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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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리드비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 이야기합니다


이름 | 다쓰야 쇼세이

국적 | 일본인

성별 | 남성

생년월일 | 1989년 10월 1일

키 | 174cm

직업 | 모 가전 회사 총무부 총무과


특기사항 | 동성애자


이 책은 쇼세이의 생식기가 이야기합니다.


『정욕』이란 소설로 '바른 욕망'과 '다양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아사이 료가 이번에도 난감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또다시 '문제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소설 『생식기』는 '문제 있는 이 사회'의 기존 가치관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우리 절대다수가 될 수 있으면 외면해 온 진실들에 대해서.


1인칭 기생적 시점


이 책의 화자는 여러 생물의 생식기[生殖器]로 지내온 어떤 생명체다. 특별한 애정은 없이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개체를 통해 이 세계를 서술한다. '……아, 그리고 이건 쇼세이의 몸 안에서 느닷없이 떠들어 대는, 누구도 듣지 않을 '저'의 이야기입니다.'라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들어 마땅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도 잘 보일 생각이 없으니, 쓴소리마저 거침없는 그런 것처럼.


이 정확하게 뭐라 할 수 없는 생명체는 쇼세이라는 이름의 일본인 독신 남성이자 성 소수자의 몸에 산다. 이전에도 인간의 생식기로 산 적은 있지만 남성 개체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소수자의 삶이 늘 그러하듯, 쇼세이 역시 기구한 삶을 살아온, 그런 탓에 이제는 다수자의 삶에 거슬리려 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딱히 돕지도 않는 그런 적당한 의태를 취하는 하나의 개체이다. 이 개체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화자의 서술은 위트 있고, 가벼운 농담 같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다양한 개체의 생식기로 살아온 혜안으로 독자에게 이 사회에 대해 묵직한 펀치를 날린다.


균형과 유지, 확대와 발전과 성장에 걸리적 거리는 소수자의 삶을 0부터 지켜봐오며 【다양성】을 죽이는 인류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쇼세이 그 자신도 일을 제대로 못하는 인간 개체, 그러니까 발달장애, ADHD, 경계선 지능인에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음을 지적하기도 하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지구나 다른 종은 죽어도 상관없어하는 듯한 태도와,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양 이미 제품은 넘쳐나는데 【지금보다 더 좋아지고 싶어】를 멈추지 못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책은 소수자로부터 출발해 인류가 오랜 시간 지켜온 묵은 관습과 자본주의 사상을 뒤집는 더 거대한 담론까지 훑어버린다.


프란츠 카프카가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아사이 료의 책은 꽤 성능 좋은 도끼라는 생각이 든다. 『정욕』을 읽었을 때에도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생식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나 역시 소수자이기는 하나 왼손잡이이므로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많다고 늘 생각한다. 그런 나조차도 좋았으니, 손에 쥐고 있는 【선택지】가 적으면 적을 수록 이 책, 아니 아사이 료의 작품들은 통쾌한 느낌을 선사해 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만약 다수자의 삶에 속해있다면? 『생식기』는 다수자인 당신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각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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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바운드 하트
클라이브 바커 지음, 강동혁 옮김 / 고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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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 You opened it.

I came.


이 대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가울 소식이 하나 있다. 영화 『헬레이저』 프랜차이즈의 시초가 된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 『헬바운드 하트』가 국내 초역으로 드디어 출간되었다는 것.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공포영화를 보던 취미가 계기이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로도 이미 익숙한 덕분에 소식을 듣자마자 나 역시 알라딘 펀딩으로 빠르게 구매했다. 최근 몇 년간 그 어떤 소설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려온 단 한 권의 책이었다.


새빨간 표지에 초판에만 적용되는 새빨간 책배까지. 알라딘 펀딩 첫날에 결제한 탓에 보다 긴 기다림을 견딘 뒤에야 이 새빨간 책이 도착했고, 나는 '르마샹의 상자'를 손에 넣은 프랭크처럼 두려움과 호기심에 떨리는 손으로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흐름은 알고 있었기에 더욱 긴장한 상태로.


