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사람들은 속을 알 수 없다는 게 일본 내에서는 정설인 모양으로, 일본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교토의 겉과 속이 다름을 경험한 일이 있나요?"라고 시민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검색창에는 ‘교토 사람들의 속내’가 자동 완성 문구로 뜰 정도다.

웬일로 교토 사람이 칭찬을 한다면 그것은 칭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물며 같은 ‘간사이 지역’으로 묶이는 오사카 사람들조차 교토 사람들의 칭찬을 경계한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중 모르는 사람이 개를 칭찬했다면 그건 무슨 뜻인가? "‘좋은 아침’ 대신 하는 말이 아닐까." 낯선 이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무난한 화제. 그런데 그 상대가 교토 사람이라면? 대답이 달라진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야", "절대 칭찬하지 않아, 교토는."

나 역시 교토 지인의 집을 방문할 때 "뭘 사 갈까요?"라고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들은 적이 없어서, 뭘 좋아할지 고민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아무거나 사 와도 좋다거나 선물이 필요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괜찮아’라는 말을 믿으면 안 된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나는 막걸리를 사 가곤 했는데, 구하기 쉬운 막걸리만 있으면 안 된다. 척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포장의 격을 갖춘 술을 한 병 정도 추가로 준비해야 한다. 물론, 상대와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상대의 마음에 들기도 무척 어려운 일이고.

아무튼 교토에서는 최소한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인상이다. 여행 가서 눈칫밥을 꽤 먹었나 보다, 나.

치리멘은 원래 비단을 평직으로 짜서 만든 직물로, 표면에 시보(잔주름)라 불리는 미세한 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데, 멸치나 까나리 치어 등 작은 생선을 삶고 말리면 그 모습이 치리멘 같다는 데서 같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스웨그 넘치던 그 샌드위치는 내 생애 최고의 야채 샌드위치였다. 맛있는 식빵에 버터를 살짝 바르고 오이와 토마토를 얇게 썰어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리기만 했는데 눈물이 날 것처럼 맛있었다. 입안에서 신선한 달콤함과 수분이 폭발했다! 그 맛을 몇 번이나 집에서 재현하려고 해봤지만 실패했다.

그 샌드위치는 그냥 토마토나 오이로 만든 게 아니고 고다와리(고집하는) 품질의 물건으로 까다롭게 만든 것이었다. 로산진은 식당을 처음 열면서 교토 출신의 요리사만 고용했다고 했는데, 그만큼 교토인들의 미각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냥’ 야채 샌드위치라고 해도 토마토, 오이, 우유식빵 등 까다롭게 고르지 않은 것이 없다. 햄이나 계란은 없어서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맛을 완성하는 데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쓰지 않는 셈이다.

참고로 문제의 죽을 파는 두 가게는 아침죽으로 유명하고 400년 역사를 지닌 교토의 효테이瓢亭와 장어죽으로 유명한 450년 전통의 와라지야わらじや였다. 둘 다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요리들이고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별로라고 혼을 내다니. 아니, 그러면 어딜 가나요…. 어디 가냐고 물어도 별 대답은 안 해주면서 어쨌거나 거긴 아니란다.

결과적으로 알게 된 사실은, 집집마다 직접 담근 츠케모노니, 오랫동안 거래해온 가게의 치리멘산쇼 같은 음식을 귀하게 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그런 음식을 선물로 받았는데 먹는 양도 아주 조금, 시치미를 뿌린다 해도 아주 조금, 간이 센 요리 없이 맨밥에 곁들여 먹어야 맛을 알 수 있다. 그중에 치리멘산쇼는 특유의 알싸한 뒷맛이 있어서, 입맛이 없을 때 밥에 곁들이기도 좋다.

치리멘산쇼를 먹을 때 느끼는 건데, 한국식 반찬문화는 밥도 많이 반찬도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 치리멘산쇼를 비롯해서 츠케모노 모두 다, 일본 식당에서 내오는 것처럼 소량을 곁들여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음식으로는 교토에서 겨울에만 사 먹을 수 있는 스구키가 있다.

조금씩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 그것이 교토식 미식의 비결이다.

여름의 교토에서는 어디서나 물양갱을 구할 수 있다. 동네 슈퍼에서도 팔고 백화점 지하에서도 팔고 화과자점에서도 판다. 파운드케이크처럼 길쭉한 것을 잘라 먹게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젤리처럼 컵 하나 크기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기본 베이스는 팥이다. 말할 것도 없이 냉장고에 차게 해서 먹으면 맛이 좋다. 여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별미가 있는 법이다.

교토는 일본식 디저트 가게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디저트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시간 기다려서 밥은 먹어도 한 시간 기다려서 디저트는 못 먹겠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몇 번 기다린 적이 있기는 하다. 궁금증을 못 견뎌서.

