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테이션이 끝나가는 시점에 맡게 된 환자는 48세의 여성 환자와 55세의 남성 환자였다. 그 환자들을 지난주 내내 돌봤다. 내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때까지 보게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버려서 홀로서기하는 간호의 첫날에도 그 사람들을 간호하게 되어 그런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특별한 환자들이 되었다.


나는 내가 늙고 힘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지 환자들의 기록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은 환자의 키와 몸무게이다. 환자를 만나기 전에 환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먼저 만나니까 혼자 속으로 환자들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몸무게와 키를 보면 어떤 환자일지 내가 어떻게 간호를 해야 하는지 개략적인 플랜이 서기 때문이다.


우선 48세의 환자는 로라라고 하자. 로라의 몸무게와 키를 보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키는 겨우 5피트인 여자가 몸무게는 100킬로가 넘다니. 속으로 가로 세로가 비슷한 동그라미가 떠올랐다. 그런데 나이도 겨우 48세. 올 1월에 코로나에 걸려서 우리 병원의 자매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관절개술을 받았고 PEG 튜브를 장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맡게 된 날 오전에 입원을 해서 우리 중환자실에서는 새로운 환자여서 별다른 기록이 없었다. 더구나 기관절개술을 받았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데다 글을 쓸 힘이 없어서 그녀의 병상 기록은 무척 제한되어 있었다. 더구나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기록에 없었고, 널싱홈에서 왔다는 기록뿐이었다. (환자가 어디서 왔는지는 기록에서 무척 중요하다. 집에서 온 환자인지 아니면 널싱홈인지 같은.) 그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다시 우리 병원에 오게 된 이유는 심장박동이 너무 높고 열이 있어서 다시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일단 내 머릿속에서는 환자에 대한 상상이 이루어지고 오늘 하루도 피곤한 하루가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녀를 인계하던 낮에 일하는 간호사의 소개는 아주 간단했다. Restlessness, agitation, 그리고 anxiety. 다 비슷한 말이었지만, 조금씩 다르게 취급한다. 어쨌든 그녀의 그런 증상을 다룰 수 있는 약이 별로 없었다. 쉴 새 없이 다리를 떨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G-tube와 Trach을 손으로 잡아당기려고 하는 그녀 때문에 애를 먹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전화해서 다른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고 결국 의사는 귀찮다는 듯이 애티밴이라는 약과 몰핀을 처방해 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약들이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서 입으로 모양을 만들어 냈지만,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너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이런 의미냐고 물어보면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선택적인 yes와 no를 해줬다. 하지만 로라는 말을 잘 들어주는 환자였다. 뭔가가 그녀를 괴롭히니까 그런 증상이 나오는 것일 텐데 튜브를 뽑으려고 하는 그녀의 행동을 목격하고 내가 큰소리로, "안돼, 로라!!"라고 했더니 아이처럼 나를 올려다보고는 가만히 손을 내려놓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그녀가 더 안쓰러웠다. 어떤 연유가 있어서 로라는 집으로 안 가고 널싱홈으로 갔을까? 


어쨌든 아무 기록이 없는 환자라 그녀를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좀 힘들었던 케이스였다. 이미 오래된 환자 같으면 그 환자를 어떻게 돌봤다는 다른 간호사들의 기록을 읽으며 나도 그렇게 비슷하게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쨌든 나 다음에 일하게 된 간호사, 그녀를 멜리사라고 하자. 백인 간호사인 멜리사는 작지만 영민해 보이고 심성이 고운, 몇 번 그녀에게 인계하면서 차분하고 나서지 않으면서 자기 할 일을 잘 하는 간호사라는 좋은 인상을 받은 사람이라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잊지 않고, 약이 잘 듣지 않는다. 그러니까 의사가 회진을 돌면 "다른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해라"라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그날 (연속으로 이틀째 일하던 날) 가서 멜리사에게 인계를 받는데 멜리사가 내가 부탁한 대로 의사에게 다른 약도 처방을 받아놨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의사가 "혹시 이 환자가 drug seeker는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더라는 말을 전해줬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널싱홈에서 돌봄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마약중독자들이거나 원래 지병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그녀가 그렇든 아니든 처방된 약을 열심히 줬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 증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밤새도록 나와 그녀는 지쳐갔다. 로라만 돌보는 게 아니라서 나는 더 지쳤다. 왜냐하면 로라와 함께 돌보던 환자는 헥터(라고 하자)인데 로라보다 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거대한 남자였다. 하지만 이 환자는 deep sedation이 된 환자라 로라처럼 불안 증세 등을 보이지 않고 계속 누워있으니까 예정된 대로 해주면 되었다. 


