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김치볶음밥
방금 12시가 넘어가서 이제 화요일이 되었다. 일요일은 원래 일을 안 하는 날인데 가끔 매니저가 나를 일요일에 일하도록 스케줄을 변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주 일요일이 그랬다.
일요일 아침 교회를 가기 전에 해든이가 오늘 몇 시에 일을 하러 나갈 거냐고 묻기에 오후 5시 30분쯤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갈 계획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나를 위해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예전에도 해든이가 만들어 준 김치볶음밥을 먹은 적도 있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맛도 있어서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자면서 다 까먹었다.
5시 30분에 알람이 울려서 부스스 일어나, 일요일에 일 안 하는 날인데 일을 해야 하니까 짜증 난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가서 볼일 보고 나오니까 해든이가 어느새 화장실 앞에 서 있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잡아 끈다. 김치볶음밥 먹으라고. 사실 방금 일어나서 그런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끄는 작전을 썼다. 일단 엄마 씻고 병원 갈 준비를 하고 먹겠다고. 그리고 준비를 하고 나갔더니 부엌의 아일랜드 위에 팬에 담긴 김치볶음밥이 제대로 볶아지지도 않은 상태로 지저분하게 있어서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겼지만, 아들이 만든 것이니까, 더구나 나를 위해 아침부터 생각을 하고 준비하고 기대하고 엄마를 기다리고,,, 그런 것을 생각하니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면서 만들었다는. 사실 집에서는 이어폰을 거의 끼고 사는 듯. (물론 바지는 잠옷 바지;;;)
근데 딱 보는데 맛이 없어 보였다. 지난 번엔 장식을 하고 예쁘게 담아줘서 보기도 좋았는데,,, 더 맛이 없어 보인 이유는 김치! 뭐가 저렇게 큰지.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남편이 지난번에 한국 마트에 가서 포기김치를 사 왔는데 그거를 가위로 대강 잘라서 넣었다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놔~.ㅠㅠ 프레젠테이션이 완전 엉망,,ㅠㅠ 밥통이 열려있기에 "너가 밥을 한 거야??"했더니, "아니란다. 밥이 있나 밥통을 열어보니까 없어서 햇반을 사용했다고. 음 밥통에 밥이 없으면 뚜껑을 닫아야지 왜 아직도 열려 있는 거니??ㅠㅠ (닫고 여는 거 예민한 엄마;;;) 암튼, 햇반으로 만들었구나... 암튼 김치 엉망으로 잘린 모습 때문에 맛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나는 음식 옆에 뭐 흘리고 그러는 거 싫어하는데 어떻게 스토브에서 옮겨와서 수건 위에 올렸는데 옆에 밥이 떨어져 있을까?? 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스토브 옆에 밥이 떨어져 있던가 해야지????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하지만,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14살 저 소년의 마음이 너무 이뻐서 작은 그릇에 담아서 나란히 앉아서 먹었다. 나 마시라고 물도 준비해 줬는데 사진엔 안 보인다. 김치를 자르면서 다음엔 김치를 작게 잘라서 볶으라고 말하면서 한 입을 먹는데,,, (이 글 쓰면서 예전 해든이가 처음 만들어 준 볶음밥에 대한 글을 봤더니 거기도 내가 김치 작게 자르라고 했는뎃!!^^;;) OMG!!!!! 내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어!@@ 뭐지? 왜 더 맛있지??? 햇반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김치를 막 잘라서 넣어 그런가???? 아니면 막 흘리면서 만들어서 그런가?????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두 번 담아 먹었다는 건 안 비밀. ^^;;;;
뻔뻔하지만, 해든이에게 너 이거 말고 다른 것도 만들 줄 아는 거 있어? 했더니 그렇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면서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본다. 아 놔~~~. 뭐 먹고 싶냐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너 라비올리도 할 줄 알아? 엄마 라비올리 좋아하는데!"라고 했더니, 그건 쉽단다. 아 웃겨!! 쉽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서 다음에 일하는 날 (수요일)에 라비올리 만들어 주겠단다. 기대된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거실에서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까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다 달려있어서 큰 소리로 해든이에게, "그랜마하고 같이 달았니?" 했더니 그렇다고. 속으로 할머니 도와주고 엄마 밥도 만들어 주고 다 컸구나 생각하는데 남편이 나타났다. (집이 좀 크다 보니..ㅋㅋ) 크리스마스 장식 해든이가 너네 엄마 도와서 다 달았다고 말해주니까,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하길 자기가 자고 일어나 보니 해든이가 혼자 다 달아놨다고. 또 가슴이 뭉클. 녀석 나 같으면 내가 혼자 다 했다고 자랑할 텐데... 정말 날 안 닮았다. 저런 건 나 안 닮아 너무 다행이라능.
그렇게 기분이 좋아져서 차를 타려고 나오니까 밖은 어둑어둑하고 우리 집은 집 안이나 밖이나 크리스마스 장식이 다 되어서 반짝반짝 예뻤다.
집 안은 막내가 장식을 했고, 집 밖은 엔 군이 와서 다 장식하고 갔다. 지붕 위에까지 올라가서 리스(wreath)를 달고 했다고. 저 지붕 안 보이는 쪽에도 다른 리스가 있다는. 우리 집 일꾼 엔군 생각난다. 집에 와서 엄마랑 밥도 못 먹고 고생만 하고 간 착한 아들. 맴이 아프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잉여엄마라는 생각이 드네.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하지 않는 엄마. 에잇. 나도 잘하자. 잘 할 수 있어!
여전히 읽고 있는데 진도가 안 나가서 매일 한두 페이지 읽는 것 같구나. 하아~ 좀 지나면 진도가 나가겠지?
<침대와 책>의 정혜윤 씨가 쓴 책인 줄 알았더니 다른 정혜윤.
음악 나오는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듣는지도 궁금하고.
이 책 찾으며 <침대와 책>의 정혜윤 씨가 쓴 <마술 라디오>라는 책도 알게 되었는데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
사실 내 독서 취향은 <닥터 지바고>같은 소설이 아니라 가벼운 에세이였는데.. 나이 들면서 많이 바뀌었구나.
암튼 잉여엄마인 나는 아들 밥 안 챙겨주고 밤늦게 알라딘 들어와서 논다.ㅋ
근데 해든이가 만든 밥 뽀샵이라도 할 걸 그랬나?? 아니면 밥 흘린 부분은 자를 걸 그랬나? 지저분해서 그런가 밥 색이 넘 맛 없어 보인다눙.ㅋ
용두사미로 끝난 계획들, 실현되지 못한 약속들, 이루지 못한 꿈들, 기대와 상상과는 달랐던 현실들까지도 나는 지금 끌어안고 있어. 우리는 이룬 일과 이루지 못한 일, 혹은 실제로 존재했던 일과 꿈과 환상 속에서만 존재했었던 일의 합성물이 아닐까 싶어. 어쩌면 꿈과 환상 속에서만 존재했었던 일에 더 열렬했을 수도 있지.
<마술 라디오> -10
암튼, <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의 작가 정혜윤 씨처럼 나도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고 상황에 맞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그러겠지??
그럼 오늘 내가 들었던 곡 중에 한 곡.
Justin Bieber - Mistlet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