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기 위해서.
어제 두 명의 코비드 환자를 나의 프리셉터와 함께 맡게 되었다. 한 사람은 월요일에 우리가 돌봤던 52세의 환자인데, 우리가 간호를 했을 때만 해도 말도 하고 앉아 있고 그랬는데 SpO2라는 수치가 계속 80 언저리라서 중환자실로 와서 bipap이라는 기계를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호흡 상태가 안정이 안 되어서 내 프리셉터는 저 나이스하고 젊은 (50대 초반이면 다른 중환자실의 환자보다는 젊으니까) 환자가 기관내의 삽관술을 받으면 안 되는데,, 라며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환자의 방에 들어가서 간호를 하게 될 때마다 엎드려 누워있거나 깊은 호흡을 자주하라고 당부를 했었다.
그리고 어제 그 환자를 다시 맡게 되었다. 나는 월요일에 그 환자를 봤기 때문에 일반 병동으로 이동 되어 있기를 바랬는데 월요일보다 상태가 더 나빠져서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는 결국 기관삽입술을 받아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 있는 자세를 전문용어로 prone position이라고 하는데 코비드 환자나 ARS, 또는 SARS에게 효과가 있다고 해서 그 자세를 하게 한다. 그 남자가 그 자세로 있었다.
밤에 그 환자를 간호하던 간호사가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그 환자가 원래 Full Code였는데 스스로 DNR로 변경을 하면서 그냥 죽게 놔두라고 부탁을 했단다. 하지만 호흡기 담당 의사가 "당신은 아직 젊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자."고 설득을 해서 다시 Full Code로 변경이 되어 모든 치료를 다 받기로 했다고.
환자가 prone으로 18시간 있어야 하고 다시 똑바로 6시간을 누워있는 것이 반복이 된다. 그리고 더 독한 약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일반 IV line으로는 받기 힘들어서 중심정맥관 같은 것을 다시 환자의 몸에 삽입을 하게 되는데 이 환자의 경우 목에 삽입을 하게 되었다.
코비드 환자의 방에는 자주 들어가지 않는다. 입으로 먹는 약이면 환자의 방에 들어가서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IV Line을 연장해 길게 만들어 밖에서 약을 교체한다. 환자의 방에 자주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cluster care라고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모아서 간호를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들어가고 하는 식으로 보통 4시간에 한 번씩 중요한 간호는 환자의 방에 들어가서 하게 되어 있다. 환자의 간호도 중요하지만, 간호사들도 감염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어제 12시에 그 환자의 방에 내가 들어가서 혈당체크등 다른 체크를 하고 환자의 얼굴까지 닦아주고 나왔다. 그리고 오후 5시에 그 환자를 똑바른 자세로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이 환자도 좀 뚱뚱한 편이고 키도 크다는) 나와 프리셉터를 포함해서 6명이서 그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려고 들어갔다. 그래서 그 환자가 베고 있던 베개를 뺐더니, 겉에서는 안 보이는 속 안에 있던 부분의 베개와 그 밑에 있는 시트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랐고 자책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환자를 본 사람이 난데 어떻게 얼굴까지 닦아줬으면서 그 선명한 피를 볼 수 없었는지.
그 전에 또 설명을 해야 하는데 코비드 환자들은 몸 속에서 혈전, 혈액 응고 ? (blood clot)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약을 매일 주사로 맞는다. 그 환자도 마찬가지로 그런 약을 주사 맞았기 때문에 조그만 상처에도 피가 멈추지 않을 수가 있는데 중심정맥관을 삽인한 지 얼마 안 되어 자세를 바꿔주는 동안 삽인관이 밀려나오고 그 구멍으로 피가 계속 흐른 것이다.
내가 계속 내 탓을 하니까, 내 프리셉터는 네 잘못이 아니라면서, 이런 일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면서 자책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더 꼼꼼하게, 더 깊이 사정(assessment)을 했다면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는데... 내 자질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환자는 이 환자보다 겨우 4살 많은 56세의 역시 남자 환자였다. 체구가 너무 커서 침대가 꽉 찰 정도로 큰 남자였다. 이 남자의 포지션을 나와 프리셉터 둘이 바꿀 수는 없지만, 팔 밑으로 베개를 괴어준다거나 할 수 있고, 침대를 이용해서 환자의 욕창이 생기는지 확인은 할 수 있어서 우리 둘이랑 다른 남자 한명의 도움으로 하다가 내 프리셉터는 어깨를 다쳤다. 그래서 어쩌면 내일 일하는 날인데 안 나올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환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큰 바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베개를 받쳐주려고 팔을 들었는데 얼마나 무거웠는지.
