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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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투데이 서평단 도서로 받은 책 [악의 유전학]

솔직히 말하면 작가도 생소했고, 주제 자체도 생소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매력있는 책이었다.

단순히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을 떠나서 사회문제의 시발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산재해있는 '아동학대' ' 가정폭력' '성폭력'을 뛰어넘어

어떻게 평범한 한 사람이 악인이 되는 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 [악의 유전학]은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픽션인 것은 "투루한스크 변경주"의 '유쥐나야 마을'에 세워진 홀로드나야 뿐... 이 홀로드나야에서 벌어진 이야기들 자체는 픽션이지만 .. 그 픽션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름이나 캐릭터,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의 이름은 모두 있는 그대로를 가져왔다.

(그 사실에 읽고 나서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 책 내용이 생체 실험이라고 해서 일본군 777부대를 생각했고, 그런 잔인한 이야기일 것이 미리부터 걱정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야기가 괜찮았다. 기껏해야 얼음물에 들어가는 거구나..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이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 그냥 흘려읽었던 문장도 다시 보니.. "끔찍했다"

영하 50도, 수은주마저 얼려버리는 그 냉혹한 추위,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얇은 속옷만 입고 생활했다"... 처음엔 이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입수기도' 시간이 많이 힘들겠구나.. 마치 혹한기 내한적응훈련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1살에서 9살까지 밖에 안된 아이들에 내의만 입고 하루 종일 그 추위속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유일한 온기는 페치카가 있는 오두막뿐..

그런데 잔인한 것은 이 실험이 아니었다.

이 모든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리센코 후작.

밝은 표정에 맑은 눈빛, 키는 작았지만 자세가 꼿꼿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감이 넘치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믿고 있는 "획득형질의 유전" 실험을 통해 "한랭 내성"을 갖춘 용맹한 러시아 국민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획득형질의 유전. 이것은 특정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부모 대(代)가 노력하여 체득한 특징은 점진적으로 자손 대(代)에 유전된다는 진화이론이었다. 프랑스 과학자 라마르크의 이론이다.

거기에 '우생학'을 만든 프랜시스 골턴도 등장한다.

아... 이 과학자들로 인해 인간 역사는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이들이 여기에도 등장한다는 것이 불길해졌다. 그리고 이 불길함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여러 사건들, 에피소드들이 진행되고 리센코 후작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맹신자의 위험성을 말이다.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긴 시간 믿게 되면,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신념이 된다. 리센코가 그러했다. 그는 초조해졌고 초조해질수록 포악해졌다. 불안은 광기로, 실망은 폭력으로 폭발했다."(p.175)

리센코의 광기.. 이 광기는 리센코에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거침없이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 내가 믿고 있는 신념 외에는 다른 것은 모두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 타인의 의견에는 아예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모든 것이 광기의 시작이라고 보여진다.

얼마전 읽었던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에서도 '맹신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에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얼마나 방어적이고 배타적인지를 보았다.

신념이 맹신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악인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진짜 기억하자. 혹 나 또한 어떠한 신념이 맹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맹신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이 책에 나오는 "사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정체는 ...

(책을 통해 확인해보자..)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소련의 지도자 중 하나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가 그렇게 대학살자인지 몰랐다.

이번 책을 통해 '소련'에서 벌어진 그 잔인한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가 주는 매력을 넘어서, 역사적 사실까지도 알게 해준 이번 책 [악의 유전학]

임야비 작가의 전작 <클락헨>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실적'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악의 평범성,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되어가는 지를 보고 싶은 사람

무더운 가운데 '온 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은 분

복잡하지 않고, 술술 읽히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소설 읽고 싶으신 분

(읽는 동안 전혀 머리가 아프지는 않다.. 마음이 조금 아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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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퀴즈
오가와 사토시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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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Q-1그랑프리" 퀴즈쇼가 열렸다. 상금은 1천만엔(한화로 하면 9천만원이 넘는 돈이다)

남은 문제는 단 한문제..

