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르귄의 에세이는 솔직하고 거침없다. 모든 작가의 에세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녀의 글은 회색의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글보다는 흑백이 분명한, 논리적인, 그러면서도 지성이 넘치고 거기다 유머까지 품고 있는 글을 쓴다는 거다. 물론 어슐러 르 귄 여사의 에세이를 겨우 한 권 읽었을 뿐이고, 이제 두 번째 책도 겨우 [서문]을 읽으면서 이딴 소리를 하는 내가 성급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깐깐한 아줌마 글처럼 느껴져서 좋다. 더구나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을지 그런 것이 훅 다가와서 좋기도 하다.


나는 시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즐겁게 논픽션을 읽는 일이 별로 없다. (나는 반대인데) 잘 쓴 에세이에 감탄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더 좋고 (역시 나와 반대), 그 생각이 추상적일 수록 이해를 못한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 ^^;). 내 머릿속에서 철학은 우화로만 서식하고 (나도), 논리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다 (...). 그러나 또 문법 이해는 훌륭하다 (나는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는데 여전히 문법은 꽝). 나에게 문법이 언어의 논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보이긴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님). 그러니 내 사고방식의 이런 한계는 최악이나 다름없는 산술 능력, 체스는 커녕 체커도 두지 못하는 무능력, 어쩌면 음악 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나도!!). 내 머릿속에 단어가 아니라 숫자와 그래프로 표현된 개념, 아니면 '죄악'이라든자 '창조'같은 추상적인 말로 표현되는 생각들에 저항하는 방화벽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저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면, 지루하다. (내 말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의 [서문]을 이제 시작했다. 알라딘 뷰어의 글자크기를 크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작은 글을 읽으려니 너무 피곤해서 어젠 포기했는데 오늘 새벽에 눈이 떠져서 (3개월 밤에 일을 하다 보니 밤에 눈이 떠지네..ㅠㅠ) 블랑카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뷰어 설정을 열심히 찾다가 드디어 해결했다. 글자를 늘려도 여전히 안경을 끼고 봐야 할 정도로 노안이 심각해진 상황이지만, 이렇게 읽을 수 있는 것에 감사.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지니 오디오북을 선호하게 되었지만, 한글책을 오디오북으로 읽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서.


그런 까닭에 내가 읽는 논픽션을 대개 서사가 있다. 전기, 역사, 여행, 그리고 서사적인 면이 있는 과학, 그러니까 지질학, 우주론, 자연사, 인류학, 심리학 등등의 과학. (오! 이 생각은 못했다. 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 소설이 별로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좋아하는 이런 논픽션이 서사가 있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못했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리고 서사성 만이 아니라 글의 질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나도 글을 못 쓰는 주제에 서사성과 질을 갖춘 글만 읽고 싶어하는, 그런데 누가 안 그러겠어?) 옳든 그르든 간에 나는 따분하고 서툰 스타일은 곧 사고의 빈한함이나 불완전함을 나타낸다고 믿는다.

 이 말은, 내가 논픽션을 쓸 때 스스로에게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을 세워 놓았다는 뜻이다. (인정) 

다행히도, 프랑스 문학과 다른 중세 로맨스 문학을 공부하면서 학문에도, 비평글을 쓰는 데에도 훌륭한 훈련을 받은 덕분에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얻었다. 불행히도, 나는 감언이설에도 재능을 보였다. 통계의 눈보라로 꾸며 낸 실상을 묻는 류의 재능은 아니지만, 불완전한 생각을 너무나 우아하고 자신감 넘치게 표현하여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는 그럴싸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라는 면에서 감언이설이다. 거침없는 스타일이 꼭 표현하는 생각의 깊이에 기대어 나오는 건 아니다. 스타일을 이용해서 지식의 틈을 슬쩍 넘어가고 개념과 개념 사이의 허약한 이음매를 감출 수도 있다. 논픽션을 쓸 때 나는 말이 제멋대로 흘러가서 부드럽고 행복하게 나를 실상에서 먼 곳으로, 엄격한 개념 연결에서 먼 곳으로, 진실을 전혀 다르게 표현하고 생각을 전혀 다르게 연결시키는 나의 조국, 즉 소설과 시의 세계로 실어가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서평은 흥미롭고 부담스러운 글이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에 올라오는 서평을 거의 안 읽는다)