『헬바운드 하트』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르마샹의 상자'라는 캐스트 퍼즐을 풀면, 지옥의 문이 열리고 세노바이트(수도사)들이 나타나 퍼즐을 푼 자에게 최고의 쾌락을 선사해 준다.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쾌락주의자 프랭크 코튼은 돈을 주고 이 상자를 구매하며 마침내 풀어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

너무 늦었어, 그는 중얼거렸다.

두려움이 치솟았지만 애써 억눌렀다.

르마샹의 퍼즐은 이미 풀려버렸다.

마지막 장치가 돌아갔다.

머뭇거리거나 후회할 시간은 진즉에 지나갔다.

심지어 프랭크는 장막이 찢겨나가는 순간을 위해

목숨과 지혜를 모두 바치지 않았던가?


지금, 쾌락의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으며,

심지어 맛을 본 사람은 훨씬 적은 그 쾌락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그 너머에는 감각의 지표를 새로 정의할 쾌락이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 쾌락이라면,


─ P.16


퍼즐을 푼 대가로 받는 건 맛있는 음식, 흡연, 음주, 마약, 섹스 따위의 범주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이었을까? 아니, 그들이 주는 것은 인류가 이해하는 형태로의 쾌락이 아닌 새로운 단계의 고통이었으니.


"내가 기대했던 거랑은 좀 많이 다른" BDSM적 쾌락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 읽기의 장점은 장면에서 읽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문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거의 모든 『헬레이저』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간의 욕망과 고통, 폭력과 살의, 공포와 고통은 소설 『헬바운드 하트』 속 텍스트로도 충분히 느껴진다. 인간의 쾌락과 고통에 다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작품. 여기에 이미 시각화가 된 수도사들의 모습까지 상상하며 읽으면 이보다 더 무서운 소설이 어디 있으랴.


이 책이 있었기에 영화가 있었고, 영화가 있었기에 나도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다. 만약 『헬레이저』 프랜차이즈를 좋아한다면 이 소설까지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고, 무서운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도 반드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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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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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흐름출판으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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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견해들은 쉽게 얻는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주장을 통해 생각하거나 특수하고 논리 정연한 이유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글쓴이의 논증에 허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거나 글쓴이가 고려했어야 하나 그러지 않아서 사실을 빠뜨렸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어렵다. ─ 『독서의 즐거움』, 수잔 와이즈 바우어

─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이다. 고도로 발달한 통신 네트워크와 민주적인 사이버 커뮤니티는 발언의 기회에 차등을 주지 않는다. 블로그, SNS, 댓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형태로 모두가 '의견'을 말하고 있고, 여기서 돈만 낸다면 세상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뜨는 광고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의견이 다 확실하고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는 않음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구독자로 힘이 생긴 일부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소재로 조회수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가짜 뉴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의견'에 많은 회사들이 너도나도 애플 사이다 비니거로 상품을 냈지만, 최근 이 식품의 효과에 대한 논문이 철회되었다. 유튜브에는 AI로 만들어진 가짜 의사들이 나오는 광고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잡음을 거르고 진짜를 가려내야 할까? 가짜 뉴스가 판치는 지금 우리에게 예방 주사 같은 책이 나왔으니. ​─ 이러한 흐름은 전 지구적으로 발생되었고, 문제를 인식한 한 신경심리학자가 펜을 꺼내들었다. 그 집적물이 바로 옌스 포엘의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흐름출판에서 출간되었다.


/

온라인 세계는 이 혼란을 더욱 악화시킨다.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정보에 노출되고, 신뢰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수많은 출처를 접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진실을 탐색해야만 한다. 과학적 사실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것이 도출된 방식까지도 깊이 이해하고, 그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탐구 능력은 학교에서도, 어떤 직장에서도 배울 수 없다. ​바로 그 빈틈을 채우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 P.9, 「한국 독자들을 위한 특별 서문」


언어를 만들고, 문명을 창조했으며, 달에도 가보고, 최근에는 인간의 지능을 훨씬 뛰어넘는 AI까지 만들었지만,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만 놓고 보면 얼마나 약하고 초라한지. 저자 옌스 포엘은 목차에서부터 인간 지능의 한계들을 지적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관찰도 기억도 잘 하지 못하고, 우리에게 있는 것만 측정할 수 있고, 자신의 방법을 의심하지 않고…….