그런데 그 문제를 상대방이 출제자의 "자~"라는 소리만 듣고 맞춰버렸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문제를 맞추게 된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 미시마 레오는 퀴즈 덕후이다. 자신이 퀴즈를 만들기도 하고, 퀴즈 대회에도 참석한다. 그리고 결승에서 만나게 된 '"세상을 머릿속에 저장한 남자" 혼조 기즈나.

마지막 한 문제를 남겨두고 문제를 듣지도 않고 맞추어버림으로써 '짬짜미'의 의혹을 남긴 그.

(짬짜미가 뭔가 했더니 남들 모르게 자기들끼리 하는 약속, 담합 등을 말한다)

혼조 기즈나가 어떻게 문제를 맞추게 되었는지?

정말 제작진과 혼조 기즈나의 짬짜미가 있었는지를 풀게 되는 '미시마 레오'

그는 이 풀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퀴즈가 차지하는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내게 퀴즈의 가장 큰 매력은 퀴즈가 내 인생을 긍정해 준다는 점이었다. 퀴즈는 나에게 어떤 인생이든 틀리지 않았다고 격려해줬다."(p.179)

남들의 눈에는 퀴즈에만 열중해 사는 것 같은 오타쿠(덕후)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퀴즈를 풀며, 그 답을 추론해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위로를 받고, 평안을 느끼고, 보람을 느낀다.

그래 그거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벌이도 변변치 않은 미시마 레오이지만, 퀴즈를 풀면서 행복해하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 아닐까?

또한 우리네 삶이 퀴즈를 푸는 것과 같다는 작가의 말에는 격하게 공감했다.

"우리는 살면서 언제나 퀴즈 문제를 맞닥뜨린다. 퀴즈 경기를 할 필요는 없다. 퀴즈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상처받고 고민에 빠진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상사에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그저 참기만 하고 지금 맡은 일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과감히 이직해야 할까?

(...)

어떤 답을 내놓을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쩄든 우리는 버튼을 누른다. 과거 경험을 떠올리거나 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면서 답을 내놓는다.

퀴즈 경기와 다른 점은 이 세상에 출제되는 문제에는 대부분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답을 말한다. 결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자신이 내놓은 답이 정답이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리고 자주 후회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해한다."(p.180)

이 문장을 읽는데 무언가 마음 한편에 찐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래 난 나만의 퀴즈를 열심히 풀어가고 있고, 그것에 대한 정답은 모를 것이다 .

아마도 이 생에서의 숨이 다하는 날.. 그때 알 수 있을까?

온전히 이 삶이라는 퀴즈를 잘 풀고 살아왔는지, 아니면 매번 오답만을 택했는지 말이다.

또한 퀴즈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과거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난 이렇게까지 책을 읽는 것일까?

"정답을 맞혔을 때는 맞힌 이유가 있다.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 덕분에 정답을 말할 수 있다. 경험이 없으면 정답을 맞히지 못한다. 당연하다."(p.60)

미시마는 '혼조 기즈나'가 어떻게 정답을 맞추었는지를 유추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의 퀴즈를 대한 자세를 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자신만의 퀴즈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결국 행복한 것은 '미시마 레오'일까? 아님 또한 자신만의 정답으로 살아가는 '혼조 기즈나'일까?

확실한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이 같이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퀴즈를 풀면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나 또한 나만의 퀴즈를 풀면서 살아갈테니 말이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본다.

혼조 기즈나는 진짜 어떻게 마지막 문제를 맞출 수 있었을까? 궁금한 분.