교토 여름 여행을 하다 보면 냉차와 빙수, 파르페류에 열광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와 갔던 여행에서는 쓰러질 정도로 덥다가 폭우가 쏟아지다가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고생이었다. 우린 힘들어서 빙수 가게에 들어갔고, 차가운 차를 한 잔 얻어 마셨다. 그 차가 너무 맛있어서 염치불구하고 세 잔을 연거푸 드링킹한 다음, 주인에게 무슨 차길래 이렇게 맛있느냐고 물어봤다. 주인은 ‘그냥 차’라며 당황했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어느 집에 가도 서비스로 내오는 냉차가 ‘아아, 신이시여. 맛있습니다. 여름 교토 여행은 이 냉차들을 마시기 위해서 떠나는지도요’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걸.

야마모토멘조에 굳이 줄을 서는 이유는 첫째, 매콤한 우동을 파는데 실로 매콤하며 시원해서. 그리고 둘째, 우엉 튀김이 맛있어서다. 우동에 우엉 튀김을 곁들이는 식은 사실 후쿠오카 쪽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데, 우엉의 재발견이다.

야마모토멘조에는 항상 혼자 갔다. 일행을 한 시간씩 줄을 세우기엔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했으니까. 그래서 늘 바 자리에 앉았는데, 바에 앉으면 우동 만드는 과정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이 가게에 있는 우동 담당과 튀김 담당이 둘 다 잘생겼는데, 튀김 담당은 속눈썹이 길고 짙어서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사실 나는 식당에서 사람 얼굴을 잘 보는 편이 아니다. (지금 내가 변명 중이 아님을 믿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야마모토멘조에서 얼굴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땀을 뻘뻘 흘리며 후루룩후루룩 우동 그릇에 세수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매운 정도는 입에 맞으시나요?"라고 꼭 묻기 때문이다. "우동은 괜찮습니까?", "매운 정도는 입에 맞으시나요?" 네…. 입에 꼭 맞네요. 제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맛이 없을지라도 새로운 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한번 마음에 들면 그 집만 파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다. 여행도, 음식도, 사람도. "아아, 다 먹어보고 나니 35년 전 그때 그 집이 내 인생의…" 같은 소리를 할 시간에 좋아하는 집의 메뉴를 여럿 시도하고, 또 와중에 좋아하는 메뉴를 몇 번이고 먹고, 그 식당에 함께 간 사람들을 기억하고(그런 식당에는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가니까), 그 식당에 오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나눈 이야기들을 언제까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에 적립한다. 그리고 밥을 먹은 뒤 차를 마시러 가는 10분에서 30분 정도의 산책을 좋아한다. 함께 하는 외식에서 가장 좋은 건 이 순간인 듯하다.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교토에서는 카레 우동이 더 대중적이고 대체로 맛있는 듯하다. 특히 파 향이 굉장히 좋다.

나란한 이 두 우동집에서 3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릴 고다카라グリル小?가 있다. 여기도 동생이 찾아 데려간 곳인데, 처음 갔던 때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음식이 나온 순간 잠시 정신을 잃은 기억이 선명하다. 세상에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이런 맛이었어!

따뜻한 면! 그게 맛의 핵심인데.

늦가을부터는 굴튀김을 취급하는데 굴튀김도 정말…. (눈물)

로산진의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지금으로부터 거의 80여 년 전에 쓰인 글을 모은 책이다)에는 "요즘 밥 짓는 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유의 한탄이 있는가 하면, "교토 사람 중에서 밥 짓는 방법에 특히 민감한 이들은 상수리나무를 이용하는데, 상수리나무로 밥을 지으면 불 조절이 잘 된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교토 사람의 음식을 둔 유별난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이런 식이다. 생선가게에 도미 눈알만 주문하는 것은 교토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미식을 추구함은 물론 인색하기 때문!

로산진은 "식도락을 즐기는 교토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혼자 즐기려는 버릇이 있어서 가족과도 나눠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생선가게에 도미 눈알만 주문하는 것"이라고 썼다.

가이세키 요리로 식사할 때는 언제나 그날의 식재료와 조리에 쓰인 모든 재료(위에 살짝 뿌린 유자에 이르기까지)가 하이쿠처럼 적힌 기나긴 메뉴를 함께 제공받는다. 손님 쪽에서 주문해 먹는 방식이 아니라 식당에서 주는 대로 모시듯 먹는다. 식당은 애초에 예약을 받을 때, 알레르기 있는 음식이 있는지만 물을 뿐이다. 예산에 여유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경험.

서울에서도 비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일본 음식이 하나 있다. 여름 말고 가을이나 겨울에 특히 떠오르는 이 음식, 바로 마츠바松葉의 니신소바다. 말려서 조린 청어를 넣은 따뜻한 소바인데, 놀랄 정도로 국물이 달다. 디저트도 아니고 식사가 달콤한 맛이라는 데 약간 질린 상태로 먹기 시작했지만, 맛있어서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 눈물의 절반은 꽁꽁 얼어붙은 온몸이 녹으면서 흘러나온 것이기도 하다.

