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한 벚꽃나무 숲속의 비밀은
지금껏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고독’이라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사카쿠치 안고,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웅진닷컴) 중에서

교토를 사계절 동안 즐기는 교토인들의 이벤트는 여럿 있는데, 봄의 꽃놀이, 여름의 기온마쓰리와 불꽃놀이, 가을의 단풍, 겨울의 추위 등이다. (계절별 보기 중에서 어느 하나가 이상해 보인다면 그것은 당신의 기분 탓이다.) 그중 내가 가장 여러 번 참여한 것이 바로 꽃놀이다.

교토에 꽃이 없는 계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5월쯤 되면 마루야마 공원에 겹벚꽃이 지천이다.

일본에서는 3월쯤 벚꽃의 개화 시기를 알려주는 벚꽃 지도가 뉴스를 통해 공개되는데, 이 지도를 믿었다가 낭패를 본 일이 적지 않다.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면 일찍 만개해버리고, 비가 한번 내리면 순식간에 지며, 춥고 더운 날씨가 반복되면 이파리와 꽃이 동시에 돋아 어수선하다. (이것 역시 인간의 관점에서 하는 어리석은 말일 뿐이겠으나, 기대와 다른 광경에 마음이 에는 걸 막을 순 없다.)

료안지로 말하자면 들어서는 초입부터 넓은 연못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특히 벚꽃철의 료안지는 품종과 농담이 각기 다른 분홍의 벚나무가 장관을 이루어낸다. 봄볕에 어울리는 분홍 하늘 아래 서는 꿈 같은 경험도 할 수 있다.

일본 정원의 작정 철학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데 있다. 나무를 둥글게 깎아 모양을 다듬거나 뒷배경을 차단해 정원을 좀 더 통제 안에 둔다. 키 큰 나무들을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경우도 많다. 한편 중국은 자연에 근본을 두되 자연보다 나은 형태를 만들고자高于自然 하고, 한국은 담양 소쇄원처럼 지형을 살려 정원을 조성하고 건물을 올린다. 이것을 인지제의因地制宜라고 한다.

다소간의 이끼는 있으나 물을 쓰지 않는 가레산스이. 하지만 물길처럼 보이도록 자갈밭 모양이 잡혀 있어, 크고 작은 돌들이 전부 섬처럼 보이는 가레산스이. 이것은 ‘바다’다.

어디서 보아도 자갈 정원에 놓인 열다섯 개의 돌을 한 번에 볼 수는 없다. (어떤 지점에 서도 안 보이는 돌이 반드시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가레산스이는 더 신비롭다. 깨달은 자만이 열다섯 개의 돌을 전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깨닫지 못한 인간임을 스스로 잘 알아 굳이 열다섯 개의 돌을 한눈에 보고자 애쓴 적이 없다.

하지만 갈 때마다 돌이 전부 보이는 위치를 찾아보려고 요란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을 항상 발견하기 마련. 이봐, 그러지 않아야 깨닫는 거라고. 열다섯 개의 돌을 한 번에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평생
몇 번이나 벚꽃을 볼까요.
─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가는 마을》(봄날의책) 중에서

언제나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 이 겨울은 마지막일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여름방학이 끝날 때, "여름방학이 얼른 다시 오면 좋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게 "그래도 이 여름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을 한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없다. 한번 지나간 여름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벚꽃을 보러 꼭 교토에 갈 필요는 없다. 일본 어딜 가도, 그 동네만의 벚꽃 명소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시노에 사쿠라가 만개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을 정도다. 두말이 필요 없다. ‘요시노에 사쿠라가 만개했다.’ 그것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명승지만큼이나 많은 사슴으로도 유명한 나라 지역 최고의 여행서는 언제나 온다 리쿠의 손끝에서 나온다. 이야기는 나라의 구석구석을 돌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벚꽃 만발한 산속 작은 절에서 일어나는 오싹하고도 신비로운 기적 같은 일, 판타지가 이루어질 것 같은 스펙타클이 요시노산에 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기에 이만큼 어울리는 곳은 또 없으리라. 즉, 온다 리쿠가 표현하는 노스탤지어는 실재하는 곳에서 시작해 실존하지 않는 것들을 불러내는 것으로 완성된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요시노산에서라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곳이다….

히데요시는 "이처럼 아름다운 벚꽃은 몇 년이고 봄이 돌아와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영화도 이 벚꽃의 아름다움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달 뒤 히데요시는 병으로 사망했다.

장마철에는 여행을 피하는 편이다. 신발 신기가 영 쉽지 않아서. 운동화는 금방 젖고, 샌들은 신고 다니다 감기로 몇 번 고생한 터라 그렇게 됐다. 그러다가 장마철에도 여행을 다닐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 연유는 수국 보는 즐거움에 눈을 뜬 데 있다.

