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보카도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이야기다.
아보카도는 남편과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음식재료 이름이 되었다.
오죽하면 남편의 어떤 아이디는 아보카도를 변형해서 만든 이름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였던
아보카도가 남편과 나에게 아주 특별한 몸짓, 아니 음식이 된 것이다.

내가 아보카도를 처음, 생전 처음 본 것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이다.
남편이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아보카도를 대접해 줬는데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음식 앞에서 당황했다.
남편은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반을 썰어 큰 씨앗은 빼고 껍질째 각자의 접시에 덩그러니 올려놓았었다.
밑에 사진처럼..

Andrew Rubtsov, avocado halves

그 옆에 레몬과 소금통이 있었는데 어리벙벙해 있는 나에게 아보카도 먹는 법을 보여줬다.
먼저 레몬을 손으로 비틀어 아보카도 위에 즙을 짠 뒤 소금을 솔솔 뿌려서 수저로 떠 먹는 것.

그 이후로 나는 아보카도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그 이유가 처음 먹어봤는데 신선했다던가,
아니면 그와 나만의 사랑의 음식이라는 오글거리는 생각이든 뭐든 말이다. ( ")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에서 박은주씨와 카사노바가 인터뷰하는 내용 중 재미있는 글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나만의 그 사람'이라는 느낌에 많은 이들이 현혹되어 살아왔지. 중국에도 이런 시가 있네. "나는 대나무 요를 치우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제가 당신을 집에 데려온 밤, 당신이 그 요를 펴는 것을 보았기 떄문이죠."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 사랑의 징표인 양, 하다못해 유행가 가사조차 자기를 위한 노래인 양 느끼는 것. 하지만 어쩌겠나. 그 역시 그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뇌에서 흘러나오는 도파민의 작용에 불과한 것을. 도파민의 양이 줄어들면, 대나무 요 같은 것 따윈 거들떠본 척도 않을 것들이 인간이라네.

-박은주,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 p. 250-


우리의 뇌에는 아직도 도파민의 양이 줄어들지 않았는지
아직도 나는 아보카도를 보면 행복한 느낌으로 충만해진다.

그런데 제 작년에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선물로 구워준 음악이 있는데
그 음악도 내 맘대로 '우리'의 음악이 되었다.

바로 이 노래.




Jens Lekman - Your Arms Around Me

I was slicing up an avocado
When you came up behind me
With your quiet brand new sneakers
Your reflection i did not see
It was the hottest day in august
And we were heading for the sea
For a second my mind started drifting

You put your arms around me
You put your arms around me
You put your arms around

Blood sprayed on the kitchen sink
What's this? I had time to think
I see the tip of my index finger
My mind is slowly creating a link
From your mouth speaks your lovely voice
The best comments i've ever heard
Oh honey, you've cut off your finger
I bet that's gotta hurt

You put your arms around me
You put your arms around me
You put your arms around

I must've passed out on the porch
I'd never seen so many bright stars
When i wake up im in the waiting room
Of the local ER
My hand is wrapped in toilet paper
And my shirts all blood red
I see you standing there like an angel
And i say baby, i must be dead

You put your arms around me
You put your arms around me
you put your arms around me


좀 과장되고 엉뚱한 가사지만 누군가도 우리처럼 아보카도에 얽힌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 자신이 이해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법이니까.
남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 같은 여자들(정의하기 어려운,,^^;;)은 어쩌면 사랑을 'sentimental'한 이유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네델란드 출신의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인 Laura Fygi의 노래 제목(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처럼 말이다. (말하기 어려운 것을 가끔 이렇게 음악이나 그림과 같은 예술에 기대어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어 나같은 인간에겐 정말 다행스럽다는,,^^;;)

지난 30여 년간 사랑에 대해 연구해온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사랑이 뇌의 작용이며,
세 단계를 거친다고 정의했다.
1. 욕망(lust)
2. 끌림(attraction)
3. 애착(attachment)

대부분의 사랑이 애착까지 가지 못하고 욕망이나 끌림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애착까지 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참아주고 하는 그런 시간들이 있어야 하기 떄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세상에 쉽게 이루어지는 게 없다는 말은 진리다.
어쩌면 '사랑'을 이루기란 가장 어렵다는 말일까???

[천개의 사랑]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그녀의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랑love. 그토록 굉장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이 단어는 얼마나 간단한가! 사랑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괴물을 진정시키고,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슬프고 외로운 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고, 터프가이를 감상에 젖게 하고, 포로가 된 이들을 위안하고, 강한 여자를 미치게 만들고, 보잘것 없는 이를 영예롭게 해주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스캔들을 일으키고, 벼락부자를 파산시키고, 왕을 꼼짝 못하게 했다. 이런 사랑의 광대함을 어떻게 한 음절짜리 단어의 좁은 틀에 다 담을 수 있겠는가?

