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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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께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는 가만 아내를 끌어안는다. 응급실 창밖으로 목련 가지가 스친다. 흔들리는 가지를 뚫고 하얀 꽃망울이 끓어오른다. 봄이 멀지 않다. p.34

누구든지 어둠 속 세탁선에 승선해서 마음과 육체의 때를 씻고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라는 것을 손님들에게 설명해주었다. p.44

인간의 욕망은 은밀할수록 솔직해지고 틀어막을수록 대담해진다. p.45

여자는 이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믿지 않기로 한다. 시각적인 것이 얼마나 위선인가를 여자는 깨닫는다. p.51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열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응징이나 경고쯤으로 자위할 참이었다. p.53

시각적인 현상으로 보면 추악한 단면들도 어둠 속이라면 솔직한 욕망이 될 뿐이라고 김은 생각한다. p.59

감정이나 사랑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 자체로 설명할 수 없는 심연이었다. 지미를 거부한 자리에 남편은 새 접견자를 앉혔다. p.67

참하면 지루하고, 오지랖이 넓으면 성가시다. 힐링이 목적인 여행에서는 적당한 무심함이 최고의 미덕인 것을. p.69

라요하네 마을은 호수가 마을보다 컸다. 굵고 곧은 자작나무와 아직 잎이 떨어지지 않은 은사시나무가 호수를 낀 먼 산등성이를 휘감고 있었다. 가까운 호숫가에는 대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가 번갈아 가며 병풍처럼 박혀 있었는데 그 속으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산책로, 그 길에서 잠시 멈추고 바라보던 호수안의 고요. 투명한 물속에서 헤엄치던 크고 작은 물고기 떼. 힐링을 위한 장소로는 더할 나위없는 곳이었다. p.74

겉보기와 달이 모래알 같은 내면의 섬세함이 샌드리를 힘들게 했을까. 보통 때의 털털하고 오지랖 넓은 모습과 대조적인 샌드리의 속내를 알고 나니 지미는 착 가라앉는 기분이 되었다. 샌드리의 거침없는 친화력은 자신의 내면을 감추기 위한 몸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 81-82

호의나 친절은 풀어놓는 순간 지속성을 요구한다. 계속하지 않으면 상대는 변했다고 생각하고 서운함을 느낀다. 자칫 예민한 상대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도덕적 노예가 되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내면을 힐링하려는 자는 섣불리 제 패를 다 내어놓아서는 곤란하다. 힐링하기도 전에 자신과 상대를 킬링하게 될지도 몰랐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만큼 공허하고 허망한 인연을 왜 이리 쉽게 끊지 못하나. 라요하네를 떠날 때까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지미는 밤새 그 생각에 시달렸다.

초콜릿 간식을 나눠준다든가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내면화된 사람 같았다. 된 사람이니 남편까지 잘 만나는 복을 얻었구나, 하는 부러움이 일 정도였다. 사람을 곧이곧대로 신뢰하는, 꼬인 데가 없는 멋진 여행 파트너였다. p.88

천성적으로 인간에 대한 선한 동정과 공감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p.89

결속력 없는 조합이 으레 그렇듯 유효기간 두 달을 넘길까 싶었는데 잊을 만하면 소식이 올라와 카톡방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었다. 이해심 많은 율리아와 오지랖 넓은 샌드리 덕이었다. p.90

타자를 공감하고 탐색하는 일은 불편한 제 안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은 피해가고 싶었다. 타자의 아픔이 제 아픔이고, 타자의 욕망이 제 욕망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서글픔. 삶이 진행되는 한 지속될 그 형벌을 일부러 찾아가며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서로 이해 불가능한 존재였다. 자신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만 이해 가능한 족속이 인간이었다. p.91

제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건 죄가 아니다.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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