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메리 올리버의 시집에 나온 문장에서 빌려왔다. 쉽게 쓰이는 영어 문장이지만 시에서 가져왔다고 하니 특별해 보이기도 하지만, 내 글의 제목과 아주 잘 맞는 것 같아서. 


프님이 용기를 주셔서 간호하며 생긴 얘기를 계속 써보자는 의미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적어 본다.



I Go Down to the Shore


I go down to the shore in the morning

and depending on the hour the waves

are rolling in or moving out,

and I say, oh, I am miserable,

what shall---

What should I do? And the sea says

in its lovely voice:

Excuse me, I have work to do.





"정신없이 바쁠 때 읽는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겠어?"라는 생각으로 책에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도착한 책 더미를 보면서 한 줄(?)이라도 읽고 싶어서 읽는다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이는 책인, 김현경 씨의 [사람, 장소, 환대]를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결론은 바쁘고 정신이 없고 더구나 몸이 지칠수록 머릿속이 더 맑아지는 것인지 이 쉽지 않은 책이 이해가 된다. 신기해. 그러니 바쁘다고 책을 멀리하려던 생각은 잘못된 것이란 것을 요즘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바쁘다고 무고한 책을 멀리하지 말자.















이 책의 프폴로그를 읽으면서 나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순수한 몸 그 자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7)


아니면, 그림자는 표정이나 몸짓이나 자세처럼, 몸과 구별되지만 몸에서 분리될 수 없고, 무의지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지만 의식적 조작을 허용하며, 개인의 가장 깊숙한 특질을 반영한다고 여겨지지만 본디 익명적이고 모방 가능한, 어떤 신체적인 것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사람됨 personality은 이러한 신체적인 것 속에서 표현되며, 구체화된다. 그리하며 이 신체적인 것의 상실은 사람됨의 상실과 동일시되곤 한다.


p. 18


우리 중환자실도 코로나에 걸린 간호사가 5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병가를 내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외부에서 간호사를 유입해서라도 한 간호사당 2명의 환자를 돌봤는데 이제는 어디나 간호사가 부족한 실정이라 유입할 간호사가 없어서 이번 주 월요일부터 우리 병원의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최대 3명의 환자를 맡아서 돌보게 되었다. 몇몇 간호사들이 반발했는데 병원측에서 낸 답은 캘리포니아 주의 법은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최대 3명의 환자를 맡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입다물고 일하라는 것이었다. 오래 간호사로 일한 사람들은 그 반발로 일을 안 나왔다. 아파서 안 나오고 화나서 안 나오고, 하지만 나처럼 새내기는 나오고 안 나오고 뭐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출근을 했는데 내 프리셉터도 아프다는 핑계로 결근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L이라는 간호사와 3명의 환자를 간호했다. 


80대 후반의 할머니 두 분과 58세인 멕시코에서 온 남자 환자였다. 세 사람 다 코비드 환자이지만,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엎드린 자세를 안 하는데(보통 15시간 이상 하는 것이라 나이든 사람은 버티지를 못한다) 60 이전의 사람들, 특히 가망이 있는 남자들은 엎드린 자세를 의사들이 시도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멕시코에서 온 환자도 프론 자세로 있다가 오늘 오후에 똑바로 누운 자세로 바꿔줬다. 78킬로 정도 나가는 사람이라 포지션을 바꿔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 환자는 당뇨병이 있는 환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른쪽 발가락이 잘려서 없었고, 발부터 종아리까지 피부가 썩어가고 있었다. 관리를 잘 하지 못한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미 신체의 한 부분을 절단 당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은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당뇨병 환자를 처음 본 것도 아니고, 당뇨병으로 발가락 절단을 하는 수술에 참관한 적도 있는데 이 환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좀 달랐다. 측은지심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혐오감이 더 강했다. "아무리 당신 몸이 당신 소유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져서 자포자기하며 살았습니까?"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김현경 씨의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책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이 회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그림자를 팔아서 그림자 없이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이 기겁을 하며 페터를 쳐다보고 수군거리고 어쩌면 혐오해서 거리를 두거나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안 하려고 하는 것처럼 나는 그림자가 없는 페터를 보는 동네사람인 것 같은 느낌으로 환자를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L은 이 사람이 엎드려 있으니까 약을 제시간에 주는 것 말고는 간호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면서 다른 두 할머니에게 집중하자고 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안도 했다. 저 남자의 없는 발가락과 시커멓게 변한 종아리를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 남자를 똑바로 눕혀야 하는 시간이 왔다. RT 두 사람을 비롯해서 덩치가 커다란 CNA가 도와주러 왔다. L은 환자 머리에서 IV줄과 다른 많은 줄들을 정리해야 했고, RT 둘 도 호흡 기관을 확보해야 하니까 상체 부분에 있고, 덩치가 큰 CNA도 상체를 담당하게 되었고 나는 인공요도관과 발을 담당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중환자실 환자들은 인공요도관을 삽입하고 있다. 오줌의 양을 재야 하거나 다른 이유로)


환자는 가운을 입고 있지만 속옷 같은 것은 전혀 입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른 표현을 하자면, 순수한 몸으로 누워있는 것이다. 가운도 똑바로 눕혀야 하니까 그냥 위에 걸쳐만 놓는다. 그런 후 똑바로 누우면 줄을 정리한 다음에 가운을 입혀 준다.


