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병원에 환자가 별로 없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flexed도 당했다. 당했다고 하니까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병원에 환자들이 별로 없는데 일을 하기로 한 간호사가 다 나올 경우 하우스(병원을 하우스라고 부른다) 스태핑에서 간호사들에게 연락해서 일하러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계속 일하러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돌아가면서 안 나오게 하는 것인데 나에게도 연락이 와서 안 간 적이 있다. 그날 마침 너무 피곤해서 일 안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안 오라고 해서 많이 쒼 났었다는.ㅋㅋ


어제는 일 끝나고 A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A가 어느 동네에 산다고 말했지만, 그 동네에서 사는 곳이 거의 끝자락인지 30분 정도 걸렸다는. 또 집에 오는 시간 30분 정도 걸리다 보니 집에 오면서 너무 졸려서 잠깐 쉬었다 눈좀 붙이고 갈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고속도로에서 내리기 싫어서 계속 달렸;;; 음주 운전보다 졸음 운전이 더 위험하다고 한국에 살 때 고속도로에 있던 광고 생각이 났었음.


A는 우리 딸 H양보다 겨우 한 살 하고 몇 개월이 더 많은 나이인데 너무 멋진 아이라서 그 아이가 살아온 또 앞으로 그 아이가 살고 싶어 하는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감동했다. 가족은 모두 다른 주에 사는데 18살이 되자마자 혼자 캘리포니아로 와서 대학을 다녔고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NP가 되는 것이 첫째 목표이고, 지금 다니는 대학원을 내년에 졸업할 예정이니까 그다음에는 DNP와 DR의 듀얼 프로그램이 있는 과정을 다닐 계획이라 학교도 이미 다 알아봤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들어보지 못한 대학이라서 학교의 네임 밸류가 중요하지 않니? 했더니, "의사에게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어보고 진찰 받는 사람 거의 없잖아."라면서 학교가 뭐가 중요하냐며, 중요한 것은 경력이라고. 음 틀린 말은 아닌데 이 아줌마는 한국 아줌마라 여전히 네임 밸류가 중요해. ^^;;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팍 줄었는데, 그것에 대해 쓴 글이 있다. 갑자기 코로나 환자 3명인가? 4명인가가 하루에 다 죽은 다음부터 코로나 환자가 병원에 안 들어오고 있다. 정말 백신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렇기를 정말 바란다. 코로나 환자가 없으니 다양한 환자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 기억나는 환자는 90세의 옛날 배우였던 할아버지. 내장출혈이 심해서 응급실에 오게 되었는데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왔을 때 내가 할아버지의 중환자실 입원을 맡아서 더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를 응급실 침대에서 중환자실 침대로 옮기는데 밑에 피가 얼마나 많던지...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사람 아직 본 적 없다. 너무 놀라서 허둥지둥 응급실로 돌아가야 하는 간호사 붙잡고 도와달라며 함께 할아버지를 닦아드리고 깨끗하게 해드린 것을 시작으로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닦아 드려야 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니까 바닥까지 뚝뚝 떨어지던 피. 그리고 그 역겨운 피 냄새. 피가 인간의 몸 안에서만 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아무튼 그 할아버지를 3일 동안 돌봐드렸는데, 힘들었지만, 할아버지가 너무 귀여우셔서 재밌게 일했다. 피만 흘리면 괜찮았지만, 할아버지가 넘어지셔서 엉덩이뼈까지 부려져서 오신 분이라 너무 아파하니까 소리를 막 지르셨다. 빨리 이런 자세로 바꿔달라, 저렇게 해달라.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기 전에 가운을 입고 장갑도 여러 장을 끼고 들어가야 하니까 할아버지는 숨이 넘아가는 사람처럼 고함을 질러대고, 나는 나대로 빨리 준비하고 들어가려고 용을 쓰고. 그런데 할아버지는 90세인데도 정신이 온전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인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해도 좀 좋아지면 금방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건 말 뿐일 수 밖에 없어서 또 소리를 지르시곤 했는데 나중엔 내가 할아버지를 놀려드렸다. 소리 안 지르겠다면서 또 지른다고. 나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결국엔 돌아가셨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바란 것처럼 (제발 내가 돌볼 때 돌아가지 마시길) 내가 일 안 하는 날 돌아가셨다. 의리 있었던 할아버지. 전직이 배우여서 무슨 길드 회원이고 그랬다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고통받지 않으시길...


또 기억나는 환자는 52세의 여자 환자였는데 백인이면서 빨간 머리를 세련되게 커트한 날씬한 몸의 환자였다. (날씬한 환자가 돌보기 훨씬 수월하니까 기억함) 이 환자는 좀 불쌍한 케이스였다. 독한 약을 오래 맞아야 하는 환자들은 일반 IV가 아닌 PICC 라인이나 다른 비슷한 라인을 삽입하는데 그 삽입한 것이 DVT라는 것을 가져왔고, 그래서 치료를 하는 과정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서 왼쪽 팔에 (왼쪽 팔에 PICC라인 삽입) Compartment syndrome이라는 것이 생겨서 그 팔을 다시 수술하고,,,아무튼 내가 간호했을 때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병원의 잘못도 아니고 운이 너무 나쁜 경우니까 더 안타까웠다. 그런데 내가 간호하던 날 그녀의 아버지가 방문을 왔다. 죽어 가는 딸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남아있다. 간호가 힘든 경우는 이렇게 감정이 이입될 때인 것 같다. 그냥 기계처럼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니까 자꾸 그런 것들이 보이고, 안타까워 하고,,,,특히 나처럼 오지라퍼는 더욱. 