6월의 교토에 있다면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바로 미무로토지三室?寺다.

미무로토지는 한 해의 반 이상이 꽃으로 그득하다. 먼저 이른 봄에는 철쭉이 언덕 가득 피어난다. 4~5월에는 석남화가 1천 그루, 5월에는 다른 종의 철쭉이 2만 그루 가득 핀다. 계절이 바뀌는 6월에는 수국 1만 그루가 차례로 만개해 ‘초여름의 정원’이라 할 만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6월 말에서 7월 중이라면 미무로토지에서 연꽃이 피기 시작해 여름의 끝인 7월부터 8월까지 본당 앞에 백 종류가 넘는 연꽃이 개화한다.

수국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운동화 속 퉁퉁 부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언젠가 젖은 발을 방치해서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감기에 걸려도 앓고 말지 뭐! 하고 호언장담하던 때의 내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쳐가는 바람에도 옷깃을 여미며 귀가를 서두른다. 장마철의 즐거움에는 리스크가 있다. 개도 안 걸리는 여름 감기라는.

남의 아이는 예쁘다. 저렇게 부드러운 뺨을 가진 아이는 어른이 되어 연애 상대를 괴롭히는 존재가 되고, 배우자를 못살게 구는 사람이 된다. 혹은 혼자가 제일 좋은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의 인간이 되든, 모든 게 바른 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날에는, 젖은 운동화를 신고 걷는 일조차 ‘아주 좋다’ 싶어지는 것이다. 내리는 이 비가 아주 좋다고 말한 날이 있음을 나중에 꼭 기억해야지.

교토에는 아직
푸르른 녹음이
무성했는데
단풍이 지는구나
시라카와 관문
─ 미나모토 요리마사

입구에서부터 이미 사진 찍는 사람들로 만원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다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에이칸도.

있었다.
수이메이水明, 즉 맑은 물이 햇빛에 비쳐 뚜렷이 보인다는 교토는 물이 좋고 풍부해서 두부로 유명하다. 난젠지 앞에는 그 유명한 두부 요릿집 준세이順正가 있는데, 두부만큼이나 정원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 구경을 하는 일이 큰 즐거움이다. 비라도 오는 날엔 정원을 보고 영영 앉아 있고 싶을 정도다.

언젠가 교토에 사는 주부에게 ‘일본에서는 생두부도 많이 먹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일본에는 생두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단다. 두부 자체를 이미 요리한 음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부를 따로 조리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해도 달게 해서 디저트로 먹는 중국식 안닌도후나 데워 먹는 유도후처럼 그냥 조리법의 하나일 뿐이다.

기요미즈데라도 고다이지처럼 소중한 것을 안쪽 깊숙이 품고 있다. 표를 내기 전까지는 그 유명한 부타이舞台를 전혀 볼 수 없는 구조다.

세 갈래로 나뉘어 떨어지는 물줄기는 각각 장수, 사랑, 학업 운을 상승시킨다고 하는데, 일본인들도 왼쪽부터인지 오른쪽부터인지 헷갈려서 결국은 세 줄기 물을 전부 조금씩 받아 마시게 된다고 한다. (세 물줄기를 전부 탐내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그러면 효험이 없다는 도시전설도 들은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다.)

여학생들이 할 때면, 친구들이 곁에서 "오른쪽! 왼쪽!" 하면서 도와주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른 돌까지 가는 데 성공하면, 그 연애가 친구의 도움으로 성공한다는 전설도 있는 모양이다. 남학생들이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남학생들은 친구가 다른 돌까지 못 가도록 일부러 엉뚱한 방향을 알려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아, 할 수만 있다면 아르바이트 삼아 좌판을 깔고 연애운 부적이라도 팔고 싶다. 여기는 그런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나는 애인을 생각했다. 지슈진자에서 뽑았으니까 당연히 기다리는 사람=애인. 하지만 그날 마치비토 항목에는 재미있고 처량하고 웃기게도 "늦지만, 온다"라고 적혀 있었다. 죽기 전에 오기는 하는 건지…? 사람 말고 돈도 받을 생각 있는데. 일곱 자릿수는 되어야 해.

오미쿠지를 뽑은 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 한 번 뽑고 안 좋은 괘가 나오면 묶고, 좋은 괘가 나오면 가져오면 된다. 그리고 좋은 괘가 나올 때까지 절을 옮겨가며 뽑으면 된다. 좋은 운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에는 돈이 든다. 그러니 오미쿠지가 절로서는 쏠쏠한 수입원이 되는 셈.

