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모로칸 룸El Moroccan Room에 들어가고 싶어서 끈질기게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젠더, 섹슈얼리티, 미술, 음악, 저항. 이 모든 게 그 사람 덕에 더 큰 의미를 얻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결정하는 데 더 큰 자유를 얻었다.

카리스마 있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 덕에 내향적이던 어머니와 대장은 의외로 빠르게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분스 농장에서 사과주를 과음한 자들, 도를 넘는 사춘기 소년소녀들,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녀석들은 엄한 사랑과 훌륭한 유머를 갖춘 캠프 대장이 다스렸다

난 베이비시터 노릇은 영 별로였지만 그의 아이들을 잘 돌봐 주려 노력했다.

골든 보이가 마지막으로 동생을 만났을 때는 둘 다 50대 중반의 나이였다. 이제 도시 계획가이자 자랑스러운 아버지, ‘골든 맨’이 된 친구는 쿠바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플로리다에 들러 형을 만났다. 그날 만난 형은 오래된 난파선 같은 모습이었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허풍 떠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렇지만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며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 건 변함없었다.

큰 아이가 자기보다 작은 동생을 보호하려는 듯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동생은 마음이 울렁이면서도, 자신이 그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순다섯 살은 너무 젊은 나이였지만 짧은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구나 싶다.

그녀는 바톤 스프링스의 얼음처럼 차가운 에메랄드빛 물에서 매일같이 수영했다. 이 천연 수영장은 한 번 나아갈 수 있는 거리가 800미터쯤 되며 새와 절벽,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개발될 위기에 처하자 사방에서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녀는 관련 위원회의 일원으로 모임에 참석해 자기 의견을 밝혔고, 시 의회에서 이 사태를 강력히 규탄하기 위한 시들을 낭송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악랄한 계획과 성명을 들고 나왔으며 그들의 턱수염 졸업장의 학과목에는 문학도, 윤리학도, 철학도, 예술도 없었다. 하나둘셋, 숨 쉬고. 하나둘셋, 숨 쉬고."

우아했던 할머니는 우리가 함께하는 걸 즐거워하셨다. 다만 사람 많은 곳에 갈 때는 우리와 동행하지 않고 본인의 신용카드를 건네며 저녁을 먹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 ‘플로리다의 유대인’의 100번째 생일은 4대에 걸친 아름다운 여성들이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모여 축하했으며 청바지를 입고 집에서 만든 할라 빵을 가져온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막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집으로 가지 못하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지만. 어쩌면 로비에 걸린 안내문, 마치 필체를 숨기려는 범죄자의 메시지처럼 조각조각 오려서 붙인 글자들이 그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오늘은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계절은 여름. 날씨는 고온 다습. 돌아오는 휴일은 노동절."

어쩌면 내가 말년에 알아야 할 것이라곤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재미난 게 최고로 좋았던, 70년대 형편없는 백인 꼬마들. 그게 우리였다.

그녀가 세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운 게 시동생이 했던 가장 잘한 일이었다. 공놀이도, 바닷가로 향하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도, 한밤중에 호수에서 벌이는 불꽃놀이도 어느 하나 빼먹지 않았다. 험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인자한 새아버지를 모두 겪어본 그는 아이들을 대할 때 오로지 다정한 아버지이기만 했다. 훈육은 아이들의 엄마에게 맡겨야 한다는 정도는 잘 알았다.

그는 마치 두 명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고 물건을 훔치고 몰래 돌아다녔던 어두운 쪽의 자아는 떠나 보내지 못했다.

그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어디에도 속박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은 항상 슬퍼 보였다.

뉴 밀레니엄이 와 있었고 우리의 운은 여러 번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했다.

그가 저 멀리 있었다. 키 157센티미터이며 미니애폴리스 출신인 채식주의자, 여호와의 증인, 달만큼 거대한 천재(가수 프린스를 일컬음-옮긴이).

마지막으로 그를 본 그때는 볼티모어 폭동 직후의 시기였다. 그는 어머니의 날에 평화를 기원하는 콘서트를 열었다. 나는 이게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다는 듯, 나와 내 딸이 앉을 공연장 세 번째 줄 자리에 천 달러를 썼다.