대부분의 약이 사람의 몸무게와 시간을 계산해서 주입하게 되는데, 이 환자의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니까 시간마다 프로포폴이니 그런 약을 바꿔줘야 하는 거다. 52세의 환자도 우리의 간호를 요구하는데, 이 56세의 환자 때문에 정신이 더 없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입에서 거무스름한 피까지 나오고 있었다. 나중엔 입과 성기에서 피와 다른 것이 섞여서 스미듯이 흘러나왔다.
이 환자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나빠지기 시작하니까 많은 의사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다 시도했지만, 결국엔 다기관 기능 부전이 와서 투석을 하기로 결정이 되어 이 환자도 중심관삽입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의사를 도와서 중심관삽입을 할 수 있도록 했고, 그 이후에 저녁 간호사가 와서 인계하고 퇴근을 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52세의 환자는 여전히 prone 자세로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상태가 좀 좋아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우리 환자는 아니고 다른 간호사가 간호하게 되었다. 56세의 환자도 우리 환자가 아니라 남자 간호사가 간호를 하도록 배정이 되었다. 내 프리셉터가 어깨를 다쳐서 힘든 환자들을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맡은 환자들은 몸무게가 70킬로에서 90킬로 정도 나가는 환자 두 명을 맡게 되었다.
56세를 맡은 남자 간호사가 크래시카트를 자기 환자의 방 근처에 가져가면서, 농담처럼 "만반의 준비를 해야지."라고 했는데, 그러고 30분도 안 되어 코드 블루를 부르는 상황이 왔다. 순식간에 간호사들, 호흡요법사, 의사 등등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나도 코드 상황을 대비하는 ACLS 자격증을 받았지만, 실제 상황에서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리버리,,,나더러 기록을 하라고 했는데 기록을 하긴 해도 뭐가 뭔지 모르니까 결국 K라는 간호사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보조가 되어서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순식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몸 속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빈틈없이 알고 있는 모습. 그리고 다들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
예전에 호프 자런의 [랩 걸]을 읽었을 때 이 글에 밑줄을 좍좍 그었었는데, 그 밑줄 생각이 났다. 그 순간 호프 자런의 표현을 눈 앞에서 더 강렬하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바로 이 밑줄이 기억났다.
그 거구의 56세인 남자는 결국에 죽었다. 우리가 그를 살릴 수 있었을지 없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거의 30분 동안 그 남자를 살리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임무를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데 와이프가 전화해서 더 이상 심폐소생을 하지 말라고 해서 멈췄다.
어젯밤에 56세 남자의 자녀들 셋이서 중환자실로 찾아 왔단다. 원래 방문이 허락되지 않지만, 밤이고, 너무 간절하게 애걸하고 하니까 잠깐 방문을 허락해 줬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의 만남을 지켜봤던 밤 간호사들이 데이 간호사에게 인계 해주면서 그 상황을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고 했단다.
"중환자실 간호사의 일이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며 오늘 점심을 먹는데 내 프리셉터가 나에게 약간의 동정과 위로를 하면서 말했다. "네가 너무 안 좋은 타이밍에 간호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너무 안 좋은 상황이 맞긴 하지만, 덕분에 나는 매일 아주 어려운 것들을 배운다. 처음부터 빡세게 배우니까 나는 어쩌면 강하고 준비가 잘되어 있고, 정신이 깨어 있고, 책임감 있는 간호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2세 환자의 중심관삽입에서 나온 피를 보지 못한 나를 기억하면서.
그때와 지금은 다른 세상이긴 하지만 목표를 세운 사람의 성공 여부는 부지럼함이 바탕인 것은 같을 것이에요. 참으로 고전적인 말이긴 하지만, 크고 작은 소망이 결실을 맺는 데는 근면/성실보다 나은 게 없지요. 부지런한 뒤에 운과 재능을 빌려도 늦지 않습니다. 한데 황상은 부지런함을 세속에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을 갈고닦는 데 썼습니다. 부지런의 경지가 절정에 달했을 때는 느긋함의 경지로 자신을 이완시켰습니다.
<엄마의 뜰> p.159
간호사의 길이나 학문의 길이나 같을 것 같다. 부지런의 경지가 절정에 달하면 나도 느긋함의 경지로 이완시킬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