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트레이닝 3일인데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 피곤한데도 잠을 푹 못 잘 정도고 오늘 새벽에는 오른손이 저렸다. 나,,, 괘,,괜찮겠지?


아무튼, N95 마스크 위에 설지컬 마스크를 써야 하고 거기다 페이스 실드나 고글을 써야 한다는. 더구나 감염된 환자가 있으면 PPE까지 환자에게 갈 때마다 매번 입고 벗고를  해야 하며, 손도 끊임없이 씻어대니,,,, 죽을 맛. 선배 간호사들 깊이 존경!!!!!


아래는 금요일에 잠깐 프리셉터 몰래 찍은 사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첫날은 저 모자 같은 것을 안 쓰고 가서 수많은 마스크와 실드 줄에 얽히고설켜서 머리 헝클어지고 빠지고, 나중엔 미친년처럼 되어서 쉬는 날 저 모자 같은 거 사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저거 쓰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얼마나 덜 너덜너덜했는지,,,암튼 이제 주문한 프로그레시브 렌즈 안경을 받으면 더 일하기 수월할 것 같다!!


얼굴에 반창고를 붙였다 뗐다 하니까 심각하게 발진이 생기고 상처가 나기 시작해서 어젯밤 집에 오자마자 envomask 주문!! 저 마스크가 나의 얼굴을 구해주길 소망하면서!!



이렇게 생겼는데 N95 마스크보다 더 피팅이 잘 되어 입자가 들어올 확률이 적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 위로 쓰니까 머리가 덜 아플 것 같다. 더구나 저 마스크 위에 붙이는 쉴드가 있는데 그것을 끼우면 설지컬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이런 장점들이 있단다. 그래서 나를 위해 주문했다. 도저히 내 얼굴이 남아날 것 같지 않아서.

ER 간호사들은 저것을 자기 돈을 주고 사용하고 있는데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사용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의사가 저 마스크를 쓰고 온 것을 봤다. N95 마스크보다 크기도 작아서 광대뼈를 누르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주문이 밀려서 10일 후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그때까지 N95 마스크 쓰면서 잘 버텨야지.ㅠㅠ


어제는 모니터텍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파서 출근을 못했기 때문에 내 프리셉터가 대신 모니터텍을 하는 바람에 나는 첫날 나를 맡았던 간호사 K가 다시 나를 맡았는데 다행히 어제는 K의 환자 중에 코비드 환자가 없어서 환자 한 명을 나더러 맡아서 챠팅까지 다 하라고 했는데 그나마 챠팅을 조금 배울 수 있었지만, 결과는 무척 힘들었다는 사실.  


한국은 어떤 시스템인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간호를 한 후에 다큐먼트를 해야 한다. 중환자실은 두 시간마다 기록을 해야 하는데 간호하면서 챠팅하는 것이 나처럼 신입은 정말 정신 홀딱 빠지는 일이라는. 아직도 챠팅 시스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더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내일부터 다시 이틀 연속으로 일한다. 그리고 사주 연속 삼일 계속 일하게 될 것이다. 잘 버틸 수 있기 만을 기도할 뿐.


지난 월요일 나의 트레이닝 첫날 내 프리셉터가 안 와서 나는 간호사 K와 함께 일을 했는데 K의 환자 둘 다 코비드 환자였다. 저 모자도 없이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는데 그날 우리가 간호했던 69세 환자가 죽었다. K는 우리가 그 환자를 맡기 전부터 그 환자가 죽을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정말 죽으니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엄마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낀 그런 슬픔이 아닌, 뭐라 설명하기 힘든,,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 사람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그런가? 그러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나중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들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는 것인가? 특히 중환자실 간호사들. 의사들보다 더 환자들과 가까운 사람이 간호사이다. 그래서 그들의 쾌유와 죽음을 누구보다 먼저 보게 될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이외에는 별로 볼 기회가 없는데 생판 남인 사람의 죽음을 시시각각 접하고 매번 애도하게 되는 간호사들의 운명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이제 겨우 시작인데 몸과 마음이 같이 지쳐간다. 그래도 가족과 책이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된다. 가족들은 내 신경을 안 건드리려고 아주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남편!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책벌레는 아니지만, 나 역시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책으로 먼저 배우고, 마음이 허할 때도 책으로 위로를 받고, 그렇게 책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지난주 나에게 큰 위로가 된 책은 권 정생 선생님의 [들국화 고갯길]