내가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프린스, 마돈나, 키스 헤링, 마이클 잭슨, 그리고 나, 가끔 불러 보곤 하는 이름들이다. 이제 마돈나와 나 둘만이 남아 이곳을 지키고 있다.

나는 몇 주째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찾아대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다른 결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처럼.

2014년 여름,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고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이름을 단 영상이 엄청나게 늘었다. 일단 찬물을 뒤집어쓰고 흠뻑 젖은 희생자는 이 챌린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호명된 사람은 루게릭병 연구소에 기부하거나 몸을 흠뻑 적시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둘 다 했다.

영상 속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으며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남자의 어머니와 절친한 친구가 카메라 앞에서 연설하는 동안, 남자의 머리 위로 얼음물 열네 통이 쏟아졌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다른 영상들은 우리까지 머리가 얼어붙는 기분이라서 지켜보기가 힘들다면, 이 영상은 다르다. 남자의 쇠약한 두 팔, 저절로 비틀어지는 몸, 주름지도록 눌린 목, 너무 이르게 희끗해진 턱수염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 마흔두 살인 그는 14년째 이 병을 앓으며 살아왔다.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최후의 근육을 써서, 미소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남자는 암벽 등반가, 카약 선수, 야생 지역 가이드였다. 두려움 모르는 탐험가였으며 가망 없이 낭만적인 시인이었다. 그러다 병이 찾아왔을 때의 그는 여전히 20대를 벗어나지 않은 나이였다. 처음에는 자꾸 발을 헛디뎠고 이상하게 몸이 허약해졌으며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진단된 병명, 앞으로 모든 걸 잃게 됨을 의미하는 그 끔찍한 음절들의 모음. 그저 운동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웃음도 섹스도 맥주도, 눈을 가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동작조차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 쇠약한 젊은 헤라클레스는 웨일스에 뿌리를 둔 남자들의 계보를 이어받았으므로,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의 축복 혹은 저주를 받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내가 198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했던 소프트웨어 회사의 상사였는데, 불이 난 건물에서 사람들을 구했으며 주말 동안 컴퓨터 언어 전체를 익힌 사람이었다.

얼음물 열네 통. 14년의 한 해마다 한 통씩. 그리고 미소. 잔인한 신들도 지켜보고 있었길 빈다.

오스틴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서른둘이었다.(굳이 나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를 혹시라도 우리의 고등학생 시절이라고 여길까 싶어서이다.)

그녀의 머리칼은 완벽하게 쭉 뻗은, 빛나는 연갈색이었다. 햇볕에 잘 그을린 얼굴빛, 시원시원한 미소, 크고 푸른 눈. 매일 몸에 꼭 맞는 청바지와 잘 다림질한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다녔다. 글씨체는 아름다웠고 사무실은 나무랄 데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비록 컴퓨터 언어를 잘 알진 못했지만 그녀가 만든 프로그램이 얼마나 우아할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각종 양념통들은 알파벳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전생에 풍수 사상을 만든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온화하고 겸손하며 친절한 사람이었고 기민한 투자가였으며 동물 애호가였다. 하루에 두 번씩 자기 책상에 앉아 명상을 했다. 그 덕에 열네 시간씩 내리 앉아서 집중력 있고 정확하게 업무를 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이며 대표인 상사와 함께 밤새 사무실에 틀어박혀 프로그램의 버그를 수정하곤 했다.

그때, 우리의 찻주전자 속에 어떤 폭풍이 일었는지 당신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상사가 동거 중이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마침 그 여자 친구는 부사장이 되고, 그녀는 이제 성공한 변호사가 된 어린 시절의 연인, 즉 남편을 떠나면서 결국 그녀와 상사 두 사람이 결합할 수 있었던 바로 그때 말이다.

나 역시 부사장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고 대체로 분노하는 분위기도 이해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모든 비밀스러운 일을 벌인, 그리고 이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고 자기 삶 전부를 무너뜨린 그녀의 기개. 내가 언제까지나 찬탄할 그것. 그게 사랑이란다, 베이비.

두 사람이 몸담았던 소프트웨어 회사가 매각되면서 그녀는 동네 고등학교의 임시 교사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녀라면 교실은 풍수에 맞추고, 모두에게 채식 컵케이크를 권하고, 아이들에게 초월 명상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62번째 생일이 되었을지도 모를 자리였다. 데크 위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일몰, 마지막 마르가리타 한 잔, 혹은 다섯 잔. 유난히 단정하고 다정했던 사람, 안녕히.