-다이앤 애커먼, 천개의 사랑, p.9-


나도 다이앤 애커먼 처럼 "삶이 수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신비 중에서, 사랑이 제일좋다."

아보카도가 매개가 된 사랑이든 뭐든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능력인 사랑의 힘을 행사하며 살기를...
사랑하는 사람에 한정되는 사랑이 아닌 더 크고, 더 넒게, 더 많이 사랑하기를..
그리하여 우리 영혼의 창고에 사랑이라는 보물로 가득차기를...


아참! 헬렌 피셔의 사랑에 대한 정의 3단계에서 첫 단계인 'lust'그러니까 '욕망'을 누군가는
'참을 수 없는 신경의 가려움'이라고 표현한단다.
정말 적절한 표현 가트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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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01-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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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직 아보카도를 못먹어 봤어요; 실물을 본적은 있던가.. --a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전 엄마가 떡국 끓여 주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 :)

라로 2011-01-25 22:30   좋아요 0 | URL
흑흑흑
무스탕님~~~~~~.
믿으시거나 말거나지만,,,
제가 서재방문수 캡쳐 하면서 무스탕님이 잡아주실거란거 알았답니다!!!!
센스만점 우리 무스탕님~~~.
정말 감사드려요~~~~~~~~~.^^

우리 언제 만납시다.
그때까지 무스탕님은 아보카도 절대 드시면 안됩니다.ㅎㅎㅎ
(저는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 먹고싶어요.ㅠㅠ)

프레이야 2011-01-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시간에 요렇게 사랑스러운 페이퍼 날려주시고~~ ㅎㅎ 점심 맛나게 드셨어요?
참을 수 없는 신경의 가려움, 적절하고 재밌는 표현이네요.
'천개의사랑'은 정말 밑줄긋기 도배하고 싶은 책이더군요.
집착이 아닌 애착, '사랑'은 서로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머리에 확~신선한 공기가 드는 느낌.ㅎㅎ

라로 2011-01-25 22:32   좋아요 0 | URL
'천개의 사랑'은 정말 대단한 책이죠!!그녀는 천재가 아닐까요????ㅎㅎㅎ
집착이 아닌 애착,,,ㅎㅎㅎ
그게 또 어렵잖아요,,,ㅎㅎㅎ
저는 늘 집착..ㅠㅠ

moonnight 2011-01-2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보카도 못 먹어봤어요. 흥. (샘내는 중-_-;;;;;)
전 많이 둔한 편이라 알콩달콩한 커플을 봐도 부럽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 없는데요. 나비님을 보면, 결혼하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일 것 같다고 생각하게 돼요. 물론 나비님같은 분과 나비님 부군 같은 분이 만나서 천사같은 세 아이들을 두기는 참말로 힘든 확률일 거라 생각하지만요. 아, 부러워요. ^^

라로 2011-01-25 22:33   좋아요 0 | URL
진짜요?진짜???
안 믿어진다,,,,문밤님 우리 만나서 아보카도 먹어요!!!
제가 쏠께요!!!응????

2011-01-20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1-01-2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전 아직 아보카도 그림으로만 봤어요.
즉... 못 먹어봤다는 얘기...ㅎㅎ
그런데 어떻게하면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부부사이가 오글거릴 수 있나요?
제게 비법전수가 필요해요.ㅎㅎㅎ

라로 2011-01-25 22:37   좋아요 0 | URL
아니,,,아보카도를 못 먹어보신 분들이 이렇게 많다니!!
고속도로 타고 대전에 와요,,,제가 아보카도 들어간 음식 사드릴께,,,ㅎㅎㅎ

2011-01-21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inPei 2011-01-2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랑이 애착까지 가지 못하고 욕망이나 끌림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난 좀 관점이 다르다라 할까,
1. 욕망
2. 끌림
3. 익숙
내 경험적으로. 대부분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


라로 2011-01-25 22:39   좋아요 0 | URL
익숙이 애착의 다른 말 아닐까요????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 나름인것 같아요,,,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말에 '정'이라는 말도 있잖아요,,,그것도 애착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ㅎㅎ

양철나무꾼 2011-01-21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진짜 부러워요.
음, 그러니까 저희 남편은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예요,끙~ㅠ.ㅠ

전 개인적으로 저런 백허그의 상황을 사랑해요,ㅋ~.

라로 2011-01-25 22:4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양철나무꾼님의 부부는 두 분 다 겉으로 드러내 표현을 안 하신다는 말씀은 아닌거죠???ㅎ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백허그의 상황을 무진장 좋아해요~~~.^^

2011-01-22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2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5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