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다른 사람들이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부자라고 소문이 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라로를 많이 이뻐해 주셨는데 라로가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갖고 싶은 거 뭐든 고르라고 하셨다. 그때 라로가 몽블랑 만년필이 가장 갖고 싶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사러 가자고 하시면서 현대 백화점에 가서 사주셨더랬다. 그러면서 참 이상한 여자도 다 있다고 하셨더랬다. 명품 핸드백이니 뭐 그런 것을 갖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겨우 만년필이냐며 피식 웃으셨던 것도 같은데. 그러면서 하신 뒷 얘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서 네가 더 마음에 든다."라고 하시며 풍채 좋은 할아버지답게 껄껄 웃으셨더랬지.
바로 이 녀석이다. 잘 안 보이는데 내 이름도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한번인가? 사용하고 아낀다며 깊이 숨겨둔다고 숨겨뒀는데 재작년에 찾아서 일기 쓰기를 시작하려고 하니까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TWISB를 한 7자루를 샀는데 다 폭망하고 한 자루 건져서 그것으로 지금까지 사용했다.
3주 전 우리 방과 큰아들 방의 리모델링을 시작 하냐고 가구 다 옮기고 어쩌고 해서 이제 슬슬 정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서랍을 정리하다가 찾았다!!! 얼마나 기쁘던지. 이제는 아낀다고 너를 숨겨 놓지 않겠어. 너를 진정 아끼는 방법은 매일 너를 사용하는 것이란 걸 너를 잃어버린 동안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그동안 잘 사용했던 금색 트위스비를 내려놓고 이 몽블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용하던 트위스비는 미니 트위스비였는데 그것보다 가볍고 더 잘 써진다!! 감동의 눈물을 마음으로 흘리며 이제 이 녀석을 사용한다.
이 녀석을(이름을 지어줘야겠구나) 사용하면서 꿈을 꾼다. 내가 DNP가 되어 환자의 처방전을 써줄 때 할아버지가 사주신 이 몽블랑을 사용해서 쓰는 꿈. 그리고 목에는 팜언니가 선물로 주신 금빛 청진기가 걸쳐 있다.
그러고보니 멋진 DNP가 될 외적 준비는 다 되었구나. ㅎㅎㅎㅎㅎ 남은 것은 여전히 길고 지루한 공부와의 사투.
공개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서 글씨는 괴발개발. 음.
수연 님이 올려주신 [소르본 철학 수업]의 인용글을 어제, 그제 내 일기장에 옮겨 적었다.
나도 앞으로 자리를 차지 하지 않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더 힘쓸 것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아는 선택과 환경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러니까 과거의 자아에 너무 얽매어있지 말자 라로야. 이제는 그만 죄책감을 느끼고, 덜 수치스러워 해도 될 거야.
그래도 정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