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을 읽었을 때처럼 <삼체>를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 <모방범>은 특별히 생각을 안 하면서 읽어도, 그러니까 내가 내 두뇌에 별도의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내 두뇌 시스템이 자동으로 이해를 해서 속도가 제법 빨랐는데 <삼체>는 어려워. 많이 어려워서 책장이 잘 안 넘어간다. 하지만 이 책은 재밌다. 뭣도 모르는데 재밌다. 그런데 어제 읽은 부분은 다양한 책에서 읽어봤던 비슷한 내용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감동해서 울컥했다. 어떤 깨달음이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 aha moment!
"외계 문명 탐사는 매우 특수한 분야야. 연구자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사람 소리도 모두 끊긴 깊은 밤, 이어폰으로 우주에서 전해지는 생명이 없는 소리를 듣지.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그 별들보다 더 영원한 것 같았어. 때로 그 소리는 다싱안링의 겨울에 끊임없이 몰아치는 바람처럼 차가워. 그 고독은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 때로 야근을 마치고 나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마치 빛나는 사막처럼 느껴졌어. 나는 그 사막에 버려진 불쌍한 아이 같고...... 이런 생각이 들어. 지구의 생명은 정말 우주의 우연 속의 우연이라고. 우주는 텅 빈 큰 궁전이고 인간은 그 궁전에 있는 유일한 하나의 작은 개미지. 이런 생각은 내 후반 생에 모순된 감정을 심어줬어. 때로 생명은 정말 귀해서 태산보다 무겁게 느껴지지만, 또 때로는 인간이 너무나 보잘것없이 미미하게 느껴져. 어쨌든 삶은 이런 이상한 감정 속에 하루하루 지나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늙었지...."
- 1부 삼체문제, P. 198-199
"어쨌든 삶은 이런 이상한 감정 속에 하루하루 지나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늙었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늙었지...."
"늙었지...."
"....."
결론은 내가 늙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는... 이렇게 늙어 가다가 우주에서 언젠가 한 줌 먼지로 사라지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