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라볶이!!
얼마 전부터 계속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겠다는 해든이. 하지만 우리의 스케줄이 어긋나니까 해든이가 만들어 주는 김치볶음밥을 구경도 못했는데 어제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았고 해든이도 막 만들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지 일하러 가기 전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나에게 만들어 주겠다고.
오히려 처음에 내키지 않아 했던 것은 나였다. 왜냐하면 엔 군의 떡볶이가 생각이 났기 때문에. 작년 이맘때쯤 엔군이 호주에서 코로나 때문에 잠깐 들어왔을 때 녀석도 가족들에게 뭔가 자꾸 만들어 주고 싶어 했는데 엔군이 만들어 줬던 떡볶이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라면이 너무 불어서 퍼지고 계란은 반숙인지 뭔지,,, 아들이 만들어 줘서 감동으로 먹긴 했지만, 아무튼 모성애가 아니면 먹기 힘들었던 떡볶이가 떠올랐기 때문에(먼댓글 참조) 해든이보다 내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것 같다. "엄마 지금 나가야 돼, 시간 없어, 밥 먹었는데, 아니면 지금 배 안 고픈데"같은 등등의 이유로.
그런데 어제는 나도 너무 피곤했고, 뭔가를 먹고 일하러 가야 하긴 하겠고, 딱히 뭐 먹을지 생각은 안 나는데 해든이의 열정적인 눈을 보니까 이번에도 거절하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것도 같고,,, 그래서 "그래, 그럼 엄마가 준비하는 동안 만들어줘."라고 큰맘 먹고 얘기했다. 그러고 해든이가 다 만들었다고 먹으로 오라고 했을 때까지 기대치가 거의 바닥이었는데,,,OMG
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OMG
형과는 달리 좀 차분하고 세심한 편이긴 하지만,,, 나보다 더 잘 만들었다는!!!!! 더구나 나름 봄봄하게 테이블 세팅까지!!ㅎㅎㅎㅎㅎㅎㅎㅎ
저거 먹고 뽀빠이처럼 갑자기 기운이 팍팍 나고, 가슴이 벅차고, 눈물도 나고, 남들에게 멍청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김치볶음밥을 만들 줄 아는 13살 소년을 아들로 둔 나는 어쩌면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직장에서 생긴 일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김치볶음밥을 먹기 위해서 함께 나란히 앉았는데, 자기가 만들었으니까 엄마가 음식 축복의 기도를 하라고 해서 못하는 영어로 했다(나도 맨날 해든이 기도시킬 때 엄마가 만들었으니까 너가 기도해, 또는 네가 만들면 다른 사람 시켜도 돼,,라고 했으니까.ㅋㅋ). 그런 다음에 내가 첫술을 뜨자 해든이가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Any constructive criticism?"이란다. 엄마가 워낙 꼬투리를 잘 잡는 사람이니까 자기도 만들면서 고민을 좀 했나 보다.
"김치가 너무 크다. 김치를 좀 더 작게 잘라서 넣고 밥을 볶기 전에 김치를 좀 더 오래 볶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고 하고 다른 것은 나무랄 대가 없다고 했는데 진지하게 듣더니, 다음에는 그렇게 만들어 보겠단다. 게임만 한다고 요즘 나에게 미운 털이 있는 대로 박혔었는데 김치볶음밥 하나로 미운털 한방에 다 날려보낸 막내. 아무래도 김치볶음밥 약발이 며칠은 가겠지?
요즘 밥 먹으면서 [나비레라] 드라마를 보는데 오늘 본 것은 채록이가 아프니까 할아버지가 채록이네 집에 가서 전복죽도 끓여주고 청소도 하고 다른 밑반찬도 만들어서 메모까지 붙여 놓은 장면. (밥 먹으면서 보니까 다 안 보고 보통으로 10~20분 정도 분량을 보는 듯) 무척 감동했다. 복도 없는 채록이가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복덩이가 되는 것도 부럽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 아들들은 나중에 그 할아버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하지 않더라도 (그럴수도 있고) 일단 자기 먹는 것은 해결하고 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도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나저나 [나빌레라] 너무 재밌다. 박인환씨가 어떻게 발레를 계속 하게 되는지도 궁금하고, 나도 발레 배우고 싶고, 막 너무 재밌어서 밥 먹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