피가 낭자하지 않지만 '머리를 아프게 하는' 소설이 궁금한 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만한 책을 찾는 분


너의 퀴즈 / 오가와 사토시 / 블루홀식스 / 추리소설 / 미스터리 소설 / 엔터테이먼트 소설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 블루홀식스에서 나온 신간 [너의 퀴즈]는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서평단으로 받아서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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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함께하는 명화 속 티타임 - 17세기부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까지, 홍차 문화를 한눈에 보다!
Cha Tea 홍차 교실 지음, 박지영 옮김 / 북드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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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라는 것은 홍차왕자라는 만화를 통해서 친숙하긴 한데.. 아직까지는 커피 만큼 즐기지는 못한 수준이다. 그래서 더 궁금한 홍차의 세계다..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의 물처럼 마신다는 홍차인데.. 과연 이 홍차의 세계는 얼마나 다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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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BEER천가 - 본격 맥주 교양 원샷툰 한빛비즈 교양툰 27
몰트다운 지음, 블리자두 그림 / 한빛비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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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에 관한 알쓸별잡~~ 맥주덕후가 쓰고 그린 맥주 상식 만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온갖 맥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드립이라니.. 많은 영화와 드라마,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들을 패러디한 이야기들은 .. 별거 아닌 내용에서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빵~~ 터지게 만든다.

맥주에 대한 상식을 얻고자 했는데 재미까지도 덩달아 가져간 책이다.

이야기는 총 22화로 구성된다. 이 중 정말 몰랐는데 알게 된 것 3가지만 살짝 풀어놓자면

먼저 라거와 에일의 차이.. 그 차이를 알기 전에 술의 차이를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결국 맥주는 에일과 라거 두 종류로 나누게 되는데 이 둘의 차이는 효모의 차이이다. 우선 사용하고 있는 효모가 틀리고, 발효온도가 차이가 나며 발효기간에서도 차이가 난다.

에일의 높은 발효 온도는 더 많은 에스테르 화합물을 방출하고, 재료의 풍미를 강하게 해주는 반면,

라거 효모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오래 발효되며 깔끔하고 맑아지기 쉽다..

(이래서 내가 라거를 좋아하는 듯..)

두번째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맥주는 분쇄, 당화, 여과, 끓임, 냉각, 발효, 숙성의 7단계로 만들어진다는 것.

이 중 당화 과정은 식혜를 만드는 것처럼 맥아(Malt)로부터 설탕물인 맥아즙(Wort)를 뽑아내는 과정이다. 이때 전분을 분해하고 당으로 만들어주는 촉매로 작용하는 효소는 맥아 틈으로 물이 들어오면서 '알파'와 '베타' 아밀라아제가 깨어나게 된다.

다음인 여과과정은 젤리처럼 된 몰트와 겁질을 필터 삼아 당화액을 반복적으로 순환시켜 맥주를 맑게 하고 잔여당을 뽑아내는데, 마지막에 깨끗한 물을 더 뿌려서 잔여당을 완전히 뽑아내는 것을 스파징이라고 한다. 이 과정이 다 끝나고 남은 찌꺼기는 '맥주막(맥박)'이라고 하여 소가 좋아한다고 한다..(맥주 공장 옆에는 소를 키워야 하나?)

이렇게 뽑아낸 맥아즙은 한 시간 정도 긇이면서 홉을 넣는데 당화액(맥아즙)을 끓이는 이유는 '홉'의 쌉싸름함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이 쌉싸름함은 홉의 알파산이 나오게 함인데 이 과정에서 '살균'효과까지 얻게 된다.

그리고 다시 효모를 넣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맥주를 냉각한다.

발효는 냉각된 맥아즙에 효모를 접종하는 과정으로, 이때 효모가 내는 에너지는 5도 정도의 열을 낸다. 효모가 번식을 멈추고 불쾌한 냄새를 낼 수 있는 성분들을 흡수하다 지쳐 가라앉으며 맥주다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 덜익은 맥주를 '그린 비어'라고 한다. 이 후 맥주를 저온에서 숙성시키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흔히 마시는 밝은 숙성 완료 맥주(브라이트 비어)가 된다.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것!! 맥주는 꼭 잔으로 마셔야 한다는 것!!

