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새벽마다 해든 이가 구토를 했다.
어젯밤엔 일 끝나고 집에 오니 아이가 잠을 안 자고 자기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왜 안 자고 있느냐고 하니까 또 토할까 봐 못 자겠단다.
아이는 벌써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나름의 노력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좀 슬펐다.
아이에게 천만번의 뽀뽀를 퍼부어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병원에서 링거도 맞고 약도 먹어서 토하지 않을 거라며 안심을 시켰다.
천만번의 키스 덕분일까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고 나는 남편과 한 편의 영화를 봤다.
<About Fifty>라는 영화였는데 썩 좋았다.
그 나이에 근접해 가고 있어서 그럴까? 공감이 마구 되면서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더구나 아담이라는 역으로 나온 배우의 배우 같지 않은 생김새에 왠지 애착을 느끼며 저 배우 링컨대통령 역할을
맡으면 잘하겠지? 라고 하니까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그 역을 맡기로 했단다.
하긴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면 더 멋진 링컨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구토 사건도 있었지만, 목요일엔 운전을 6시간 정도 했더니 온몸이 말이 아니었고
특히 오른쪽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 새벽의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오늘 아침 11시까지 자고 일어나 남편이 만들어준 아침을 먹고 좀 쉬었더니 회복된 느낌.
남편은 딸아이와 새 학기 문구 쇼핑 데이트를 하러 갔고
N군은 친구들을 만나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나갔다.
집에 남겨진 나와 해든 이는 뭐 하고 놀까? 를 연구하다가
내가 옆에 없어도 잘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를 시켰더니
물감으로 또 한 장의 멋진 그림을 탄생시켰다.
이 아이는 정말 예술가의 영혼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아닐까? 라며 또 혼자 호들갑…. ㅎㅎㅎ
감동을 해가며 사진을 찍어 자랑하고 싶어서(이런 거 올리는 팔불출이라며 즐찾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아이에게 그림을 들고 있으라고 했더니 아이는 이 엄마가 왜 이러나 하는 표정.
외롭게 언덕을 오르는 사람의 고독이 느껴진달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의 표지로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튼, 이 엄마는 무조건 꿈보다 해몽이다. ㅋㅋ
실물로 보면 더 다양한 빛깔이 보이는데 사진이라 그런가 다양한 색이 안 보여 좀 아쉽.
최근에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정말 여러 가지.
그중 가장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작년에 출판된 이 태동 산문집인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선생님들께서 추천한 감동 미학 수필이라는
띠 지의 글을 보고 선택했는데 역시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며 자화자찬.ㅋ
"소소하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찬사"라는 부제가
참 옳다는 느낌을 가지며 읽고 있다.
이 태동 선생님도 책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젊은 시절엔 가난해서 책을 사 읽지 못했지만
찰스 램(찰스 램 하면 건지 아일랜드, 가 생각난다.^^;;)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그러나 찰스 램의 말처럼 가난 속에서 책을 어렵게 사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셨는데
요즘처럼 책을 쉽게 살 수 있는 우리는 다행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책 욕심이 많아지는 반면 오히려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진다.
죽기 전에 그분의 책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죽어도 책의 생명이 이어질 수 있는 일은 고귀하게까지 느껴진다.
이 책에 이태동 선생님께서 인용하신 장 그르니에의 [섬]에 실린 글귀,
저마다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이태동,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김영사, p.42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장그르니에의 [섬]을 25년쯤 전 동네의 조그만 서점에서 찾아 뿌듯한 마음으로
얇은 책을 가슴에 껴안고 와서 밑줄 그으며 읽던 생각이 났다.
지금도 친정에는 내가 샀던 그 책이 비록 색은 바랬지만 건강하게 남아 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내 기억의 한 조각이 이 태동 선생님의 글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기억의 우물을 퍼 올린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막내와 함께 흰죽을 만들어 먹이고 그림을 그리며 한가하게 보낸 어느 토요일의 하루를 기억하겠지.
아주 사소하고도 평범한 하루가 은빛으로 아름답게.
덧) 최민식과 하정우가 출연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를 보며 한국 영화의 미래가 멋지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데 최민식, 연기의 신,,이 아니신지,,,후아~~~~
그밖에 아주 열심히 영화를 봐주고 계시며,
사람은 글보다 직접 만나봐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한 주였다.
이제는 단지 알라딘 지기에서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된 사람들, 내 마음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