어슬렁거리던 나는 그녀의 작은 침실로 들어갔다. 화려한 색감을 써서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린 그녀의 그림들이 벽마다 걸려 있었고 한쪽에서 그녀가 삶은 달걀을 먹고 있었다. "당신은 늘 삶은 달걀을 먹네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난 두 주 동안 삶은 달걀만 먹었다고. 그때 사람들이 무얼 먹는지 관심이 많은 젊은 엄마였던 나의 눈에는 그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연스레 금욕주의로 나아갔다.

청록색 수영장 옆에서 열린 파티에서 베라크루즈식 생선 요리를 먹고 멕시코 맥주를 마시고 있는 그녀의 친구들은 모른다. 이 떠들썩한 보헤미안 무리에 비하면 그는 조용한 편인데,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지금 술병을 입술에 대고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두렵다.

당신이 만약 늑대인간을 본 적이 없다면, 그 존재를 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시카고에서 온 벌꿀색 머리칼의 소년이 위스키 석 잔과 맥주 세 병을 비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그의 눈이 얼마나 차갑게 번뜩이는지, 목소리가 어떻게 그르렁거리는지, 두 손이 어떻게 오그라드는지 한 번쯤 목격한 다음이라 해도, 아침에 깨어 보니 온몸에 물어뜯긴 자국과 멍이 가득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늑대인간 같은 건 없다고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아니, 내 남편은 늑대인간이 아니야.

두 사람이 남자의 부모님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주위에서 오래된 털 뭉치를 발견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가 바뀔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그녀는 평소와 다른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건 피임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메스꺼움이었다. 늑대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의 다음 여자는 좀 더 똑똑했다. 그가 총을 구입했을 때, 접근 금지 명령을 어겼을 때, 여자는 경찰에 신고했다. 그 후, 늑대 인간은 얼마간 구금되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술에 취한 채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다. 그렇게 두통을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고 그대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온 벌꿀색 머리칼의 소년은 동의했을지 모르겠다.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집을 비운 밤, 그녀의 친구들이 찾아와 그녀와 딸을 픽업트럭에 태웠고,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어설픈 모습으로 오프라 쇼에 출연한 적 있었는데, 마침 방청석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게이였고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당시 쇼의 주제에 딱 들어맞았다. "젠장, 이 남자 동성애자인가 봐."

그녀에겐 멋진 애인이 여럿 있었지만, 소중했던 마지막 연인은 오스틴 싸구려 식당의 웨이터인 스티브였다. 비록 그녀에게 병이 생기기까지 5분쯤 남았을 때 만났지만, 어쨌든 둘은 끝내주게 멋진 연애를 했다.

곧 죽음이 닥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니 참 잔인한 사치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이뤄질지 알 수 있단 데서 기묘한 위안을 느낀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인생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아무 계획도 없었다. 오랫동안 농담처럼 말했지만, 난 뒷문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정문으로 들어오자마자 내가 누굴 들여보낼 수 있을지 보려고 뒷문으로 달려간다."

암이 일흔셋이 된 그녀를 빼앗아갔을 때, 모두가 상실감에 빠졌다.

작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자기 길을 찾는 중이에요."
"네?"
이때, ‘자발적 운동가’는 작가에게 팔을 두르더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이렇게 외쳤다. "요는, 엄마가 아들이 아직 자기 길을 찾는 중이라고 말할 때는 그 대화가 끝났다는 뜻이에요."

그녀는 단 한 문장으로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가짜 대화를 끝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성년이 된 이후의 삶 가운데 결혼한 시절보다 혼자인 시절이 더 길어진 지금, 나는 다른 집 남편들이 보여 준 친절한 순간들을 보물 상자에 모아 두고 있다.

그와 그의 아내는 흔치 않게도 서로 비난하지 않고 헤어졌다. 그때 우리 집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였다.

일터에서 만난 매력적인 금발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그가 약혼반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터놓고 의논해 온 적이 있었는데, 상대 여성이 반지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에 낚싯대를 선물하는 남자랑 결혼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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