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쓰다 고전 : 고전 같은 것 몰라도 살기는 살겠지만 - 논어, 채근담, 손자병법 백일 필사 1
주순진 기획 / 아템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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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필사 붐이 왔다 사실 진작에 온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필사 붐이 왔다.


내가 느끼기로는 만년필과 잉크 시장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커지기 시작하면서 함께 필사 책 시장도 커지기 시작한 듯 보인다. 필사 책의 장점이라 하면, 무수히 많은 책에서 주옥같은 문장들만 쏙쏙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더 나아가 엮은이가 날카롭게 발췌한 문장이 원문을 읽게 만드는 점도 있고.


한자 몰라도 OK, 고전 처음 읽어도 OK


아템포에서 백일 동안 필사를 즐길 수 있는 시리즈 '백일 필사', 그 첫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고전 같은 것 몰라도 살기는 하겠지만, 주순진 작가님의 『인생 쓰다 고전』가 바로 그 책. 『인생 쓰다 고전』은 누구나 이름만큼은 한 번쯤 들어봤을, '논어', '채근담', '손자병법', 이 세 동양 고전에서 100편의 문장을 발췌해 엮었다.


이 동양 고전들이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관계나 삶의 방식에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 아닐까. 주순진 작가님이 발췌한 문장을 한 줄 한 줄 따라써내려 갈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다듬어지는 기분이 든다. 세 고전은 이미 오랜 기간 충분히 사랑받은 글이지만 여전히 사랑받아 마땅하다.


/

공자가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되 행동은 민첩하다." 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언어는 나의 표상이다. 아무 말이나 뱉으면 위험하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 P.50, 「논어」 /

人情反復 世路崎嶇 行不去處 須知退一步之法 行得去處 務加讓三分之功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세상의 길은 험난하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에서는 모름지기 한 걸음 물러서는 법을 알아야 하고,

살아갈 만한 곳이라도 적절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도량과 미덕을 길러야 한다. ─ P.156, 「채근담」


한자를 모르더라도 쉽게 풀어쓴 글로 되어있다. 한자가 병기되어 있기는 하니, 한자 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좋아할 구성. '논어' 파트에는 논어의 문장과 함께 인문학자 김경집 선생님의 『소인을 위한 논어, 군자의 옷을 벗다』의 글이 함께 실려있어 더욱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가을이 왔다. 가을에는 이 책으로 동양 고전 필사를 즐겨보는 건 어떠신지.


필사가 취미인 사람으로서 넘버링이 되어있는 필사 책은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다룬 필사 책이 나올까? 『인생 쓰다 고전』에 '채근담'이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민음사에서 나온 『채근담』이 워낙 두꺼웠기에 유독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명심보감』도 가히 벽돌 책이라 부를만한 사이즈를 자랑하는데, 아템포 출판사의 '백일 필사' 시리즈를 통해 이 역시 좀 더 가볍고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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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는 번역 - 어린이책에서 시작하는 번역의 모험
김선희 지음 / 교양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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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우주님이 모집하신 #우주서평단

교양인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Löded Diper',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요?


​'Löded Diper'는 『윔피 키드』에 나오는 로드릭의 밴드 이름입니다. 철자를 맞게 쓴다면 'Loaded Diaper'가 되겠죠. 이를 직역하면 '(똥오줌으로) 가득 찬 기저귀'가 되고요. 그러면 로드릭은 왜 이렇게 철자를 엉망으로 해서 밴드 이름을 지었을까요? 멋져 보이려고요? 실은 로드릭 약간 멍청….


​그런 배경에서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김선희 번역가님은 '똥 산 기저기'로 번역하셨나 봅니다.


'그는 그의 가방을 그에게 주었다.'

누구 가방을 누구한테?