숭고한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책. 간호도 사실 노동이다. 어떤 노동이든 노동은 다른 말로 '성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누군가 그랬다. 가끔 서럽고, 눈물이 나오는 걸 참아야 하는 그런 일도 있지만, 내가 하는 노동이 성스럽다는 것을 이 책이 알려준다. 그러니 소처럼 묵묵히 네 할 일을 하라고. 그러면 아주 가끔 잔잔한 들국화와 만났을 때와 같은 그런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게 될 거라고. 그런 것을 바라지 않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단함보다는 내일은 어떤 일이 나에게 벌어질지 은근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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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20-11-30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날부터 죽음과 마주한 복잡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공감해봅니다
벌써 차팅까지 하고 전문인 포스가!
중무장한 모습 자체가 숭고해 보여요
코비드 시절 어여 지나야 라로님도 여유있게 근무하실 텐데
충분히 멋진 그대를 존경합니다♥

라로 2020-12-01 13:49   좋아요 0 | URL
언니!! 와락~~.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다 같은 말을 하는데 코비드 있기 전까지는 너무 좋았다고 하네요.
코비드 때문에 매일이 정신없는 하루이기는 저처럼 신참이나 고참이나 마찬가지에요. ^^;;
어여 백신이 정말 효과가 있어서 다시 예전의 모든 것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코비드 정말 무섭네요.
언니, 마스크 잘 쓰고 다니세요. 되도록이면 집에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한결같이 응원해주시는 언니를 넘넘넘넘넘 사랑해요!!!♥♥♥♥♥

페넬로페 2020-11-30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레이닝 시작하셔서 몸이 힘드실텐데
거기다가 마스크로 중무장까지 하셔서 더 피곤하실 듯 해요~~
잘 드시고 건강 챙겨
트레이닝 잘 마치시기 바랍니다^^

라로 2020-12-01 13:50   좋아요 0 | URL
네, 페넬로페 님! 잘 보셨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저렇게 안 해도 됐었는데,,,
한국도 코로나 환자가 늘고 있다고 들었어요.
페넬로페 님도 밖에 다니실 때 늘 조심하셔서
코로나로 부터 안전하시기 바랍니다. ^^

2020-11-30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0-12-01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간호는 정말 성실한 노동이에요. 때론 신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라로님 글 읽으니, 응원 팍팍 해주고 싶어졌어요. 응원 없어도 넘 씩씩하게 잘해낼 거 같으시지만. ㅋ 친한언니가 호스피스 병원서 간호사로 일해요. 거의 날마다 죽음을 본대요. 그 언니에게 왕진가방 속의 페미 추천해주었어요.^^ 권정생 샘 저도 넘 좋아하는데. 저 책은 못봤어요. 소가 권선생님을 닮아 보여요^^

라로 2020-12-01 13:55   좋아요 1 | URL
행복한책읽기 님의 응원이 팍팍 느껴집니다!!^^
왕진가방 속의 페미를 쓴 의사샘도 대단하신 것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님도 그 책 읽어보세요. 추천해요.^^
저 책은 나온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이번 창비에서 새롭게 재해석 해서 펴냈는데 좋네요.
언제 읽으시고 글 올려주세요. ^^

기억의집 2020-12-01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엠보마스크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기를.. 고생하셨어요. 모든 노동이 성스럽지만 .. 아픈 이를 치료하는 노고는 사명 없으면 못 할 것 같아요. 라로님.. 잉... 힘내세요!!!!

라로 2020-12-02 13:3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 님 프로필 이뻐요!! 그리고 고마와요. 늘 저를 도와주시는데 이런 덕담까지!!^^ 알라뷰 기억의집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