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대로 누워 죽지는 않으리라. 어딘가 바위틈을 찾아 눈(目)은 폭풍우를 향한 채 끝까지 어둠 속을 꿰뚫어 보려 애쓰면서 꿋꿋이 서서 죽으리라. 그는 결코 R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그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아주 멀다가 차츰 더 가까워져서 책과 책을 읽는 입술과 머리가 그의 눈앞에 분명히 나타나는데, 비록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의 고립과 허비된 세월과 스러지는 별들과는 동떨어지지만 ─ 마침내 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그 위대한 머리를 그녀 앞에 숙일 때에, 누가 그를 비난하겠는가? 그가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한다 해서?

하지만 그의 아들은 그를 미워했다. 그는 아버지가 다가와 걸음을 멈추고 자기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싫었다. 그가 자기들을 방해하는 것이 싫었다. 그의 의기양양함과 숭고한 척하는 동작이 싫었다. 그의 거만한 얼굴이 싫었다. 그의 까다로움과 자기 본위가 싫었다(그는 거기 서서 그들에게 자기를 보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가 이러쿵저러쿵 감정을 토로하여 자기들 주위를 동요시키고 어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의 완벽한 단순함과 편안함을 망쳐 놓는 것이 싫었다.

페이지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면서, 그는 아버지가 그대로 지나가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의 것을 원했다. 그는 동정을 원했고, 자신의 천재성을 확인받고 싶었고, 그런 다음 다시 삶의 울타리 안에 받아들여져 온기와 위로를 얻고 무뎌진 감각을 되찾고 싶었다.

그는 자기도 삶의 중심에서 살고 있다는, 자기도 필요한 존재라는, 여기서뿐 아니라 온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녀는 뜨개바늘을 휙휙 움직여 가면서, 자기 주위를 둘러보고, 창밖과 방 안과, 제임스를 번갈아 보며, 웃음과 침착성과 유능함으로 의심의 그림자를 몰아내고 그를 안심시켰다

이것이 현실이고, 집은 가득 찼고,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있다고.

만일 그가 그녀를 절대적으로 믿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그를 해치지 못할 거라고

그가 아무리 깊이 묻힌들, 아무리 높이 올라간들, 그녀는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듯 감싸고 보호하는 능력을 자랑하느라, 그녀 자신에게는 이것이 나라고 할 만한 것조차 남아나지 않았다.

가령 온실 지붕에 대해, 그것을 수리하는 데 50파운드가량의 비용이 들리라는 것에 대해 그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의 책들에 대해서도, 어쩌면 그 자신도 짐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의 지난번 책이 가장 잘 쓴 책은 아니라는 것을(그녀는 윌리엄 뱅크스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 그가 알아차릴까 봐 두렵다는 것, 소소한 일상사들을 숨겨야 하는 것, 아이들이 그런 사정을 알아차리고 그 때문에 마음의 짐을 갖는 것 ─ 이 모든 것이 두 음이 한데 섞일 때의 완전한 기쁨, 순수한 기쁨을 앗아 갔고, 마침내 그 소리는 그녀의 귓전에서 허전히 사라져 갔다.

하필 인간관계의 불완전함을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러운 바로 그 순간, 가장 완전한 관계라 할지라도 흠이 있으며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진실에 대한 본능 때문에 남편에 대해 내릴 수밖에 없는 비판적 시각을 견뎌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그녀 자신이 여지없이 무가치하며 그런 거짓말들과 과장들로 인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고통스러운 순간, 행복감에 뒤이어 그처럼 무참히 애태우는 순간, 카마이클 씨가 노란 슬리퍼를 끌며 지나갔다.

