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 check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우천 교환권(경기・공연 등이 비가 와서 취소될 경우 나중에 쓸 수 있도록 주는 티켓)이라고 나와 있다. 오늘 비가 안 왔지만, 약속을 못 지키신 *님. 저에게 rain check을 주신거에요,,,담에 만나요. 오늘 만나기 많이 고대했지만,,,^^;;
세실님을 만났다.
단둘이 만나서 지난 번과 똑같은 코스로 옮겨다녔는데 오늘은 지난번과 다르게 또 좋았다.
물론 산사춘 한 병을 나 혼자 거의 다 마셨지만...^^;;
세실님을 기다리면서(그러고 보니 오늘은 기다리는 날??ㅎㅎ)
[단 한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읽었어서 그런지 서문부터 좋았다.(물론 나는 번역 때문에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윤미나작가가 혹시 이 글을 읽고 아부하는 거라 느낄까 걱정,,정말 번역때문에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어휴, 나 진짜 말주변 정말 없다..ㅠㅠ)
세스 스티븐슨이 오손 웰스가 영화(위대한 앰버슨 가the Magnificent Ambersons) 에서 한 말을 인용하는 글부터 나를 빨아들이더니 술술 읽히기 시작했다. 세실님을 기다리던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홀딱 빠져 있었던지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깜짝 놀랐었다는..ㅎㅎㅎ
영화에서 오손 웰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남는 시간은 더 줄어든다."라고. [위대한 앰버슨 가]가 1942년 작품인데도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할 때 지금 우리는 더욱 남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스의 표현대로 "이제 삶은 휙휙 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뭔가 잃어버린다. 비행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 마다, 우리는 그 대가로 일종의 로맨스를 빼앗긴다."
그 글이 나의 공감을 받은 이유는 고작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만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보다 내가 덜 낭만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듯.
그러면서 이 책은 정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ㅠㅠ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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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랜 시간 일했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 가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늘 시키는 음식을 시켜 먹고, 늘 가는 술집에 가고, 늘 만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편안한 삶이었지만, 활기가 부족한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서서히 파묻혔다. 그러나 이따금 질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어딘가에 지긋지긋한 일상을 초월한 삶이 있지 않을까? - 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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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스와 여자친구는 떠난다. 여기저기를 거쳐서 몇 달 후 정신을 차려보니 알래스카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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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알래스카에 있었다. 시험 삼아 저질러본 모험이었다. 우리의 영혼은 더 풍요로워졌고, 손톱만치도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돈이 떨어졌다. 비참한 가난과 치 떨리게 추운 알래스카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몹시 슬펐지만, 우리는 고상한 사회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p.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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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때 돌아가지 않고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면 진짜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갔다.
그리고는 7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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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가게에서 음식을 시켰고, 새로 뚫은 술집에 다녔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렸다.
또다시 편안함과 쳇바퀴 같은 틀이 각질처럼 일상을 뒤덮었다. 우리는 멋진 가구를 사들이고 벽에 액자를 걸었다. 케이블 TV, 무선 인터넷, 위성 라디오까지 신청했다. 어느 모로 보나 나쁠게 없었다. 건강도 괜찮았다. 무아지경에 빠지게 해주는 전자제품에 시들해지면, 갖가지 취할 거리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인생에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성가신 느낌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모험이라든가 즉흥적인 활기 같은 것 말이다. - p.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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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공감하면서 "어머! 어쩜 나하고 똑같아!!"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세실님이 전화를 했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난 사이지만 오늘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
인생에 모험이라든가 즉흥적인 활기 같은 것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은 금세 달아나고 세실님을 향해 손을 힘껏 흔드는 순간 작은 전율이 물결을 쳤다. 내가 읽던 세스의 책은 차 안에 넣어두고 세실님을 위해서 산 세스의 책을 가방 안에 넣었다. 나처럼 세실님도 이 책을 읽고 처음부터 "세스에게 공감하고 매끄러운 윤미나씨의 번역에 빠져들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 언급한 대로 정해진 코스로 움직였지만, 오늘은 좀 특별했다.
단둘만이 만나는 건 처음이었고(지금까지 적어도 셋 이상 만났던 듯..) 또 코람데오의 안주인과 나눈 대화가 인상에 남기도 했다.(그녀는 어쩌면 영감을 받아서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줬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세실님에게 너무 많이 떠벌려서 돌아오는 길 나의 주책에 염증을 느낀 것 말고는,,^^;;
세실님은 오늘은 또 다른 모습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녀는 카멜레온같다는 생각이 지금 잠시 스친다. 멋진 여자 세실님을 독차지한 행운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5시쯤 헤어졌다) 그녀가 보여준 애정과 책이 남아 있다.
세실님은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책을 주셨다. 나와 어울리는 책일 것 같다는 말씀과 함께. 비록 세스 스티븐슨처럼 세계여행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애정 솟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더구나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공간인 알라딘에서 늘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다음엔 세실님과 함께 rain check을 들고서 부산으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