헥터의 문제는 1월부터 우리 병원 중환자실에서 목숨을 간간이 연명하고 있는 처지인데 가족이 끊임없이 연락을 하고 찾아오고, 목사인지 신부님인지 모를 차림의 동생이 기도하러 오고,,등등 로라와는 달리 너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쌓여있어서 그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해주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는 점. 더구나 묵주를 헥터의 손에 감겨놓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묵주는 신성한 물건이니까 간호사들이 아무도 그 묵주를 그의 손에서 빼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씻겨주면서 뺏다가 묵주가 감겨진 부분의 피부에 DTI (deep tissue injury)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는 점. 그래서 묵주를 침대맡에 놓아두었는데 그 다음날 가니까 또 그의 손에 감겨있더라는. 아무튼 그건 아주 작은 일이고 헥터의 진짜 문제는 그가 살아남을까? 그가 살아남는다면 얼마나?였다. 나는 그를 세 번 돌봤는데 돌볼 때마다, "제발 내가 당신을 돌보는 날 혈압이 뚝 떨어지고 맥박이 뚝뚝 떨어지고 그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였다. 


이렇게 두 환자들이 내 오리엔테이션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내 독립과 함께 한 환자들이었다. 오늘 다시 일하러 가는데 나는 오늘도 그들을 돌보게 될까? 아마 로라는 아닐 거다. 어제 이미 다시 널싱홈으로 돌아가기로 조치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헥터는? 헥터는 너무 무거워서 두렵지만, 그래도 삼일을 돌본 사람이니 걱정은 안 된다. 다만 로라를 대신할 다른 환자를 돌볼 텐데,,,방금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간호사에게는 힘든 환자를 안 주는 관례(?)가 있으니 그렇게 어렵지 않은 환자를 맡을 것 같긴 한데,,,그런데 그런 환자가 없잖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syche 2021-03-09 05:31   좋아요 2 | URL
중환자실의 환자라면 어렵지 않은 환자도 다른 곳에서는 정말 힘든 환자겠죠. 그래도 그 중에 좀 쉬운(?) 환자를 맡게 되시길.오늘도 화이팅!!

라로 2021-03-09 18:15   좋아요 0 | URL
오늘 어려운 환자들 두명을 맡았어요. 그런데 경력 많은 사람들이 한명씩 맡기도 한 거에요. 너무 이상했는데 결국은 간호사가 너무 많다고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가도 된다고 해서 제가 신청해서 방금 집에 왔어요. 밀린 숙제도 하고 그럴려고요. 어차피 내일, 아니 오늘 다시 일하러 가니까 좀 쉬려고요. 하루 건너서 일하는 건 힘드네요. 앞으로 아예 3일 내리 일하는 스케쥴을 잡아야겠어요. 암튼, 집에 왔습니다. (프님에게 괜히 조잘조잘 하게 되네요.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3-09 14:56   좋아요 1 | URL
프쉬케님 말대로 오늘은 라로님이 좀 편하기를요. 누구나 하는 간호사 일이겟지만 라로님 나이에 누구나 뛰어들진 않는 직종이겠죠. 하여 저는 태평양 건너서 소리칩니다. 라로님~~~~~힘내서요~~~~~^^

라로 2021-03-09 18: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누구나 뛰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저는 정말 머리가 나쁜지,,이 어려운 직업에 이제 뛰어들어서,,,평생 고생을 하려고 태어났나봐요.ㅋㅋㅋ
책님의 힘내라는 소리에 다시 추스려봅니다!! 고맙습니다!!^^

scott 2021-03-09 16:17   좋아요 1 | URL
라로님 🔉: ▁ ❀▂ 🌸▃❀ ▄ ▅❀ ▆🌸 홧팅 !!

라로 2021-03-09 18:17   좋아요 0 | URL
오!!! 오늘은 매화!!!! 감사합니다!!!! 스캇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