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기 보다는 컴컴한 동굴처럼 어두운 곳을 헤매다가 멀리서 빛이 보이는 오늘 아침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래도 내가 운이 좋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틀 연속으로 일했다. 월요일 밤부터 어제 아침까지, 그리고 자고 나서 다시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우리 병원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프리셉터(사수)가 자꾸 바뀐다. 요지를 설명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다른 사수를 만날 때마다 바짝 긴장하게 되는데 월요일 밤에 나의 사수였던 M을 만났을 때가 그랬다. 그녀는 한 번도 나의 사수가 아니었는데도 나를 별로로 생각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일 시작하기 전에 차지 널스를 주축으로 함께 일할 사람이 모여서 '오늘의 주의 사항' 같은 것을 듣는데 나는 집이 가까우니까 늘 제일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M도 일찍 와서 준비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다. 처음 M을 봤을 때 나의 활달한 아줌마스런 성격으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그게 싫었나? 아니면 아가씨라 아줌마는 상대하기 싫은 건가? 싶게 나를 대하는 태도가 "가까이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느낌이 나처럼 둔한 사람에게도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어제는 내 하루 사수가 되었다. 바꿔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정규 직원보다 트래블러 간호사가 더 많아서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게 되자, 그녀는 '너가 지금까지 배운 것이 있을 테니 한번 잘 해봐.'라는 태도로 널싱 스테이션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고 있다가 내가 실수(?)를 할 때만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서 너무 냉담한 얼굴로 '이런 것도 틀리냐'는 태도라서 가뜩이나 주눅 잘 드는 내가 진땀 꽤나 흘렸다. 그러고 집에 왔는데 옆집의 마른 고목이 우리 집 담장 옆에 있었는데 요즘 비가 계속 오고 하니까 그런 것인지 그 집의 담을 넘어 남편 차 옆으로 부러져 있었다. 다행히 차는 무사했다. 하지만 나무를 치워야 하니까 옆집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나무를 자르고, 자른 나무를 Fargo (1996년 영화)에서 사람을 넣어 갈던 그 기계에 넣고 가는 거다. (이 영화 너무 끔찍해서 눈 가리고 봤는데도 15년 정도가 지났건만 기억력 없는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내게 아주 무서운 영화!) 시끄러워서 잠을 거의 4시간 정도 자는 둥 마는 둥 그러고 어제 일하러 갔었다.
어제의 사수는 내가 처음 밤에 일하게 되었을 때 만났던 N이었다. 벌써 거의 한 달 반 전이다. N은 작지만, 이론이 빠삭하고 경력도 많고, 현재 대학원에서 간호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이 그녀의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부모는 필리핀에서 왔지만, N은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사람인데, 시력도 나쁘고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다), 귀가 잘 안 들리는지 보청기를 끼고 있다. 귀에 이상이 있으면 발음이 이상하게 되기 마련인데 그녀의 발음은 완벽하고 오히려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가 듣기도 좋다.
아무튼, 나는 그 전날 M과 일하면서 심신이 고달파서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나는 간호사가 되기엔 너무 늦었나? 더구나 중환자실 간호사는 내 능력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인가? 쉬운 부서로 가야 하나?" 등등. 그러니 N과 일을 하면서도 주눅이 들고, 또 실수를 할까 봐 조마조마하고, 그랬다.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은 M과 함께 일할 때 맡았던 환자 2명을 N하고 일을 할 때도 보살피게 된 것이다. 그러니 월욜에 깨진 것도 기억나고, 루틴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니까,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안 다는 것은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고 싶어서.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라고 했던가? 나는 간호하는 게 너무 재밌다. 환자들의 대변을 치워줘야 하는 것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더구나 낮의 간호사가 렉탈튜브라고 항문에 튜브를 끼워서 그 환자의 설사를 치워주지 않아도 되어서 일은 월욜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N의 세심한 관리 (M은 널싱 스테이션에서 들어앉아 내가 차팅 실수한 것을 보고 뛰어왔지만, N은 병실 밖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 덕분에, 더구나 뭐든 물어봐라는 열린 자세, 등등으로 어제는 많이 배우고 마음도 편했다. 더구나 15분씩 주어지는 휴식 시간을 지금까지 써 본 적이 거의 없는데 N은 억지로 가서 쉬라고 강요(너의 권리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15분씩 2 번 쉬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ㅋㅋ
그리고 아침에 일 마치기 한 시간 전에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다. "라로씨, 나는 네가 강한 의지로 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 경력 없이 곧장 중환자실에서 이 어려운 일을 하고 있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매니저에게 너에 대한 이메일을 보냈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네가 열심히 즐겁게 일을 하게 되길 바래."라고 하는 거다. 'out of blue' 라는 표현처럼 정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놀랐다. 그런데 N이 차지 널스에게도 말을 했는지, Claire(내가 좋아하는 영어 여자사람 이름이라 밝힘)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차지 널스도 나를 부르더니 잘하고 있다고 하고, 업무 인계를 할 때 데이타임 차질 널스에게도 나에 대해서 칭찬의 말을 하는 거다 (내 앞에서가 아니라 멀리서 듣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월욜 밤 보다 어젯밤에 더 잘하진 않았다. 물론 루틴을 알게 되니까 타임 매니지먼트 면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없어지긴 했지만,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없는데 어떤 사람의 눈에는 더 잘한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아직도 잘하려면 먼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 떠나서 나는 간호사 일이 정말 재밌다.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방심할 수가 없는 데다 일을 마칠 때까지 팽팽하게 긴장하고, 쉴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도 좋다. 게으른 성향이라 늘어지면 나무늘보처럼 한없이 늘어지는 성격인지라 이렇게 자극적이면서 긴장을 풀 수 없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것보다 중요하다.