싫은 책을 다룰 때만 아니면 서평 쓰기는 좋아한다. 서평을 읽을 때는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글이 최고지만, 잘쓰고 잘 맞는 악평도 귀하게 여긴다. 형편없는 책에 대한 죽여주는 평을 읽으면 죄책감 없이 즐겁다. (ㅎㅎㅎ 여사의 솔직한 성격 나온다.ㅋㅋ) 그러나 악평을 쓰는 즐거움은, 저자에 대한 동료 의식이며 고통을 가하는 것을 즐긴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 등 온갖 죄책감 탓에 우울해진다...... 그렇다 해도 내가 저자가 뭘 하려 했는지 이해하고, 내 비평이 절대적이란 환상에 시달리지도 않는 한, 조악한 작품을 대충 넘어가 줄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실린 유일한 진짜 악평은 나에게 심각한 문제를 선사했다. 저자를 많이 존경했지만, 책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걸 어떻게 평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많고, 그럴 능력도 충분하다. (나와는 전혀 반대인 그녀의 자신만만이 늘 부러움.ㅎㅎㅎ 지난 번 읽었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에서도 그녀 특유의 자신 만만함이 부러웠었음) 그러나 그 일이 쉽거나 특별히 즐겁지는 않다. 








사람들은 정말로 책에 신경을 쓰고,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걱정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는 내가 시간을 쓸 가치가 있는 일을 하며 잘 살았다는 기분도 뒷받침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 두 가지 주요 작업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볼지 모른다. 미국 중산층 지식인/아내/주부/세 아이의 엄마라는 직업과, 작가라는 직업을 말이다.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쉽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인생의 만년에 선 나는 그 두 가지가 어쩔 수 없이 부딪치긴 하지만 양립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이 포기하지도 않았고, 예술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거나 인생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생과 예술이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깊이 떠받쳐 주었던 탓에, 돌아보면 다 하나처럼 보인다.


이제 서문을 다 읽었다. 


"많이 포기하지도 않았고, 예술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거나 인생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생과 예술이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깊이 떠받쳐 주었던 탓에, 돌아보면 다 하나처럼 보인다."는 그녀의 마지막 글이 이 책을 시작하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면서 희망을 준다. 나는 또 하나의 특별한 책을 만나는구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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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2-20 22: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란 글로 저는 르귄을 처음 접했어요. 방탄덕에 아이들도 오멜라스 를 읽고 정확하게는 몰라도 뭔가를 느끼더라고요. 그래서 저 방탄 좋아한다는 ㅎㅎ 잘 읽었습니다 라로님 *^^*

라로 2021-02-21 10:39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분들은 다 방탄을 좋아하시네요!!^^;; 저도 방탄을 좋아하고 싶은데,,, 왜 느낌이 안 올까요??^^;;

scott 2021-02-21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 피로가 눈꺼풀을 무겁게 한것 같아요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쉼 ^.^

라로 2021-02-21 10:41   좋아요 1 | URL
스캇님은 참 따뜻한 분이세요!! 간호대를 들어간 2018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더구나 취직하고, 오리엔테이션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학교도 다니고, 또 병원에서 들으라고 하는 수업도 듣고,,,이러려니 사실 힘드네요,,, 스캇님의 따뜻한 이해가 위로가 됩니다. 늘 감솨!!^^

행복한책읽기 2021-02-22 0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는 일단 구매해놓고 무서워 안읽습니다. 지름신이 강림할까봐. 라로님 비롯 다른 분들에 비함 저는 명함도 못 내밀 처지지만 이 세계에 발 디디고 자꾸 사들입니다. 남편과 딸이 물어요. 저걸 대체 언제 읽을거냐고. 읽긴 할거냐고. ㅋ 가족들 눈도 무섭습니다^^;;;

라로 2021-02-22 18:03   좋아요 0 | URL
저 책 구매하셨어요??? 저 지금 읽고 있는데 아주 맘에 들어요. 암튼, 저는 책님의 깊이에는 명함도 못 내밀고,, 겉만 핥고 있는 빈 깡통이에요. ^^;; 음,,, 전 남편과 가족들의 그런 질문을 넘어선 게 몇 년전이라,,, 이젠 그들도 포기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도움이 안 되는 라로씨.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