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약간 치매기가 있는 할머니와 시쳇말로 피골이 상접한 할아버지를 맡게 되었다. 두 분 다 나이가 비슷하신데 할머니는 치매기가 있어서 자꾸 IV를 뽑으셔서 어쩔 수 없이 restain을 해야 했고, 할아버지는 힘든 치료 그만 받고 싶다고 기관 절개 튜브를 자꾸 뽑으려고 하셔서 restain을 했다.
할머니는 왼쪽 팔을 사용하지 못하셨지만, 오른쪽은 사용하시는데 무리가 없으신지 누군가 할머니를 도와주려고 하면 오른손으로 펀치를 날리셨다.ㅎㅎㅎ 나는 다행히 왼쪽에 있어서 할머니의 펀치를 맞지 않았지만, 나의 프리셉터는 할머니의 오른쪽에 있어서 여러 번 펀치를 맞았다. 그런데 재밌는 게 할머니가 펀치를 날리시는 모습은 권투선수가 어퍼컷을 날리는 듯한 포즈였다. 상상이 가는지?ㅎㅎㅎ
내 프리셉터는 할머니에게 "당신을 돌보는 간호사를 때리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오른손 펀치를 날리셔서 결국엔 restain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가족들과 사이가 굉장히 좋은지 가족들이 계속 페이스타임을 신청해 왔다. 자식들만 페이스타임을 신청하는 줄 알았더니 손주들까지 계속 페이스타임을 신청하는 바람에 직원 한 사람이 붙어 있어야 했다. 오후가 되어서는 의식이 좀 돌아오신 것 같아서 restain을 제거해드렸다.
할아버지는 기관절개술을 받으신 분이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의 헤모글로빈의 수치가 낮아서 우리는 내장 출혈을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의사가 대장 내시경 오더를 내렸다. 대장 내시경을 하게 하려면 할아버지 대장 안을 깨끗이 해야 했기 때문에 나와 프리셉터인 J는 관장을 2번이나 했었다. 항문으로 관장을 하게 되니까 할아버지의 거부반응이 너무 심했는데 여러 명이 매달려서 할아버지의 사지를 붙잡고 실행을 했다. 그런데 막상 내시경을 할 때는 관장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내일 다시 내시경 스케줄이 잡히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그 고생을 하셨는데 (우리도!!) 내시경을 할 수 없게 되어서 너무 속상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오늘 밤도 나잇 널스에 의해서 관장을 하실 거다. 너무 안습! ㅠㅠ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를 포함한 의료진에 의해서 관장을 당할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데도 계속 와이프에게 전화해 달라고 하시는 거다. 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입 모양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마다 와이프에게 연락해 달라고... 우리는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수 같은 코비드 때문에 할아버지의 와이프는 중환자실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는.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자신이 겪는 고통을 알리고 싶으셨겠지만, 부인이 안다고 하더라도 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할아버지가 자신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의 와이프를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였다. 시부모님과 친구인 부부가 있는데 와이프가 치매를 앓다가 죽었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미국인 할머니였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60대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본 미국 여성 중에 가장 아름답고, 지적이고, 우아하면서, 교양 있는 분이었는데 우리가 미국에 돌아오니 그분이 치매에 걸려서 다른 주로 두 부부가 이사를 했다고 해서 결국 그녀가 이 생을 떠날 때까지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장례식을 치른 후 내 시아버지의 작년 장례식에 초췌해져서 참석한 그녀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치과의사였는데 그녀가 치매에 걸리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주로 이사를 해서 그녀가 죽을 때까지 치매 요양 센터 같은 곳에 보내지 않고 그녀를 돌봤다.
그런데 그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단다. 그분은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얼마 후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죽은 아내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이틀 전에 돌아가셨다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거의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남편을 사랑하지만, (먼저 죽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치료를 거부하고 죽는 다는 것.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힘든 치료를 받으며, 와이프에게 계속 연락해 달라고 하는 할아버지나, 치료를 받으면 살 수도 있었는데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먼저 떠난 와이프에게 가버린 할아버지나.. 순애보가 따로 없다. 코로나로 안 좋은 얘기도 많이 들리지만, 내 가까이에는 이렇듯 순애보만 무성하다. 하여,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질 수 없는 밤이다.
큰 시누이 얘기를 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이 시누이네도 두 부부가 너무 사랑한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두 사람을 보면 정말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시누이는 남편보다 3살 어린데 그녀의 남편은 내 남편과 동갑인데 지난 12월 2일에 50세가 되었다. 시누이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50살 생일을 축하하려고 Belize로 여행을 떠난 지 벌써 5일째다. 내 남편도 시누이 남편과 동갑인데 내일이 생일이다. 나도 여행 생각을 했었는데 새로 취직한 일정과 겹쳐서 포기하고 가장 좋다는 쇼트 보드를 큰아들과 함께 가서 샀다. 내 선택은 그렇게 평범한 것인데,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큰 시누이 부부의 일상을 보니 그들의 사랑이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
천국이 따로 없어 보인다. 누워 있는 사람은 시누이 남편. 사진은 시누이 인스타그램에서 펌.
유행가 가사처럼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요. 누가 사랑이 충만으로 가득한 공정한 게임이라고 했던가요. 토마스 만의 일관된 방향처럼 사랑엔 공평한 저울추가 없습니다. 더 사랑해서 패배하거나, 덜 사랑해서 상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만 있을 뿐이지요. 덜 사랑한 자는 무관심해서 상기할 추억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지요. 그래도, 그래도 말이에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건 그 순간만은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지요. 곧장 어리석은 실패자로 돌아오더라도 그렇게 사랑의 감정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랑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엔돌핀이 백만 배는 솟구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마련한 고약한 매뉴얼대로 인간은 백전백패하면서도 사랑이란 문밖을 서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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