넓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여성 작가들에게서는 이문구 선생님과 술을 마셨다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거나 하는 말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 그림은 철저히 '사내들의 세계' 속의 선생님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도시 춘천, 내 주변에는 '마니아'라고 할 정도의 선생님의 팬이 많다. 교직에 있거나 화가이거나 전업주부이거나 직업은 각각인데 돈도 밥도 되지 않는 '숭문사상'에 젖어 있고 문학에 대해 깊은 조예를 가진 고급 독자로 자처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팬클럽을 결성하거나 팬레터를 보내는 일은 없지만 <관촌수필>애서부터 <우리동네><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까지 빠짐없이 읽고 이야기한다. 이문구 선생님의 책은 서로 빌려 보지 않는다는 것이 붊누율이다. 누군가 빌려달라고 하면 "사봐. 그리고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참맛을 알게 된다"라는 그 문학에 대한 접근 지침을 곁들인, 일언지하의 거절을 당한다. '글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신념 또한 굳은 것이어서 소설 외에도 소설에서 알아봐지는 선생님의 품격에 대해 입소문만 열심히 낼 뿐이다. 오래전 절판되었던 선생님의 책이 새로운 판형과 포장으로 나오면 다시금 사서 읽는데, 그렇다고 예전 책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새 책 옆에 헌책을 알뜰히 꽂아둔다. 그래서 헌책방에서는 좀체 선생님의 책을 발견할 수 없다. 독자들이 귀히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아무리 심혈을 기울인 훌륭한 작품이라도 천덕꾸러기, 한갓 쓰레기가 되는 것이 책의 운명인데 작가로서 그런 독자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내 마음의 무늬> p. 226~227
어제 오정희 선생님의 <내 마음의 무늬>라는 책이 중고에 많이 나와있고 가격도 너무 저렴한 것에 화가 난 이유가 아마도 바로 독자들이 귀히 여기지 않았다는 데에서 온 울분이었던 것 같은데,, 오정희 선생님 말대로라면 이문구 선생님은 정말 복이 많은 분이다.
오정희 선생님은 이렇게도 쓰셨다.
"제자 사랑이 남다른 분이기는 해도 제자들에 대해 좀체 여러 말씀을 안 하시는 김동리 선생님이지만 이문구 선생님에 대해서는 자주 "문구 글이 너무 독특해서, 대한민국에선 오직 하난 기라. 읽어낼 사람도 알아볼 사람도 드물어. 그러니 신춘문예는 애초에 틀렸다 싶어 내가 추천했지."라는 말씀으로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재능을 찾아내신 당신의 혜안을 뽐내며 자랑스러워하셨다.
<내 마음의 무늬> p. 225
한글은 한글인데 잘 알아먹지 못하는 나는 두 번이 아니라 한 열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면서 이 <관촌수필>을 다 읽어낼 결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