풍미는 코와 혀, 그리고 입안으로 느끼는데 잔이 입과 코가 동시에 맥주를 접하게 만드는 핵심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코 담그기를 통해 맥주를 느껴야 하기 때문에... 절대 캔으로 마시지 말라고 작가는 강조하고 있다.(단, 뚜껑이 통쨰로 따지는 맥주는 예외로...)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맥주들을 소개하고 있다.여기에는 지역별 맥주, 묵혀먹는 맥주, 무알콜 맥주 등 진짜 맥주 종류가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맥주를 진짜 좋아하지만 .. 술 취하는 건 싫은 관계로 무알콜 맥주가 좀더 다양하게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앞으로 편의점에서 맥주를 고를 때 조금은 더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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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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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說)의 '소(小)'자는 작은 존재들을 품어 주는 , 소설의 태도에서 온다고 해설에서 말하고 있다.

책 [공존하는 소설]은 이 사회 속의 작은 존재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작은 존재인가?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 생각부터 들었다.

전문가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류에 따르면 "여성,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탈북민, 외국인, 결혼 이주민, 청년"이 해당된다.

난 이 중에서 '여성'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약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여성으로서 당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똥 밟았다' 생각하고 지나갔다. 대체로 그러한 상황에 잘 놓이지도 않았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많이 언급이 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 '상황' 속에 놓인 이들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정책'의 부재를 탓했고, '빈곤층'이 되기까지 그들이 보인 '게으름'을 탓했다. 처음부터 내몰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공존하는 소설]은 그동안 한쪽방향밖에 보지 못했던 나의 시선을 다른 면을 향하게 해주었다.

안보윤 작가의 [밤은 내가 가질게] 는 '아동학대'를 말하고 있다.

멍이 들거나 할퀸 상처가 있는 '주승이'를 보육하고 있는 나는 '상황' 변화를 통해 '주승이'가 학대 받고 있는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는 '주승이'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가지지는 않는다. 나는 매뉴얼대로 할 뿐이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일까지만 하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끈적거리는 감정을 싫어한다.

"너는 그게 선의라고 생각하지? 돌아보고 미적거리고 자꾸 여지를 넘기는 거. (..) 이 세상은 공평해.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p.29)

이 구절을 보며 나는 나무반 선생이나 언니로 인해 '내'가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싫었다.

왜 자신들이 착한 척을 함으로써 '그 착함'을 보이지 않는 '나'를 악인으로 만드는 것인가..

선의를 무조건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오히려 그냥 메뉴얼대로 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매일을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봉사 그 자체로 살아가는' '매번 속기만 하는' '바보같이 어리숙기만 한 ' 언니의 삶은 곤란한 삶이다. 그녀의 삶과 빗대어 나의 삶은 어딘가 메마르기만 한 것 같다.

"서비스를 요구하면 서비스만 해주면 돼. 하는만큼 받는 거야. 세상은 공평하거든"(p.36)

공평함을 외치는 나에게 '선의'만을 보이면서 '악의'로 돌려받는 언니의 삶은 공평하지 못한 삶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언니의 삶'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 사고뭉치 언니가 이번에는 개를 데리고 오겠단다.. 누가 돌보라고.. 극구 반대하는 나에게 언니가 말한다.

"아무 의심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p.46)

이런 언니를 보며 '나'의 마음도 바뀌어 가는 걸 소설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솔직히 그렇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선의를 가진 '상냥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든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악의에 대항하는 것은 결국 동생인 '나'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무엇보다 난 왜 이 언니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동생의 편인가?

그만큼 내가 세상을 각박하게 바라보는 것인가?

세상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왜 난 이렇게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가?

서유미 작가의 [에트르]는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지방대 출신의 두 자매의 이야기다.

지방출신.. 솔직히 서울에서 초,중,고,대학교를 다 나온 나로서는 그 거리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종종 지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는 순수한 '호기심'이 더 앞서곤 했다.