가모가와 근처에 있는 소혼케 니신소바 마츠바 본점?本家にしんそば松葉本店은 믿고 먹을 수 있는 니신소바 전문점이다. 청어가 면을 이불처럼 덮은 채 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국물에 기름이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어는 꽤 큰 크기로 한 덩어리가 나오는데, 면과 함께 청어를 한 입 깨물면 특유의 진한 단맛이 배어 나온다.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정신을 잃고 먹게 된다. 추위도 추위지만 피로에도 달달한 이 국수 요리가 힘을 발휘함이 분명하다. 다 먹고 나면 누워서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바즈시, 즉 ‘고등어 초밥’이다. 교토 출신인 로산진은 "고등어 초밥은 예부터 누가 뭐래도 역시 교토가 가장 유명하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에서 최고라는 와카사若狹만의 오바마小濱에서 봄가을에 잡히는 고등어를 가지고 만들기 때문이란다. 히라마쓰 요코는 교토에 갈 때마다 시모가모진자下鴨神社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나오레花折의 고등어 초밥을 산다고 쓴 적도 있다.

면 요리를 취급하는 식당 다수는 사바즈시를 단품으로 취급한다. 면에 곁들여 한 점 먹을 수 있게 판매하는 식이다. 고등어를 초밥으로 먹는다는 생각만으로 비린내가 나는 것 같더라도 한번 도전해보시길. 냄새가 아주 없지는 않으나 두툼하고 확실하게 씹히는 고등어의 독특한 맛에 놀랄지도 모른다. 고등어 초밥은 다시마로 한 번 말아서 잡내를 제거하는데, 그 다시마를 같이 먹어도 된다.

일본의 연호에 따른 쇼와 시대는 1926년 12월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다. ‘쇼와 시대풍’이라고 하면 그 시기 일본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음을 가리켜, 대체로 흥청망청하는 혹은 잔뜩 멋을 낸 화려한 분위기의 대중문화나 패션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쇼와 시대 후반부라고 해도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전이니까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킷사텐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첫째. 오랫동안 손을 타 반들반들해지고 어두운 색상의 목조 인테리어로 되어 있다.
둘째. (요즘은 금연인 곳도 있으나) 여전히 흡연인 곳이 많기 때문에 나무에 커피 향과 담배 향이 배어 있다.
셋째. 흡연이 가능한 곳인 경우 가게 로고가 새겨진 성냥이 있다.
넷째. 식사나 간식 메뉴가 있으며 나폴리탄 스파게티나 도넛, 샌드위치가 주요 메뉴다.
다섯째. 주인이나 직원이나 정복을 차려입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영난에 시달린 적이 있지만 독학으로 자가 로스팅을 공부한 일이 가게 경영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오쿠노 오사무는 포크 가수이기도 한데 그가 작사, 작곡한 <랑베르 마이유 커피 가게>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고 한다. "오늘의 일을 시작할 때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같은 향기의 커피 한잔."

이렇게까지 자리가 없으면 들고 나가서 마실 일이지만 왜인지 다들 거기 서서 작은 책과 잔을 들고 커피를 홀짝인다. 왜인지 모르겠는 이 광경 자체가 내게는 교토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교토 커피의 오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주인부터 공간, 맛, 손님들까지.

"구르지 않는 돌에는 이끼가 낀다. 부드러워지자."

화장실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비상시에 쓰는 배터리식 손전등을 두고 있었다. 사람이 꽤 많았는데도 무척 고요했다. 적막처럼. ‘신용카드를 쓸 수 없구나.’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왜 일본이 여전히 현금 사용을 중시하는지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소한 재난 상황에 대처하려면 현금이 필요한 법이다. 기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언젠가 봄에 교토를 갔을 때, 숙소까지 가는 길에 전차를 몇 번 갈아탔었다. 지상에 있는, 아마도 단바바시丹波橋역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날이 흐렸고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공터가 있었는데, 어림짐작으로 허벅지 높이까지 무성히 자라 있는 풀이 반짝이지 않는 은색 물결을 이루며 바람이 부는 대로 ‘쏴’ 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비 온 뒤의 선선한 바람과 더불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교토에서의 시간이 그런 별것 없는 우두커니의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신물 나는 시간은 자연재해와 인파, 웃돈을 얹는 관행이 자리 잡은 성수기(벚꽃철과 단풍철에는 같은 호텔이라 해도 가격이 인상적용되는 경우가 많고, 일단 빈방이 없다)에 대한 짜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대는 결과와 다르다. 여행은 늘 그렇다.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에는 위대한 감독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첫째, 장기적으로 보면 행운과 불행은 상쇄된다. 둘째, 언제나 내일이 있다. 셋째, 모든 선수를 똑같이 만족시킬 순 없다."

말보다 행동이 어려운 잠언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 혹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언제나 만족할 수는 없다.’ 혹은 ‘모든 순간에 만족할 수는 없다.’

부디 나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타협하지 않는 똑똑한 일상을 밀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까짓것, ‘언제나 내일은 있’고 ‘장기적으로 보면 행운과 불행은 상쇄’된다. 위대한 야구 감독이 아니라도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명심할 만한 잠언이다. 그리고 버리는 신이 있으면 줍는 신도 있다. 혹은 버리는 신이 있어야 줍는 신도 있는 법이다.

2019년 봄 서울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