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적 짝꿍들

최애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몰래 만화방 가서 <아르미안의 네딸들> 보면서 두근두근 했던 기억이 샘솟았던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의 일에 대한 기록.








"운명이란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라고 했나? 아니면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라고 했나? (알라디너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아무튼 넘 오래되어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측 불허"라는 글귀는 기억에 남아 있다. 정말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예측 불허!!!!


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중환자실 센서스가 너무 낮아졌다. 4명의 코로나 환자가 갑자기 죽어버린 날 이후로. 그래서 10명이 넘게 일하던 중환자실은 이제 그 절반인 5~6명의 간호사가 일을 하고 있다. 더구나 어제는 대부분의 트래블러 간호사들의 계약이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나의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나의 프리셉터는 알렉스 (남자 간호사인데 우리 중환자실 에이스 중의 에이스! 그야말로 최고!! - 물론 가명이고, 알렉산더 대왕이 생각나서 내가 이름 지었음)!! 그래서 나는 속으로 "내 오리엔테이션의 대미(?)를 장식하는 프리셉터로 알렉스밖에 없지!!라고 생각하고 난 정말 운이 뻗쳤나 봐!!라고 좋아했음. 


알렉스는 이제 겨우 4년의 중환자실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병상 지식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 병원 최고의 간호사이다. 어제가 알렉스와 3번째 일을 하게 된 날이었다.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모든 가르침을 받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알렉스의 한마디 한마디를 머리에 새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DOU에서 코드 블루라는 방송이 뜨는 거다. 그래도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알렉스가 나에게 오더니 하는 말이, "라로씨, 내가 오늘 일 시작하기 전에 너에게 말했지? 어떤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응? 그래서?" 그렇게 알렉스와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어제의 차지 널스인 클레어가 숨 가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라로씨, 놀라지 마."라며 둘이 동시에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잠깐!"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클레어에게 물었더니, "오늘 겨우 5명의 간호사가 일하는데 DOU에서 코드 블루로 살린 사람이 중환자실로 오게 되었어. 그런데 간호사는 정해져 있으니까 알렉스가 그 환자를 맡아야 돼. 그래서 디렉터가 어차피 너의 오리엔테이션이 오늘로 마지막이지만, 오늘 정식으로 너의 홀로서기 간호를 하라고 했어. 우리가 도와 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해보자."


정말 미래는 예측 불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갑자기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준비 없이 앞으로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날이라고 특별하게 여기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자 어쩌자 생각하고 기도하고, 다짐하고 준비하고 했는데,,, 갑자기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버렸다. 하아~~~.


우리 병원에서 돈 많이 번 트래블 널스들이 내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이제 계약이 끝나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음식을 주문해서 또 파티를 했다. (매주 하게 되는 듯;;) 사진은 내 전화기로 찍었는데, 내 시계로 작동하느라 내 포즈가 이상함.


내 옆에 하트 모양의 안경을 쓴 사람은 트래블러인데 혼혈이라 그런지 너무 이뻤음. 더구나 내 환자들 두 명 다 무거운데, 그 무거운 환자들 씻기고 하는데 번쩍번쩍 그들을 들던 그녀의 파워에 완전 뿅 갔다는. 앞으로도 가끔 섹시한 그녀의 모습이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차지 널스인 클레어 옆에 있는 파란 옷 입은 분도 트래블러인데 경력 30년! 근데 성격이 너무 좋아서 같이 일하면서 즐거웠다. 플로리다가 집이라고.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나 더운 날씨인데 플로리다는 습하고 캘리포니아는 건조하고,,, 해서 어디가 더 살기 좋냐고 하니까 캘리포니아란다. 오호!! 암튼, 정 많고 오지랖 나보다 더 넓은 낸시(라고 하자)도 굿바이.


앞에 앉아 계신 분들은 경력 40년씩 되신 간호사 어른들. 무늬 있는 옷 입으신 분은 우리 병원 고참인데 처음에 날 싫어(?)했었는데 오늘 일이 다 마치고 제일 먼저 나에게 와서 "너무 잘했다고, You did it!!"이라며 가장 축하해 주신 분. 미래도 예측 불허지만, 사람의 태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예측 불허!!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 옆에 더 나이 많으신 분은 트래블러인데, 경력이 40년이 넘었는데, 딸도 간호사란다. UCSF(아마도 캘리포니아 최고의 병원?)에서 일한단다. 하지만 자기는 늙어도 트래블러로 일하는 게 좋다고. 정말 대단하신 분!!! 저 나이면 퇴직을 할텐데,, 퇴직은 커녕, 트래블러라니!!!


그래서 15분씩 2 번 쉬어야 하는 거 쉬지도 못하고, 겨우 점심시간 30분을 내 시간으로 보냈다. 그리고 넘 열심히(?) 일해서 그런가 엄청 배고팠다는. 


일이 다 끝나갈 거의 아침 6시쯤에 2층 DOU에서 또 코드블루라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알렉스는 처음 코드블루로 중환자실에 오게 된 환자를 겨우 stable하게 했는데 또 다른 코드 블루 환자를 맞이하게 되다니!!!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내 코가 석자라 어쩌지 못했다. 대신 나와 클레어 옆에 있던 두 명의 트래블러가 자기들이 맡은 환자를 보면서 알렉스를 도와줬다. 그리고 나도 도와주고. (이 이야기는 다음에)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Nursing is a team sport"!


