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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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여왕은, 문득, 자신이 죽으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어본 적이 없는 여왕도 죽고 나면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어질 터였다. 책 읽기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서 때문에 인생이 풍요로워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왕은 분명,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똑같이 확실하게, 그와 동시에 독서 때문에 인생의 모든 목적이 말라붙었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한때 여옹은 자기 의무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최선을 다해 의무를 수행할 각오를 품은, 확고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이제 여왕의 마음은 너무나 자주 두 갈리기만 했다. 책 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이 늘 문제였다. 여왕은 늙었지만, 여전히 실천가였다.

- P117

여왕은 다시 불을 켜고 공책에 손을 뻗어 적었다. ‘책을 쓰는 일은 자신의 인생을 적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여왕은 잠들었다. - P118

여왕은 알게 되었다. 그저 공책의 제목일지라도 뭔가를 적었을 때에는, 한때 책을 읽은 뒤에 그랬던 것처럼 행복을 느꼈다. 단순한 독자로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독자는 관람객과 마찬가지인 반면, 스는 것은 실천이며, 실천은 여왕의 의무였다. - P118

몇 년 전만 해도 여왕은 노먼이 어떤지, 아니, 어느 누가 어떤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여왕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여왕이 전보다 사람의 감정을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노먼이 왜 그렇게 기분이 상했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 - P122

글을 쓰려면 강해져야 하지 않습니까? - P122

글쓰기는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여왕이 혼자서 해나가야 할 일이었다. - P123

"짐은 오랫동안 세상을 보며 여기까지 왔어요. 여든 살에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반복될 뿐이지요. 아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낭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짐에게 아직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손수 버킹엄 궁전을 돌며 전깃불을 끕니다.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말은 비유였고, 요즘에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잘 깨달은 행동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좋겠군요. 어쨌든 낭비를 좋아하지 않으니,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을 머릿속에 간직하게 됩니다. 그 많은 경험이 나에게는 특별하며, 내가 살아온 인생의 열매입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비유하자면, 이벤트에 가깝죠. 그 경험들 대부분은." - P127

책 덕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인생이 풍부해졌습니다. 그러나 책은 거기까지만 짐을 이끌 뿐이었죠. 그래서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익는 사람에서 글을 쓰는, 아니 쓰려고 애쓰는 사람이 될 때가 말이죠." - P128

프루스트는 긴 책입니다. 그렇지만 여름휴가 떄 수상스키를 탈 시간이 있다면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소설 마지막에 화자인 마르셀이 정말이지 별 것 아닌 삶을 돌아보고 그 삶을 소설로 써서 헛되지 않게 하기로 결심합니다. 우리가 읽는 것이 바로 그 소설이죠.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기억과 추억의 비밀이 풀립니다. 감히 짐의 입으로 말하지만, 짐의 삶은 마르셀의 삶과 달리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마르셀처럼 분석과 성찰을 통해 삶을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130

책은, 아시겠지만, 행동을 촉발하지는 않습니다. 책은 대개 자신이 이미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확인시키기만 하죠.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려고 책을 찾습니다. 말하자면 책은 책으로 끝나는 겁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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