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밤에 일한 것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두 번째 밤에 일하게 된 것이라 앞으로 계속 밤에 일 할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드디어 내 밤 간호 사수인 한국인 K와 일을 한 날이고 더구나 기관 삽입을 하는 환자에게 의사와 함께 내가 모든 필요한 것을 다 했던 날이었다. 이 모든 경험이 내 사수인 K 덕분이었다.


나는 처음 이 병원에 입사 했을 때 6주동안 낮에 낮의 사수와 일을 하고 나머지 6주는 밤의 사수와 함께 일을 하는 스케줄이었는데 코로나로 간호사들이 많이 안 나오니까 낮에 4주만 일 했고 지난 주 금요일부터 밤에 일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처음 교육 기관에 교욱에 대해서 안내를 받을 때 내 밤사수가 K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구나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K는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내 딸보다 더 큰 것 같다), 살집은 없지만, 골격이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다. 예전 우리나라 농구 대표선수 박찬숙씨를 떠올린다고 하면 쉽게 상상이 갈 것 같다. (박찬숙씨 보다는 호리호리함) 처음에 한국인이 내 사수라고 해서 (더구나 우리 병원에 한국인은 나 포함 2명 lol) 좀 실망했었다. 심리적으로 피곤할 것 같아서. 그런데 내 예상은 늘 그렇듯 완전히 빗나갔다. K는 8살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그런가 일단 영어를 너무 잘하고 (한국어는 잘 하는 것 같은데 아직 나에게 한마디도 안 했다. 하지만 다른 스태프가 K에게 한국드라마를 보면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는 것을 들었는데, "~싶다"고 하는 정확한 발음을 해서 그녀의 한국어 실력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간호 실력도 아주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에 내 사수를 했던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고 꼼꼼하고 실력이 좋았다.


더구나 그녀는 42살에 간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나보다 2살 어린 52살이라고 얘기해줬다. 내가 작아서 자기보다 좀 더 어릴 줄 알았다고.ㅎㅎㅎㅎㅎㅎㅎ 나 그렇게 안 작거든! ^^;; 어쨌든 좋은 사수를 만나서 너무 기쁜데 더 좋았던 점은 다른 사수들처럼 허드렛일을 다 나에게 시키려고 하지 않고 반대로 허드렛 일을 다 자기가 하고 나는 중요한 일만 시키는 거다. 예를 들어 의사에게 전화하는 것, 또는 환자 기관 삽입 하는데 NGT, IV, F/C삽입 같은 것들! 


기관 삽입을 하기 위해 의사를 기다리면서 함께 찍은 사진. 내 옆에 키가 큰 반짝이는 눈을 한 사람이 K이고 그 옆이 R이라는 남자 간호사인데 그 간호사의 환자에게 기관 삽입을 하게 되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날 밤의 차지 널스 C인데 성격이 아주 좋아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N. 그녀는 내 첫 밤 근무의 사수가 되어 주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들뜬 마음으로 (왜냐하면 밤에 기관 삽입 하는 일이 드무니까)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ER 의사가 왔다. 그런데 N95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것이다. 왜 안 쓰냐고, 너 백신 맞아서 그러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암튼 바쁘니까 더이상 얘기를 하지 못하고 곧바로 기관 삽입을 하러 환자의 방에 우루루 의사를 따라 들어갔다.


환자는 68세의 남자 환자였다. 사람이 너무 아프거나 산소의 공급이 우리의 몸에 원활하지 않으면 Delirium이라는 상태가 된다. 이 환자도 마찬가지여서 자기 몸에 삽입이 된 IV를 뽑아내고 해서 손목이랑 다른 부분에 핏자국이 많이 있었다. 그런 환자들은 일단 자기에게 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restrains를 한다. 양쪽 손목을 침대에 메달아 두는 것인데 그래도 환자들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벗어나려고 한다.


환자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으면서도 의식이 돌아오면 발버둥 치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에 의사가 기관 삽입을 하려고 하니까, 머리 맡에 있는 의사를 공포심을 가지고 환자가 올려다 보면서 알라듣지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또 발버둥을 쳤다. 머리 맡에 있는 의사와 환자를 둘러 싼 5명의 우리 간호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환자의 몸을 토닥거리면서 안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환자는 계속 겁먹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게요"라는 말을 하면서 기관 삽입 전에 주는 약을 주니까 10초도 안 되어서 환자는 의식을 잃었다. 그런데 환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순간이 환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는지 알게 해주는 눈물.


나는 죽은 환자를 중환자 간호사로 일하게 되면서 두 번이나 목격했지만, 이번처럼 기관 삽입하는 경우는 처음인데 정말 드라마틱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올 고통을 직감하고, 아니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느껴서 발버둥치면서 온 몸으로 거부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런 환자가 1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의식을 잃고 죽은 사람처럼 잠잠해지는 모습은 매우 슬펐다. 


