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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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향을 밟고 그가 지난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나는 밟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고통을 느끼기 못한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내 감정은 풀어져야 한다. 이런 맘으로 아버지가 준 포푸리를 병원으로 갖고 왔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킨다는 허브 포푸리도 아직까지는 내 살의를 완전히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담백하게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속하고 또 단속한다. 그렇다고 살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쓰고 싶지도 않다. 가끔씩 부녀혼을 느낄 때가 있다. 살의는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전인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100

투명한 창을 방해하는 저 창살도 걷어내고 싶다. 한겹 넘어 또다른 한 겹이 모든 것의 문제구나. 부질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걷어내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그 일상의 시간에 작은 틈이 생기고 그것은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큰 구멍이 되기도 한다. 101

그 발랄함의 원천이 궁상맞은 심신의 허기를 감추기 위한 자폐적 연기에서 비롯되었음을. 결핍에서 오는 지루한 지나침이 감지되면 남자들은 쉽게 내게서 멀어져갔다. 몇 번의 상처 끝에 나는 사랑을, 아니 사람을 믿지 않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사람이 그리운 느슨한 천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는 새로운 대상에게 빠져들곤 했다. 102-103

따뜻한 가족애를 표방하는 허울 좋은 드라마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하고 있었다. 134

일상처럼 굳어진 엄마의 무관심이 차라리 편하다.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의식을 느끼는 여자로선 엄마의 그런 태도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월질 수 있기 때문이다. 163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결 같은 성품 때문에 엄마 곁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168

사랑에 빠진 청춘의 누썰미가 객관적이기를 바란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것을 알기에 이 점은 엄마를 이해하기로 한다. 169

분신 같은 추억의 물건도 새 남자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릴 절묘한 타이밍을 엄마 앞에서 여자는 선택한 셈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쉽게 잊을 줄 알았다면 그 테이프를 버리지 않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복수였다. 170

자신의 정체성을 모독하고 위협하는 모든 언사는 폭력이죠. 173

따뜻하다, 정겹다, 라는 소박한 형용사가 이처럼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 적은 일찍이 없었다. 176

소설이 무엇일까. 여전히 모르겠다. 확실한 건 좋은 소설을 만나면 내가 쓰는 게 소설이 되려면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인다는 것. 좋은 소설이란 이야기 안에 서늘한 진실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나쁜 소설이란? 이야기 안에 작가의 자기 합리화가 들어간다. 그래서일까? 나는 일인칭 시점 소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삼인칭 소설을 표방하지만 작가의 자의식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무늬만 삼인칭인 소설 역시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렇다. 그것들은 자기 연민이며 자기방어의 소산물이다.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요즘 세상에 내레이션을 맡은 화자의 진술이 얼마나 진부하며 자기기만을 일삼는지를 자주 보아왔다. 중립을 가장한 채 자기연민에는 당위성을 끌어다 붙이고, 타자를 향한 시선에는 근거 없이 객관적인 척하는 기만.
p.186-187

소설은 어차피 팔 할이 구라와 뻥이고 나머지 이 할은 자의식이 낳은 똥일 테니까. 그 말은 모든 소설이 진실을 다 이야기하지는 못한다는 말과 같다. 진실인 척하면서 이야기를 꾸밀 뿐이다. 왜 그럴까? 아무리 소설이 사람 사는 일을 다루고 있다 해도 작가 자신을 다루는 데는 서툰데다 환벽히 솔직하기 힘들기 떄문이다. 여타 일인칭 소설들이 즐기는 도덕가연하고 객관적인 척하는 내레이션의 포기가 이 글의 지향점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벌써 어리바리 갈 길을 잃었다. 187

공유한 추억은 분명 같은데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기억은 각각이었다. 약자는 약자 식으로 나는 내 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193-194

제 식구를 무시해서 얻은 여력으로 타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경멸하는 인간 중의 하나였다. 196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혼란스럽기만 했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약자의 기억과 내 기억은 달랐다. 누구나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볼 수 있는 것만 본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202

기억이란 얼마나 허황된 가공품인지, 얼마나 다양한 변수가 각자의 기억들을 조종하는지, 그랬다. 처음부터 누가 빈지문을 닫았을까 하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그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상황을 모르는 약자와 나만 가로 늦게 의미 없는 수수께끼 놀이를 했다. 각자 자신만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엉뚱한 해프닝을 벌인 셈이었다. 상황과 개별자가 만나 접점에서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엉뚱하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약자와의 조우가 말해주었다.

