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신, 물리학, 젠더 전쟁
마거릿 워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2월
평점 :
│
본 서평은 신사책방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여아 낙태율이 피크였던 시대에 태어나, 성비가 불균형한 교실에서 수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 기저에 심각한 남아선호사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꾸준히 '학교'에 있었으니 교육에 대한 성차별적 역사에 대해서도 꽤 오랜 기간 무감했었고, 고전에서 배우지 못한 여성, 미친 여성, 창녀들을 마주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던 중, 마침내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을 찾았다.
마거릿 워트하임의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이다.
─
책은 방대한 과학의 역사를 한 권으로 엮었다. 거기에 지워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과 여성 과학자들이 받은 성차별적 수모를 결코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말이다. 이러한 계보의 첫 시작에 저자는 과학이라는 분야가 종교에 기초했음을 밝힌다. 종교와 과학이라고? 오늘날을 사는 입장에서는 전혀 연관이 없을뿐더러 되려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 아닌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 '이전에는' 그랬다.
태초에 이오니아인들이 세상과 자연법칙에 설명을 붙이기 위해 온갖 신들을 창조했고, 이는 그리스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신을 숭상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종교가 등장하고 세계의 모습을 정하는 데에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입김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피타고라스 역시 수학을 신적인 지식이라고 여겼다. 타로카드 같은 오컬트가 수비학의 영향을 적잖이 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연관관계가 얼추 납득이 갈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활동했을 당시에는 그래도 여성 역시 이 학문에 동참할 수 있었으나, 홀수와 짝수의 특수한 속성을 성별에 따른 도덕적 특징으로 여기고, 홀수는 남성이며 선의 자질, 짝수는 여성이며 악의 자질로 여기며 성차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나마 몇백 년 동안 여성에게 열려있던 기회의 문마저 12세기에 '여성은 입학할 수 없는' 성당학교가 중심이 되며 성별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책은 그 뒤로 수 세기에 걸쳐 벌어지는 여성 과학자들의 암울한 과거를 그린다.
─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지식을 접하려면 남자를 통하는 길밖에 없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을 결혼 상대로 선택하며,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대학원에서는 여성의 입학을 거절한다.
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답답해하지 않을까, 특히 여성이라면 더욱, 철옹성 같은 꼰대적 문화에 절망을 맛본 여성 과학자들의 역사들을 마주할 때마다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수 세기를 지나 그런 압력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한 여성들을 볼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설령 뒤를 이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느끼며 씁쓸해지더라도.
그럼에도 이러한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다? 따위의 잔잔하게 자리 잡은 편견들을 깨부술 근거로 꽤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과학이나 물리에 약한 건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고 그냥 내가 못하는 것이고,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특정 분야에 더 뛰어난 성별은 없다.
인류는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았어야 했다.
─
저자는 과학의 결실들은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사회로서 살아가는 방식을 돌이킬 수 없이 바꿔놓았고, 현대의 물리학은 일상생활의 구조 자체를 바꿔놓는 기술들을 낳았다고 말한다. 전기, 라디오, 텔레비전, 비행기, 전화, 레이저 등을 언급하며 일하고 놀고 즐기고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어왔다고. 한편, 이런 기술이 파괴력 역시 우리에게 주었음도 말하며 레이저 총, 미사일, 핵잠수함 등을 언급한다.
만약 과학사가 여성을 배제하지 않고, 성차별 없는 평등한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졌다면 지금의 과학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여성을 포함한 인간 삶의 질이 더욱 개선될까. 어쩌면, 파괴가 아닌 모든 생명체를 배려하는 기술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대체역사물에 열광하는 이유도 조금 느껴지기도 한다. 또 고전 속 납작하게만 그려지는 여성들에 해소되지 않는 불편함만 남는 사람들에게도 꼭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