그녀가 보기에 명백한 것은 그 가련한 남자가 불행하다는 사실이었다

해마다 피난하듯이 그들의 휴가지로 따라왔지만, 해마다 그녀는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호의를 얻는 데 대체로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가 지나가기만 해도 그 아름다움으로 주위가 환해진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모르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방에 들어가든 아름다움의 횃불을 똑바로 치켜들고 다니는 것 같았고, 그러기에 지친 나머지 좀 덮어 감추려 해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눈에 띄었다. 그녀는 찬사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상을 당한 이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다들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남녀 할 것 없이 그녀 앞에서 잡다한 일들을 다 털어놓으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몸을 사리는 데 마음이 상했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녀가 베풀고 도우려는 것이 모두 허영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본능적으로 남을 돕고 베풀려 하는 것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일까? 사람들이 〈오 램지 부인! 친애하는 램지 부인… 아무렴 램지 부인이지!〉 하고 말하며 그녀를 필요로 하고 그녀를 찾고 그녀를 칭송하게 하려는 것일까?

본능적으로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자기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용렬함을,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흠이 많고 경멸할 만하며 기껏해야 자기 본위인가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라하고 지치고, 아마도(그녀는 볼도 꺼졌고 머리칼도 세었다) 더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하는 모습도 아닐 테니, 그냥 어부와 아내의 이야기나 읽으며 이 예민덩어리인 막내아들 제임스(그녀의 다른 자식들은 아무도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다)나 가라앉혀 주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인가?

문명의 발전은 위대한 인물들에 달려 있는가?

평균적인 인간의 삶은 파라오들의 시대보다 오늘날 더 나은가? 하지만 평균적인 인간의 삶이야말로 문명의 척도가 아닌가?

어쩌면 최대의 선은 노예 계층의 존재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지하철의 승강기 문을 여닫는 사람도 필요하니까.

세상은 평균적인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주장할 셈이었다. 예술이란 인생의 맨 꼭대기에 얹힌 장식에 불과하며, 인생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인생에는 셰익스피어가 꼭 필요하지 않다고.

그것이 그의 숙명이요 그의 남다른 점이었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렇듯 바다가 서서히 잠식하는 땅끝까지 나아가 외로운 바닷새처럼 홀로 서는 것이. 그것이 그의 능력이요 재능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며 바다는 우리가 서 있는 지반을 잠식하는가를 직면하는 것 ─ 그것이 그의 숙명이요 그의 재능이었다.

하지만 그렇듯 말에서 내려 모든 겉치레와 너스레를 떨쳐 버리고, 장미꽃이나 밤톨 같은 전리품을 다 버리고 명성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마저도 잊어버릴 만큼 줄어든 채, 그는 그 고독 가운데서도 허상을 용인치 않고 환상에 빠지지 않게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으니,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윌리엄 뱅크스에게나(어쩌다 한 번씩) 찰스 탠슬리에게나(비굴할 만큼) 또 이제 그가 잔디밭 끝에 서 있는 것을 바라보는 아내에게나, 깊이, 존경과 동정과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마치 수로 바닥에 박혀 있는 말뚝 위에 갈매기들이 올라앉고 파도가 부딪쳐 오르는 광경이, 명랑한 선객(船客)들에게 물살 속에 홀로 서서 물길을 표시하는 임무를 다하고 있는 말뚝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품게 하는 것과도 같았다.

비참한 세상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야말로 정직한 사람에게는 가장 비열한 범죄나 된다는 듯이.

사실 그는 대체로 행복했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고 자식들도 있었다

사실, 그는 어쩌면 할 수도 있었을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변장이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터놓기 두려워하는 자의, 이게 내가 좋아하는 거고 이게 나라는 사람이오 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의 피난처였다.

왜 항상 칭찬이 필요한지, 왜 사상에서는 그토록 용감한 사람이 인생에서는 그토록 소심한지, 얼마나 이상할 만큼 존경스러우면서도 가소로운지.

아무리 잘나가던 사람도 어떻게든 넘어지는 법이다.

그는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우뚝 멈춰 서서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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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4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등대로 읽기 화이팅!!!

라로 2022-01-24 17:2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덕분에 열심히 읽고 있어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