저자가 이러한 주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온갖 정보들이 쓰인다. 우리는 모든 것을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1세 미만의 아이에게는 꿀을 주면 안 된다'라고. 유아 보툴리누스 중독 사례로 인해 퍼진 이야기지만, 연구의 많은 사례에서 꿀이 질병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혀냈고, 몇몇 사례에서는 집 안 식물과 정원에서도 병원균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툴리누스균에 감염되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된다. 하지만 거기서 가장 쉬운 예방법이 '꿀을 주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대를 거치고 거쳐 '1세 미만의 아이에게는 꿀을 주면 안 된다'는 문장만 남게 되었다. 또, 참을성이 있었던 아이들이 나중에 더 많은 것을 성취했음을 이야기하는 '마시멜로 실험'도 나오는데, 만약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 중 어떤 아이들은 충분한 자원이 있는 환경에 있었고, 또 어떤 아이들은 빈곤한 상태여서 두 번째 마시멜로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 실험은 통해 저자는 우리가 측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측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애사비는 안 샀지만, 카테킨은 산 사람, 그게 바로 나예요. 최근 나는 AI로 만들어진 광고에 이골이 나있었던 터라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책을 받고서는 그래도 심하게 속은 적은 없다는 살짝 오만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지만, 책은 나 역시 꽤나 많은 부분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루는 방식이 허술했음을 알게 해주었다. 애사비는 안 샀지만, 카테킨은 산 사람, 그게 바로 나예요.


마지막, 저자가 권하는 「보다 나은 판단을 위한 지침」까지 읽고 나니 세상을 더 의심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걱정 없겠다고 털고 끝내기에 우리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많은 것을 놓치고 관찰도 기억도 잘 하지 못하지 않은가. 한참은 끼고 살며 더 정확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또, 누구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을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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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철학
문성훈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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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을유문화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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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쟁을 하면서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中


다이내믹 코리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만들어진 국가 브랜드 슬로건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K 컬처가 유행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말 이 나라는 다이내믹하긴 한 것 같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이래, 삼국, 고려, 조선을 거쳐 근대에 이르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IMF로 바닥을 찍었지만 이를 극복한 뒤엔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역사적 사건 탓일까? 분명 고난을 이겨낸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한국인은 성장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었고, 이는 곧 경쟁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때 서점가에서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적극 수용하듯 자기 계발서의 붐이 일었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게 그려진다. 거기에 SNS 마저 한 술 보태니, 이 열기가 사그라들기는커녕 비교와 경쟁은 곱절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내려놔도 괜찮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경쟁과 성장에서 '나를 돌보는 철학'으로.


서울여대 현대철학 교수이자 우리나라 사회정치철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문성훈 교수의 철학 에세이 『나를 돌보는 철학』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문성훈 교수는 유수의 전문 철학서적을 쓰시다가 최근에는 독자들과 폭넓게 소통하기 위해 철학 에세이 형식으로 집필하고 있다고 밝히는데 이번 『나를 돌보는 철학』이 그 바로 그 두 번째 철학 에세이다.


『나를 돌보는 철학』, 참 직관적인 제목이 아닐 수가 없다. 책은 제목 그대로 나를 돌보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철학이란 처방전을 통해.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된 철학 사랑이 저자에게 철학의 길을 걷게 만들었는데, 그 기나긴 공부의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 '대한민국 현대인'에게 적절한 철학을 소개한다.


책은 1장에서 타인에게 상처받은 나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해, 2장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으로 열며 인간 본성에 대해 솔직하게 알아보고, 마지막 3장에서는 지금까지 나를 돌보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현재 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우리 자신이 어떻게 존재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미셸 푸코는 성공한 삶, 도덕적 삶, 정상적 삶, 종교적 삶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이야기한다.

그는 인생을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창조하는 삶을 제안한다.


인간의 삶을 예술 작품처럼 만든다는 것은

개인 각자가 자기 삶을

그 누구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삶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 삶을 예술 작품처럼 만든다는 것은

내가 바로 내 삶의 창조자가 된다는 뜻이다.