그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서도 .. 굳이 서울에 와서 취업을 하려고 하는가..그냥 지방에서 취업하면 되잖아.. 라는 가벼운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음에도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

관사가 매번 나왔기에 한번도 집의 전세금이나 월세값을 걱정해본 적이 없었고,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한 짤리 염려가 없는 직장이었기에, 취업 걱정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을 너무나 편하게(?)만 살아온 나에게 '세상 일'이란 낯설고 두려운 일들이다.

서고운 작가의 [빙하는 우유맛] 에서도 취업의 불안정성, 그리고 육아 이야기가 나온다. 육아는 문제가 되는 '과잉 교육'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 한글, 수학'을 배워야만 하는 아이들.. 점점 세상이 양극단화가 되어가는 것일까? 주승이는 엄마, 할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는 한편, 민지는 네 살때부터 과외로 휘둘리는 삶이다. 이들이 결국 성장해.. 주승이는 '취업 불안'을 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될 것이며, 민지는 자신의 엄마인 '선화'처럼 되는 것일까?

최은영 작가의 [고백]은 성소수자의 고백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가?를 이야기한다. 그 또는 그녀의 고백에 우린 '포용'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의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일방적 고백 또한 폭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왜 '주나'는 하필이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장교'가 되는 걸로 작품을 그려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일반인들의 눈에 '장교'의 이미지는 독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쉽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그런 사람일까?

김숨 작가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독거노인, 노인 빈곤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노인'의 고집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냥 개를 포용하면 되지.. 이미 자신도 바닥까지 온 상황에도 '개'를 밀어내려고 하는 저 고집은 무엇인가? 그 고집으로 인하여 이러한 빈곤 상태를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닌가? 남자가 사업에 실패하고 술에만 의존했던 것도,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지금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폐지 수집'밖에 없는 것은 과연 사회의 문제인가? 아니면 그들이 다른 일을 알아보고자 하지 않음인가?

김지연 작가의 [공원에서]는 묻지마 폭행, 취중 폭행 이야기다. 요새 하도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인지라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폭행을 당하고, 그러나 폭행을 당한 이후에는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돌려지는 시선들..

"나한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좀 마 ! 그 사람은 정말 나를 개 패듯 팼다고!"(p.179)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라고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한 화자.. 이것이 자신이 '유부남'과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맞을 만한 짓을 했다"라고 인정해버리는 유부남 '기영'의 모습은... 찌질함 그 자체였다. (정말 이런 남자를 계속 만나야 하는 건가..)

이런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이 공원의 한 소녀와 강아지라는 것은 .. 조금 작위적이었다. 이미 신뢰가 상실된 공원이고, 사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 위로는 '아직 사회에 때묻지 않은 아이'인 것인가?

조남주 작가의 [백은학원 연합회 회장 경화]는 님비(Nimby) 현상과 그것이 내 문제가 된다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님비 현상(Not in my backyard)로 혐오시설 등을 자신의 활동 반경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이다. 공공 이익을 위해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내 이익을 손해볼 수는 없을 때 보이는 것이다. '경화'씨는 처음 "노인 치매 시설"이 자신의 학원 근처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어머니가 '인지 저하'를 보이고 '치매' 증상을 보이자 입장이 바뀌게 된다. 이는 어찌보면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신의 문제' '불통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바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관련하여 딱 하루 모두가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집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보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그러한 불편함을 겪고 나서도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급하지 않다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소설 [백은학원 연합회 회장 경화]는 역지사지를 가장 잘 보여준 소설이다.

책의 마지막 소설 김미월 작가의 [중국어 수업]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은 불법 노동자이다. 이미 거기서부터 나는 이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악법이라고 '법'인데 .. 왜 이 법을 초월하려고 하는가? "돈"이 되니까 한국에 불법체류한다는 이들을 과연 이해해야 하는가?

이렇듯 책을 읽고 글을 써보니.. 내가 얼마나 강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다른 상황이 아니던가? 과연 연민하는 마음으로 모두를 포용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내가 너무 가진자의 생각인 것일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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