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영화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배혜경 지음 / 세종출판사(이길안)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고마워 영화』는 영화 이야기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본 영화 위주로 읽다가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봤던 영화의 감상을 확인하기 위해 읽던, 읽지 않은 영화를 찾아서 읽던, 아니면 처음부터 읽던, 그것도 아니면 제목이 마음에 드는 영화부터 읽던 읽는 내내 이 책은 친절하면서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 준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이 추천했다는 <어웨이 위 고 Away We Go>는 가장 보고 싶은 영화가 되었다. 배혜경 작가는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서른세 살에 둘째를 낳았다는 것으로 그녀의 글은 시작이 된다. 여자라는 동지감에서 시작이 되었는지 나는 이 글에 푹 빠져버렸다. 52페이지에 그녀는 이렇게 쓴다.

그 일은(아마도 육아?) 적지 않은 것을 보류하고 양보해야 됨을 전제했다. 당시 아이와 관련하여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고민을 먼저 했다기 보다 나의 분신이자 변종이 괘씸한 짓을 하며 내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해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지 못하고 감당해야함을 의미했다. 누구에게  그 일의 어려움을 내세우고 공치사할 것인가. 내 적성에 맞지 않다고 투정이라도 부릴 데가 어디 있나. 인내심을 강요하고 약한 비위도 단련시키고 단잠을 빼앗고 나의 날개를 꺾어 앉히는 그 맑은 눈망울에서 때론 생존을 위한 순수한 악의를 보고,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반복되는 단순작업들이 점점 내 머릿속을 텅 비워나갈 때쯤이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에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치고 올라왔다. 영화 속 베로나처럼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내가 마련하고 최상의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p. 52

나도 그랬다. 나는 첫아이를 낳고 몇 시간 후 아기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리는데 아이가 너무 힘차게 빨아서 두려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 역시 베로나처럼 아이에게 최상의 세계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보다 아마도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이 책의 곳곳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그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고, 또 앞으로 갈 것이다. 그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죽음에 대해서 그녀는 많은 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러는 것이 마땅하다고. 


누가 나에게 준 선물인지도 모르는 나를 보면 누구도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것 같은데,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man>에서 그녀는 영화를 본 후 바로 이 Searching for Sugarman 음반을 주문하고 몇 사람에게 선물도 했다고 나오는데, 나는 그녀에게 시디를 받은 그 몇 사람 중 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찾아 본 계기는 그녀의 글을 읽고 찾아봤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선물 받은 시디에 대한 내 기억에 자신감이 없는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Sandrevan Lullaby - Rodriguez


이 곡은 엔딩장면에 흐르는 노래이며 이 앨범의 열 번째 곡이다. 그녀가 귀엽게 표현한 대로 "강남스타일이 아닌 로드리게즈 스타일이다." (p. 296) 이 글을 읽으면서도 눈물이 났는데, 오랫동안 말라 있던 내 감성이『고마워 영화』를 읽으면서 막 분출하는 것 같다, 이렇게 선물로 받은 슈가맨의 시디도 생각나는 것을 보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읽다보면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글이 나온다.

오래 전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어른이 생각난다. 갑자기 쓰러져 무지개다리를 건너셨지만 평소 늘 하던 말씀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저 세상 가길 원하셨단다. 글도 이름도 사진 같은 것들도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무영한 것들임을 간파하셨겠지. 바람을 보여주는 깃발처럼, 그분을 보여주는 내 기억의 깃발은 한두 개 영상으로 가슴에 꽂혀 있다. 세상을 제대로 알기도 전, 결혼이라는 외롭고 무서웠던 낯선 환경에서 긴장하고 있던 내게 따뜻하게 차려주신 한 번의 밥상과 몸을 찢고 아이를 낳은 내게 내밀어주신 마음 같은 것으로. 타인에 대한 그런 기억 한자락이면 삶이 견딜 만한 것이 될까. 섣부른 희망은 아닐까. p. 161-162

타인에 대한 그런 기억 한자락이면 삶이 견딜 만한 것이다. 누가 나에게 슈가맨 시디를 줬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읽으면서 팍 기억이 나기도 하고, 슈가맨의 음악을 들으면서 선물을 한 사람뿐 아니라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남아있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니까. 인생은 결국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니까. 그러니 선물을 받은 나보다 선물을 준 사람이 기억을 잘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유효기간 없는 감동과 고마움에 대한 것은 순전히 받은 사람의 몫이다.


