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내 답변은 "그렇게 잘 하지 않아요.^^;;"였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 성의 없는 답변인 것 같기도 해서 내 경험을 얘기해보겠다.


내가 한국에서 8년 동안 영어 과외를 하고 영어 학원에서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영어 실력은 일차함수 y=ax의 그래프에서처럼 계속 올라가는 것처럼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향상이 되니까 바로 실력이 늘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어쨌든 어느 정도 노력이 쌓이면 실력도 한 단계 올라간 느낌이 확실히 드는 게 영어를 포함한 언어 공부인 것 같다. 그렇게 계속 한 계단씩 올라가면 어느새 정상에 가까와 질 것이다.


뭐든 그렇지만 왕도는 없다. 특히 공부에 있어서 운이 좋은 건 불행이나 마찬가지다. 내 경우도 (처음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얘기다.) 1년을 어학원에서 보낼 계획을 했는데 첫학기 중에 토플시험을 봤는데 너무나 운이 좋게 550점이 넘는 554점이 나왔다. 그래서 어학원 첫학기만 다니고 대학에 편입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나에게 너무나 운이 좋았던 게 아니라 너무나 운이 나빴던 일이었다. 기초를 건너뛰었으니까. 어쨌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는 것만 여기서는 말하자. ^^;;


결론을 말하면, 내 영어 실력이 몇 계단씩 올라갔던 가장 큰 경험은 

첫째, 미국 직장을 다니며 매일 하루에도 몇 통씩 보내던 이메일 쓰기 - 처음엔 어떻게 이메일을 써야 할지 몰라서 엄청 두려웠는데 결국 이메일 포맷을 외우고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늘었다.

둘째, 상대 회사 직원들과의 전화통화 -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전화 영어는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발음이 분명한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알아듣기 힘든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천차만별이니까. 내가 다니던 회사는 캐나다에 있는 회사와 일을 했는데 회사가 불어를 주로 사용하는 곳에 있다 보니 처음 직원들 발음을 알아듣지 못해서 엄청 고생했었다. 

그리고 셋째, 대학에서 들었던 퍼블릭 스피치 수업 - 내 경우에는 위의 두 경우보다 이 스피치 수업을 하면서 내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했다. 이 수업은 간호대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아마도 간호사들이 환자나 보호자뿐 아니라 의사, 간호보조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간결하면서 정확한 소통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하려고 이 수업을 필수 과목으로 정한 것 같다.

나는 필기시험을 보는 것이라면 노력하면 된다는 자세였지만 말로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 이 수업을 듣는 것을 계속 미뤘었다.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증의 숫자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렬한 공포 중의 하나가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니 내가 그 수업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수업에 들어갔지만, 두려움이 큰 만큼 나는 이 수업에서 A를 받아야 하는 간절함도 컸다. 간호대에 들어가려면 모든 선수과목에서 A를 받아야 하니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다른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니까 나와 같은 간절함이 없었다. 예를 들어 교수님이 파워포인트에 최소한의 글자를 쓰라고 했는데 학생들은 파워포인트를 대부분 글자로 채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나는 이 수업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효과적으로 말을 전달하는 것은 기본이고 프레젠테이션하는 방법과 자세, 대중을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게 하는 글쓰기부터 하찮게는 어떤 폰트를 사용하면 시각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지까지.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가 필요했는데 5분 발표를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 주제를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연습을 했는지...내가 생각해도 대견했다. ^^;;


(위의 두 사진은 수업 시간에 발표하면 다른 학생이 의무적으로 비디오를 찍어주는데 그 비디오를 순간 캡처한 것 - 2016년 가을학기)


다른 학생들이 파워포인트에 적은 글과 자신의 노트를 보고 발표를 할 때 나는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파워포인트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싣고 모든 것을 외워서 발표했다. 저 사진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사진에 있는 글이 가장 길었는데 그건 추가 정보라 청중을 위한 배려였지 나를 위해 적은 건 아니었다. 

퍼블릭 스피치라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는 내가 주장하는 이론, 서론, 본론, 결론으로 크게 나눠서 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학술적인 근거도 인용을 해야하는 쉽지 않은 수업이었다. 한 학기 수업을 하는 동안 6번의 발표를 해야 하는데 발표를 하는 숫자가 커질수록 제한시간도 길어져서 점점 더 길게 발표를 해야 했다. 더구나 발표를 하면서 재스춰도 배운 대로 해야 했고 움직이는 것도 배운 대로 해야 했다. 하지만 대중 앞에 서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기억이 안 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떨리는 순간에도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한다는 말이 맞는 듯!!)

특별히 사진을 올린 두 주제는 교수님이 극찬하시며 자신의 다른 수업에도 샘플로 보여주고 싶다고 내 글과 파워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냐는 부탁도 하셨더랬다. 나는 영어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핸디캡이었기 때문에 청중이 관심가질 주제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내 얘기가 귀에 쏙 들어오도록 재미있는 예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내 주제를 뒷받침해줄 사진들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었다. 

4개월 정도의 수업이었지만, 퍼블릭 스피치는 졸업 논문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내 영어 실력 향상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이 수업을 들은 그다음 학기에 가장 어렵다는(간호대 선수과목으로) 미생물학을 들었는데 미생물학 수업에서 미생물 한 가지를 고르고 교수님이 지정한 포맷대로 왜 그 미생물을 선택했는지부터 발표해야 했다. 스피치 수업을 먼저 들어서 그런지 20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그렇게 떨리지 않았고 스피치 시간에 배운 대로 조리 있게 잘 할 수 있었다. 