번역된 책을 읽다 보면 이따금씩 마주치는 게 오역 때로는 난해한 번역이라지만, 이런 문장은 나도 처음 본다. 분명 우리말인데 이해하기 어렵고, 애써 이해해 주기도 싫은 불친절한 번역, 그 자체.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가 거의 550년이고 일본어로 한 번 걸러서 책이 들어오는 시대를 지나 지금은 AI 번역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는데 번역은 아직도 갈 길이 먼 걸까? 이런 시기에 도서관 책에 한 독자가 번역의 답답함을 차마 참지 못하고 연필로 코멘트를 달아버린 것을 목격하게 된 일화로 시작하는 이 책은 번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윔피 키드』, 『드래곤 길들이기』를 포함해 수많은 그림책 번역을 해온 번역가 김선희 선생님이 그동안의 번역 경험을 꾹꾹 담은 책을 교양인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공감하는 번역』이라는 제목으로.


​─

번역을 시작한다면 그림책과 어린이책으로


독자 입장에선 읽기 어려운 게 성인 도서겠지만, 번역가 입장에서 번역하기 어려운 건 그림책과 어린이책인가 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성인 도서는 한자어, 개념어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어린이책은 어린이의 언어로 쉽게 푸는 감각이 성인인 번역가의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책은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바탕으로 번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입말이 살아있는 번역, 원작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 번역의 이유부터, 캐릭터도 파악하고 위트까지 챙겨야 하는 어린이책 번역의 노하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번역도 새로 고쳐야 하는 이유도 작가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준다.


​─
책 뒤표지에는 이 책을 읽기를 권하는 다섯 종류의 독자층이 적혀있다. 번역가를 꿈꾸는 예비 번역가, 이제 막 번역 일을 시작한 초보 번역가, 어린이책에 관심 있는 편집자와 작가,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좋아해 직접 옮겨보고 싶은 독자, 그리고 번역 세계의 맛을 보고 싶은 모든 사람. 여기에 내가 해당되는 건 딱 하나, '번역 세계의 맛을 보고 싶은 모든 사람'뿐이지만, 책을 읽는 독자로서 걱정과 달리 흥미로웠던 책이었다. 번역가에겐 유익할 부분이 나에겐 빠르게 넘기게 되는 부분이었지만, 책 후반부에 번역가에 있어 좋은 편집자와 나쁜 편집자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만큼은 출판업계의 뒷이야기를 듣는 듯해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번역에 대한 책이기도 하면서도, 그림책에 대한 책이기도 했고, 영어에 대한 책이기도 하면서, 출판 편집에 대한 책이기도 했다.