다른 많은 환자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때그때 기록을 안 하니까 기억을 더듬어야 하니까 나중에 생각 나는 대로 올리기로 하고, 어제 간호한 두 사람. 한 사람은 73세의 할머니인데 당뇨가 심해서 결국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에서 절단을 했다. 절단 한 날 나는 그 할머니를 돌보게 되었다. 무서웠다. 신체의 부분이 훼손되어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사람을 간호한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발가락 정도의 절단이라 그렇게 충격적이진 안았는데 무릎부터 없는 사람을 간호하니까 무척 두려웠다. 솔직히 어떻게 간호를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 CHG목욕까지 다 해드렸다. 아침에 인계 받는 간호사에게도 내가 뭘 했는지 얘기해주고 했는데,,, 나 역시 충격이 컸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그 모습을 잊고 싶은 것 같다.


같은 날 돌 본 67세의 할아버지(라고 쓰지만 67세면 정말 젊은 것 아닌가??ㅠㅠ)는 그전에도 몇 번 간호를 한 적이 있는 분인데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다시 널싱 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세데이션을 내리려고 하면 상태가 안 좋아지니까 계속 중환자실에서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는. 어느 간호사의 말대로 우리 중환자실 레지던트이신 분. 그런데 혈압이 막 내려가서 혈압 상승제를 맞고 계셨는데 내가 CHG 목욕을 해드리고 난 후로 다시 혈압이 막 올라가는 거다.ㅠㅠ 떨어진 혈압은 빨리 올려주는 약이 있으니까 좋은데 올라간 혈압 내리기 너무 힘들다는. 나는 신경 안정제도 투여하고 결국은 몰핀까지 투여했는데 몰핀을 맞으시고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고 왔다. 


정말 간호는 케바케라고 해야 할지,,, 매번 이제 좀 익숙해졌으니까 오늘은 편한 shift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매번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혼내주려는 것인지 늘 시간에 쫓기고 정신없다. 67세의 할아버지 같은 경우는 여러 번 돌봤기 때문에 무슨 약을 줘야 하는지 다 아는데도 늘 환자들의 상태가 변하니까. 다양한 일을 하면서 익사이팅 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간호는 너무해. 베이스 라인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래도 여전히 매력 있는 간호. 


요즘 나는 A처럼 NP가 되어 조그만 사무실을 내서 환자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다. 어쩌면 프님 말씀처럼 지금까지 앞만 보고 너무 달려와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실력과 경력을 쌓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내 클리닉을 내는 작은 소망은 계속 갖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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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5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라로님!
저는 항상 의사나 간호사분들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힘든 일인데 이렇게 열심히 하시고 자기 일에서 보람을 찾으시는 모습 보면서 저도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정말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것 같네요. 힘든일을 하면서 꿈도 가지고 계속 공부하시는 데 저는 오늘도 언제 퇴직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는..... ㅠ.ㅠ
바람돌이 반성 모드입니다. ㅠ.ㅠ

라로 2021-04-15 02:51   좋아요 1 | URL
의료시스템이 한국과 미국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가족들이 간호(?)를 하니까 한국 간호사는 대부분 약만 주더라구요. ^^;; 여기 간호사는 전천후에요. 저는 그게 좋은네요.ㅎㅎㅎㅎ
제 시어머니도 샘이었는데 65세에 퇴직하셨어요,,,근데 후회하시더라구요. 활동성 있는 개인은 그런 것 같아요. 넘 반성모드 하지 마셈,,, 그러기에 바람돌이님 넘 멋지시거든요!!!😍😘

psyche 2021-04-15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라로님 이야기 읽기만 해도 존경심이 마구마구 차오르네요. 매번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걸 내가 제대로 해결해야하고...아 저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깜깜해져요

라로 2021-04-16 17:16   좋아요 1 | URL
그런데 문제는 제가 잘 해결 못한다는데 있어요,,, 저는 아무래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지,,,넘 고민입니다.ㅠㅠ

행복한책읽기 2021-04-15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라로님에 지도 손 번쩍!!! ^^ 67세면 젊은 나이죠. 우리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요. 오라버니라 불러드립시다.^8^ 라로님 꿈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여전히 꿈을 가진 것이 넘 부러워요. 근데 미쿡은 간호사가 개업을 할 수 있어요?

라로 2021-04-16 17:18   좋아요 2 | URL
아저씨라고 불러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오라버니는 좀 소름;;; 제가 아무래도 오라버니 없는 장녀이고, 뭐 등등의 이유로 남자들 호칭 좀 닭살돋아요.^^;;;
아~! 간호사는 개업을 하거나 하지 않는데요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하더라구요) 그거 말고 NP라고 전문간호사는 의사처럼 처방도 하고 진료도 하고 그래서 개인 클릭을 차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제게는 너무 먼 꿈 같아요,,, 아무래도 간호에 제가 소질이 없는 듯,,ㅠㅠ

scott 2021-04-15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로님이 들려주시는 이런 경험들 작가들이 달려가서 라로님에게 무릎꿇고 드라마로 만들어 줬으면[ 라로의 아나토미 ]로!!

라로 2021-04-16 17:1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스캇님은 누구에게나 사랑 받으실 분!!!! 참 좋은 분이에요,,,스캇님!!^^

얄라알라북사랑 2021-05-01 23:19   좋아요 0 | URL
몇 년 안에 그런 일이 분명 일어날 거라고 확신! 영상화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라로님 책이 나올 거라 확신에 한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