이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려고 하니 환자가 대변을 눴는지 냄새가 심하고 침대 시트와 위에 깔아 놓은 draw sheet도 더렵혀져 있었다. 튜브로 음식을 공급 받는 환자인데다 독한 항생제를 투입 받아서 그런지 변은 묽고 진한 색이었다. 발가락이 없고 종아리가 썩어가는 남자의 대변을 나와 CNA가 닦아주기 시작했다. L과 RT들이 바쁘게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SpO2를 확인하는 동안 나와 CNA는 재빨리 똥을 치우면서 환자를 닦아주어야 한다. 


환자의 성기에도 대변이 뭍어서 성기를 아주 살짝 닦았는데 귀두의 피부에서 피가 나왔다. 멈추지 않고 나왔다. 많이 나온 건 아니지만, 성기가 다른 조직에 비해 작은 것을 생각하면 좀 많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지혈을 하고 거기에 메달려 있으니까 L이 그런다. 지금 거기서 피가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나도 안다. 간호 대학에서 귀가 아프게 들은 얘기다. 기도를 확보하고, 숨을 쉬게 하고, 혈액 순환이 우선이라는 것을. 성기에서 피를 많이 흘린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 발가락이 없어서 간호사인 내가 봐도 눈살이 찌뿌려지는데 성기에서 피까지 흐르고 문드러 질 것 같은 것을 보니까 나라도 보살펴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깨어 있다면, 자신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똥을 누고, 성기에서는 피가 흐르고, 혀는 죽은 사람처럼 나와있고, 몸은 도토리묵처럼 출렁거리는 그 상황을 극복하고 싶을까? 더구나 발가락도 없고, 곧 다린 절단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 기도 확보는 RT들이 잘 하고 있으니까 나는 이 사람의 덜 소중한 부분을 소중하게 보호해줘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안 해주면 다른 두 환자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기억하고 돌아와 다시 이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지혈을 놓지 않았고, 지혈이 된 것을 확인하고 CHG로 몸을 닦아 줬다. 나중에 L에게 쿠사리를 들었다. priority management가 부족하다고. 더구나 의식이 없어서 이런 상황에 대해 알 수 없는데 괜한 짓을 하고 있다고. L의 말이 다 맞다. 나도 연차가 높아지면 오늘 내가 했던 생각이나 행동을 잊고 나 같은 새내기를 혼내게 될지도 모른다. 


신체적인 상실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목숨을 연명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직 새내기에 불과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그 사람들의 목숨 뿐 아니라 신체의 integrity도 온전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환자들이 깨어나서 '사람됨의 상실'까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환자가 느끼지거나 알지 못하더라도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을 돌보는 누구라도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고 하면 과장이라 느껴질까? 최선에 조금 더 최선을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L에게 "Excuse me, I have work to do."라고 말하고 싶었다. 중요한 일은 L, 너가 잘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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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큰 병은 팔자소관
    from 라로의 서랍 2020-12-30 17:20 
    오늘 아침까지 (저녁에 일하니까 시간을 말하기가 좀 애매한데) 3일을 내리 일했더니 너무 피곤했다. 그 3일 중에 이틀 째(12/27) 일하던 날 나의 사수였던 남자 간호사 A가 맡은 환자는 처음에 2명이었는데 한 명은 그 환자 (내가 12월 16일에 돌봤고 그 남자에 대해 올린 글이 있다. 글의 제목은 Excuse me, I have work to do)의 친척이 (그는 멕시코에서 온 남자인데 부인은 멕시코에 살고 있다고 하고 자식들이 있는지는 모르지
 
 
syo 2020-12-17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의 간호일지는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진심 정말 반드시......


라로 2020-12-18 04:44   좋아요 0 | URL
기필코,,,가 빠졌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농담!
토비 님이 이렇게 정색하고 말씀해주시니 책은 기대하지 않지만 (제 주제에 무슨) 열심히 기록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긴 J.K. Rowling의 초고도 형편 없었다고 하니까 계속 열심히 쓰고 고치고 하다 보면 희망도 있을까요? 암튼, 지금은 그런 희망같은 건 없고요, 그저 열심히 기록을 해봐야겠다,,,정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응원 감사합니다!!!!♡♡♡

blanca 2020-12-17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언제나 읽어도 감동을 느껴요.. 우리가 이렇게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게 라로님의 담담한 현장일지로 느껴져요. 계속 찬찬히 잘 따라 읽겠습니다.

라로 2020-12-18 04:4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이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정말 쓰는 보람이 있어요!!!! 저도 저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현장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계속 기록해 보도록 할게요!!! 응원 감사합니다!!!!♡♡♡

psyche 2020-12-17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라로님. 가슴이 뭉클해요. 사람됨의 상실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라로님의 마음이 정말 소중하고 귀해요. 라로님은 연차가 오래 되어도 이 순간들을 잊지않고 기억하실 거에요.

라로 2020-12-18 04:47   좋아요 0 | URL
솔직히 모르겠어요, ^^;;; 연차가 오래 되면 마음이 무뎌질 것 같아요. 물론 그 나름대로 다른 마음이 생기겠지만,,,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려고요. 그게 중요하잖아요. ^^;;;

행복한책읽기 2020-12-17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로님 간호일지 출간 희망합니다. 의학드라마 보는 느낌이에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 진심 놀랍고 존경스러워요.

라로 2020-12-18 04:49   좋아요 0 | URL
책 님도 응원을 해주시니 더 열심히 정진해볼게요. 제가 본격적으로 글을 쓴 적은 없어요. 알라딘도 늘 일기같은 글만 썼기 때문에,, 다른 분들처럼 정성으로 글을 쓴 적도 없고, 제 글은 그냥 페이퍼 열고 떠오르느대로 그냥 쓰는 글이었거든요.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이제는 읽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열심히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해볼게요. 응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