결론은 누구든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보라는 것이다. 주제를 정해 어떻게 발표를 할지 서론부터 준비해서 자신의 말을 뒷받침할 학술적인 인용문도 찾아 글을 쓴 뒤 가급적이면 외워서 해보면 다른 어떤 영어공부보다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피치 수업이 대학을 졸업하기 위한 필수 과목이 아니지만 나는 이 수업을 모든 대학생들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원어민이 아니라서 여전히 영어가 어렵지만, 스피치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서 하면서도 내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가 어렵고 내 영어 실력은 아직도 멀었지만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새로운 커리어를 향해가는 첫발을 내디디며 엄청 두꺼운 간호학책 11권을 받고서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내 안에서 '할 수 있다'라는 작은 소리를 듣는다. 


내가 이렇게 장황한 글을 쓴 이유는 고바야시 세카이 씨의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를

읽으면서 나도 많지는 않아도 어떻게 영어 공부를 했는지 내 경험을 오픈소스(open source)로 올려서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공부법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고, 라로씨는 이렇게 공부를 했구나 하며 참고하실 분도 계실 수 있으니 오픈하는 거다.


오픈소스(open source): 소프트웨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코드를 인터넷 등을 통해 무상으로 공개해 누구나 그 소프트웨어를 개량하고, 이것을 재배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p.39


며칠 전에 내가 "왜 이렇게 몸이 아픈 거야!" 이러면서 살맛 안 난다는 둥 그러니까 남편이 "곧 생리하려나 보다."라고 했는데 그래서 더 그런가? 소설책도 아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훌륭한 책을 소개해 준 레일라 님께 감사하고 이 책을 선물해준 S님께도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에서 세카이씨가 미래식당을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처럼 영어 공부를 하면 분명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뭐든 자기가 좋아서 해야 잘 할 수 있다. 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고 얼마나 잘하고 싶은지도 계획과 목표를 세워가며 공부한다면 어느새 영어 실력이 한 단계씩 향상되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돼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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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로님은 할 수 있습니다! ^.^/
미국 변호사인 친구가 있는데 미국 로스쿨에서 12시간씩 도서관에서 앉아 공부하면서 느낀 건(그 친구는 유년기 그리고 mba도 미국에서 공부한 친구인데도),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시험을 치를 때면 원어민하고는 차이가 나더라고... 그래도 그렇게 노력한 시간 덕분에 얻은 게 정말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 좌우명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에요.
간호 공부 시작하는 라로님의 노력도 곧 빛을 볼거라 믿습니다! ^^ 건강도 잘 챙기시구요!

라로 2018-08-02 01:19   좋아요 0 | URL
제 좌우명은 ‘공짜는 없다’입니다요. ㅎㅎㅎㅎ 설해목 님의 응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려면 정말 건강해야 해요!!!! 건강도 잘 챙길게요!!!^^❤️

psyche 2018-08-02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라로님은 대단하세요!!!! 다 외워서 발표를... 저는 한국말로도 앞에서 발표를 못하는 사람인데 영어로 하는건 꿈도 못꾸네요. 라로님이 영어 잘하는 팁을 알려주셔서 쫑끗했는데... 저에게는 너무 두렵고 먼 길이네요. ㅠㅠ 이렇게 평생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사는걸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많이 한심한데 또 딱 털고 일어나서 뭔가 노력을 하기에는 게으른 저 ㅜㅜ

라로 2018-08-02 07:56   좋아요 1 | URL
대단하긴요!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다 하게 돼있어요. ㅠㅠ 하지만 영어 잘하는 방법들에 제가 추천하는 것은 퍼블링 스피치 수업 듣는 거랑 가르치는 건데 퍼블릭 스피치는 교수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전 너무 운이 좋았어요. 너무 훌륭한 교수님을 만났거든요. 그분은 정말 최고에요. 프님도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101부터 들어보세요. 저 수업은 103였어요. 스피치 수업은 모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해든이도 듣게 하려고요. ㅎ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8-08-02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저는 특히 언어적 감각이 무딘편이라 자신이 없는대요 시간을 들이면 성과가 있겠지요! 라로님 멋져요 ㅠㅠㅠ

라로 2018-08-02 07:58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이런 겸손한 말씀을 다 하시고 그러세요!!! ㅎㅎㅎㅎ 휘모리님은 이미 잘 하시잖아요!!!^^

북극곰 2018-08-0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하려나하고 쫑긋해서 들어왔어요. ^^ 근데 엉뚱하게도 발표하시는 라로님 모습에 반함. 너무 근사해보여요! ㅋㅋ
저도 뭐라도 해보기를 바라지만, 이 더운 여름이 지나면 할거야 불끈. 이러고 또 미루고... ㅜㅜ

라로 2018-08-03 09:30   좋아요 0 | URL
하하하 감사합니다. 다음에 좀 더 구체적으로 영어 교재랑 올려볼게요. (칭찬 받으면 없던 의욕도 불끈;;;;)
한국이 그렇게 덥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그래도 여기 살면서 늘 한국이 완벽한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 무더위 잘 피하시고 여름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