내 사수가 적극 밀어준 덕분에 나는 우선 환자의 코에 NGTube를 넣었다. 먼저 오른쪽 콧구멍에 넣으려고 시도했는데 코피가 흘러서 왼쪽 콧구멍에 넣었는데 성공했다. 이미 중환자실로 올 정도의 환자들은 혈액응고억제제를 맞거나 먹기 때문에 조그마한 상처에도 피가 금방 흐른다. 내 사수는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겁을 먹은 나를 위로하면서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왼쪽에 시도하라고 했다. 다행히 성공해서 입으로 삽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다음은 인공요도관을 삽입했다. 나는 한번에 성공했다. 차지 널스가 농담으로 나에게, "너무 쉬운 환자가 걸렸어. 너는 운이 좋아!"라며 따뜻하게 말해줬는데,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여자 환자였다면 한번에 성공할 확률이 50%정도니까. 더구나 이 환자는 전립선 문제가 없는 환자라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얘기지만, 학생 때 전립선 암을 앓고 있던 환자에게 인공요도관을 삽입했어야 했는데 실패했었다. 그래서 결국 콘돔형을 해야 했었다는.


그리고 IV 삽입을 마지막으로 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정맥은 잘 사라진다. 정맥을 찾았어도 IV를 삽입하려고 하면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찾은 것도 그랬다. 그래서 내 사수가 아주 좋은 정맥을 찾아줘서 역시 한번에 성공했다. 그러면서 사수가 하는 말이 디렉터에게 부탁해서 어느 하루는 ER에 가서 하루 종일 IV 넣기를 부탁하면 좋을 거라고 해줬다. 나는 원래 ER에서 근무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니까 사수의 조언대로 IV를 잘 삽입할 수 있도록 디렉터에게 부탁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신의 은총과도 같은 일이니까 여기서 최선을 다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더구나 K와 같은 훌륭한 간호사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나에게는 축복이니까.




사노 요코의 <어쩌면 좋아>라는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나는 매일 자연을 보고 있다가는 더 이상 진기하지도 흥미롭지도 않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다.

p.25










사실 나는 밤간호로 가게 되었을 때 좀 걱정을 했었다. 사노 요코처럼 매일 환자를 보고 있다가는 더 이상 애처로운 마음이 안 생겨서 무덤덤해지면 어떻하나, 하고. 그런데 아니었다. 환자의 감은 한쪽 눈에만 고여 있는 눈물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았다. 톨스토이의 작품 <안타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서로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들은 각각 나름대로 불행하다. p.11









환자는 다 아프지만, 환자들의 아픔은 각각 나음대로 아픈 곳이 다르고 불행하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불행한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대하니 매일 이렇게 건강하게, 비록 오십견으로 고생은 하고 있지만, 일하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2020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알라딘 친구들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길 바라고 다가오는 2021년을 희망차게 맞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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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2-24 10:23   좋아요 1 | URL
라로님 태그가 정말 글과 딱 맞네요. 매일이 축복.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라로 2020-12-24 14:35   좋아요 0 | URL
북플로 보니까 태그가 뭐였지 기억이 안 나요. 오늘 글을 많이 올랐잖아요. 이러면 친구/즐찾이 떨어져 나가던데. ㅎㅎㅎㅎㅎ 비연님도 행복한 하루로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

다락방 2020-12-24 11:36   좋아요 1 | URL
라로님 공부하시고 새로운 일 하게 되시는 걸 응원했는데, 이렇게 일을 시작하시니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네요.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저는 역시 매일 일상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적는 글들이 좋더라고요.

라로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라로 2020-12-24 14:38   좋아요 1 | URL
공부 할때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하지만 간호는 공부를 끝없이 해야 하니까 앞으로 공부 얘기도 가끔 할게요. ㅎㅎㅎㅎ 열심히 읽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많은 응원과 힘이 됩니다!!!👍 저도 매일 일상에서 일어난 글을 쓴 글이 더 좋아요. 다락방 님의 글도 그래서 좋구요. 우리 좀 비슷한 면이 많죠? 사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응???😅😅
다락방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기억의집 2020-12-25 00:05   좋아요 1 | URL
라로님 꾸준히 간호 일지 써 주세요~

라로 2020-12-25 04:56   좋아요 0 | URL
반응이 시원찮으면 그만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더 열심히 써야겠어요. 그런데,,, 잘 쓸 자신은 없어요. ^^;;;;

psyche 2020-12-25 09:22   좋아요 2 | URL
있는 그대로 쓰시는 글에 감동이 있답니다! 라로님 글을 읽으면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거 같아요. 같이 마음 아프고, 감동 받고 그렇게 되네요.

라로 2020-12-26 11:34   좋아요 0 | URL
이런 칭찬을!!!! 저는 자주 겪는 일이라 이젠 좀 무덤덤해 질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글이 많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쓰는 사람도 지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