고요했다. 바람도 없고 나무도 흔들리지 않고,
그림 앞에 있는 것 같았다.
─ 마스다 미리, 《영원한 외출》(이봄) 중에서

머무는 내내 나는 입을 떼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매일 저녁 숙소에서 목욕할 때 목욕 시간을 체크하는 종업원 아주머니의 부름에 대꾸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계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셋이 부엌에 둘러앉아 술을 한잔하게 되었고, 그간 두 사람이 나를 ‘조용한 이씨’라고 불렀음을 알게 되었다. 조용한 이씨…. 공포영화에 나오는 산장 주인 같지 않은가? 마음에 든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어느 절을 갔는데, ‘특별 배관’이라는 네 글자를 맞닥뜨렸다면 운이 좋은 날이다. ‘배관’은 사찰이나 궁, 보물 등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관람한다는 의미이다. 그 앞에 ‘특별’이 붙었으니 플러스알파가 있다는 뜻이다. 즉, 통상 문을 열지 않는 귀한 장소나 시간에 관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말이다. 벚꽃 철이나 단풍철에 라이트업을 하는 절에는 저렇게 ‘특별 배관’ 안내가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특별 공개’도 당연히 같은 뜻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다들 마음에 담으려고 하염없이 정원을 응시하며 소리를 죽인다. 사진을 찍으며 무엇을 놓쳐왔는지, 사진 촬영이 금지된 낙원에서 실감한다.

하누키 씨가 취기에 몸을 맡긴 채 히구치 씨의 등에 업혀 조용히 있자 사람들은 그녀를 ‘잠든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 하누키 씨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다른 사람의 맥주를 "네 것도 내 것"이라며 마구 마셔대고, "본토초 최고"라고 외치며 내 뺨을 핥았습니다. 눈을 뜬 사자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 모리미 도미히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작가정신) 중에서

나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맥주 한 잔을 곁들이거나 숙소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 이외에 술을 마시러 어딜 찾아다니는 인간형은 아니게 되었다. 원래는 그랬지만 이제는 아니다. 술자리를 즐기지 않게 된 지 오래기 때문에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을 때면, 교토의 밤에 대한 부분들이 다소 혼란스럽다고 생각했을 뿐,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와 더불어 모리미 도미히코의 기묘한 청춘 모험담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로, 작가의 능청스런 수다가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무슨 뜻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 책 제목은 이야기 속 술꾼이 아가씨에게 해주는 충고인데, 그 말처럼 아가씨는 참으로 부단히 발을 놀리고 청년은 참으로 부단히 허탕을 친다.

이 책을 보면, 1년 정도 교토에 살면서 밤의 골목길을 쏘다니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교토가 이렇게 판타지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나….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다.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해 교토 시내에 도착하니 때는 이미 밤. 식사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식당 소바도코로 오카루そば?おかる로 향했다. 기온 뒷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뭐랄까, 내가 교토에 가는 이유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다.

생선 등으로 차린 가정식 요리인 오반자이 집에 들어가서 굉음 없이 술 한두 잔 기울이는 일도 가능하지만, 그날은 ‘걸어서 지나가기’라는 미션 자체의 난이도가 높았다.

낮의 오카루와 밤의 오카루, 낮의 본토초와 밤의 본토초. 생각해보면 다른 얼굴이 아닌데 전혀 같아 보이지 않는다.

더우나 추우나 가모가와 강변에 바보들처럼 나란히 앉은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아아, 정말 짜증 나는 풍경이구나 하고 생각했었지. 그런 것들은 물대포로 싹 쓸어버리면 좋겠다 싶었어. 하지만 아니었어. 실은 부러웠거든. 나도 언젠가 저 속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야.
─ 마키베 마나부,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노블마인) 중에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참 다들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인간은 다 다르다고. 우리는 그저 교복을 입고 있어서 비슷해 보일 뿐이라고. 서른을 넘기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참 다 비슷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안 따르는 사람, 사랑에 빠지기를 즐기고 그 외의 사정은 잘 돌보지 않는 사람, 나이 들수록 나이 어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착한 척 하지만 욕망이 너무 커서 늘 휘청거리는 사람.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수박 냄새 같은 건 아침이든 저녁이든 물바람에 묻어 있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가모가와니까.

낮에는 이렇지 않다. 낮에는 단추를 주웠는데 어쩌지 못하고 소맷부리에 넣는 심정이 되지 않는다.

조명 자체가 적당히 낮은 조도를 유지한 밤의 기온 뒷골목을 걷다 보면, 정말 달밤에 단추를 줍는 기분이 든다. 단추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나 자신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이런 밤의 시간에나 잠깐 허용될 뿐이다. 해가 뜨면 그런 감정은 소맷부리에 집어넣는다. 누군가는 버리는 것이지만 나는 버릴 수 없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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