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어릴 때 이런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 내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실제 내가 통과해온 시간은 3백 년도 더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 P70

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순원의 소설은 거의 다 어머니가1
써주고(『수색 그 물빛 무늬) 아버지가 써주고(아들과 함께 걷는길) 할아버지가 써주고(나무』 망배) 친척이 써주고(『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말을 찾아서』) 초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첫사랑』 『강릉 가는 옛길) 고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영혼은 호수로가 잠든다) 동네 고향 사람들이 써주고(순수) 정말 자기가쓴 건 압구정동엔비상구가 없다』 『은비령』 『19세』등 몇개밖에 없다고 했다. - P71

그래, 그렇게 써주는 사람이 많은데도 나는 늘 내 재능에목이 마르고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 P71

"나는 소설을 글로 짓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의 소재,
집을 짓는 재료에 따라서, 초가집을 짓는 것과 기와집을 짓는 것과 양옥을 짓는 것, 또 아파트를 짓는 것들은 저마다 공법이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작품마다 문체와 분위기가똑같아서 몇 줄만 봐도 이것이 누구 작품인지표가 나는 그런 소설을 계속 써나갈 바에는 바로 지금이라도 대관령으로농사를 지으러 올라가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P74

그러나 강원도의 자연을 잘 알기 때문에 무대를 강원도로 잡는 것은 아니다. 은비령」 같은 경우에도 이 작품을 쓸 때까지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 작품을 쓰고 나서 독자들과 함께가봤다. 말을 찾아서』의 경우도 그 작품의 무대가 되는 봉평을 나중에 독자들과 함께 가보고, 서울 가까이에 있는 압구정동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쓰기 전에 사전 조사를 다니지 않았다. 가서 보기는 쉽지만, 가서 보고 나면 오히려 상상력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 P75

그물 자리를 넓게 잡는다고 반드시 큰 고기가 걸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 P76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건 없건, 몸 상태가 어떻건 간에 매일 꾸준하게, 직업인처럼 쓰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시간과청소를 하는 시간 등을 합쳐서 ‘근무시간‘을 정해놨는데, 그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서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 P79

왜 2,200시간이냐 하면, 한국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이 2,100시간 남짓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출퇴근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1년에 최소한 2,200시간 정도는 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내 책을 사주는 독자에 대한 나름의 예의이기도 하고, 그런 숫자를 정해놓지 않으면 마냥 게을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야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그나마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80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나도 영감의 존재를 믿기는 한다. 그런데 영감을 불러일으키려면 먼저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고 본다. 당장 결과가나오지 않아도 뇌에 일정 시간 이상 압박을 줘야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할 때 비로소 뒤늦게 답을 얻게 되는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몇 줄 뒤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 P81

반면 절정에서는 고민해야 할 점들이 많아진다. 폭탄을 하나 터뜨려야 하는데, 그게 앞에서 발전시킨 이야기나 인물과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하고, 소설 전체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폭발력이나 무게감도 있어야 한다. - P83

벌집을 만드는 것은 꿀벌 개체의 개별 의지라기보다는 그종의 유전 정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벌집이 그런 모양이 되는 것은 벌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특성보다는 오히려 수학과관련이 있다. 우리 우주에서는 뭔가를 겹쳐서 쌓아 올릴 때육각형 구조가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소설을 쓰는 작업의 배후에도 그런 거대한 힘과원리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 P85

어떤 때에는 의미의 세계가 실재하고, 내가 소설을 쓸 때잠시나마 그 세계에 들어가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듯한 느낌을 맛본다. 나의 존재는 쪼그라든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다른 세계의 의미를 우리 세계에 전하는 영매 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다른 세계의 타자기나 프린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경우에는 ‘나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이 그냥 스스로를 쓰고 있는 듯하다. - P87

원고는 늘 안 써진다. 잘 써지는 날은 없다. 안 써지는 날에도, 어쩌다 잘 써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이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날 하루 분량의 원고를 쓰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것조차 되지 않으면 빈 모니터를 바라본 채 묵묵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글이써지지 않아도 물러서지도 도망가지도 않겠다는 비교적 담담한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이십여 년 앉아 있었던 게 허리에 큰 무리를 준 모양이었다. - P91

서 잠시 누워 있었다. 거실 창으로 환하고 때때로 붉은빛을띠는 빛이 들어와 바닥에 밝은 그늘을 만들었다. 빛이 있어서 만들어지는 그 그늘을 바라보며 얼마쯤 누워 있다 보면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지금 내게 주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은 곧 지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경이로움과안타까움이 함께 몰려왔다. 그 느낌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 P94

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웠으나 고독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열흘.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마침내 냉장고가텅 비었고 커피도 떨어졌다. - P94

계속 걷다 보면 ‘칼(KAL) 호텔‘이 나왔고 이따금 일층카페에 들어가 밤이 늦도록 앉아 있기도 했다. 그 안전한 실내에서 보는 일몰은 해안가 검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과는 다른 데가 있었고, 자연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호텔 커피숍의 커다란 통창 안에 있을 때가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 P97

세상의 여느 엄마와 딸처럼 별것 아닌 일로, 다른 사람한테는 할 수없는 가장 아픈 말들을 거침없이 주고받으며,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그 돌길을 걸으며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맹렬히 싸웠다. - P99

"나는 전적으로 공간에 매혹 당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작가가 조이스 캐롤 오츠였던가. "공간이 희망이다"라고 말한 작가는 조르주 상드. - P99

인생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여기서 살게 되겠지. 다행히 나에게는 일 년에 한두 차례다른 도시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기고 또 스스로 기회를 만들곤 한다. 나에게는 낯선 공간에서의 긴장과 호기심이 늘 필요하고 나는 그곳에서 내가 본 것, 느낀 것, 나를 불편하게하는 것, 나를 더욱 삶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 것들에 관해 쓴다. 지금도 종종 서서 쓴다.
어딜 가든 나에게는 푹신푹신한 운동화 한 켤레가 필요할뿐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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