─ 3부, 나를 만들다


문성훈 교수의 첫 번째 철학 에세이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을 좋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읽어볼 수밖에 없었던 책. 개인적으로 잘 맞았던 전작도 나에게 있어서는 물론 좋았지만, 더 많은 독자를 품을 수 있는 책이라 하면 『나를 돌보는 철학』이 아닐까 싶다. 이 사회에 살며 지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 삶에 지친 사람,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 열등감과 자책감 속에 사는 사람, 모두 철학을 통해 치유해 보자. 자기 계발서처럼 정확한 공식은 제시되지 않으나, 철학을 통해 나만의 답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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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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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비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안치나이, 무요 게이코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홋카이도 안치나이 마을로 옮겨 우편배달부 일을 시작한다. 도쿄처럼 사람이 많지 않아 주민들과 마주하며 배달 일을 하던 어느 날, 데라토미노라는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괜찮으시다면 일요일에 꼭 와주세요. 음만 듣고 가세요."


막무가내로 권유하는 데라토미노, 마지못해 음을 듣는 무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어른의 연애가 시작된다.


오감을 깨우는 섬세한 연애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마쓰이에 마사시가 오감을 자극하는 소설, 『가라앉는 프랜시스』로 돌아왔다. 띠지의 '오감을 깨우는 섬세한 연애소설'이라는 문구만큼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소설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문장으로 편지로 사람을 연결하는 우편배달부 무요 게이코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고 마는 음을 수집하는 데라토미노 가즈히코, 이 두 사람의 서사를 그린다.


/

게이코는 생각한다.

사람이 형태로 만든 것은 남아도, 사람 그 자체는 남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고,

손과 발,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었는지…….


형태로 남지 않는 것은 다 사라져 버린다.

─ P.23


과학자들이 이제는 '인류세'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인간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많이 주는 시대가 왔다.

인간은 그 정도로 힘이 커진 걸까 생각하던 시기에 나는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은 무요가 데라토미노에게 소포를 전달하며 처음 연결되고, 그의 권유에 무요는 데라토미노의 집에서 음(音)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청각을 상징하듯 달팽이관처럼 생긴 프랜시스 수차의 에너지를 직접 받아 듣는 음, 데라토미노는 그걸 꼭 들어봐야 한다면서 무요에게 강하게 권하고. 데라토미노의 집 스피커가 생생한 음들을 무요와 데라토미노는 함께 듣는다.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 만에 서식하는 해달 무리가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조개를 깨는 음부터 시작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도시 몬테 폴로니코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교회 종의 음, 땅울림을 내면서 분화하는 아이슬란드 화산 음, 나이아가라의 폭포 음, 등을.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각각의 리얼한 광경이 냄새와 습도, 기온과 바람, 진동까지 수반하면서 눈앞에 떠오른다고 표현했듯 거대한 지구가 생생히 움직이는 모습이 활자를 통해 펼쳐진다. 그리고 문장은 음의 감각에서 무요와 데라토미노 서로라는 작은 존재에 대한 감각 즉, 몸의 감각으로 수렴한다. 이런 흐름을 읽어내는 순간, 거대한 힘에 고민했던 나 자신마저 무척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느낄 때는 그 사람만의 감각이 충만해지고, 세상의 모든 음을 통해서는 우리는 여전히 작은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는,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작품. 이름이 있는 누군가와의 연결은 소중하구나, 하고.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이나 상호작용하는 서로를 소중히 느낄 수 있다고 어렴풋하게 닿는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이 좋았다. 인류세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는 따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겠지만, 저자는 이 드넓은 대지와 거대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작고 초라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연결되는 모든 사람은 각자에게 커다란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두 사람의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전한다.


1958년 출생의 일본 남성 작가. 그 탓인지 소설 속에 낡은 사고방식이 은근하게 깃들어있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게이코에게 비정규직을 당연한 듯 권유한다던가, 나이 든 남성의 시선이나 흔들리는 감정을 즐기는 게이코의 모습 등 작가가 젊은 여성에게 바라는 희망 사항인 걸까? 하지만 데라토미노가 프랜시스 수차의 버저음이 싫었듯 이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도 소설 속의 모든 문장도 매 순간 마음에 들고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비채 출판사에서 주관한 짝꿍서평단으로 씨네필 슝님과 함께 읽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니 감상이 확장되는 시간이었어요. 문장도 다시 보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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