/

모든 번역서에는 편집의 과정을 거치는데,

번역서를 다루는 편집자(출판사)의 가치관에 따라

번역의 스타일과 질이 달라지곤 합니다.
─ P.208


그런 점에서 내가 이 책을 읽기 권하는 독자층을 집어넣는다면?
'책을 읽다가 번역에 한 번이라도 화가 났던 적이 있는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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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존 브래드쇼 지음, 오제은 옮김 / 학지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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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학지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랑받고 자란 티 많이 나는 사람만을 좋아하고, 흥을 깨면 안 된다는 흐름이 강하게 자리 잡힌 지금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절대 밖으로 하고 싶지 않은,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다 보니 이 책을 읽고 감상에 대해서 길게 쓰기가 어렵네요. 어릴 때 상처는 수많은 관련 없는 문장들 사이에 은근 슬쩍 집어넣고 모른 척…, 저는 그렇게 살았거든요. 이 책에서 독자에게 던지는 의심의 지표들에 '예'라고 써넣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학지사에서 어쩌면 저에게 필요한 책을 잘 알고 주신 게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제게 꼭 필요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릴 때 아픈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꼭 읽어보세요. 이 책을 번역하신 오제은 선생님께서는 역자 서문에서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상처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마다의 상처에 때론 전문가가 필요할 수도 있고, 약이나 입원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는 책만으로도 상처 입은 내면아이의 치유를 돕도록 만들어졌으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이 책도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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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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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개발이나 산업 등의 이유로 종을 멸종 시켜야 할 필요가 있으시다고요? 3만 8432유로(한화로 약 오천만 원)만 내세요! 단, '지능이 인증된 동물'은 13배에 해당하는 가격(한화로 약 육억 오천만 원)을 내셔야 합니다. ​브라마사무드람 광업 회사의 환경 영향 책임자 핼야드는 미식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리고 몇 번이나 거대한 부를 쓸어 담을 기회를 놓친 불운의 사나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자리에서 세계멸종위원회의 개정안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멸종 크레딧'의 가격이 지금보다 더,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번이야말로 돈을 벌 타이밍이었다. 브라마사무드람이 보트니아만에서 망간철 단괴 채굴 계획을 확정했을 때 부서 예산으로 멸종 크레딧 열세 개를 확보했는데 ─ 이는 작업을 시행했을 때 서식종인 '독쑤기미'가 실제로 멸종되고 지능 인증이 취소되지 않은 경우에 필요한 개수였다 ─ 그걸 '공매도'하자고. 핼야드는 6만 7000유로에 열세 개를 모두 팔아 87만 1000유로를 곧장 암호화폐 계좌로 보내고, 가격이 하락할 때까지 몇 달 기다렸다가 87만 1000유로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멸종 크레딧 열세 개를 사들여 그 차액을 전혀 모르는 브라마사무드람에 돌려주고 그 수익을 부채 상환과 현혹적인 미식을 즐기는 데 사용할 예정이었다. ​이 계획이 잘못될 유일한 길은 멸종 크레딧의 가격이 하락하지 않고 상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 컴퓨터 웜 바이러스가 각 바이오뱅크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 《그랜타》 선정 최연소 최고의 영국 젊은 작가에 지목된 가장 핫한 작가 네드 보먼의 전무후무 경제 블랙 코미디 『독쑤기미: 멸종을 사고 팝니다』가 황금가지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소설로는 처음 국내에 선보이는 작가인데, '또 웃긴 소설 없어요?'하고 찾게 만드는 작가였다. ​맛있는 음식에 미친 남자 핼야드, (작품 속 거의 모든 인류가 그렇지만)자기 안위가 제일 중요해서 '회사 주식 공매도'라는 도박에 실패했는데 감옥에 갈 수는 없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동물에 각별한 애정이 없어서 동물지능평가사가 될 수 있었던 카린에게 제발 독쑤기미에 지능이 없다고 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할 정도. 카린은 그런 핼야드에게 멸종이 안되었음을 확인하면 될 일 아니냐고 제안하고 둘은 '독쑤기미'의 흔적을 찾아 지구를 돌아다닌다. 둘의 기묘한 여행 속에서 '독쑤기미'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벌어지는 'X됨'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들은 과연 독쑤기미가 멸종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까? 핼야드는 그리고 지구인들은 X된 상황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님' 그 자체인 소설 웃다가 갑자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남학생의 표정이 클로즈업 되어있고, 그 밑에 이런 자막이 붙어있다.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님' ​이 책에 붙일만한 수식어로는 '디스토피아'나 '경제', '환경' 등도 있겠지만 '블랙 코미디' 역시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심각한 상황에서 북부보호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뽀송뽀송하고 꼬리가 달랑거리는 갈색 수달 위장복을 입고,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배양 참치를 권하자 맛보고 눈물을 흘리는 핼야드가 웃겨서 미치겠다. 여기에 간장까지 권하는 것도 킥. 하지만 무엇보다 다음 대화가 나는 제일 웃겼다.