암튼, 나는 그렇게 예고없이 하루 일찍 진짜 간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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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3-08 05:56   좋아요 3 | URL
라로님!!!!! 엄지 척!!!!!!! 👍👍👍👍👍👍👍👍👍👍👍👍👍👍👍👍👍👍👍

라로 2021-03-08 20:37   좋아요 3 | URL
우와~~!! 난티님!!! 엄지가 도대체 몇개에요??? 눈물나는 난티님의 엄지척!!!🥰😍😘🤩🥰😘

psyche 2021-03-08 06:09   좋아요 4 | URL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을 홀로서기 첫 날로 멋지게 장식하셨네요!

라로 2021-03-08 20:25   좋아요 3 | URL
무사히 마친 것 같아요. 정말 일이 그렇게 될 줄이야,,,였어요.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3-08 11:24   좋아요 3 | URL
라로님. 진짜 간호사 되신거 축하드려요. 제 보기엔 진즉 진짜 간호사였지만 정식 입문하신 거지요. 라로님 병원 이야기 읽으면 밝고 좋은 간호사님들 많아보여 안심이 돼요. 세상이 그래서 굴러가는구나 싶고.^^ 근데 트래블러 간호사가 정확히 머에요?? 부르면 가는??

라로 2021-03-08 20:31   좋아요 3 | URL
진즉 진짜 간호사는 맞지만, 오리엔테이션 중이라 제가 잘못해도 책임 안 지고 그랬죠. 이제는 책임이 무거운,, 제 라이센스가 걸려있는 빼도박도 못하게 된 간호사가 되었네요.^^;;;
트래블러는요, 한 병원에 묶여있지 않고, 여러 병원을 짧게는 3달 정도 계약해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병원측에서 월급도 많이 주고 (최소한 저희보다 2배,, 응급시에 주로 고용을 하니까) 집도 제공하는 곳도 있고,,,저도 결혼하기 전이라면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정말 일하고 싶은 곳을 찾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가정이 있고 나이도 많으니까 한 곳에 충실하자,,,입니다. 그런데 저 나이드신 분은 처음 간호사가 되었을 때부터 트래블러인데 지금도 그렇다고 해서 놀랐어요. 처음 뉴욕에서 코로나 때문에 난리가 났을 때 트래블러를 다수 고용했는데 월급이 한 달에 2만불이 넘었죠,, 일반 병원 간호사들도 인센티브까지 받고,,그런데 처음에 너무 돈을 썼는지 트래블러들은 여전히 돈을 많이 받지만 소속 간호사는 인센티브가 없어졌어요. 저는 인센티브 없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별 불만은 없지만, 있으면 무지 좋았겠다 싶기는 해요.ㅎㅎㅎㅎ

scott 2021-03-08 12:05   좋아요 3 | URL
| ̄ ̄라로님
축하합니다. ̄ ̄ ̄ ̄ ̄|
|
|_______|
( )__/) ||
(•ㅅ•).|| 💐
/ . . . .づ

라로 2021-03-08 20:33   좋아요 3 | URL
아웅~~~ 스캇님. 매번 감사합니다.
스캇님도 제 허그 받아요!!^^
XOXOXOXOXO

미미 2021-03-08 12:38   좋아요 2 | URL
와우!! 라로님 축하드려요♡🍾🍭🍹🌺👍👍

라로 2021-03-08 20:33   좋아요 2 | URL
아웅~~~ 미미님 감사합니다. 🥰😘😍

syo 2021-03-08 16:00   좋아요 3 | URL
🤩🤩🤩🤩🤩 멋있다!!!

라로 2021-03-08 20:34   좋아요 2 | URL
히힛! 그런가???🤩😍😘🥰😛

초딩 2021-03-08 19:27   좋아요 3 | URL
정말 정말 멋져요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
👍🏻👍🏻👍🏻

라로 2021-03-08 20:3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 ^^😍🥰😘

바람돌이 2021-03-08 20:26   좋아요 3 | URL
와우👍👍👍👍👍
저 같으면 어쩔줄 모르고 우왕좌왕 할거같은데 멋지세요.
정식 간호사가 되신걸 축하드립니다
👏👏👏👏👏👏👏

라로 2021-03-08 20:37   좋아요 3 | URL
저도 우왕좌왕 했을텐데 그나마 제가 돌보던 환자들이 며칠 동안 돌보던 분들이라 괜찮았어요.
오늘 맡을 환자들이 누구일지가 사실은 엄청 걱정됩니다. 분명 새로운 사람들을 볼 것 같은데..
간호는 정말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네요.
늘 이렇게 따뜻하게 응원해 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

붕붕툐툐 2021-03-09 23:33   좋아요 1 | URL
라로님~ 정말 축하드려요~ 사진 속 사람들 표정이 다 좋아 라로님의 정식 간호사 생활이 꽃길임을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네요!!👍👍

라로 2021-03-10 02:42   좋아요 1 | URL
저 사람들 중 반은 다 떠났나요. ^^;; 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말씀처럼 여전히 남아서 좋아요. 축복의 말씀 늘 기억할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