꽃집을 지나다가 그 꼿을 만났다. 라넌큘러스. 얇디얇은 꽃잎이 겹겹이 쌓인 꽃이다. 꽃잎만 무려 삼백여 장이 넘는단다. 꽃받침마저 줄기에 바짝 붙어 있어 지저분하지도 않고 담백한 느낌이 난다. 백합과 수국 옆에서도 제 기품을 잃지 않는 꽃이다. 넓은 잎과 휘돌아간 매무새는 장미를 닮았지만 꽃잎 개수가 많은데다 활짝 피었을 때 겹겹이 벌어지는 건 국화를 닮았다. 미나리처럼 연한 꽃대에서 저토록 무성한 겹꽃잎을 피워 올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직 꽃 하나만으로 풍성한 자태를 드러내는 그 모양새에 반했다. 212

습지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라넌큘러스.

처음엔 한 두 잎으로 시작했겠지. 하지만 돌봐야 할 저마다의 기억을 윤색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저토록 많은 꽃잎으로 늘어났겠지. 꽃말조차 매혹과 비난이라나. 인간사에서도 매혹과 비난은 이음동의어가 아니던가.

수 겹의 잎으로 피어나는 꽃잎은 한 장 한 장 각기 다른 기억의 조각보를 지닌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조각보를 만드는 사람의 기억처럼 얇디얇은 꽃잎도 각자마다 다른 기억을 품는다. 라넌큘러스 꽃잎이 벌어진다. 잎 얇고 빚깔 만ㅁㅎ은, 수 백 개의 잎으로 번지는 저 기억의 낱 잎들. 그 잎들은 각자가 만든 틀 안에서 재편집되고 수정되고 확산된다. 그렇게 기억의 꽃잎은 피고 진다. 213

창을 열면 햇살보다 먼저 송홧가루가 들어앉곤 했다. 문틀에, 마룻바닥에 앉은 노란 가루는 닦아내기가 무섭게 쌓였다.

마음은 반드시 몸에 흔적을 낸다니까. 216

유효기간 지난 감정의 미망에서 벗어나려면 구체적 행동이 필요했다. 225

생의 환멸을 정면으로 돌파할 에너지가 있는 자만이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 227

누가 뭐래도 간호학은 내면에 억척스러움이 있거나, 어리석지 않는 착함으로 단련된 이가 선택하기 좋은 학문이었다. 환자를 돕고 싶다는 순진한 사명감은 색연필로 장래희망을 그리던 어린 시절에나 필요한 덕목이었다. 228

현실적 고통 없는 지루함. 그래서 인형 작업에도 이렇게 진척이 없는 걸까? 나른한 한 나절,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시든 난꽃의 대궁을 잘라봐도, 더께 낀 창틀을 닦아 봐도, 한껏 미뤄둔 작업대에 앉아 봐도 갑갑함은 언제나 친구처럼 가까이 있었다. 어쩌다 손재주는 있어, 종이 인형을 만들기는 하지만 죽도록 다 하는 열정이 아니었으므로 완전한 프로가 되기도 힘들었다. 허영일 뿐이었다. 뭔가를 부여잡고 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픈 허욕의 뿌리이자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었다. 230

잔잔하고 반복되는 일상일수록 내면의 파고는 높은 법. 232

절망의 구정물에 손 적신 적 없고, 비루함의강 둔덕에 발 디뎌 본 적 없는 무구한 아이. 그건 노력이나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선천적 투명함을 지닌 데다 가정 환경이 받침되는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기질이었다. 235

비관보다는 낙관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엉뚱한 곳에서 고삐를 풀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무릇, 관계는 담백하고 부담이 없어야 오래간다. 부모 자식 간인들 다르겠니.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있잖아. 고슴도치가 제 날카로운 털은 생각하지 않고 사랑스럽다고 서로 가까이 가 봐. 생채기만 나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오래 갈 수 있어. 독사 스무 마리 쯤 길들이는 마음으로 견뎌내야 해. 즐기는 날보다 치욕을 견디는 날이 많은 이유가 뭐겠니? 갈망하는 관계는 오래 못 가. 누군가 말했잖아. 타인이야말로 진정한 감옥이라고. 가족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니? 사무침이 없으면 원망도 없잖아. 누가 뭐래도 그 말은 진리야. 24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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