어쨌든, 할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내 일기장은 5년짜리기 때문에 이렇게 긴 얘기를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긴 얘기, 간호하면서 겪은 일 같은 건 여기에 올리는 걸 좋아한다.
즐겁게 일하고 집에 왔더니 남편이는 내일 오시는 시어머니를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우선 잔디를 깎고 (내가 볼 때는 안 해도 되는데 왜?), 어머니 공항 데리러 가기 전에 또 서핑을 하러 가신다고. 더구나 오늘 생신이라 내일 오시면 우리 집에서도 또 조촐한 파티(?)를 준비하고 싶어 해서. 생일 지나고 좀 있다 오시면 얼마나 좋아. 큰아들 집에서도 생일 파티를 하고, 우리 집에서도 하시고, 정말 팔자 좋고 운 좋은 사람은 시어머니인듯!ㅋㅋ
남편이 잔디를 깎는 바람에 어제 옆집에서 나무를 갈던 때처럼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 여자>를 읽었다. 이제 곧 한국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 같다. 여운형이 암살을 당한 부분에서는 너무 속이 상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여운형이 암살을 당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텐데,,, 역사는 운 좋은 사람의 에너지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아침에 샤워하고 씻고 자기 전에 알람을 맞추려고 전화기를 열었더니 p님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그리고 딸에게도. p님은 공부하느라 바쁠 것 같아서 읽기 쉬운 책을 서프라이즈로 보내시려고 했다고...이런 거 무척 감동이다. 책을 보낸다고 해서가 아니라, 나를 생각했다는 다른 말이라서. 내가 정말 복이 많은가? 싶은!! 딸아이는 내가 보낸 마지막 문자의 거의 25일만에 답변을 보내는,,것도 할 말이 없으니까 gif로. 흠, 이 생각을 하면 복이 별로 없는 것 같으니,,역시 더하고 빼면 인생은 마이너스만 안 되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무척 오랜만에 알라딘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며 밀린 숙제를 하듯, 스캇님이 올려주신 음악을 들으며 이 페이퍼를 작성했다. 페이퍼는 다 끝나가는데 아직도 들을 음악이 남아있다. 모처럼 알라딘에 들어오는 것도 좋구나. (모처럼 아닌 것 압니다만, 여전히 모처럼으로 느껴짐;;;)
다만 알라딘에 들어오면 읽고 싶어서 찜하게 되는 책이 늘어난다는 사실. 하지만, 인생에 이 정도의 어려움은 껌이지.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찜하지 뭐.ㅋ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예전 양장본으로 갖고는 있는데, 이게 훨 간지나네!!
바로 이 표지 별로인 책!ㅋㅋ
책 이쁘다. <망월폐견>
저자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지만, 책 제목과 표지는 끌림이구나!!ㅋ
시리즈로 시작해서 시리즈로 마감.
시리즈이기 때문이 아니라 발자크이기 때문에 관심 가는 책.
알라딘 책소개는 전혀 흥미 유발하지 않지만, 독자 혼자 발자크래잖아,,, 이러면서 찜하고 있다. (알라딘 책을 팔고 싶은 건가요? 아닌 가요???ㅎㅎㅎㅎ)
알라딘 책소개;
지금부터 대략 200년 전 프랑스에서는 의학용어의 이름을 빌린 생리학이라는 기묘한 문학 장르가 생겨났다. 당시 사회는 일종의 격변기였다. 절대 왕정을 몰락시킨 프랑스 혁명이 다시 나폴레옹이란 전제군주를 탄생시킨 뒤 군주제로 퇴행해버렸고, 그 퇴행을 극복할 새로운 혁명들이 기존 계급을 허무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한편, 급격히 이루어진 과학의 발전은 상업의 득세와 함께 자본주의를 권력의 유력한 한 축으로 새로이 편입시켰다. ‘~의 생리학’이라는 이 기이한 문학 장르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태어났다. 급격한 사회 변화, 새로운 시대에의 기대, 지지부진한 개혁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탄생시킨 시대의 풍자 문학인 것이다.
아무튼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 되었네! 암튼 시어머니 오시니까 이 새벽 열심히 숙제하고, 아침잠 자고 나서 파리 바게트로 케이크 사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