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7개월 차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간호를 하면 할수록 내가 왜 간호사가 되겠다고 깝쳤을까? 그런 생각을 아주 종종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에 대한 사명감과 숭고함에 더해진 책임감의 무게를 점점 느끼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일을 하러 갈 때 아주 짧게라도 속으로 기도를 합니다. 가장 짧은 기도는 "오늘 하루도 도와주세요." 정도의 밑도 끝도 없이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기도인데, 그러고 보니까, 어렸을 때 친구의 아버지가 택시 운전기사셨는데 그 친구 아버지의 택시 안에는 천사인듯한 미소년/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하는 모습인데 거기에 "오늘도 무사히..."라는 글이 쓰여있던 조그만 카드가 거울에 매달려 있던 것이 생각납니다. 


일을 시작하면 환자가 배정이 되는데 환자의 중증을 보면서 오늘 하루가 어떻게 전개가 될지 대강 감이 옵니다. 중증의 환자를 맡게 되면 하루가 고되겠구나 느껴지고, 그보다 경증의 환자를 맡게 되면 오늘은 좀 편안하게 일을 하겠다는 감 같은 것이 오지요. 중환자실은 두 명의 환자를 돌보는데 한 명의 환자만 배정이 되는 경우는 응급실이나 다른 유닛에서 상태가 악화된 사람들 중 누군가를 받게 되는 거라서 그런 날은 환자를 받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복불복이기도 하지만, 환자에 따라서 편한 업무가 될 수도 있지만, 고된 업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어제 일을 하러 갔더니 저만 1명의 환자가 배정되었더군요. 그러니까 받은 한 명의 환자에게 내가 해 줄 것을 다 해줘서 중환자실에 올 환자에게 할애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 환자의 상태가 나쁘면 한밤중이라 전화 안 받고 싶어 하는 의사들에게 뻔질나게 전화해서 오더를 받아내고 그것을 입력하고 받은 오더대로 환자에게 해줘야 하는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해야 하는 날인데, 그 환자가 내가 돌보는 사이에 상태가 더 나빠져서 코드 블루가 오게 되면 그때는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어서 집에 오게 되죠. 오늘 아침이 제게 그런 날이었습니다.


긴 얘기 짧게 하자면, 여자 환자를 받았는데 간에 문제가 있어서 눈과 피부에 황달이 심한 사람인데 거기다가 복수(腹水)인 사람이었어요. 정말 거구인 사람의 배가 개구리배처럼 불룩 나와서 환자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나왔는데, 이 환자가 숨을 잘 못 쉬게 되었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간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환자의 상태가 급속하게 나빠진 경우라 저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중환자실에는 남편과 함께 왔는데 남편이 어떻게 저런 남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절절하게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아무튼 환자에게 BiPAP이라는 기계를 이용해서 환자가 좀 더 쉽게 숨을 쉴 수 있고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려고 마스크를 씌우려고 하니까 남편이 마스크 쓰기 전에 키스하고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저와 RT눈물 두 방울씩 흘렸;;;) 암튼, 그래서 그렇게 하고 남편은 떠났는데 새벽 2시부터 이 환자가 마스크를 벗어 버리려고 하고 땀을 많이 흘리고, 더구나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 시작하고,,,결국 기관삽입을 하게 되었어요.


기관 삽입은 환자나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아침 5시에 환자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은 모르지만, 만약의 경우 기관 삽입을 하게 되면 동의를 하겠냐고 물어봤어요. 남편은 또 울면서 동의를 했어요. 그러고는 ABG라는 테스트를 하고 기관 삽입 하기로 결정이 되어 순식간에 응급실 의사가 와서 기관 삽입을 했어요. 기관 삽입을 하면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 저처럼 신참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계속 물어보면서 해야 하니까 더 정신이 없습니다. 다른 간호사들도 도와주고 싶어도 다들 자기 환자 돌보는 일로 너무 바쁘니까 도와줄 수가 없는 그런 정신없는 시튜에이션.ㅠㅠ (언제 이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오길) 그 와중에 제 전화를 받고 남편이 중환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겨우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중환자실로 들어오게 하고 환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대강 어떻게 된 것인지 다시 설명을 하면서 진정을 시켰는데, 환자의 문 앞에서 환자를 보던 남편이 다시 펑펑 큰소리로 울면서 환자방으로 들어가고,,,,아,,, 정말 내 가족은 아니지만,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저도 눈물을 참기 힘들었어요. 다 큰 어른 남자사람이 그렇게 대책 없이 우는 모습을 보는 건 현실에서 몇 번 안 되었던 듯..