나는 나름 작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커다란 빙산이었다! 그녀는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한 것인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책을 쓰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한 것인가요?" 라고 그런 사람에게 묻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영화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원작 이야기는 기본이고, 영화와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책, 음악, 사진이야기 등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녀는 영화<클로져 Closer>에서 안나가 들이대는 라이카 M6를 한눈에 알아본다. 나도 그 영화를 감명 깊게 봤지만, 그런 것은 눈 밖이었는데 정말 그녀가 얼마나 섬세하게 영화를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면서 그녀의 글에 대한 신뢰감이 저절로 생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안나가 찍은 가장 멋진 클로즈업 초상사진은 댄의 연인 앨리스의 슬픈 얼굴이다. 처음 만난 낯선 여자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 안나는 그녀의 심리에 댄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가 있다. 그녀가 들이대는 라이카 M6 삼각대 위에 세운 사진기 하셀브라드보다 피사체를 향한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해주자면 그보다는 심리적 거리의 근접함을 상징하기 위한 도구로 놓칠 수 없다. p.99


안나가 영화에서 사용한 카메라가 블랙 M6인지 실버 M6인지는 책에서 확인이 되지 않지만, 심리적인 도구로 놓칠 수 없다는 카메라는 나는 그저 카메라인가보다 했는데 배혜경 작가는 이렇게 그 종류까지 꿰고 있다. 아무리 그 카메라가 집에 있다고 해도.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이 책에서 여러 사진작가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고 사진에 대한 자기 생각을 필력 하기도 한다. 사진과 영화는 어쩌면 한 지점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이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한 편의 글로 어찌 이 책의 리뷰를 마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녀의『고마워 영화』에 실린 글을 종종 내 글에 인용할 것 같다. 


한가지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사람들은 인디 영화나 예술영화보다(같은 종류인가?) 인기가 많은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들의 취향에 맞춰서, 특별히 아이들의, 나 역시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보는 편이다. 그녀가 애니메이션을 봤는지 모르지만, 다음 책에는 애니메이션도 한 두편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식상한 말이되겠지만 그녀의 건투를 빈다. 내년에는 52편의 영화가 실린『고마워 영화-II』그 다음 해에는 53편의 영화가 실린 『고마워 영화-III』이렇게 매년 출판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건 완전 내 욕심이고, 隔年으로라도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더 배혜경 작가가 우리나라 영화에세이 작가로 우뚝 서기를 바라며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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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6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7-12-27 00:49   좋아요 0 | URL
라로 님 진심어린 리뷰를 따라가다가 눈시울이 붉어져요. 지난날들이 헛된 게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잡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된 것 같아요. 참 많은 일들이 가로수길을 걷는 듯 스쳐가요. 우리의 힘들었거나 즐거웠거나 아쉬웠던 그 모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라로 님이 준 물질 이상의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저 CD는 내가 보낸 게 맞아요.ㅎㅎ 서로들 부담없이 주고 받았던 도서나 음반 같은 것들이 오래 따스한 온기로 남아 있어요. 공감해줘서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의 삶에도 무한응원 보냅니다.

라로 2017-12-27 14:13   좋아요 1 | URL
그죠!! 우리들의 추억이 곳곳에 남아 있더군요.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서 결코 잃고 싶지 않다고 결심(?) 하게 되더라고요. ㅎㅎㅎ 사실 되돌아보니 제가 프야님께 받은 게 너무 많은 거에요!!! 정말 늘 고마와요!!! 속이 깊어서 말은 안하고 답답했던 시간도 있었을텐데 많이 인내해 줘서 미안하고 고마운,,,,사랑해요~~~이미 멋진 에세이스트이지만 유명한 에세이스트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늘 응원할께요!!!! 우리 멋지게 젊게 아름답게 늙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