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남편이 며칠 전부터 하도 졸라서 서로의 머리를 잘랐다.
나는 사실 미국에 다시 돌아오기 전에 미국에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미용 국가고시를 보고 자격증을 땄었다. 네일 자격증도 땄다. ^^;;;
하지만 미용사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머리를 잘 자르거나 하는 거는 아니다.
기본 중에 아주 기본만 배우고 시험을 보는 거라서.
미용사 국가고시 자격증 시험은 단발머리 자르기와 기본 파마 말기, 그렇게 딱 2가지였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미국에 와서는 남편의 머리를 잘라준 적은 한 번도 없고
주로 해든이가 내 주요 단골이었다. 커트는 배운 적이 없이 나 혼자 하려고 하니까
매번 머리를 잘라주면 쥐 파먹은 것 같은 곳이 꼭 있어서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잘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코로나 사태로 남편으로부터 다시 머리를 자르라는 강요를 받기 시작했다.
옆집에 사시는 앤 아줌마 딸인 시빌이 전문 미용사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부탁을 하라고 했더니 그녀가 돈을 안 받겠다고 해서
부담이 되어 부탁하지 못한다면서 나보고 자르라고 하는 거다.ㅠㅠ
더구나 이런 말로 꼼짝 못 하게 하는 거다.
"내가 너 미용학원 다닐 동안 아이들 돌보며 뒷바라지를 했잖아."라고.
그래도 내가 계속 안 잘라주니까
어제는 이렇게 말해서 결국 가위를 들게 만들었다.
"너 CNN 앵커 Anderson Cooper 알지? 어제 뉴스를 보는데 애인인지, 누가 잘랐는지 모르지만
머리에 a giant bald spot 이 났어. 나는 티비에도 안 나가니까 a giant bald spot 이 여러 개 나도 괜찮아."ㅎㅎ
사진 출처: Public Radio International
이 사진은 쥐 파먹은 머리 아님.
남편이 사진 찾아서 보여줬는데 다른 사람이 잘라준 거 아니라 자신이 잘랐단다.ㅎㅎㅎㅎㅎㅎㅎ
생각해보니 '그 멋쟁이 쿠퍼도 큰 쥐가 파먹은것 같은 머리를 하고 뉴스를 진행했다는데
집안에만 있는 남편의 머리 뭐 어때'라는 심정으로 남편의 머리를 잘라줬는데
남편이 약간 곱슬머리라서 엉터리로 잘랐는데도 괜찮아 보였다!!ㅎㅎㅎ
해든이 머리는 생머리(라고 하나?)라서 잘못 자르면 표가 확 나는데
남편의 머리는 쥐 파먹은 것처럼 해도 아무 표시가 안 난다.
나도 요즘 머리가 길어져서 포니테일이나 피기테일 (나이 들어서 하니 귀엽기는커녕 흉측하다는 ㅎㅎ)을 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그냥 일자로 잘라봐" 라고 하면서 내 머리를 맡겼다. (뒷머리는 안 보이니 상관없;;)
그랬는데 내 머리는 파마기가 좀 남아 있어서 그런가 역시 삐뚤빼뚤 잘라도 표가 별로 안 난다!ㅎㅎ
그렇게 우린 서로의 머리를 잘라줬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서 남편과 서로의 머리를 잘라줬다고 하니까
아침에 시어머니에게 내 머리를 보여드리면서 남편이 어젯밤에 잘랐다고 하니까
시어머니 왈, "괜찮아, 우리 모두 다 똑같아 보여."라고 하셨다.ㅎㅎㅎ
시어머니는 옆집 시빌에게 지난주 머리를 자르셨더랬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