저는 내일부터 남편과 여행을 떠나는데 제가 돌아오는 날, 그 환자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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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키스
    from 라로의 서재 2021-06-28 15:33 
    어제 결혼 기념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겨우 2시간 눈을 붙이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놓고 3번 방 환자실로 가봤어요. 제가 기관 삽입을 한 건 아니지만, 기관 삽입을 하게 된 그 여성 환자가 어떻게 잘 버티고 있는지, 아니면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궁금해서 가봤는데 다른 환자가 누워있더군요. 일단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서 그 환자가 downgrade 되었나? 생각하고 중환자실 비서 겸 모니터텍에게 물어봤더니 24일에 죽었다고..
 
 
새파랑 2021-06-24 08: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엄청 고생이 많으세네요 ㅜㅜ
즐거운 휴가 보내시면 좋겠네요😊

라로 2021-06-25 21:24   좋아요 1 | URL
가끔 일이 저렇게 힘든 날이 있어요. 😅 덕분에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고마와요 ~~~😊

2021-06-2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8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6-24 17: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생명을 다루는 이들이 출근 전에 자신이 맡고 있는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 하시고 계시다니
쓰러져 가는 생명을 살리는 건 만큼 세상에 더 값진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라로님 남편분과 멋진 여행 보내시고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

라로 2021-06-25 21:30   좋아요 1 | URL
아! 저는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간호사는 아니고 저를 위해 기도해요. 아무 탈 없이 환자를 돌보고 실수하지 말게 해달라는 의미로 도와달라고;;;; 저는 좀 이기적인 간호사입니다요. 🙁
하지만 저도 계속 일을 하다보면 다른 간호사들처럼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희망을 갖어봅니다.
덕분에 어제는 너무 즐거웠어요! 따로 사진이랑 올려볼게용 ~~~!!😊😊😊

mini74 2021-06-24 20: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 잠시 툭툭 털고 여행 즐겁게 다녀오세요. 충분히 즐길 자격 만땅이시잖아요 ㅎㅎ 시어머님 아들하곤 여행 안 가는게 제 룰이지만 라로님 남편분은 뭔가 아직도 로맨틱 하실거같아요. 저희 부부는 아침에 관등성명하고 생존확인 후 충성하며 인사합니다 ㅎㅎ

라로 2021-06-25 21:33   좋아요 2 | URL
헤헤해 제가 좀 열심히 살긴 했지요??🥲 시어머니 아들하고는 여행 안 가시는 군요!!!😂 저는 시어머니하고 여행 안 가는 게 제 룰인데용, 클럭😅 저희 부부는 들 다 유치해서 여전히 로맨틱한 것이 사랑이라고 믿;;; 암튼 미니님은 정말 재치만점세요!!!😍😍😍

붕붕툐툐 2021-06-25 00: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에궁~ 그렇게 사랑하는 부부라니, 저라도 눈물 났을 거 같아요~
라로님 부부도 만만치 않지만요~ 아직도 눈에서 꿀떨어짐~ㅎㅎ 여행 잘 다녀오세용!!^^

라로 2021-06-25 21:35   좋아요 3 | URL
옆에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었어요!! 🥺저희 부부는 아직 그런 일을 안 당해봐서 만만한지 어떤지 검증은 안 되었으나 그런 부부가 이왕이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요. 여행은 즐겁네요. 오길 너무 잘 했는데 제가 새벽에 깨서 이렇게 뒤척이고 있어요.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