/

​여자는 그들에게 장관이었다고 했다. "보기 좋았다고요?" 핼야드가 물었다. "아뇨, 저는 장관입니다. 환경식품농림부 장관이죠." ─ P.312


원문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을까,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빡빡 웃겨놓고 닐 보먼은 안 웃긴 주제를 던진다. 가상에 미쳐살고 종차별적인 인류를 조명하며, 인류세라고 불리는 지금 이 시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디 여기서 비판만 하는가, 'X 되는 건 우리'일 것이라는 장면들을 끊임없이 삽입한다. 어쩌면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지금 미리 초콜릿 많이 먹어두라'던 글을 봤다. 기후 위기로 초콜릿 시장이 붕괴되고 코코아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코코아를 예전처럼 맛보기 힘들 거라는 이유에서. 네드 보먼의 『독쑤기미』는 유쾌하면서도 우리의 상황을 한 번쯤은 심각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꼭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X된 지구와 환경을 어떻게 연출할지 영상화 확정이라는 소식마저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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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고백
미키 아키코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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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블루홀식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야마나시현 호쿠토시 XX마을 모토무라 히로키 씨의 별장 2층 베란다에서 모토무라 씨의 아내와 아들이 추락했다. 약 13미터 아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토무라 씨의 아내 미즈카 씨와 아들 도모키 군은 추락 당시 충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살인'이 아니라 '사망'이었다. 모토무라 미즈카를 취재한 잡지사의 편집자, 후지이 유리코가 받은 미즈카의 수기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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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이런 메일을 받으셔서 분명 당혹스러우시겠죠. 모토무라 미즈카가 미친 것 아닐까. 그렇게 의심한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와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 피해자 모토무라 미즈카의 수기 中


이 수기로 인해 히로키는 모자 살인 혐의로 체포를 당한다. 별장의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한 히로키는 순식간에 피고인이 되고, 그의 변호인으로 변호사 무쓰기 레이가 선임된다. 죽은 자의 고발, 산 자의 변명. 모토무라 가와 얽힌 주변인들의 진술이 진행될 때마다 사건의 양상은 뒤집히고, 망자는 말이 없으니 피고가 된 히로키에 대해 무고, 혹은 정당방위, 때론 연민이 느껴질 정도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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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는 실로 다양한 살의가, 그것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진술을 몇 번이고 되새기다가 어느 순간 문득 이 재판에서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던 또 다른 살의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작은 위화감에서 시작됐습니다. ─ 변호사 무쓰기 레이의 편지 中


변호인 무쓰기 레이는 이들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을까? ─ 시마다 소지가 '추리의 정밀 기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가, 미키 아키코의 2014년 출간작, 『패자의 고백』이 블루홀식스 출판사를 통해 마침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미키 아키코의 작품 중 『기만의 살의』와 『귀축의 집』이 이미 같은 출판사를 통해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미 두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패자의 고백』에서도 전작(前作)들의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 『패자의 고백』은 『기만의 살의』와 『귀축의 집』이 가진 저마다의 특징이 잘 녹아있는 미키 아키코스러운 작품이었다.(*일본에서의 출간 순서를 따지면 사실 『귀축의 집』이 제일 먼저고, 그다음이 『패자의 고백』, 『기만의 살의』가 비교적 최신작이지만….) 『기만의 살의』에서는 서간체 형식으로 42년 전 독살 살인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추리물을, 『귀축의 집』에서는 진술 형식의 독백체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다뤘는데, 이번 『패자의 고백』에서는 '편지를 보낸 망자'와 '살아있는 이들의 진술'을 통해 변호사 무쓰기 레이가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미키 아키코는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서 그런지 진술이나 재판 과정에 대한 설정이나 문장이 치밀하다. 기사와 편지, 증언 외에는 소설에서 흔히 묘사되는 서술 같은 것도 없지만 흐름에서 어색한 부분을 느낄 새도 없이 한 편의 극을 보는 느낌이 들 것. 놀라운 반전이 있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거짓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쪽에 더 가까운 추리물이었다. 관계자 여덟 명의 저마다 다른 증언에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야 흥미진진한 작품. ─ 『귀축의 집』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때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장 집안에 정신이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패자의 고백』역시 그런 복잡한 가정사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 순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진상에 대한 궁금증을 한시도 놓지 못하면서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판 기준으로 미키 아키코의 전작(全作)을 탐독한 독자로써 미키 아키코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귀축의 집』보다는 『패자의 고백』을, 이미 전작(前作)을 읽은 독자에게는 이전 작품들의 잔상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패자의 고백』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변호사 무쓰기 레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미네르바의 보복』도 빠르게 만나보기를 고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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